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년 제작된 『1872년 군현지도』 중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전라도지도」는 1872년 대원군의 지시로 제작된 관찬 지방지도로 회화식 채색지도 형태를 취하고 있다. 1871년 대원군의 지방 읍지 상송령에 따른 후속조치로 1872년 각 지방 관아에서 개별적으로 작성한 지도이며, 전라도 광주목 지도 역시 이 시기에 납본한 것이다....
-
광주광역시 역사민속박물관이 소장 중인 1923년 제작된 목조 기와집 형태의 상여. 강진김해김씨가상여는 본래 32명이 메도록 만든 멜대 위에 2층 기와집 형태의 상여 몸체를 올리고, 그 위에는 넓은 흰색 천을 드리운 후 청사초롱을 단 구조였다. 현재는 차양천이나 멜대 등은 따로 보관 중이며, 상여 몸체만 전시하고 있다. 난간을 두른 1층은 건물의 외형상은 기단 모습이나 실제로는 안에...
-
조선시대 전라도 광주목에 설치하여 운영한 경양도의 역. 경양도(景陽道)는 경양역(景陽驛)을 중심으로 하여 운영된 역도(驛道)로서 광주~옥과~곡성, 광주~동복~능주 등으로 이어지는 역로를 관할하였다. 경양도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경양역 찰방(察訪)인데, 종6품직에 해당하였다....
-
18세기에 제작된 지도책인 『광여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 지도. 『광여도』는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채색 지도를 묶은 책으로 총 38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총 7책 구성으로 광주목 지도는 3책에 실려 있다....
-
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건너기 위해 만든 흙으로 쌓은 다리가 있던 옛터. 광주 토교(土橋)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경양방죽(景陽防―)과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동계천(東溪川)의 물줄기를 가로지르기 위해 설치한 교량이었다. 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흙을 쌓아 만든 교량 시설로 물줄기는 관로를 통해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
광주직할시를 구성하는 각 동의 이름과 연혁, 현황을 밝혀 기록한 책. 『광주동연혁지(光州洞沿革誌)』는 광주직할시[1995년 1월 1일 광주광역시로 명칭 변경]에 속하는 각 동의 이름과 현황을 역사 기록의 하나로 남기기 위해 관련 정보를 수집·연구하여 편집한 지명 자료 및 유래를 집대성한 단행본이다. 『광주동연혁지』가 편찬된 1991년은 광주직할시에서 각종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되...
-
조선 후기 광주목사의 인수인계 및 광주목의 회계 관리를 위해 작성된 장부. 『광주목중기(光州牧重記)』의 저자는 미상이나, 19세기 후반 광주목 소속의 이서층(吏胥層)으로 추정된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던 일제강점기 신사. 광주신사(光州神社)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12년 광주군 광주면의 구강공원(龜岡公園)[지금의 광주공원]에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요배소(遙拜所)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16년 정식 신사 창립을 출원하여 1917년 11월 3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제신으로 하는 광주신사로 건립되었다. 192...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처음 광주우체사(光州郵遞司)가 있던 곳은 서문통[지금의 광주우체국 앞길에서 동구 황금동으로 가는 길]이었고, 옛 한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치에 대한 정보는 일본 우편국으로 강제 통합된 이후의 것일 수 있어 정확한 위치 비정은 어려운 형편이다....
-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광주의 우편 사무를 담당한 기관. 광주 지역에 도입된 최초의 근대적 통신 사무 담당 기관은 1897년 설치된 광주우체사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기관을 일본이 장악하게 되면서 우편 사무도 일본인들의 관리를 받게 되어 광주우체사도 역할과 명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간행한 인문지리서. 『광주읍지(光州邑誌)』[1925]는 김희수(金喜洙)가 저작 겸 발행자로 되어 있고, 기동설(奇東卨)과 박봉주(朴鳳柱)가 서문을 쓰고 고유상(高維相)이 발문을 썼다. 편자는 박광일(朴光一)과 고유상이다. 목활자(木活字)로 간행한 전라남도 광주군의 읍지로 전통적인 읍지의 형태로는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옛...
-
1899년(고종 36) 전라남도 광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간행한 인문지리서. 『광주읍지(光州邑誌)』[1899]는 대한제국 때인 1899년(고종 36) 전국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의해 편찬하여 제출한 전라남도 광주군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기록한 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내를 통과하여 흐르는 국가 하천인 광주천 천변에 형성된 모래톱에서 열리던 장시. 광주작은장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은 지금의 서석교와 광주교 사이 광주천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
1917년 광주 지역에 설립된 전기회사. 광주전등주식회사의 발기인은 당시 대구에 거주하던 오구라 요시노[小倉吉野]를 비롯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일부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 회사령을 통해 조선인들의 근대 산업에의 진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광주전등주식회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鄕校)는 조선 전기 지역 교육의 강화와 성리학적 질서의 보급을 위해 설치한 관학 기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각 도의 안찰사(按察使) 들에게 향교의 흥폐를 통해 지방관의 고과를 삼을 것이며, 교학(敎學) 의 쇄신을 주문하였다. 이에 따라 부, 목, 군, 현의 각 고을에 하나씩의 향교를 세웠고, 그에 따라 광주에도 광...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1910년 조선총독부의 헌병 경찰(憲兵警察)을 주축으로 한 무단통치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가 전라남도 경무부와 함께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남내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일대]의 옛 전라남도 관찰부(觀察府) 광주 관아(官衙) 안에 광주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총부지 847평[약 2800㎡], 건평 218평...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기권이 운영하던 문방구점이 있던 옛터. 김기권(金基權)은 1926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운동 조직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인물로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김기권은 성진회가 해산된 이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 내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929년 학생소비조합 형태의 문방구점을 지금의 금남로공...
-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시인인 김병연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비.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풍자시와 방랑벽으로 유명하였다. 김병연은 말년에 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남록의 적벽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기진의 유허비. 덕성군물재기공유허비(德城君勿齋奇公遺墟碑)는 입향조(入鄕祖)인 기진(奇進)[1487~1555]을 기념하기 위해 행주기씨(幸州奇氏) 덕성군(德城君) 문중에서 세웠다. 기진은 기대승(奇大升)의 아버지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勿齋)이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전라도 광주 지역으로 입향하...
-
조선 후기 광주목을 비롯하여 전라도 17개 고을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 『동국지도』 「병전라도지방」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지도집으로 전라도에 속하는 17개 지역의 지도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다. 『동국지도』는 같은 명칭을 쓰는 지도책이 십여 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집은 전라도에 속하는 17개 고을의 지도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한 형태로 경상도...
-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광주 지역에 설립되어 운영된 양말 제조 회사. 설립자인 양태승(梁泰承)[1889~1955]은 화순 능주 출신으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정리사(精理舍) 고등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고베신학교(神戸神学校)를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1928년부터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교감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
광주광역시에서 조선 전기에 주로 제작된 퇴화한 양식의 청자.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청자와 유사한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胎土)로 도자기 형태를 만들고 표면에 백토(白土)를 발라 분장(粉裝)한 다음 청자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이다. 이러한 형식은 중국 북송대 자주요(磁州窯)의 민간 용기에서도 확인되지만, 양자 사이에는 시각적 격차가 있다. 상감청자의 제작으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
광주광역시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로 만들어진 이선제의 묘지(墓誌). 이선제(李先齊)[1390~1453]는 조선 전기 세종 때의 대표적인 문신 관료 중의 한 명으로, 세종 초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이후 사관으로 『고려사(高麗史)』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집현전 부교리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 예문관 제학에 이른 인물이다. 묘지에는 "조선국가선대부예문관제학동지춘추관사세...
-
광주광역시 충효동 요지 생산품으로 추정되는 '전라도'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분청사기 항아리. 조선 전기에 제작된 분청사기로 어깨 부분에는 변형된 연화문, 몸체에는 주 장식 요소인 모란문, 몸체 상단에는 전라도라 추정되는 글자를 조화 기법으로 새겼다. 전반적으로 날씬한 모습의 도자기 형태, 살짝 외반된 구연, 직립한 목, 어깨 부분에서 팽창하여 최대폭을 이룬 모습 등이 이 분청...
-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남지도』 내에 수록된 광주의 지도. 18세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인 『호남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1리 간격의 방안이 그려져 있고 비변사의 도장이 찍혀 있어, 『비변사인 방안지도』라 불리기도 한다. 총 7책 구성이며, 광주는 이 지도책의 6책에 실려 있다....
-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최초로 진행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의 예배를 기념하여 세워진 비석. 광주광역시립사직도서관 인근의 도로변이나 비가 세워진 장소에 개신교의 예배 장소로 쓰인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비에는 '선교기념비(宣敎記念碑)' 다섯 글자만 새겨져 있으나, 받침돌에 박힌 별도의 돌에 "이곳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
-
광주광역시에 있는 관방유적으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높은 담을 세운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성은 지배자의 주거지나 성역 등을 보호하기 위해 네모꼴로 쌓은 방어벽[성벽]을 말하며, 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곽은 이러한 성의 외부를 둘러싼 바깥의 방어벽을 의미하며, 일반 백성의 주거지를 보호하는 구조로 외성...
-
조선 후기 제작된 『여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책인 『여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주목」은 이 중 3책에 수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된 작자 미상의 전라도 광주목의 읍지. 『여지도서』는 총 55책 구성의 필사본으로, 조선 후기 313개 지역의 지리지를 담고 있다. 개별 읍지는 2면에 걸쳐 그려진 회화식 채색 지도와 읍지로 구성되어 있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 경찰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광주경찰서가 있던 자리.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는 1896년(고종 33) 5월 광주읍성 내 훈련청(訓練廳) 자리에 세운 전라남도경무서(全羅南道警務署)에서 출발하였다. 1905년에는 일본인 경무고문(警務顧問)이 배치되고, 통감부(統監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1907년에는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법원이 있던 자리. 대한제국은 1907년 통감부(統監府)의 강요에 의해 근대적 재판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판소 설치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12월 23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광주지방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908년부터 운영하였다....
-
일제강점기 각종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는 1907년 일제의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설치한 범죄자 수감시설인 광주감옥을 전신으로 한다. 1908년 7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감옥은 본래 대한제국의 광주감옥을 인계하여 광주읍성 내의 충장로 일대에 있었으나, 1908년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벌여 수인(囚人) 공장 등 목조...
-
대한제국 시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주도하여 설립된 숭일학교가 있던 자리. 숭일학교는 1907년 3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이 주도하여 설립된 근대적 교육기관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인가 학교였으나,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초대 교장으로 프레스턴(John F. Preston...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오성술이 살았던 집터. 오성술(吳成述)[1884~1910] 생가 터는 오성술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삼가면 죽산리에 속하였으나,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으로 편입되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오자치를 기려 세운 신도비. 오자치(吳自治)[1426~?]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67년(성종 8)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발발하자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 휘하의 군관(軍官)으로 토벌에 참가하였다. 오자치는 난이 진압된 이후 사직을 지킨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의흥위(義興衛) 호군(護軍), 평안도(平安道) 조전장(...
-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된 운암사를 기리기 위해 옛터에 세운 비. 운암서원유허비(雲巖書院遺墟碑)는 운암사(雲巖祠) 창설의 의미와 배향된 인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운암사는 임진왜란기 의병장이었던 송제민(宋齊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06년(숙종 32)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세운 사우(祠宇)이다. 이후 고경리(高敬履), 송타(宋柁),...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이기손이 살았던 집터. 이기손(李起巽)[1877~1937]이 거주하던 때에는 전라남도 나주군 적량면에 속하였으나, 1910년 이후 광주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5년 광산군 목량면 북산리로 편입되었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산동에 속한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
1921년 전라남도에 속하는 각 군현의 향교에 등록된 유생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부. 청금안(靑衿安)이란 조선시대 성균관, 사학, 향교, 서원 등에 비치된 유생들의 명부로 유학(幼學), 생원(生員), 진사(進士) 등의 유학자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남도청금안(全南道靑襟案)』은 그중 전라남도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지역별로 수록한 것이다. 광주는 권 1에 수록되었으며, 당시 활...
-
초등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 전라남도가 설립한 공립사범학교가 있던 옛터.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전남사범학교]가 폐지된 1929년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재학생들도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당시 항일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
일제 강점기 양잠 산업 진흥을 위해 설치한 농업 기구. 전라남도의 양잠업 진흥과 관련 기술의 전수, 연구, 교육, 원잠종제조 등을 위해 전라남도가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옛 전라남도청 회의실의 설계도. 『전라남도도청회의실신축설계도(全羅南道道廳會議室新築設計圖)』는 1932년 완공된 전라남도청의 회의실 건축을 위해 전라남도청 기수(技手)[기술직 공무원]로 재직하고 있던 김순하(金舜河)가 설계한 도면이다....
-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무인이자 관료인 전라도 광주 출신 전상의의 신도비. 전상의(全尙毅)[1575~1627]는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1603년 무과에 급제한 이후 선전관 등의 관직을 거쳐 1625년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 겸 좌영장이 되어 북방에 주둔하였다. 1627년 일어난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안주성을 방어하다 순절하였다. 전상의 신도비는 후손들이 전상의의 생...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을 이끌었던 조경환이 살았던 집터. 조경환(曺京煥)[1876~1909] 생가 터는 조경환이 활동하던 시점에는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신안리였지만, 현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에 속한다....
-
조선 후기 제작된 『지승』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조선 후기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책인 『지승』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주목」은 이 중 4책에 수록되어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전상의 장군의 뜻을 기린 비. 충민공(忠愍公) 전상의(全尙毅)[1575~1627]는 전라도 광주 지역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이후, 선전관 등의 관직을 거쳐 1625년(인조 3)에는 구성부사(龜城府使) 겸 평안도 좌영장(左營將)이 되어 북방에 주둔하였다. 1627년(인조 5) 발발한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의 포위 공격을 받던 안주...
-
조선 후기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전라도 광주목의 지도. 18세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회화식 채색 필사본 지도인 『해동지도』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책은 총 8책이며, 「광주목」은 7책에 실려 있다....
-
광주광역시 북구 풍향동 인근에 있었던 경양역 및 조선 후기 호남에 있었던 각 역에 대한 정보를 수록한 책. 『호남역지(湖南驛誌)』는 1686년(숙종 12) 경양역(景陽驛)의 찰방(察訪)으로 있던 이세구(李世龜)가 만든 『경양지(景陽志)』[1686년 판본]와 1895년(고종 32) 호남의 청역(請驛) 찰방 등이 작성한 『역지(驛誌)』를 합편(合編)한 책이다. 표제는 '역지부사례(驛誌...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이 있었던 자리. 흥학관(興學館)은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崔命龜)가 희사한 돈으로 최명구의 동생인 최종윤이 지역 청년들의 문화, 체육 활동 진흥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흥학관 설립을 맡은 최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1년부터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의 총무와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