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가학정(駕鶴亭)은 죽산박씨 중시조인 죽림(竹林) 박경(朴璟)이 임진왜란 후 용진산에 세운 정자이다. 1935년에는 박경의 후손 박동춘이 가학정을 재건하였는데, 당시에는 가학정 중건에 관한 사연과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염제(念齋) 송태회(宋泰會)[1872~1941]의 대서현판과 박동춘(朴東春)의 시, 노탄(老灘) 송규헌(宋奎憲)의...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건향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향등마을 뒤편에 있다. 경주김씨 죽헌공파 종친회에서 1972년에 건립하였다....
-
고려 후기 14세기 말에 탁광무가 낙향하여 고향 광주 지역에 지은 정자. 경렴(景謙) 탁광무(卓光茂)[1330~1410]는 고려 공민왕 때 우사의(右司儀)로서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1287~1367]에게 배우고 이색, 정몽주, 문익점, 정도전, 이숭인 등과 교유하였다. 탁광무는 신돈에 아부하여 행패를 부리는 홍영통(洪永通)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었던 강직한 인물로 신돈 일파의...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파평윤씨 사우인 서강사의 강당. 경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서강사(瑞岡祠)의 강당(講堂)이다. 서강사는 파평윤씨 문중의 사우로 시조인 윤신달(尹莘達), 후손인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敦), 윤보(尹珤)의 6명을 모시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에 파평윤씨의 사우가 없음을 알고 건립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청송심씨 재실. 경모재는 김해부사를 지낸 청송심씨 삼암 심광헌(沈光憲)[1541~1592]의 재실이다. 심광헌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주부를 역임한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막하에 들어가 옥포전에서 적선 30척을 격파한 후 다월포로 가서 전라도사 최철견과 힘을 합쳐 방어진을 구축하였으며, 노량전에 참전하여 사천까지 왜적을 추격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 정지장군 사당. 경열사는 고려 말 무신 정지(鄭地)[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 뒤쪽 언덕 위에는 정지의 묘가 있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방식의 예장석묘(禮葬石墓)로서 '정지장군예장석묘'라는 명칭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지는 본관 하동(河東), 시호는 경렬(景...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강학 공간. 경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으며, 1930년 소해정(蘇海亭)이란 이름으로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건립하였다. 노종룡은 최익현(崔益鉉)[1833~1907], 송병선(宋秉璿)[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乙巳五賊)...
-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의이씨 재각.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배양하는 곳이다.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石灘)이다. 1566년(명종 21)부터 민순의 문하에서 학업을 받아 문장을 배웠으며,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춘 학자로 『석탄집』을 남겼다. 정묘호란 때 왕을 대동하여 강화도로 가던 중...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1958년 건립된 800석 규모의 극장. 장인섭, 장호승, 최수열 등이 합자해서 세운 영화관으로 3000만 원의 자본금이 투자되었다. 계림극장은 건립 당시 담양과 순창 방면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계림오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영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1년 휴관한 뒤, 2008년 극장의 건물 또한 철거되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 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회의 등을 했던 홍남순 변호사의 집. 홍남순은 1960년대부터 사회·민주운동을 펼쳤던 인권운동가였다. 홍남순은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유신시대 긴급조치로 끌려간 이들을 앞장서서 변호하였다. 홍남순의 집은 동구 궁동에 있었는데, 민주 인사들의 아지트이자 항상 양심수의 가족들로 붐볐다. 당시 경찰과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1980년 중...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정자. 고난정(苦難亭)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고, 지금의 정자도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으며 현판은 없다. 고난정은 양림동 선교사 묘역으로 가는 '고난의 길' 초입에 있어 고난정이라고 부른다. '고난의 길'에는 65개의 디딤돌을 불편하게 배치되어 있다. 한국에서 선교하는 동안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곳에 묻힌 45명의 선교사들과 850여 명의 호남...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고씨삼강문은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高敬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와 고인후(高因厚)[1561~1592],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盧尙龍)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高巨厚)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高傅金) 총 7...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明)[1533~1592]이 살던 곳으로, 현재의 가옥은 191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사당에는 고경명을 비롯하여 함께 전사한 두 아들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87년 6월 1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조선시대 광주읍성 북문 공북문 밖에 있었던 2층 누각. 공북(拱北)이라는 이름은 북쪽 도성에 있는 임금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지리적으로 한양 남쪽에 있는 군현의 성곽 북문이나 북쪽에 위치한 루(樓)에 ‘공북’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경우가 많다. 광주 공북루는 공북문 위에 설치한 문루가 아니라 북문 바깥 쪽에 별도로 건립한 누각이다. 공북루는 지방 관리가 사신을 접...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관수정(觀水亭)은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정자로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삶의 표본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후기에 광산재(廣山齋) 오응석(吳應錫)[1660~1735]이 나주오씨 오겸(吳謙)[1496~1582]을 기리는 의미로 송산동 내동마을에 세웠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건물. '관풍(觀風)'이라는 단어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 '세상을 본다.', '시류를 본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관풍대(觀風臺)'는 허백련(許百鍊)이 지인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바람을 맞는다는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지인들의 방문을 위해 지은 별채이다....
-
일제강점기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에 건립되었던 정자. 관호정(觀湖亭)은 김정수(金鼎洙)가 1932년 건립하였다. '관호'는 '호수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물의 철학 '가장 좋은 선(善)은 물[水]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노자(老子)의 사상에서 연유한 명칭이다. 김정수는 관호정의 일부를 자신의 처소로 할애하여 이름을 계남정사(桂南精舍)라 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사우. 광산사는 조선 중기 홍문관 우의정을 지낸 지족암 오겸(吳謙)[1496~1582]을 제향하기 위한 사우이다. 송산동 세동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하며 장방형의 대지에 전통기와 담장이고, 문간채와 사당 본채가 있다. 부지 인근에는 강당격인 금하재(錦霞齊)가 자리한다. 오겸은 오신중의 증손이며 조부는 오자치이고 오세훈이 부친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개항기 광산이씨의 효열각. 광산이씨효열각은 음성박씨 박성립(朴性立)의 부인인 광산이씨의 효열(孝烈)을 기리고자 세운 비각이다. 광산이씨는 1795년 출생하여 1819년 박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성립이 죽었다. 그러자 광산이씨는 남편을 따라 삶을 마감하였다. 1832년 광주 지역 유림들이 광산이씨의 효열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며...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남촌 윤지화와 그 후손을 모신 사우. 광유재(光裕齋)는 조신 중기 문신인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1476~1558]와 그 후손을 모신 사우이다. 윤지화는 조선 연산군 때 호조정랑으로 재임하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으로 와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박상(朴祥)[1474~1530] 등 당시 광주 지역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
1960년대 현대적 건축으로 건립한 전통 활터. 관덕(觀德)이란 '활과 화살을 잡음에 그 견고함을 살핀 뒤에야 적중시켰다 말할 수 있고 이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예기(禮記)』 제46편 '사의(射義)' 에서 연유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에 있는 현대 건축물. 1959년 여름 교통부의 관광호텔 건립 계획에 따라 광주시 북구 금곡동 원효사 인근에 지은 산장호텔이다. 공식 명칭은 ‘무등산 산장호텔’이나 광주사람들은 줄여서 ‘무등산장’, ‘산장’이라고 불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 홀은 1911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공사비는 미국 스턴스(M.L.Sterns)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 제니 수피아(Jannie Speer)를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5,000달러로 충당하였다. 1927년 윈스브로우 홀이 건립되면서 특별교실로 사용하다가 지금...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 홀은 1927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은 건물로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스와인하트(Martin. Luther Swinehart)[서로득(徐路得)]가 설계하였다. 수피아여학교의 지정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한 윈스브로우(Winsborough)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윈스브로우 홀...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예배당.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를 개척한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선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광주서석초등학교의 본관, 별관, 체육관[강당]이다. 광주서석초등학교는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광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이다. 1896년(고종 33)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란 명칭으로 광주향교(光州鄕校) 옆 사마재(司馬齎)에서 개교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 광주 수창초등학교 본관은 1931년 광주제2보통학교[지금의 광주수창초등학교] 본관으로 건립된 2층 벽돌조 교사(校舍)로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광주 장덕동 근대 한옥은 1920년대에 건립되었으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손자인 율원군(栗元君)의 후손들이 거주한 주택으로 근대기에 지어진 개량 한옥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 안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은 전남대학교 용봉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6.25전쟁 뒤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건립되었다. 광주 출신 건축가 정옥진(丁玉鎭)이 설계를 하고, 공사에 필요한 벽돌은 자체적으로 벽돌공장을 세워 조달하였다고 한다. 인문대학에서 강의실 등으로 사용하던 건물로서 2004년 9...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본관.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은 1930년에 완공된 건물로서 일제강점기 관공서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시공은 오쿠라[大倉] 토목주식회사가 맡았으며, 공사비는 3만 3,000원이었다. 2002년 5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학교 건물.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은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의 본관으로 전라남도지사 및 광주시장이 주축이 되어 1947년부터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진행되었다. 이때 전라남도지사로부터 박철웅이 일본 유학파이자 문교부 관계의 업무를 한 경험을 들어 업무를 전담하게 하였다.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 도민의 성원 하에 7만 2000여...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 있는 조선대학교 설립 초창기의 중학교 건물. 광복 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기관을 세우기 위해 7만 2,000여 명의 회원들이 염원을 모았다.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민·관·군이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민립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 7월 조선대학원부속중학원이 설립되었고, 1948년 7월 조선대학교부속중학...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조선대학교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광주 조선대학교 의학대학 본관은 1957년에 지어져 대학 건물의 특성과 당시의 기술력을 알 수 있는 건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학교 건물. 광주중앙초등학교는 1907년 일본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광주공립심상고등소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광복 후 광주중앙공립국민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52년 광주중앙국민학교로, 1996년 광주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건립 시기와 관련하여 광주중앙초등학교 홈페이지에는 1933년 건축하였다고 기록한 반면, 일본인이...
-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광주교육대학교 내에 있는 건축물. 1957년 광주교육대학교의 전신인 광주사범대학 본관으로 지은 건축물로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한섭이 설계하였다. 2014년 10월 30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기준으로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교육대학교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광주교육대학교 본관은 1939년 광주사범학교 강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벽돌조 2층 건물로서 2021년 기준으로 본관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의 전신은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이다. 1923년 3년제로 설립되어 처음에는 옛 광주농업학교 교사(校舍) 등을 빌려 사용하였다. 1938년 교육령 이후 교명을 광주사범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에 있는 86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 극장. 1931년 광주좌(光州座)가 불에 타 없어진 뒤, 1930년대 중반까지 광주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제국관(帝國館)뿐이었다. 하지만 제국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극장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영화관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광주극장(光州劇場)이 1933년 법인을 설립...
-
광주광역시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광주북동천주교회 본당. 광주북동천주교회의 전교는 1929년 박재수 신부가 현재 광주북동천주교회가 자리한 1,000평[3,306㎡]의 부지를 매입하고 작은 강당과 공소를 건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광주공소는 1933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듬해 매(梅) 제라드(Gerard Marinan) 신부가 보좌 신부로 부임하면서 1,300평[4,2...
-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천주교회 사제관 광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인 광주북동천주교회의 사제관으로 1935년[혹은 1937년 이라고도 함] 건립되었다. 2층 규모의 서양식 벽돌조 건축물로서 안정적인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성당과 함께 근대기 종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의 소강당. 1928년 수피아여학교가 지정 학교로 인가받기 위해 지은 체육관이다. 지금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에서 소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1년 7월 22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던 일제강점기 신사. 광주신사(光州神社)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12년 광주군 광주면의 구강공원(龜岡公園)[지금의 광주공원]에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요배소(遙拜所)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16년 정식 신사 창립을 출원하여 1917년 11월 3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제신으로 하는 광주신사로 건립되었다. 192...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남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남쪽은 '진남문(鎭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남문의 '진남(鎭南)'은 "남쪽을 누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남쪽은 일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처럼 남문을 진남문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았다. 1896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광주...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동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동쪽은 서원문(瑞元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서원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동쪽에서 태동하는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서원(瑞元)'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원에서 ‘원(元)’은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북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북문의 의미는 '북쪽을 공손히 받든다.'는 뜻인데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서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서쪽은 '광리문(光利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서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광(光)'은 광주를 의미하고, '리(利)'는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중 서쪽 방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공연장 겸 극장. 1916년 무렵 일본인 후지가와 다다요시[藤川忠義]가 그 당시 총공사비 800원을 들여 설립하였다. 영화 상영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연극과 연주회 등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광주 지역 중등교육 및 유교 교화를 담당하였던 기관. 광주향교(光州鄕校)는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광주 지역의 관학(官學) 중심 중등교육과 지역민 교육을 담당하고, 공자와 여러 유학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등 성리학과 유학 관련 일을 진행하였던 곳이다....
-
광주광역시 최초의 연립형 관영 아파트. 광주시가 전라남도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부출장소[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에 도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 최초의 관영(官營) 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설계자는 당시 광주시청 영선계에 재직하던 채규당(蔡奎鐺)이다.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1969...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괴양정(槐陽亭)은 문철환(文喆煥)과 당시 죽파재(竹坡齋) 훈장이었던 조카 문기엽(文基燁), 문인환(文仁煥) 등이 세웠으며, 상량문에 1891년(고종 28)에 건립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다. 괴양정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신제공파(愼齊公派)의 휴식처 및 강학 장소로 이용되었고, 누정 이름의 괴양은 정자 바로 앞에 늙은 괴목이 있어서이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광주 시민과 시민군을 치료하고 돌본 곳으로, 피가 부족하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을 하였던 병원.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돌본 곳이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 이후에는 광주적십자병원의 헌혈차가 시내를 돌며 헌혈을 호소하였고, 시민들은 이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헌혈을 하기도 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있는 일제강점기 광주노씨 재각. 구원재(九源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의 광주노씨(光州盧氏) 삼능단에 있는 재각이다. 광주노씨는 중국 제나라 강태공의 후손 노수(盧穗)가 755년에 안록산의 난을 피해 한반도에 건너와 정착하며 시작되었다. 노수의 큰아들인 노해(盧垓)는 광산을 봉작받아 광주에서 노수를 봉양하였으며, 이후 노해를 시조로 하여 광산을 본관으로 삼...
-
5.18민주화운동 기간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시민과 학생들을 치료하고 조사하였던 곳. 1980년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부상당한 시민들 일부가 국군광주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은 후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5월 18일 계엄군에게 맞고 부상당한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민오의 수술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최초의 사망자 김경철이 사망 판정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행주기씨 재실 겸 서당. 귀후재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행주기씨의 재실이자 서당이다. 행주기씨는 조선 중기까지 경기도에 거주하였으나 기묘사화 때 광주 지역으로 낙향하면서 현재의 광산구에 정착하였다. 귀후재는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인 기언복(奇彦復)[1713~1772]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정내의 현판 글씨를 구한말의 문신이자 명필인 석촌(石村...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균산정(筠山亭)은 학자였던 문인환(文仁煥)이 아버지 문용현(文龍鉉)의 뜻을 받들어 1921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정자. 금은당(錦隱堂)은 일제 강점기에 송철호가 세웠으며, 정자의 이름 금은(錦隱)에서 금(錦)은 나주의 옛 지명이고 은(隱)은 은거의 뜻이다. 이 지역이 옛날 나주에 속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당시 건립된 정자. 1935년 편찬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서문에 금호정사(錦湖精舍)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1935년 이전에 지어진 정자로 보인다.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 명치정(明治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의 최원택(崔元澤)이 지냈던 곳으로 최원택이 유유자적하며 학문을 강구하던 곳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에 있는 근대 전통가옥. 김봉호가옥은 김봉호(金鳳鎬)[1914~2018]의 아버지 김기상이 광복 직후에 지은 농가이다. 전체 지형은 서쪽과 후면이 경암근린공원으로 조성된 동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부 지역 고유의 후원을 두고 자리잡았다. 집의 중심인 안채는 그 규모와 칸의 구성, 목재를 다듬은 방식과 짜임새에서 나타난 결구 방식 등이 상류층 가옥 형태이다. 상...
-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 김용학가옥은 1917~1934년까지 하은(荷隱) 김희수(金喜洙)[1861~1934]와 김희수의 아들 소하(小荷) 김용학(金容鶴)[1909~1987]이 대를 이어 살림집과 원림을 조성하여 여러 문인과 함께 교유한 곳이다.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유촌동에 1990년에 건립한 정자. 낙류정(樂柳亭)은 전라남도 광산군 극락면 유촌리[새말]에서 광주직할시 서구 유덕동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자 마을 원로들의 발의로 1990년 서광농업협동조합장인 이한영(李漢榮)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1570년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신룡동 신촌마을에 학문의 공간으로서 초당을 세웠는데, 조선 후기에 후손 낙암(樂庵) 기정룡(奇挺龍)[1670~1738]이 기대승을 기리며 초당을 몇 차례 중수하였고 더 이상 중수가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그 후 정자가 퇴락하자 1919년에 기정룡의 후손...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카페. 남국카페(南國-)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며, 대부분 지주와 고위 관리 등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었다. 1942년 7월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큰 충돌이 있었다. 발단은 남 아무개가 김용구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유도 3단에 6년간 권투를 익힌 김용구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큰 한방을...
-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남덕정(覽德亭)은 조선 후기 향토인 나도규(羅燾圭)가 1864년(고종 원년)경 집터에 휴양 겸 강학소로 활용하고자 건립하였다. 정자의 한 칸을 봉양서실(鳳陽書室)이라 하였는데, 학도들을 가르치는 강학소로 활용되면서 어진 인재를 양성한다는 육영재(育英齋)라는 별칭이 나도규의 문집 『덕암만록(德岩漫錄)』에 기록되어 있다. 문하생들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현대의 사우. 남동영당은 '남동사(南洞祠)', '남동영각(南洞影閣)'으로도 불리우며, 만취(晩翠) 심원표(沈遠杓)[1853~1939]와 아들인 남석(南石) 심종대(沈鐘大)[1882~1959], 손자 주봉(柱峰) 심한구(沈翰求)[1898~1974] 3명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심원표는 구한말 유학자로 항일의병장을 도왔으며, 일제가 주는 은사금을 거부...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문장갑과 문장섭 형제는 지극한 효자였다.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2년 동안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많이 아플 때는 본인들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의 제도에 따라서 장사를 지냈다.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송되어지고, 나라에서 문장갑, 문장섭 형제의 이와 같은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66년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하완에 있었던 근대 시기의 정자. 농은정(農隱亭)은 일제강점기에 농은(膿隱) 이근태(李根泰)가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행주기씨 사우. 담숙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의병장인 기의헌(奇義獻)[1587~1653]을 모신 사우이다. 기의헌은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후손으로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으고 군량미를 조...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문화류씨 사우. 대동사는 아사(鵝沙) 류차달(柳車達)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류차달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 군량수송에 공을 세워 대승(大丞)에 제수되고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파평윤씨족보(坡平尹氏族譜)』와 『문화류씨족보(文化柳氏族譜)』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의 개국2등...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오호석과 송시열을 모신 사우. 대명사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오호석(吳孝錫)[1620~1696]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모신 사우이다. 오호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1637년[인조 15] 관직을 버리고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가마마을 뒤편 산으로 와서 영사재(永思齋)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
-
광주광역시 남구 덕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덕남정(德南亭)은 1935년에 건립되었는데, 상량문에 '쇼와[昭和] 10'이라는 연대가 표기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화류씨 사우. 덕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송산마을에 있는 문화류씨 문중 사우이다. 향사 인물은 류절(柳節)[1517~1580], 류희달(柳希達), 류시필(柳時必), 류인옥(柳寅玉) 등이 있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인 류절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호는 일당(逸堂)이다. 류희달은 호가 농포(農圃)이며 류절의 아들이고, 류시필은 호는...
-
광주광역시 서구 덕흥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덕호재(德湖齋)는 나주오씨(羅州吳氏)들이 유유자적을 위해 극락강변에 건립한 초당이다. 1933년에 출간 보급되었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조선 후기의 문신 민병한(閔丙漢)이 쓴 기문이 남아 있어, 그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도림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 입구에 있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1843~1915],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을 모신 사우이다. 기정진은 현재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66[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사랑채. 동강정사(東岡精舍)는 안채 상량문에 '광무 3년 을해 2월(光武三年乙亥二月)'이라는 명문이 있어 1899년(고종 36)에 지어진 사랑채임을 알 수 있다. 건립 당시 소유자는 정낙교(鄭洛敎)의 아들 정병호(鄭秉好)였다. 정낙교가 지은 가옥 부지에 아들 정병호가 안채와 대문간을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있던 광복 이후 광주 최초의 호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춘목암(春木庵)을 경영하던 조성순(趙成洵)이 1940년 전라남도 광주부 동정(東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에 개인주택을 신축하였다. 가옥의 내부는 고급 장식과 가구, 화려한 정원을 갖춰 광주 지역에 지어진 개인주택 중 손에 꼽히는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동명호텔은 광복 이후...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심광헌을 모신 사우. 동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만취정(晩翠亭), 남동영당(南洞影堂)과 같이 있다. 심덕부(沈德符)[1328~1401], 심징(沈澄)[?~1432], 심선(沈璿)[?~1467], 심풍(沈灃)[1482~?], 심광헌(沈光憲)[1541~1593] 5명을 기리는 사우이다. 심덕부는 고려 말 조선 초...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행주기씨 재실. 두남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종산부락에 있는 행주기씨 문중 재실이다. 『행주기씨보(幸州奇氏譜)』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準王)[40대손]의 후손 우성(友誠), 우평(友平), 우량(友諒)의 3형제가 각각 기씨(奇氏), 선우씨(鮮于氏), 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한다. 기대승의 아버지인 기진(奇進)[1487~...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평택임씨 사우. 등림사는 조선 명종대 문신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1514~1547]를 주벽으로 송파(松坡) 임식(林植)[1539~1589], 관해(觀海) 임회(林檜)[?~1624]를 제향하고 있는 평택임씨의 사우이다. 임형수는 나주 송월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북병사를 지낸 임준(林畯)이다. 1531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이후 문과에 급제하여...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만귀정(晩歸亭)은 장창우(張昌雨)가 학문을 가르쳤던 곳에 후손들이 장창우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만귀'는 주위의 연꽃 향기가 엄습하여 온다는 뜻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하동정씨 재실. 만석재는 광주광역시 하동정씨의 재실로 1917년 정천익(鄭天翼)이 하동정씨의 정자인 삼호정(三湖亭)을 증축하면서 삼호정 옆에 세웠다. '一'자형 2칸 건물이었던 삼호정 바로 옆에 만석재를 지어서 'ㄱ'자형 건물을 만들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서로 연결하였다. 정윤길정려가 만석재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었던 고한주가 후학을 가르친 서당. 고한주(高漢柱)[1871~1959]의 자는 방서(邦瑞), 호는 외당(畏堂), 본관은 장흥(長興)으로 창랑(倉浪) 고경리(高敬履)[1559~1609]의 후예이다. 전라남도 광주군 하대곡면 장등[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1]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만오정(晩悟亭)은 1902년 함안윤씨(咸安尹氏)인 윤희진(尹喜鎭), 윤희성(尹喜聖) 형제가 아버지 윤하검(尹夏儉)의 만년 휴식을 위해 지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만취정(晩翠亭)은 조선 후기 전라도 나주군 장본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출신인 심원표(沈遠杓)가 1913년에 지은 정자이다. 심원표는 구한말 감역관(監役官)을 지내기도 하였고, 일본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거부하고 고향에 은둔해 강학과 효도로써 한 평생을 마쳤다. 심원표는 자호(自號)인 '만취'를 따서 정명(...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사당. 명동영당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었으며 오재수(吳在洙)를 배향한 사당이다. 오재수는 대한제국 시기에 항일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오계수(吳繼洙)[1843~1915] 제자로, 1916년 동문인 오준선(吳駿善)·오정선(吳禎善)과 함께 스승인 오계수의 글을 모아 『『난와집』를 만들고 발문(跋文)을 썼다....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명암재(鳴巖齋)는 조선 시대 중기에 명암(鳴巖) 김형(金逈)[1543~?]이 죽령산에 지은 정자이다. 김형의 자는 숙명(淑明),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충남(金忠男)의 아들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陶琴洞) 출신이다. 김형이 고경명(高敬命)의 제자로 기록이 남아 있어, 명암재는 임진왜란 전후 무렵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모룡대(慕龍臺)는 1934년 노종구(盧種九)가 아버지 노훈규(盧勛奎)의 유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충(忠)과 효(孝)를 함께 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2009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 출신 장군들을 기리는 사우. 무광사는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으며,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김덕령(金德齡)[1567~1596], 김천일(金千鎰)[1537~1593], 노인(魯認)[1566~1622], 강항(姜抗)[1567~1618], 정운(鄭運)[1543~1592], 송희립(宋希立)[1553~...
-
1955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서 개관한 극장. 무등극장(無等劇場)이 들어선 자리는 그 이전부터 극장이 존재해 왔다. 무등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55년, 두 번째는 1967년이다. 1978년부터 무등극장을 인수하여 운영을 맡은 오권수 회장의 인터뷰에 근거하여 1955년부터 무등극장으로 불린 것으로 정의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전통 가옥. 무송원(撫松園)은 호남권 최초의 민족 은행인 호남은행의 설립을 주도한 현준호(玄俊鎬)가 제각(祭閣) 겸 주거공간으로 1940년대 말에 지은 전통 한옥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무송정(撫松亭)은 참봉(參奉) 서태환(徐台煥)이 당시의 세상을 비관하여 자신의 종적을 숨기기 위해 지은 은신처이다. 누정이 건립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상량문에 임술(壬戌)이라고 적힌 기록으로 보아 192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정자의 이름을 무송이라 한 것은 정자 바로 앞에 기이한 노송 한 그루가 외로이 서...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무양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耽津崔氏) 문중이 최씨와 관련된 분들을 제향하기 위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서 세운 서원이다. 배향된 인물은 고려 인종 때 어의이면서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崔思全)을 중심으로 최사전과 관련된 후손 4명, 손암 최윤덕(崔允德), 금남 최부(崔溥), 문절공 유희춘(柳希春), 충열공 최덕현을 제향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소동에 있는 1951년에 건립된 정자. 무학정(舞鶴亭)은 일명 불로당(不老堂)이라고도 하며, 1951년 유영강학을 목적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구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소동] 마을의 노인 최창규, 김용복, 최진평, 김칠계, 유설강 등 9명이 출자하여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1960년에 건립된 정자. 묵암정사(默菴精舍)는 송정읍장으로 재직한 장안섭(張安燮)의 공로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전라남도 광산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1960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 있는 개항기 효자문. 밀양손씨삼효문은 1870년(고종 7) 밀양손씨의 손맹옥(孫孟玉), 손맹대(孫孟大) 형제와 손맹대의 아들인 손양복(孫陽復)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손맹옥과 손맹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부모님이 깊은 병환에 들자, 손맹옥과 손맹대는 넓적다리 살을 잘라 고아서 부모님께 드렸다. 손양복은 손맹대의 아들로...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회재 박광옥을 모신 조선 후기의 서원. 벽진서원은 임진왜란 당시의 회재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절의와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병천사(秉天祠)는 1924년 광주의 부호였던 붕남(鵬南) 지응현(池應鉉)과 광주 유지들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극복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하려는 취지에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의재(毅齋) 지용기(池湧奇),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 철산(鐵山) 지여해(池汝海), 표곡(豹谷) 지계최(池繼崔)를 제향하기 위하여 1924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에 있는 조선 후기 청주한씨 재실. 봉강재는 한사기(韓謝奇)[1257~1314]를 주벽으로 제향하는 청주한씨의 재실로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한사기는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지냈다. 충렬왕 때 뚤루게[禿魯花]로 가족과 함께 원나라로 갔는데, 아들이 하남부총관(河南府摠官)에 오르자 한림직학사 고양현후(高陽縣侯)...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
-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재실. 봉산재는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박상은 1473년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에서 태어나 1501년부터 1529년까지 관직에 재직하였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시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에 유배되었으며, 『눌재집(訥齋集)』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다. 봉...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봉산재는 평택임씨 재실로 과거 탑동부락이라 불리운 광산구에 자리하고 있다. 평택임씨는 경기도 평택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임팔급(林八及)이다. 봉산재에는 누가 배향되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가옥 및 강학소. 봉산정사(鳳山精舍) 엄이재(掩耳齋)는 고광선(高光善)이 건립하여 사용한 곳이다. 고광선은 나도규(羅燾圭)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공부한 한학자이다. 엄이재는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고광선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곳으로 처음에는 움막의 형태이었다. '엄이'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시끄러운 세상...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황화루 동쪽에 있던 정자. 봉생정(鳳笙亭)은 절양루(折楊樓)[지금의 공북루(拱北樓)], 황화루(皇華樓)와 함께 조선 초기인 141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1년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전라도 관찰사로 지방을 순행하며 광주 지역에도 몇 차례 들렀다. 7월 28일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희경루에서 관찰사인 유희춘, 병사 임진(林晉),...
-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부용정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무인으로 활약했던 김문발(金文發)[1359~1418]이 낙향하여 지역 인재들의 강학과 선비들의 시회장(詩會場), 향촌 규율과 민주적인 여론 수렴을 위한 향약의 집회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1411년에 건립하였다. 부용정은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 칭송했던 북송(北宋)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지화를 모신 사우. 분산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으며, 조신 중기 문신인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1476~1558]를 모신 사우이다. 윤지화는 조선 연산군 때 호조정랑(戶曹正郎)으로 재임하다가 중종반종이 일어나자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으로 와서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박상(朴祥)[1474~1530] 등 당시 광주 지역 유학자들과...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1978년에 건립된 정자. 불리정(不離亭)은 1978년 전라남도 광산군 삼도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야(道也)마을에 정복규(鄭福圭)가 건립한 육각형으로 된 조그마한 정자이다. 조선 단종 때에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던 진주정씨(晋州鄭氏) 정분(鄭苯)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도야마을에 있는 현대의 누정. '불리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불이정(不離亭)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충장공 정분(鄭苯)[1396~1454]을 기리기 위하여, 정분의 17대 손인 월파(月波) 정복규(鄭福圭)가 1978년에 세운 정자이다. '불리'란 뜻은 세거지지(世居之地)인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는 의도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불환정(不換亭)의 ‘불환(不換)’은 “아름다운 강산을 삼공[고려시대의 세 벼슬을 이르던 말. 태위·사도·사공이 있고 조선시대 삼정승과 같은 뜻]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의 ‘삼공불환비강산(三公不換比江山)’이라는 고시(古詩)에서 비롯되었다. 상량문에 ‘승정기원후삼신묘(崇禎紀元後三辛卯)’라는 기록이 있어 1771년(영조 47)에 건...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에 있는 조선 시대 때에 건립된 정자. 빙설당(氷雪堂)은 오이익(吳以翼)이 건립하였으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원래 초당 강학터로 사용하였다. 빙설당의 이름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묘고야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과 같고(肌膚若氷雪) 오곡을 먹지 않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신다."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고, 여기에서 빙설은...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講堂)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월봉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모셨다. 기대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4개의 마음[사단(四端), 곧 측은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재각. 사경재는 김해김씨 문중 재각으로 광복 이후 재건되었으나 제향 인물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평택임씨 재실. 사경재는 평택임씨 사경재 종중의 재실로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에 있다. 사경재 종중은 만죽 임득지를 중시조로 하며, 임득지가 사화와 난을 피하여 광주광역시 광산구 외등마을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사경재가 있는 산이 평택임씨 세장산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광주광역시립사직도서관 위쪽 사직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제단. 사직단은 신성한 장소이다. 사(社)는 땅의 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가리킨다.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지내는 공간이다. 사직단은 서울뿐 아니라 각 군현에도 있었으며, 기곡제(祈穀祭), 기우제(祈雨祭), 기청제(祈晴祭), 기설제(祈雪...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삼괴정(三愧亭)은 문병일(文炳日)이 아버지 문유식(文愉植)의 뜻을 기리고자 1900년에 건립하였고, 아버지 문유식의 호를 따 삼괴정이라 명명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는 1963년에 건립된 정자.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 내에 있는 삼산정사(三山精舍)는 1963년 건립되었으며, 세운 사람은 미상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삼우정(三友亭)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국을 비관한 향촌 선비 류양열(柳良烈), 김항배(金恒培), 정연철(鄭然喆) 등 3명이 외로운 회포를 달래며 끈끈한 우정을 다지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삼호정(三湖亭)은 정수충(鄭守忠)이 휴식처로 이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의 주검을 임시 안치하였던 장소. 1980년 5월 22일 오후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계엄군에게 맞아 죽었거나, 집단 발포로 사망한 시신을 상무관에 임시 안치하였다. 관 사이로 피묻은 시신들의 모습은 처참하였다. 얼굴이 깨져 완전히 뭉개진 시신, 내장이 터져 나온 시신, 손과 발이 잘리어진 시신 등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도 꽤 있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 사우. 서강사는 고려 태사공 윤신달(尹莘達)을 주벽으로 하고 윤관(尹瓘), 윤언이(尹彦頤), 윤위(尹威), 윤돈(尹暾),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윤신달은 고려 초의 공신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공신이 되었으며, 파평윤씨의 세계에는 시조로 되어 있다. 윤관은 고려시대 명장으로 여진을 정벌하는 전쟁에서 동북에 9성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과 현대에 각각 건립된 정자. 서강정(西江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룡동 호송마을 뒷쪽 동편에 어등산이 있고, 전면 서편에는 황룡강이 흐른다. 인가가 접하는 지점에 좌우 두 곳에 정자가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제단. 서석단은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문선(文璿)과 기준(奇遵)을 모신 제단이다. 문선과 기준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79]의 제자들로, 기준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명이다. 1929년에 남평문씨 문중과 행주기씨 문...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각. 서씨재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으며 달성서씨의 재각이다. 1975년 진제마을의 달성서씨 문중에서 선조들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
고려 말기 광주목사 김상(金賞)[?~1389]이 광주천에 세운 정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고적조(古蹟條)와 『광주읍지(光州邑誌)』 고적조에 기록된 석서정(石犀亭)은 돌물소[石犀]의 정자라는 뜻으로 곧 수재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정자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소 특히 물소가 능히 물을 제압하여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고대부터 보편적으로 존재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려. 선거이지각(宣居怡之閣)은 선거이지려(宣居怡之閭)라고도 하며 임진왜란 중 진도군수[종6품], 전라병사[종2품], 충청병사[종2품], 충청수사[정3품]을 역임하면서 해전과 육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宣居怡)[1545~?)에게 1801년(순조 1)에 내려진 정려이다. 선거이는 1545년(인종 1) 보성군에서 출생하였으나 정려는 광...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현대 건축물. 장로회 호남신학교 기숙사는 1950년대 후반에 지어진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 요소가 복합적으로 배합된 건물로 지하실을 포함한 2층으로 구성되었다. 동향이고, 붉은 벽돌로 건축되었으며, 건물 측면인 부엌 쪽에 출입문이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가구로 배치된 구조로 1층에는 앞뒤로 거실이 있는데, 부엌 쪽 거실에...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선교사 사택[1920년대]은 1920년대에 붉은 벽돌과 슬라브로 건축한 선교사택이다. 1980년대 미국남장로 선교부가 철수하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노회에 매각되어 호남신학대학생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땅콩의 형태로 되어 땅콩집이라 불리는 듀플렉스 주택으로 정면 입구에 좌우로 나란히 주출입 현관문이 있는 2층집으로,...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누정. 소해정은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1856~1940]이 1930년에 유락 휴식을 위하여 세운 누정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1964년에 이건한 정자. 장현규(張賢圭)가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 삼도리에서 초당을 짓고 지내다 사후 1868년(고종 5)에 장현규의 뜻을 기려 정자를 지었으나 퇴락하자 1955년 그 터에 중건하였다. 지금의 송음정(松陰亭)은 장현규의 증손 장동택(張東澤)이 나주에 있었던 것을 회룡마을로 1964년에 옮겨 중수한 것이다. 흥성장씨(興城張氏) 문중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운 탑의 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광주송정도서관 앞 현충탑 우측에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일제가 조성한 종교 시설. 송정신사(松汀神社)는 일제가 조선인의 정신 개조를 위해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1941년에 조성한 건물이다. 제신(祭神)은 신명신사(神明神祠)와 마찬가지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셨으며, 예제(例祭)를 행하는 일자는 매년 10월 11일이었다. 현재 일부 건물을 개조해 대한불교조계종 금선사 사찰로 사용 중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에 있는 탐진최씨 재실. 송하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일신마을에 있으며 탐진최씨 문중의 재실이다. 송하재가 있는 자리는 원래 심영택(沈英澤)[1810~?]과 심환택(沈煥澤) 형제가 지은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심영택이 지은 기문 및 심계택(沈啓澤)이 지은 기문 등이 있었다. 1960년 탐진최씨 문중이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통 가옥. 송해당(松海堂)은 1860년대에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부락에 옛 농가 형태로 지어졌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주박씨 사우. 송호영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눌재(訥齊) 박상(朴祥)[1474~1530]과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영정을 모신 사우로 영조 4년(1728)에 충주박씨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박상은 1501년(연산군 7)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1529년(중종 24)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창녕조씨 재실. 수덕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으며, 창녕조씨 문중의 재실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삼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각. 수원백씨충효정려각(水原白氏忠孝旌閭閣)은 충신 백홍암(白弘嵒)과 효자 백찬수(白讚洙)[1822~1858]의 충효 정신을 기려 세웠다. 백홍암은 병자호란 때 이흥발(李興勃)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나아갔다. 돌아와서는 부모님을 섬기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했는데 범이 늘 호위하였다 하여 호계라는...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수월당(水月堂)은 1568년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이 개산마을에 전평제와 함께 세운 정자이다. 박광옥은 마을에 농사용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개산방죽[현재의 전평제]을 조성하였다. 방죽 안에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고경명, 고경순, 이일원, 이군현 등의 시인문객과 함께 시회(詩會)를 열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숭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전구생과 전자명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1940년에 송정읍장을 지낸 장안섭(張安燮)이 선조 장창우(張昌羽)와 장창우가 세운 만귀정(晩歸亭)을 기리는 의미로 1934년 인공연못을 조성하여 만귀정을 중창(重創)하였다. 이어 1940년 운치를 더하기 위해 연못 중앙에 사방 1칸으로 날렵하게 지은 만귀정의 별당이 습향각(襲香閣)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주오씨 재실. 시기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원당부락에 있는 상평공(喪平公) 오자치(吳自治)[1426~?]를 배향한 재실이다. 나주오씨 중시조라 할 오자치는 1467년[세조13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오자치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은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내용이 있을 뿐 그 외...
-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 문신 이신의를 모신 사우. 시정유애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석탄 이신의(李愼儀)[1551~1627]를 모신 사우이다. 이신의는 임진왜란 때 향군(鄕軍) 300명과 함께 왜군을 무찔렀으며,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죽임에 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당. 식음당(息陰堂)은 1919년 오익수(吳益洙)가 오현석(吳玄錫)[1646~1708]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건립하였다. 원래 나주오씨 선산 언덕에 식음정(息蔭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자는 사라지고 오현석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변하여 식음당이라 한다. 오현석이 세운 식음정은 광산구에 석문동천(石門洞天)이라고 불리는 석문산과 주변의 노송과...
-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에 개업한 요릿집. 신광원(新光園)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 출신 이동채(李東彩)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옛 그랜드호텔 뒤편 주차장 자리]에 개업한 요릿집이다.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의 출입처이기도 하였다. 신광원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체포된 학생들을 변호해주려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아온 변호사들을 위해 위로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1...
-
1966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개관하였던 동아극장의 후신. 동아극장(東亞劇場)이라는 이름은 1925년 은행원 출신 최남(崔楠)이 인수한 '서울 동아부인상회'에서 비롯되었다. 최남은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전국에 체인점 형태로 점포를 열었다.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에 있던 '동아부인상회 광주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번지에 있던 극장. 신영극장(新映劇場)이 개관할 당시 건물은 1930년대에 지어진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을 극장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평일에는 주로 영화를 상영하였고, 1950년대 중반 이후까지도 변사(辯士)가 있는 무성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 주말에는 쇼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상렬을 모신 사우. 신호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신촌마을에 있으며, 관암(寬庵) 류상렬(柳庠烈)[1880~1962]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1967년에 건립하였다. 류상렬은 1880년 현재의 동호동 신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문리(文理)가 트였다. 한일병합 이후 고향에서 향리 자제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았다. 이후 문화류씨의 시...
-
1968년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유동에 개관한 극장. 아세아극장(亞細亞劇場)은 1968년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유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유동]에 개관한 극장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대형 가수들 초청 쇼가 1년에 평균 세 번 운영되며 극장의 흥행을 이끌었다....
-
1982년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5가에 개관한 극장. 아카데미극장은 1982년 3월 대인시장 근처 시민관(市民館)을 운영하던 백정인이 인수하여 같은 해 9월 30일 개관하였다.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의 다른 극장들보다 비교적 늦게 건립되었으나, 최신 시설과 화제성 있는 개봉작을 통해 차별화 전략을 펼치며 관객을 모았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야은당(野隱堂)은 김용훈(金容燻)이 당시의 어지러운 세태를 어쩌지 못하고 초당을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이를 실천하고자 은거한 유유자적한 처소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은 밀양박씨 및 김해김씨, 함안윤씨 집성촌이다. 밀양박씨 문중에서 자신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1968년 노대마을 건너편 구릉지대에 양개재를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양과동정(良苽洞亭)의 건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뚜렷한 자료가 없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양씨삼강문은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입구에 있다. 박뫼마을은 양산숙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양산숙과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박씨(竹山朴氏), 형인 양산룡(梁山龍)[1552~1597], 아우인 양산수(梁山岫), 누이이자 김광운(金光運)의 부인인 제주양씨, 양산숙의 부인인 광산이씨 6명의 충(忠), 효(孝), 열(烈)을 기리는 정려문이...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양양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으며 김해김씨 문중에서 자신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1958년에 건립하였다. 현재 노대동 신기마을은 김해김씨와 함안윤씨의 집성촌이다. 이후 노대동 지역 도시개발로 인하여 현재 자리에 다시 건물을 세우고, 주변에 있는 비석을 옮겼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양파정(楊波亭)은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목 효우동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의 큰 부자이자 참봉(參奉)을 역임한 정낙교(鄭洛敎)가 고려 후기 광주천의 가운데에 건립되었던 석서정(石犀亭)을 떠올림과 동시에 자기 심신의 위안처로 삼기 위하여 1914년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광산이씨 재실. 여재각은 광산이씨 문중의 재실로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와 이선제의 아버지 이일영(李日英), 이선제의 아들인 이시원(李始元) 및 한원(翰元)을 모시고 있다. 1960년에 광산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원산동 만산마을은 광산이씨 집성촌으로 필문이선제부조묘(畢門李先齊不祧墓)가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김용학가옥을 구성하는 건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연파정(蓮坡亭)은 김용학(金容鶴)의 할아버지 김영덕(金永德)을 기리기 위해 김용학의 아버지인 김희수(金喜洙)가 1918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 열녀숙부인광산김씨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 평지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있다. 광산김씨는 정일룡(鄭日龍)의 부인으로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효도를 다하고, 남편을 극진히 모셔 열행을 다하였다. 나주정씨 문중에서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마을인 지정동 평지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각. 열부학생박상승처유인김씨지려(烈婦學生朴相升妻孺人金氏之閭)는 조선 후기 박상승(朴相 升)의 부인인 광산김씨의 열행(烈行)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광산김씨는 박상승과 결혼한 후 한 달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자 시부모가 그 뜻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친정에 보냈으나, 친정 앞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에...
-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에 있는 1948년에 건립된 정자. 영락정(泳樂亭)은 정종태(程宗太), 김정곤(金晶坤), 정원채(鄭元采), 정찬규(鄭燦奎)를 중심으로 유덕동 마을 동민들이 원래 있던 영풍정(泳豊亭)이 쇠락하여 1948년에 다시 지은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하남정씨 문중 재실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하남정씨(河南程氏) 문중 재실이다. 영모재가 있는 진월동은 하남정씨의 집성촌이었다. 하남정씨의 시조는 원나라 사람인 정사조(程思祖)로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와 같이 개경으로 왔다. 정사조의 아들인 정광(程廣)이 현재의 진월동으로 왔으며, 정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960년...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우. 영모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제민(宋齊民)[1549~1602]을 모신 사우이다. 송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金千鎰), 양산룡(梁山龍), 양산숙(梁山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덕령 휘하에 들어가서 활약하였다. 왜적을 물리치는 방안을 적은 상소를 여러 번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문화류씨 류절이 강학하였던 장소. 문화류씨(文化柳氏) 일당(逸堂) 류절(柳節)[1517~1580]은 경기도 양주에서 류순장의 아들로 태어나 1542년(중종 37) 삼사에 딸린 정4품의 벼슬인 자의(諮議)에 제수되었다. 그 후 지평(持平)을 거쳐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으나, 을사사화로 류임 등이 화를 입은 것을 보고 벼슬을 포기하고 양주로 내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내산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영사재[내산동]는 광산구 내산동 망월마을에 자리한 광산김씨 문중 재실이다. 광산김씨 통정공 김성백(金成伯), 통훈 김장(金璋), 통훈 김수정(金守貞)을 봉향하고 있다. 김성백은 진사공 김사안(金師顔)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이 억울한 옥사를 당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나주(羅州) 도림면에 시거(始居)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 영사재(永思齋)[명도동]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生老堂) 오효석(吳孝錫)[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개항기 순흥안씨 재실. 영사재[운림동]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순흥안씨 문중의 재실로,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남강(南岡) 안공(安珙)[1447~1530]을 모시고 있다. 안공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49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이 일어나 안공의 사촌인 당시 좌의정인 안당(安瑭)과 안당의 아들인...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흥성장씨 재각. 영식재는 흥성장씨 향제소이며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友)[1704~1774]의 제향을 위하여 흥성장씨 문중에서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개산마을에 세운 재각이다. 장창우는 1750년경 남원에서 세하동 동하마을로 와서 만귀정이라는 초가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아버지상을 당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효성에 감...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1971년에 건립된 정자. 영원정(永源亭)은 구한말 학자로써 광주노씨(光州盧氏) 문중의 화합을 위해 애썼던 노문영(盧文永)의 노년을 위해 광주노씨 문중에서 23인이 발의하여 자금을 모아 건립한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행주기씨 재실. 오남재는 고봉 기대승의 부친이며, 덕성군 물재(物齊) 기진(奇進)[1487~1555]을 제향하는 재실이다. 기진은 행주 사람으로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이다. 동생 기준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하다 1519년 기준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21년에 사약을 받고 죽자 형 기원과 함께 광주로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기준의...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태봉산에 있었던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오산정(鰲山亭)은 개항기 때 진사(進士) 문상헌(文象憲)에 의해 지어졌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위해 태봉산 일대의 천변 구릉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문상헌이 누정(樓亭)을 노래한 시에 전해져서 오산정 건립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구한말 좌승지(左承旨)를 지낸 이용헌(李龍憲)이 전라남도 광주군 오치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의 산수를 사랑하여 안산(案山) 정상에 작은 정자를 지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용헌의 아들 이계익(李啓翼)이 1911년 부친의 뜻을 이어 정자를 완성하고 아버지의 호를 따라 오산정(梧山亭)이라 명...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순천박씨 재각. 오성재(五星齋)는 박언성, 박충정, 박중항, 박성록(朴聖祿), 박성수(朴聖壽) 등이 제향된 재각이다. 재각 입구에는 성균진사 석촌박선생기적비가 있고, 좌측에는 후암정이 있다. 후암정은 후암 박섬동의 아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진곡동 일대는 진천사, 청원재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오웬기념각은 광주 지역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인 오웬(Clement C. Owen)[1867~1909]과 오웬의 할아버지 윌리엄(William L. Owen)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에 지은 건물이다. 오웬 선교사는 1904년 12월 유진 벨(Eugene Bell)[1868~1925] 목사와 함께 전라도 목포에서 전라도 광주로 옮...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의 창작 공간. 오지호가는 남부 지방 농촌주택의 형태가 남아 있는 집으로,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 (吳之湖)[1905~1982]가 1953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복직하면서 광주에 정착한 이후 1982년 타계할 때까지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곳이다. 전면을 보면 자연석 기단에 덤벙주초석과 사각기둥이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부엌 2칸과 우물마루를 앞에...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개항기 은진송씨 재각. 오헌당은 일제강점기 초기 학구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던 은진송씨의 인물이 별세하자 그 건물이 재각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진송씨는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은 '서산유씨효렬정려(瑞山柳氏孝烈旌閭)'로 불리며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에 있다. 서산유씨 일가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고자 나주목사가 조정에 추천하여 세운 정려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던 조선 후기 고택. 외성당(畏省堂)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1637~1678]가 세우고 거처하였던 곳이다. 박광후의 사후에는 아들 박중회(朴重繪)가 거처하였다. 박광후의 문집인 『안촌집(安村集)』에 외성당에 대한 시문이 실려 있으며, 최익현(崔益鉉)과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외성당기(畏省堂記)」가 있다. 최익현은 박광후의 후손인 박만동(朴萬東...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문학가 박용철의 생가 용아생가는 일제강점기 문학가로 활동하였던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1904~1938]이 태어나고 집필 활동을 하였던 가옥이다. 박용철은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파를 형성한 시인으로 문학평론가, 번역가로도 활동하였다. 1986년 2월 7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사. 용진정사는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이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함양시킨 곳이다. 오준선은 현재의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오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고, 18세 때에는 노사 기정진에게 배...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에 있는 조선 후기 금성범씨 재실. 용호재는 생용동에 있는 복애(伏厓) 범세동(范世東)을 주벽으로 하는 금성범씨 재실이다. 범세동은 고려 말엽 정충탁절(貞忠卓節)[충성심이 깊고 절조가 굳음]로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조선 순조 때 범세동 및 범세동의 6세손 범가용(范可容), 학행이 높은 범천배(范天培)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순국한 범기생(范起生), 범기봉...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정자. 우산정사(牛山精舍)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의 향리(鄕吏) 행주기씨(幸州奇氏) 기정륜(奇梃崙)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건립하였다. 우산정사가 건립된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송시열(宋時烈)이 액호(額號)를 써 주었다고 전하고 있어 대략적인 건립 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는 1910년대 우일선이 지은 선교사 사택. 광주광역시 우일선선교사사택은 우일선(Wilson, Robert M.)이 1909년에 진료가 중단된 야소교병원[재중병원, 현 광주기독교병원]을 재개원하고 2대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1910년경 건축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인 기술자들이 회색 벽돌을 구워 네덜란드식으로 쌓아 건축하였다. 미국남장로교 호남본부이면서 한...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원. 2021년 현재 운리영당 명칭은 벽진서원(碧津書院)이다. 운리영당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임진왜란 공신인 (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을 모신 사우이다. 박광옥은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노사신(盧思愼) 등과 학문 교류를 나누었다.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며,...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송제민 등을 배향한 서원. 운암사(雲巖祠)는 운암서원이라고도 하며 1708년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 배향되어 있다. 그 후 1709년(숙종 35)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제봉(霽峯) 고경명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滄浪) 고경리(高敬履)를...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개항기 사우. 원당영각(元堂影閣)은 조선 전기 무관인 오자치(吳自治)[1426~?]의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오자치는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 책봉되고, 1476년(성종 7) 공신의 포상으로 초상화를 받았다. 1892년 영정을 보관하기 위하여 오자치의 나주오씨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원당영각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원산재는 광산김씨의 재실로 배향 인물은 알려지지 않았다.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의 삼남인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한국의 대표 가문 중 하나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원풍정은 1817년부터 초당으로 있던 것을 1912년에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1836~1920]가 건립하였으며, 1913년 풍수해로 무너진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노재규는 을사조약 체결 후에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면서 스승인 연재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대마도 유배 후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일곡...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서원.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대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8년 임진왜란의 피해로 망월봉(望月峰) 밑 동천(桐川)으로 이건하였다가 1646년(인...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이 세운 전통 가옥. 박노술(朴魯述)의 호는 석음(石陰)이며,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이후 기우만(奇宇萬)이 일으킨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으나,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전라남도 광주군 흑석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 계안마을에 율리전사(栗里田舍)를 세워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계안마을에는 유림 제자 700명으로 구성된 문생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율수재(聿修齋)는 최익현(崔益鉉)의 제주도·흑산도 유배 시, 지성으로 보살핀 최익현의 제자 박해량(朴海量)과 박해량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박현동(朴玄東)의 강학 공간으로 박해량이 1886년(고종 23)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읍취정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挹翠) 이방필(李邦弼)[?~1592]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오치동 구릉 위에 반송(盤松)이 있어 ‘읍취’라 하였으며 이에 대한 기록은 노사 기정진의 『읍취정기(挹翠亭記)』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정명을 지었고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읍취 이방필을 기리며 169...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읍향정(挹香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옛 집터에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고원희가옥(高元熙家屋) 입구에 고영문(高永文)이 1930년에 지은 정자이다. 당시의 정자 주인 고영문이 지은 시를 보면 "내가 지은 이 띠집이 적으면서 고요하니 / 연꽃 피는 가을풍경 이곳에서 즐겼도다… 책을 들고 공부하니 가난함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의령남씨와 광산김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의령남씨‧광산김씨 효열정려는 하성채(河聖采)의 처 효부 의령남씨(宜寧南氏)와 하달채(河達采)의 처 열녀 광산김씨(光山金氏)의 효열정려각이다. 의령남씨는 시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시아버지께 드리고, 다리살을 잘라 약에 타서 드렸다. 광산김씨는 남편이 역...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광산김씨 사우. 의열사는 광산김씨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을 주벽으로 지평공 김덕홍(金德弘), 풍암공 김덕보(金德普) 3형제 등을 배향한 사우이다.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서쪽 25리[10㎞] 에 있다. 처음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을 향사(享祀)하다가 1678년(숙종 4)에 김덕령을 합사(合祀)하여 의열(義烈)이라 사액...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김해김씨의 재실. 이상재는 김해김씨 문중의 재실로 첨지(僉知) 취헌(翠軒) 김명택(金鳴澤)을 기렸으며, 구한말의 의병장 김원국(金元國)도 함께 배향되었다고 한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개항기 가옥. 이장우가옥은 양파(楊波) 정낙교(鄭洛敎)[1863~1938]가 1899년에 지은 주택으로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상량문에는 ‘광무삼년을해이월십일축시(光武三年乙亥二月十日丑時)’로 된 기록이 있다. 후원에는 대나무가 있고 뒷쪽으로 경사가 있어 전통적인 지형이다. 현재 사랑채 앞의 작은 연못은 일본식이다. 1965년에 동강(東岡) 이...
-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강당.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인 이택당은 1927년 탐진최씨가 세운 건물로 무양서원의 강당 역할을 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1990년에 건립된 사당. 일성재(日省齋)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일대에 하남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토지보상금을 받게 된 박노열(朴魯烈)이 일본에 있는 맏아들 박민규와 일성계(日省契) 계원들의 협조를 받아 1990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광산노씨 재실. 일신재(日新齋)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인 노준공(盧俊恭)[1340~1397]과 조선 중기 문신인 노희서(盧希瑞)[1558~1592]를 모신 사우인 절효사(節孝祠)와 같이 있다. 원래 자리에는 사우가 있었는데, 사우가 철폐되면서 일신재로 이름을 바꿨다. 일신은 대학(大學)에 있는 '苟日新日日新又日新(...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정자. 임류정(臨流亭)은 1571년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이 황룡강가에 건립한 정자이다. 양응정은 성균관 대사성을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처가인 박뫼마을로 낙향하여 황룡강가에 임류정과 조양대(朝陽臺)를 세웠으며, 이곳에서 228수의 시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오씨 재실. 장사재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나주오씨의 재실이다. 나주오씨는 일설에 의하면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를 이루었다고 하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나주오씨는 나주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이후 오언 묘역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본량동, 평동 지역에 거...
-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해김씨 사당. 장열사는 광주광역시 두암동에 자리한 김해김씨 사당으로 김유신(金庾信)[595~673]을 배향하고 있다. 1850년에 지역 유림들이 우치동 죽방촌에 사우를 건립하여 향사하다가 훼철된 이후 1906년에 복원되었다. 본래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인조 때 안주목사와 황주목사를 지낸 망헌(望軒) 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1957년에 건축된 전남대학교 구 본관 건물. 전남대학교 용봉동 캠퍼스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957년 건축되어 현재까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학교 캠퍼스의 진입로 정면에 위치하여 상징성이 매우 높은 건물이다. 용봉관은 캠퍼스 형성 초기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신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근대건축의...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학동캠퍼스 내에 있는 건축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은 1951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으로 완공된 붉은 벽돌조 3층 건물이다....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옛 전라남도청의 회의실. 옛 전라남도청에서 평의원 회의실로 사용하기 위해 193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모더니즘 양식을 지니고 있다. 설계와 감리는 한국인 김순하(金舜河)[1901~1966]가 소속된 전라남도 회계과 영선계에서 담당하였고, 공사 청부인은 노모토[野本榮太郞], 실내장식은 다카시마야[高島屋] 경...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 있는 근대 건축물. 전남지방경찰청 민원실은 1944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벽돌 조적조 벽체와 목조 트러스 구조로 설계되었다. 책을 펼쳐서 엎어높은 모양의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절충주의 양식 건물이다....
-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 흔적이 발견된 곳. 1980년 5월 21일 집단 발포 전에는 계엄군의 저지선이 전일빌딩과 건너편 광주관광호텔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5월 21일 집단 발포 당시에는 전일빌딩 옥상에 배치된 계엄군의 조준 사격이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에 시민군은 옛 전남도청과...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567번지에 있는 광주노씨 사우. 절효사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사우로 노준공(盧俊恭)[1340-1397], 노희서(盧希瑞)[1558-1592]가 배향되어 있다. 노준공은 고려 말 인물로 장례예법이 흔들렸던 시기에 3년간 여묘살이를 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에서 마을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 효행편에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에 있는 1950년대에 건립된 정자. 정각정(政閣亭)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이길신(李吉信)이 아버지 이장섭(李章燮)의 뜻을 잇기 위해 1959년 전라남도 광주시 수곡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수곡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문. 정윤길정려는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송월당(松月堂) 정윤길(鄭潤吉)[1723~180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5년에 세웠다. 정윤길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늙은 부모님을 위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극진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정윤길이...
-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는 개항기 정재요 부인 밀양박씨를 기리기 위한 사우. 정재요밀양박씨효열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 있으며, 1905년 정재요(鄭在堯)[1838~1879]의 부인 밀양박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정재요는 정윤길(鄭潤吉)의 증손으로, 시문을 잘 쓰고 명필이었다. 밀양박씨는 정재요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정재요에게 주면서 극진히...
-
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북문통에 개관한 극장. 제국관(帝國館)은 1927년에 개관한 광남관(光南館)의 후신으로, 관주(館主)는 일본인 구로세 도요조[黑瀨豊藏]였다. 일본 도호[東寶]영화사의 전속 극장이기도 하였다....
-
조선 후기 광주 지역에 세운 2층 규모의 정자. 제금루는 1848년 목사(牧使) 윤치용(尹致容)[1800~?]이 설립하였다. 제금루에 대한 기록은 1879년 간행된 『광주읍지(光州邑誌)』와 1935년 간행된 『호남지(湖南誌)』, 1964년 간행된 『광주지(光州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제금(製金)은 『춘추좌씨전』에 나온 말로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히듯 백성의 삶을 윤택하...
-
1961년 전라남도 광주시 삼성동에 개관하여 2012년까지 운영되었던 극장. 일제강점기 당시 제일극장(第一劇場) 자리에는 광주부립도서관이 있었다. 광복 후에는 '신성다방'이라는 시인 박용철의 아내 신정희가 운영하는 공간이 옆자리에 생겨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 이후 극장으로 사용된 건물은 영암 출신의 사업가가 '월출상회'라는 양품점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이를 충장로에서 잡화상점 '영...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천서씨 재실. 존숙재는 이천서씨 문중의 재실로 1940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존숙재는 연동마을의 재각집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정집을 겸하고 있는 재실이다. 어떤 인물이 배향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개항기 천안전씨 사우. 종묘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마을 입구에 있다. 천안전씨 문중의 재실로 전구생(全俱生)과 전자명(全自明) 부자를 모신 사우이다. 전구생은 광주목사를, 전자명은 상주목사를 지냈다. 천안전씨 문중에서 이들을 기리고자 1884년 전구생과 전자명 부자의 묘소가 있는 입구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림동에 있는 광산김씨 재실. 종산재는 광산김씨 재실이다. 광산김씨는 광주광역시 광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라 신무왕의 아들 흥광공이다. 광산김씨는 고려 초기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3세손 김길(金佶)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여 명문 가문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대광(大匡)에 오른 김정(金鼎)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죽산박씨(竹山朴氏)의 중시조(中始祖) 박경(朴景)이 용진산 북쪽 산허리에 세운 정자인 가학정(駕鶴亭)과 성성재(惺惺齋)의 퇴락을 안타까워한 후손 박동춘(朴東春)이 자신의 집 뒷산 죽림골에 정자를 짓고, 박경의 시호[죽림처사(竹林處士)]를 따라 죽림정(竹林亭)이라 이름을 붙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초당. 죽파재(竹坡齋)는 조선 후기 문용현(文龍鉉)이 건립하고 강학 활동을 펼친 곳으로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중의 소유이다. 문용현은 5대조 문필상(文弼尙)이 '수헌(水軒)'이라는 초당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던 뜻을 이어 죽파재를 지었다. 문용현은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글로 이름을 떨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증심사 경내에 있는 2층 누각. 증심사(證心寺) 취백루(翠栢樓)는 증심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9년(광해군 원년)에 중건하였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증심사에 있는 전각.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은 증심사 대웅전 뒤에 있는 전각으로, 6.25전쟁 당시 유일하게 증심사에서 소실되지 않은 건물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이다. 1443년(세종 25) 전라도관찰사 김방(金倣)이 증심사를 삼창(三創)을 할 때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0대 제자를 조성하여 봉안하기 위하...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지산재는 본래 광주 지역 경주최씨 문중에서 세운 최치원(崔致遠)[857~?]을 배향한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었다. 1868년[고종 5] 영당만 남고 모두 훼철되었으나 1922년 강당이 복설되고 지산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에 있는 순천박씨 재실. 진양재는 광산구에 자리한 순천박씨의 재실이다. 1949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건립 연유는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우. 진천사(眞泉祠)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1655~1723]을 배향하여 세워졌던 사우이다. 박광일은 본관 순천(順天), 자 사원(士元), 호 손재(遜齋), 시호 문숙(文肅).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사하였다. 숙종 때 천거되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왕자사부(王子師傳)...
-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녕조씨 정려. 창녕조씨 삼강정려는 창녕조씨 일가 중 4대의 충(忠), 효(孝), 열(㤠)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1897년 조정에서 명령을 내려 1923년 건립하였으며, 2011년 중건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에 있는 광산김씨 비각. 창효각(彰孝閣)은 난계(蘭溪) 김태석(金泰錫)[1872~1933]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하여 세워진 '중추원의관난계김공이상비(中樞院議官蘭溪金公彛常碑)'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다. 창효각 내부에 있는 이 비문에 의하면 김태석의 자는 성언, 호는 난계이며 본관은 광산으로 1872년에 태어나 1933년에 죽었다. 김태석은 효행이 뛰어나 각향각...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본관은 근대 석조 건축물로서 본래 가톨릭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본관으로 건립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은 건물 건축을 위해 기부금을 모금한 미국의 브레디(Brady) 주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자 브레디의 이름을 붙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식당동은 건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지 내에 있는 근대 건축물.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헨리관은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교 설립에 힘쓴 천주교 광주대교구 제5대 교구장 헨리(Henry W. Harold) 주교의 이름을 붙여 명명하였다.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1965년에 건립된 정자. 청송정(淸松亭)은 심영구(沈永求)가 큰아버지 심종수(沈鍾秀)와 아버지 심종선(沈鍾善)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1965년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동호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본촌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유인원(柳寅瑗)의 '청송정 기문(記文)'을 보면, 맏형인 심종수와 동생인 심종선 형제가 만년에 이르기까지 우애가 지...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초은정(樵隱亭)은 전라남도 광주군 우치면 효령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학동마을 뒷산 높은 언덕 위에 이호헌(李顥獻)이 지어 유유자적하였던 정자이다. 이호헌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이항로(李恒老)가 이끌었던 호서학파(湖西學派)의 최기룡(崔基龍)에게 경전을 배웠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 최승효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아래에 있으며, 1920년대 사동 최부자인 최명구(崔命𪛃)의 큰아들 최상현(崔相鉉)이 건축하였다. 주요 건축 목재는 압록강을 통해 운반된 금강송이며 마루는 옷칠을 하였다.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골기와는 강진 옹기로 주황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가옥은 훗날 최상현의 사업 실패로 매각되었는데 최승...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탐진최씨 재각. 탐진최씨 재각은 진월제를 지나서 제2순환로를 건너 야산 밑에 있다. 1921년에 건립되었으며 재실 앞에 '증승정원좌승지석초최공묘비(贈承政院左承旨石樵崔公墓碑)'가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는 충주박씨 재실. 추모재는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의 재실이다. 절골마을에는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봉산재가 있고, 박지흥(朴智興)의 추원재와 박정의 추모재가 나란히 있다. 박정은 중국 송나라 삼소[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삼부자를 이르는 말]에 견주어 동국(東國)에 형제 삼박(三朴)이 있다고 할 때 중심이 된 인...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각. 추원각(追遠閣)은 장흥고씨 재각으로 고경명(高敬命)[1533~1592]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장흥고씨는 전라남도 장흥을 본관으로 하는데 전라남도 담양 일대 제봉 고경명 후손이 유명하여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이 일문을 창평고씨라 하며 호남 사족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경명은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1558년 식년문과에 장원...
-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식집. 춘목암(春木庵)의 최초 경영자인 이춘실(李春實)은 1917년 마산에서 광주로 옮겨 와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의 콜박스 사거리 근처에서 우동집을 운영하였다. 이춘실은 황금동 80번지 일대에 부지를 마련해 춘목암을 개업하였다. 그러나 192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춘실의 여동생 이진(李珍)과 이춘실의 남편 조성순(趙成洵)이...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를 배향한 사우. 충민사(忠愍祠)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전상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군] 전투에 참여하여...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충민사 경내에 있는 정려각. 조선 중기의 무신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충절을 기려 세웠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희원(希元) 또는 환중(桓仲)이다.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 좌영장을 겸하였는데 적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저서로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가 전한다....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김덕령을 배향한 사우. 충장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의병장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우이다. 김덕령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덕홍(金德弘)[?~1593]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高敬命) 및 권율(權慄) 휘하에서 전라도와 영남 서부 지역을 방어하였다. 1594년 장문포...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 충현각은 광주광역시 남구 동호동 신촌마을 입구에 조신 초기 문신인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 ~ 1462]를 모신 사우이다. 유자미는 1451년(문종 1)에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있던 중 1455년(단종 3)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하자, 관직을 나와 해주와 양주에 숨어 지내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문화...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와 비각. 충효동정려비각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충효마을 입구에 있으며, 김덕령(金德齡)[1567~1596]과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 김덕령의 형 김덕홍(金德弘)[?~1593]과 아우 김덕보(金德普)[1571~1627]의 충효와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김덕홍은 고경명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취가정(醉歌亭)은 1890년(고종 27)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후손 김만식(金晩植)과 친족들이 김덕령의 혼을 위로하고 충정을 기리기 위해 김덕령의 성장지에 지은 재실(齋室) 성격의 정자이다. 취가정의 이름은 정철(鄭澈)의 제자였던 권필(權韠)이 자신의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이 술에 취해 나타나 서로 시...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칠송정(七松亭)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장남인 함재(涵齋) 기효증(奇孝曾)이 복룡산 아래에 건립하였다. 기효증은 부친이 별세하자 광곡마을 백우산 밑에 온돌이 있는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기효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활동으로 공훈이 있어 선조로부터 벼슬을 하사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학문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를 기리...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침석대’ 글자가 새겨진 너럭바위. 광주광역시 동구 학운동에서 무등산으로 오르는 길 중에 동적골 산행길로 접어드는 곳에 족욕(足浴) 체험하는 길을 따라가면 끝 지점 계곡 가운데 ‘침석대(枕石坮)’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바위가 있다....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탐진최씨 네 효자와 두 열녀의 정려각. 탐진최씨사효이열정려는 탐진최씨의 네 효자와 두 열녀의 효열정신을 기려 세웠다. 처음에는 효자 최언광(崔彦光), 최세효(崔世孝), 최웅걸(崔雄傑), 최두걸(崔斗傑)과 열녀 최세효(崔世孝) 처 함풍이씨(咸豊李氏)를 모셨으나, 1917년 최홍순(崔弘淳)의 처 평산신씨(平山申氏)를 추가로 모셨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오선동에 있던 개항기 순천박씨 문중 재각. 태산재는 순천박씨 문중 재각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후 순천박씨의 제향 공간이자 문중 집회의 중심적 장소로 이어져왔으나 현재는 철거되었다. 순천박씨는 신라말기와 고려 초에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순천박씨는 15세기 중엽부터 순천 지역이 아닌 전국 각지로 분파되었다. 한편 순천 지역에 잔류한...
-
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에 있던 1957년에 건립된 극장. 태평극장(太平劇場) 대표 신성용(申成龍)은 농약 판매 사업을 했다고 한다. 신성용 등 6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극장을 건립하였다. 동방극장[무등극장·무등시네마 전신], 광주극장, 신영극장[대한극장으로 개칭], 남도극장에 이어서 건립되었던 극장으로 알려진다. 2002년 5월 휴관한 뒤, 2008년에 건물이 철거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던 조선시대의 정자. 파취정은 약포(藥圃) 정오도(鄭吾道)[1647~1736]가 오치 서동 계산(溪山)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고경명 등을 배향한 사우. 포충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1554~1593], 고인후(高因厚)[1561~1592]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柳彭老)[1554~1592], 안영(安瑛)[1564~1592]을 배향하고 있다. 광...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풍암정은 풍암(楓岩) 김덕보(金德譜)[1571~1627]가 두 형을 기리며 지은 정자이다. 김덕보는 큰형 김덕홍(金德弘)과 작은형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사망하자, 세상을 등지고 향리에 가까운 원효계곡에 정자를 짓고 은둔하였다. 풍암정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임진왜란 이후 김덕령의 죽음을 기리고자 만들었...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풍영정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칠계공파 문중의 자료에 의하면 칠계(漆溪) 김언거(金彦据)[1503~1584]가 승문원 판교 시절인 1558년에 지었다고 한다. 송인수(宋麟壽)와 송순(宋純), 그리고 송흠(宋欽)의 시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1548년에 쓴 『김계진 시첩(金季珍詩帖)』의 발문을 살펴보면 풍영정...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당.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며, 1990년 11월 15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하은정(荷隱亭)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김용학(金容鶴)이 아버지 김희수(金喜洙)를 기리며 건립한 영당(影堂)의 역할을 하는 정자이다.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하백마을 일대의 부호였던 김희수가 조성하기 시작한 김용학가옥(金容鶴家屋)을 구성하는 건물 중 하나다. 김희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고광선(高光善)의 문하에 있...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실. 학림정사는 한말 때의 유학자 임상희(林相熙)[1858~1931]를 배향한 재실이다. 임상희의 본관은 평택이며, 호는 금우(錦愚)이다. 1858년 3월 16일에 임곡 등임부락에서 출생하였다. 학행이 빼어났으나 나라를 잃자 후학 양성에 전력하였다. 문인록에 의하면 양성된 후학이 300여 명이며, 『금우유고집』 상하권이 있다. 임상희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능성구씨 재실. 학송재는 능성구씨 문중의 재실로 어떤 인물이 배향되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능성구씨는 화순 능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풍이씨의 효열 정려각. 정호직(鄭浩直)의 처 함풍이씨(咸豊李氏)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하동정씨 문중에서 세웠다. 함평이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노력을 다하였고 남편을 잘 위하여 죽은 뒤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세우라는 특명이 있었다. 1830년 10월에 정민영(鄭旻濚)이 기록한 '제효열질부이씨정려병서(題孝烈侄婦李氏旌閭幷序)'에 나온다....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행은정(杏隱亭)은 함안윤씨(咸安尹氏)로 참봉(參奉)을 역임한 윤희상(尹喜祥)에 의해 건립된 윤희상의 만년 휴식처이다. 1930년 건립 당시에는 이임정(履臨亭)으로 불리었다. '이임'이라는 말은 "얇은 얼음을 밟고 깊은 연못에 다다른 것처럼 언제나 그의 마음을 조심하고 주의한다."는 뜻으로 붙인 하나의 잠언(箴言)이다. 정자...
-
1950년대 무등산 자락에 허백련이 세운 화실. 허백련(許百鍊)[1891~1977]은 허련(許鍊)의 후손으로 호가 의재(毅齋)이며, 한국 남종화의 전통적 화풍과 그 정신세계를 이은 대가로 대한민국 '국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후학 양성으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켰다. 춘설헌(春雪軒)은 허백련이 1956년 오방정(五放亭)을 물려받아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신축한 화실...
-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 있던 1961년에 건립된 극장. 현대극장(現代劇場) 건립자는 최승남, 최승호 형제이다. 최승남, 최승호 형제는 1950년대에 중앙극장을 임대하여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다. 또한 6.25전쟁 이전부터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소주 공장, 북구 누문동 광주제일고등학교 부근에 동천양조장, 서구 양동에 태평양조장 등을 운영하고 있었을 만큼 경영 경험이 많...
-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탐진최씨 재실. 현승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있으며 탐진최씨 문중의 재실이다. 선교동은 탐진최씨 집성촌이었으며, 문중에서 탐진최씨의 선조를 기리고자 1937년에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호가정(浩歌亭)은 설강(雪江) 유사(柳泗)[1502~1571]가 당시 벌어진 사화를 보고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여 은둔 생활을 하면서 1558년(명종 13)에 건립하였다. 호가정의 ‘호가(浩歌)’는 ‘산수 간에 흥취를 읊조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여 크게 소리를 내어 노래한다’는 뜻으로 중국 송나라 소강절(邵康節)이 말한 호가지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호은정(湖隱亭)은 청송심씨(靑松沈氏) 심노옥(沈魯玉)이 설계만 한 상태에서 원운(原韻)과 원기(原記) 등을 만들었고, 심노옥의 유지를 받들어 아들 심원하(沈遠河)가 1930년에 완공한 정자이다. '호은'이란 정자 이름은 물가에 숨어서 은일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은거호상(隱居湖上)의 뜻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화담사는 고려 멸망 후 조선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인 묵은(黙隱) 정희(鄭熙)[1350~?]와 정희의 아들 열지(悅之) 정초(鄭招)[?~1434], 정초의 아들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고 이후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에 오른 경부(敬夫) 정수충(鄭守忠)...
-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씨문중 재실. 화망재는 광주광역시 동구 용산동 화산마을 입구에 있으며 지씨문중의 재실이다. 광주광역시 화산마을은 지씨문중의 집성촌으로, 지씨문중에서 본인들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화산마을 입구에 1937년 건립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김우생과 김문기를 모신 사우. 화엄사(花嚴詞)는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우생(金佑生)[1372~1457]과 김문기(金文起)[1399~1456]를 배향한 사우이다. 김우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을 도와 1400년[정종 2] 박포(朴苞)의 난[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후 1456년[세조 2]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었고,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장흥고씨 재실. 황산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송설정공(松雪亭公) 고중영(高仲英), 고경조(髙敬祖), 고성후(髙成厚) 등을 배향하고 있다. 고중영은 1540년[중종 35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가 모함으로 진도로 귀향갔으며, 고중영의 아들 고경조는 1552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목사에 이르렀다. 고성후는...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객사인 광산관(光山館) 정문에 있었던 2층 누각. 황화루, 공북루, 봉생정, 희경루, 제금루 등은 관아의 누정이다. ‘황화(皇華)’는 고대 중국의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칙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환영의 의미로 부르는 「황화곡(皇華曲)」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영광김씨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각. 효열부증숙인영광김씨려는 박세방(朴世芳)의 부인인 영광김씨의 효열을 기리는 비와 정려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백길마을 입구에 있다. 영광김씨는 남편인 박세방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자, 낮에는 약을 구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밤에는 자신이 남편 대신 병에 걸리게 기원하면서 남편을 보살피고, 남...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청주한씨 재실. 효우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진제마을에 있으며 청주한씨 문중의 재실이다. 현재 진월동 진제마을은 밀양박씨와 청주한씨 집성촌이었다. 효우재는 청주한씨 문중에서 선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하였다. 그 옆에는 '청주한씨쌍효비(淸州韓氏雙孝碑)'가 있었다. 청주한씨쌍효비는 한필오와 한필용 형제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엄의 정려비와 정려각. 문신 정엄(鄭淹)[1528~1580]의 효자 정려비와 정려각이다. 정엄은 본관이 광주(光州)로 정만종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4년(선조 7)에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나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면서 어머니의 병을 정성껏 돌보았으나 돌아가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례를 치른...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효자정계흥지려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 봉정마을 입구에 있다. 1875년 나주정씨 문중에서 정계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계흥은 1780년(정조 4) 광주광역시 봉정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아버지가 병환에 들자 한겨울에 강의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아 봉양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후암정(後巖亭)은 박섬동(朴暹東)의 아들인 박노두(朴魯斗), 박노걸(朴魯傑) 두 형제의 합의로 박섬동 사후 20년인 1899년(고종 36)에 건립되었다. 정자명은 오준선(吳駿善)이 지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후주정(後洲亭)은 1910년 한일합병으로 국권을 피탈당한 사실에 통탄한 이진영(李振永)이 아버지 이종수(李鐘秀)의 뒤를 이어 1911년에 세웠다. 이진영은 호(號)를 '후주(後洲)'로 삼았는데, 선조인 이중명(李重溟)의 아호(雅號)인 구주(鷗洲) 중에서 '주(洲)'를 취하여 지은 것이다. 후주정에서 400여 명의 후학을 육성...
-
조선시대 광주읍성 객사 광산관 북쪽에 있었던 2층 누각. 희경루, 공북루, 황화루, 봉생정, 제금루 등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관아의 누정이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2000년에 이건한 정자. 희우정(喜雨亭)이라는 명칭은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 "좋은 비 시절을 알아서 내리니[好雨知時節], 봄을 맞아 만물을 피어나게 하네[當春乃發生]"에서 유래하였다. 가뭄에 비 오기를 빌다가 단비를 맞이한다고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