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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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禎 |
영어공식명칭 | Park Jeong |
이칭/별칭 | 하촌(荷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바른 |
출생 시기/일시 | 1475년 - 박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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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92년 - 박정 사마시 합격 |
출생지 | 절골마을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
묘소|단소 | 송학산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산 94번지 |
사당|배향지 | 추모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충주(忠州)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박정(朴禎)[1475~?]의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하촌(荷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광리(朴光理)이고, 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다. 아버지는 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 계성서씨(桂城徐氏)이다. 동생은 박상(朴祥)과 박우(朴祐)이다.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활동 사항]
박정은 1475년(성종 6) 전라도 광주 절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서 태어났다. 1492년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두 동생 박상과 박우를 가르쳤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등 모두 당대의 유명한 선비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송(宋)나라에는 부자(父子)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의 삼소(三蘇)가 있고, 동국(東國)에는 형제(兄弟) 삼박(三朴)이 있다."라고 하며 박정 삼형제를 칭송하였다. 젊어서부터 타고난 자질이 있었으며, 문장이 고상하고 학문에 독실하여 선비들이 "백미(白眉)의 양(良)"이라며 박정의 뛰어남을 칭찬하였다. 또, 김종직(金宗直)이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로 부임하였을 때, 박정을 보고 기특하게 여기며 “진실로 나라의 그릇이다[眞廊廟器也]”라고 하였다. 박정은 젊은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학문과 저술]
박정의 저술은 병화(兵火)에 소실되었으며, 동생 박상의 문집 『눌재집(訥齋集)』에 「등서석산부(登瑞石山賦)」 한 편만 전해지고 있다.
[묘소]
박정의 묘소는 전라도 광주 절골마을의 송학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기슭에 있으며, 박정과 부인 전의이씨의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현재 광주광역시 서창동 절골마을에는 박지흥의 추원재(追遠齋), 박정의 추모재(追慕齋), 박상의 봉산재(鳳山齋) 3곳의 재실이 있다. 박지흥과 박정의 재실인 추원재와 추모재가 나란히 있고, 그 위에 박정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