-
1872년 제작된 『1872년 군현지도』 중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는 1872년 대원군의 지시로 제작된 관찬 지방지도로 회화식 채색지도 형태를 취하고 있다. 1871년 대원군의 지방 읍지 상송령에 따른 후속조치로 1872년 각 지방 관아에서 개별적으로 작성한 지도이며, 전라도 광주목 지도 역시 이 시기에 납본한 것이다....
-
전라도 광주 지역의 찰방역인 경양역에 관해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역지. 『경양역지』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찰방역(察訪驛)인 경양역(景陽驛)에 대한 역지(驛誌)로 『전라도읍지(全羅道邑誌)』 7책 부록에 실려 있다. 경양역은 전라도 광주 지역 북쪽 5리[약 2㎞]에 6개의 속역(屬驛)을 거느린 찰방역이다. 조선 전기에 승(丞) 1명을 두었다가 1510년(중종 5)에 찰방역으로...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경열사 경내에 있는 유허비. 정지(鄭地)를 배향한 경열사(景烈祠)의 유허비다. 정지는 고려 후기 문하평리(門下評理),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節制體察使)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정지를 배향하였는데, 뒤에 7인을 추배(追配)하면서 팔현사(八賢祠)로도 불렀다. 추배된 7인은 유사(柳泗), 고중영(高仲英), 전상...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개항기 광산이씨의 효열각. 광산이씨효열각은 음성박씨 박성립(朴性立)의 부인인 광산이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고자 세운 비각이다. 광산이씨는 1795년 출생하여 1819년 박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성립이 죽었다. 그러자 광산이씨는 남편을 따라 삶을 마감하였다. 1832년 광주 지역 유림들이 광산이씨의 효열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며...
-
1908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열렸던 최초의 국악 경연대회. 광주국악경창대회는 오늘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여러 국악 경연대회의 시초가 되었다....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군 공수방면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초등 교육기관. 본래 1896년(고종 33) 11월 광주향교의 부속 건물 사마재(司馬齋)에서 문을 연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를 흡수하여 1906년 11월 1일 공립으로 광주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개교 당시 수업연한 4년 1학급 50명 규모였으나, 1914년에는 7학급 342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1922년 제...
-
1908년 처음 건립된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법무부 산하 교정시설. 공식 명칭은 법무부 광주지방교정청 광주교도소로 광주교도소라고 한다. 수형자와 형이 확정되지 않는 미결수용자를 동시에 수용·관리하는 시설로서, 법질서 확립을 통하여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수용자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국가 중요시설이다....
-
1907년 5월부터 전라남도 광주를 포함한 전국에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해 전개된 운동. 1907년 5월 전라남도 광주의 민중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차관을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려 하였다. 일제의 강요에 의한 막대한 차관 도입으로 1907년 그 빚은 1300만 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연하게 전개된 광주의 국채보상운동은 비교적 다른 지역보다 늦게까지 참여 열기...
-
1895년부터 1935년까지 광주광역시의 옛 행정 구역. 갑오개혁 초기에 지방제도의 개혁 방침이 세워지고, 1895년(고종 32) 5월에 23부제를 반포하였다. 종래의 전국을 8도로 나누던 것을 폐기하고, 부(府)·목(牧)·군(郡)·현(縣)을 군으로 단일화하여 총 337군을 23부 밑에 나누어 두었다. 전라도에는 전주부·남원부·나주부·제주부가 설치되었고, 광주 지역은 광주군(光州郡...
-
조선 후기 광주목사의 인수인계 및 광주목의 회계 관리를 위해 작성된 장부. 『광주목중기(光州牧重記)』의 저자는 미상이나, 19세기 후반 광주목 소속의 이서층(吏胥層)으로 추정된다....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
1899년(고종 36) 전라남도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간행한 인문지리서. 『광주읍지(光州邑誌)』[1899]는 대한제국 때인 1899년(고종 36) 전국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의해 편찬하여 제출한 전라남도 광주군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기록한 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
개항기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서양식 병원. 광주제중병원은 1905년(고종 42) 11월 20일, 의료 선교 차원에서 미국 남장로교 의료 선교사이자 의사인 J. W. 놀런(Nolan)이 선교사 사택을 개조하여 개원한 광주 지역 최초의 서양식 근대 병원이다. 제중원과 광주제중병원은 명칭과 의료 선교 차원에서 세워진 설립 목적은 비슷하지만 두 병원이 세워지게 된 경로와 설립...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건립했던 광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광주기독병원의 전신으로 광주, 전남 지역의 의료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괴양정(槐陽亭)은 문철환(文喆煥)과 당시 죽파재(竹坡齋) 훈장이었던 조카 문기엽(文基燁), 문인환(文仁煥) 등이 세웠으며, 상량문에 1891년(고종 28)에 건립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다. 괴양정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신제공파(愼齊公派)의 휴식처 및 강학 장소로 이용되었고, 누정 이름의 괴양은 정자 바로 앞에 늙은 괴목이 있어서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권율의 창의비. 권율 창의비는 권율(權慄)[1537~1599]의 11세손인 권재윤(權在允)이 1901년에 광주군수로 부임하면서 권율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이듬해인 1902년에 세운 것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행주기씨 재실 겸 서당. 귀후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행주기씨의 재실이자 서당이다. 행주기씨는 조선 중기까지 경기도에 거주하였으나 기묘사화 때 광주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현재의 광산구에 정착하였다. 귀후재는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인 기언복(奇彦復)[1713~1772]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정내의 현판 글씨를 구한말의 문신이자 명필인 석촌(石村...
-
구한말의 문신이자 대한제국기에 궁내부 비서관 등을 역임한 김봉선이 남긴 문서와 복식. 김봉선(金鳳善)[1856~1909]은 구한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순서(舜瑞), 호는 죽파(竹坡)이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다....
-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판소리를 뿌리내리고 지역 창자들을 규합한 판소리 명창. 김창환(金昌煥)[1854~1927]은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서 출생하였고 묘소도 마을에 있다. 김창환은 집안 내림에 의하여 무업을 승계하는 세습무계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친인척 중에 판소리 명창들도 상당수 있다. 남도판소리서편제 명창...
-
1906년 경 김창환, 김채만 등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전라도 출신 예인들의 국악 공연단체. 김창환협률사에 소속된 명창들은 대개 김창환, 김채만의 제자이거나 함께 활동했던 이들로, 김창환·강용환·유성준·김정길·김채만·안영환·공창식·박지홍·김억순·박꾼수(박종섭)·신용주·전일도·한성태·안영채·박화섭·박종원·정학진·김봉학 등이 거론되고 있다....
-
개항기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태원(金泰元)[1870~1908]은 1870년(고종 7) 9월 16일 전라도 나주목[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渴馬池)마을에서 아버지 김로학(金魯學)과 어머니 장수황씨(長水黃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 김율(金聿)도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어려서부터 지략(智略)이 웅대하였으며, 순릉참봉(順陵參奉)의 벼슬을 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
개항기 전라남도 광산군 출신의 유학자 오계수의 문집. 『난와유고(難窩遺稿)』는 1916년 오준선(吳駿善), 오정선(吳禎善), 오재수(吳在洙) 등 오계수(吳繼洙)[1843~1915]의 문인들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오재수가 지은 발문이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남덕정(覽德亭)은 조선 후기 향토인 나도규(羅燾圭)가 1864년(고종 원년)경 집터에 휴양 겸 강학소로 활용하고자 건립하였다. 정자의 한 칸을 봉양서실(鳳陽書室)이라 하였는데, 학도들을 가르치는 강학소로 활용되면서 어진 인재를 양성한다는 육영재(育英齋)라는 별칭이 나도규의 문집 『덕암만록(德岩漫錄)』에 기록되어 있다. 문하생들에...
-
1894년(고종 31)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은 처음 교조(敎祖)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농민봉기와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정읍 황토현(黃土峴)과 장성 황룡촌(黃龍村)에서 지방군과 정부군을 각각 격파한 후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정부군과 전주...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는 개항기 효자문. 밀양손씨삼효문은 1870년(고종 7) 밀양손씨의 손맹옥(孫孟玉), 손맹대(孫孟大) 형제와 손맹대의 아들인 손양복(孫陽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손맹옥과 손맹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부모님이 깊은 병환에 들자, 손맹옥과 손맹대는 넓적다리 살을 잘라 고아서 부모님께 드렸다. 손양복은 손맹대의 아들로...
-
근대 개항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공선(公善), 호는 석음(石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의현(朴懿鉉)이며, 할아버지는 박제방(朴濟邦)이다. 아버지는 박양동(朴陽東)이고 어머니는 고제유(高濟儒)의 딸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부인은 안명화(安命和)의 딸 안씨(安氏)이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봉석(朴奉石)[1885~1910]은 전라도 광주목 도천면 수박치(水朴峙)에서 태어났다. 1908년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들어가 포군(砲軍)의 직책을 가지고 전라남도 곳곳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09년 일본군에게 붙잡혔고, 1910년경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박원영(朴源永)[?~1896]은 전라도 광주목에서 태어났다. 자는 주옥(周玉), 호는 포류재(蒲柳齋)다. 기우만(奇宇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호남 일대에서 활약하였으며, 광주향교(光州鄕校)의 재임(齋任)으로 광주향교를 끝까지 지키다가 의병을 진압하러 온 진위대(鎭衛隊)에 의해 체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재실. 봉강재는 한사기(韓謝奇)[1257~1314]를 주벽으로 제향하는 청주한씨의 재실로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한사기는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충렬왕 때 뚤루게[禿魯花]로 가족과 함께 원나라로 갔는데, 아들이 하남부총관(河南府摠官)에 오르자 한림직학사 고양현후(高陽縣侯)...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
-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재실. 봉산재는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박상은 1473년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태어나 1501년부터 1529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시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에 유배되었으며, 『눌재집(訥齋集)』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다. 봉...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삼괴정(三愧亭)은 문병일(文炳日)이 아버지 문유식(文愉植)의 뜻을 기리고자 1900년에 건립하였고, 아버지 문유식의 호를 따 삼괴정이라 명명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
-
조선 중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학자 김성원의 시문집. 김성원(金成遠)[1525~1597]의 자는 강숙(剛叔), 호는 서하당(棲霞堂) 또는 인재(忍齋)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광주 석서성촌에서 출생하였다. 1558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지만 이후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560년에 침랑(寢郞)이 되었고, 1581년에 제원도찰방(濟源道察訪)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
-
전라도 광주 출신의 근대 학자 안규용의 문집. 안규용(安圭容)[1860~1910]의 자는 공삼(公三), 호는 서헌(瑞軒)이다. 아버지는 안국환(安國煥)이며 광주 봉곡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서 태어났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에게 수학하였으며,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1845~1910), 주목(州牧) 이희성(李羲性) 등과 교유하였다. 15...
-
각도 읍지·사승·보첩 등에 전하는 충·효·열에 뛰어난 100여 명의 약력과 행실을 간략하게 기록한 책.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 「남원, 광주(南原-光州)」의 원본 소장처는 보성 남평문씨(南平文氏)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숭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전구생과 전자명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 이신의를 모신 사우. 시정유애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석탄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모신 사우이다. 이신의는 임진왜란 때 향군(鄕軍) 300명과 함께 왜군을 무찔렀으며,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죽임에 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양동골(梁東骨)[1885~1961]은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죽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양서현(梁瑞賢) 또는 양서영(梁瑞永)'이라고도 불렸다. 양진여(梁振汝) 의병부대에 입대하여 전라남도 광주와 담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군 광주수비대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운 가설 극장. 양명사(揚明社)는 190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세워진 창극을 공연하던 근대적 의미의 상설 극장으로 김인수, 정인준 등이 설립하였다. 극장주는 서울 출신의 이응일이었는데, 당시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으로 전라남도 광주에 왔다가 정착하였다. 이응일은 당시 유행하던 창극을 바탕으로 흥행하던 업종에 손을 댄 것이 양명사를 세우게 된 배...
-
근대 개항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의병장. 양상기(梁相基)[1883~1910]의 본관은 제주, 호는 설죽이며 아버지는 의병장 양진여(梁振汝)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는 어등산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활동의 중심지. 어등산은 평야가 펼쳐진 전라남도 서부 지역에서 높은 곳이어서 주변 지역의 관측이 용이하고, 일본 군경의 추적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데 좋은 장소였다. 또한 광주, 나주, 함평, 장성, 영광 등으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한말 호남의병과 일본 군경 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개항기 순흥안씨 재실. 영사재[운림동]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순흥안씨 문중의 재실로,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남강(南岡) 안공(安珙)[1447~1530]을 모시고 있다. 안공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49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이 일어나 안공의 사촌인 당시 좌의정인 안당(安瑭)과 안당의 아들인...
-
개항기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활동한 유학자이자 의병. 오계수(吳繼洙)[1843~1915]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중함(重涵), 호는 난와(難窩)이다. 1843년(헌종 9) 8월 13일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 도덕리 도림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오갑선(吳甲善)이며,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로 정시혁(鄭時爀)의 딸이다....
-
전라도 광주 출신의 근대 학자 이용헌의 문집. 이용헌(李龍憲)[1851~1895]의 자는 운오(雲五), 호는 오산(梧山), 본관은 함풍(咸豊)이다. 아버지는 이민형(李敏炯), 어머니는 장택고씨(長澤高氏) 시홍(時洪)의 딸이다. 광주 오치면 방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에게 수학하였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오성술이 살았던 집터. 오성술(吳成述)[1884~1910] 생가 터는 오성술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삼가면 죽산리에 속하였으나,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으로 편입되었다....
-
개항기 광주·전라남도 지역의 의료 사업과 전도 사업을 위해 활동하였던 미국 출신의 선교사. 오웬(Clement C. Owen)[오기원(吳基元)]은 1886년 미국 버지니아주 유니언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전공하였다. 해외 선교 활동을 위해 1897년 버지니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이듬해인 1898년 한국에 파송(派送)되어 목포선교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광주·전라남도 지역...
-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오준선(吳駿善)[1851~1931]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행(德行), 호는 후석(後石)이다. 1851년(철종 2) 10월 14일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림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하규(吳夏圭)와 어머니 금성나씨(錦城羅氏)의 3남 중 장남으로 유년기에 큰아버지 오항규(吳恒圭)와 큰어머니 순천박씨(順...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2021년 현재 운리영당 명칭은 벽진서원(碧津書院)이다. 운리영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임진왜란 공신인 (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을 모신 사우이다. 박광옥은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노사신(盧思愼) 등과 학문 교류를 나누었다.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며,...
-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된 운암사를 기리기 위해 옛터에 세운 비. 운암서원유허비(雲巖書院遺墟碑)는 운암사(雲巖祠) 창설의 의미와 배향된 인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운암사는 임진왜란기 의병장이었던 송제민(宋齊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06년(숙종 32)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세운 사우(祠宇)이다. 이후 고경리(高敬履), 송타(宋柁),...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개항기 사우. 원당영각(元堂影閣)은 조선 전기 무관인 오자치(吳自治)[1426~?]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책봉되고, 1476년(성종 7) 공신의 포상으로 초상화를 받았다. 1892년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오자치의 나주오씨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원당영각을...
-
개항기 때 학자인 조봉묵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유무등산기(遊無等山記)」를 지은 화교(華郊) 조봉묵(曺鳳黙)[1805~1883]은 전라남도 능주[전라남도 화순의 옛 지명]에서 태어났다. 많은 글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1894년에 대부분 유실되었다. 저서로 『화하집(華下集)』, 『화교유고(華郊遺稿)』 등이 있다. 「유무등산기」는 조봉묵이 1828...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율수재(聿修齋)는 최익현(崔益鉉)의 제주도·흑산도 유배 시, 지성으로 보살핀 최익현의 제자 박해량(朴海量)과 박해량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박현동(朴玄東)의 강학 공간으로 박해량이 1886년(고종 23)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오성술의 묘. 오성술(吳成述)[1884~1910]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죽파(竹坡), 본명은 오인수(吳仁洙)이다. 전라남도 광산군 삼도면 송산리 죽산마을 양반 가문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익히며 한문과 유학의 기초를 닦았다. 1907년 고향마을 용진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金泰元)[1870~1908] 의진(義陣)...
-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이경오(李敬五)[1881~?]는 전라남도 광주군 두방면 각화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에서 태어났다. 양상기(梁相基)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의병. 이기섭(李基燮)[1883~?]의 출생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기섭이 체포될 당시인 1909년 5월 7일 광주경찰서에서 남긴 '폭도체포의 건'[광경비수(光警秘收) 제385호] 문건에 26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83년생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울러 이 문서에는 이기섭의 본적 또한 전라남도 광주군 서양면 경양촌(景陽村)으로 나온다. 이...
-
개항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항일 의병. 이문거(李文居)는 1879년(고종 16) 출생으로 추정되며,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군 석저면 평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일대]이다. 양상기(梁相基)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다 일본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이운집(李云集)[1870~?]은 1870년(고종 7)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09년 6월 전라남도 광주를 비롯한 나주, 영광, 함평, 담양 등지에서 활동하였던 김원국(金元國)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개항기 가옥. 이장우가옥은 양파(楊波) 정낙교(鄭洛敎)[1863~1938]가 1899년에 지은 주택으로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상량문에는 ‘광무삼년을해이월십일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된 기록이 있다. 후원에는 대나무가 있고 뒷쪽으로 경사가 있어 전통적인 지형이다. 현재 사랑채 앞의 작은 연못은 일본식이다. 1965년에 동강(東岡) 이...
-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임윤팔(林允八)[1886~1910]은 전라도 광주목 기례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서 태어났다. 임윤팔은 김동수(金東洙) 의병부대의 주력을 이끌면서 전라남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는 등 의병 활동 중 체포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오씨 재실. 장사재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나주오씨의 재실이다. 나주오씨는 일설에 의하면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를 이루었다고 하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나주오씨는 나주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이후 오언 묘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본량동, 평동 지역에 거...
-
1896년 8월 4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치된 전라남도 관찰사의 치소. 전라남도 관찰부(全羅南道觀察府)는 1896년(고종 33) 광주 지역에 설치되었다. 1910년 전라남도 관찰부에서 전라남도청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으로 이전하여 광주재무감독국(光州財務監督局)[지금의 광주지방국세청] 목조 건물을 청사로 사용하였다. 1930년 광주재무감독국 목조...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정윤길정려는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1723~180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5년에 세웠다. 정윤길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늙은 부모님을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극진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정윤길이...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재요 부인 밀양박씨를 기리기 위한 사우. 정재요밀양박씨효열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1905년 정재요(鄭在堯)[1838~1879]의 부인 밀양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정재요는 정윤길(鄭潤吉)의 증손으로, 시문을 잘 쓰고 명필이었다. 밀양박씨는 정재요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정재요에게 주면서 극진히...
-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장. 조경환(曺京煥)[1876~1908]은 전라도 광주목[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락(敬洛), 호는 묵헌(黙軒)·대천(大川)이다. 조준환(曺準煥)이라고도 부른다. 전라남도 함평, 장성, 영광, 광주 등에서 일본군과 수많은 전투를 주도하였고 어등산(魚登山) 전투에서 전사...
-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조성학(趙聖學)[1889~?]은 전라남도 광주부 동문내(東門內) 구교동(舊校洞)에서 태어났다.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종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이들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청주한씨 부인의 효열비. 청주한씨(淸州韓氏)는 29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성심껏 간호를 하였고, 남편이 운명하려 하자 살을 베고 피를 주어 며칠을 연명하게 하였다. 남편이 운명하자 본인도 따르려 하였으나,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상례를 잘 치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고, 좌우 손가락을 베고[斷指] 피를 입으로 넣어 연명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던 개항기 순천박씨 문중 재각. 태산재는 순천박씨 문중 재각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후 순천박씨의 제향 공간이자 문중 집회의 중심적 장소로 이어져왔으나 현재는 철거되었다. 순천박씨는 신라말기와 고려 초에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순천박씨는 15세기 중엽부터 순천 지역이 아닌 전국 각지로 분파되었다. 한편 순천 지역에 잔류한...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의 비. 송제민(宋濟民)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송제민의 자는 이인(以仁),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송정황(宋庭篁)의 아들이며 정개청(鄭介淸), 이지함(李之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산룡(梁山龍)·양산숙(梁山璹)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김덕령(金德齡)의...
-
1908년 전라도 광주 지역을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호남의병 연합 부대.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은 1908년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11개의 호남의병 부대들이 연합한 부대다....
-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인근에 있었던 경양역 및 조선 후기 호남에 있었던 각 역에 대한 정보를 수록한 책. 『호남역지(湖南驛誌)』는 1686년(숙종 12) 경양역(景陽驛)의 찰방(察訪)으로 있던 이세구(李世龜)가 만든 『경양지(景陽志)』[1686년 판본]와 1895년(고종 32) 호남의 청역(請驛) 찰방 등이 작성한 『역지(驛誌)』를 합편(合編)한 책이다. 표제는 '역지부사례(驛誌...
-
1907년 10월 30일 기삼연의 주도로 결성된 의병연합부대. 1907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 체결, 군대가 해산하는 등 혼란한 정국이 이어졌다. 전라남도 장성에서 기삼연(奇參衍)은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
.1907년 호남 지역 인사들이 결성한 애국계몽단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실력양성을 강조하는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자 서울의 호남 출신 인사들에 의해 조직된 단체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후암정(後巖亭)은 박섬동(朴暹東)의 아들인 박노두(朴魯斗), 박노걸(朴魯傑) 두 형제의 합의로 박섬동 사후 20년인 1899년(고종 36)에 건립되었다. 정자명은 오준선(吳駿善)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