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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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石晴雲-朴光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26년 - 박광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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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93년 - 박광옥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박광옥 |
[정의]
조선 중기 광주 출신 문신인 박광옥이 무등산을 대상으로 쓴 한시.
[개설]
「서석청운(瑞石晴雲)」은 박광옥의 문집인 『회재유집(懷齋遺集)』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서석청운」을 지은 박광옥(朴光玉)[1526~1593]은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이다. 1546년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나주에 개산송당(蓋山松堂) 짓고 후학 양성에만 힘쓰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또한, 향약을 실시하고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이이(李珥)·노사신(盧思愼) 등과 교유하였으며, 1560년에는 목사 유경심(柳景深)을 도와 향교를 중수하였다. 1568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고, 1574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종부시주부가 되었고, 그 이후 운봉현감, 전라도도사, 충청도도사, 예조정랑, 성균관직강, 영광군수 등을 지냈다. 운봉현감으로 있으면서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를 세웠다. 1589년 기축옥사 때 박광옥이 정여립(鄭汝立)의 청현직(淸顯職) 진출을 막았던 이경중(李敬中)을 탄핵하였던 일이 문제가 되어 삭탈관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던 시기였으나,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군 장비와 양식을 조달하였다. 새로 감사에 부임한 권율(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 활동의 공로로 다시 관직에 올라 나주목사로 지냈다.
[구성]
「서석청운」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서석청운(瑞石晴雲)[서석산의 맑은 구름]
청산신제사피몽(靑山新霽似披蒙)[어둠 걷힌 듯 새로 갠 푸른 산]/ 재재명금자환웅(在在鳴禽自喚雄)[짝을 부르는 새들 곳곳에서 우짖네]/ 난서모전응촉석(亂絮冒顚應觸石)[산머리 날리는 구름 바위를 스치고]/ 경환대복경수풍(輕紈帶腹更隨風)[산허리서 얇은 비단처럼 다시 바람을 따르네]/ 다시정발도공흥(多時正發陶公興)[항상 도연명의 흥취가 일어날 때면]/ 행처의연무협통(行處疑連巫峽通)[가는 곳마다 무협으로 통하는 듯해라]/ 재도유유환애애(纔道悠悠還藹藹)[비로소 여유 있다가 다시 착잡해지니]/ 연거종적여수동(憐渠蹤迹與誰同)[외롭고 휑한 이 발걸음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의의와 평가]
「서석청운」은 박광옥 시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당시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