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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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始基齋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415-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효주 |
건립 시기/일시 | 1913년 - 시기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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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시기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415-7 |
성격 | 재실 |
양식 | 한식기와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나주오씨 |
관리자 | 나주오씨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나주오씨 재실.
[개설]
시기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원당부락에 있는 상평공(喪平公) 오자치(吳自治)[1426~?]를 배향한 재실이다. 나주오씨 중시조라 할 오자치는 1467년(세조13)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오자치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기록은 『세종실록』과 『성종실록』에 약간의 내용이 있을 뿐 그 외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실록에 의하면 오자치는 활을 아주 잘 쏘았다고 한다. 오자치의 묘와 영당이 용진산 밑 원당리에 있고, 오자치의 묘 옆에 심어져 있는 백일홍은 나라에 슬픈 일이 일어날 때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 415-7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시기재는 1913년에 건립되었다.
[형태]
시기재는 솟을삼문으로 된 입구 건물이 있으며, 기와를 얹은 담장이 재실을 둘러싸고 있다. 건물은 1m 정도 석축을 쌓고 두벌대 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주두에는 창방소로 굴도리를 갖추고 있으며, 빗살창과 띠살장을 혼합하여 창살을 엮었고, 가운데 2칸은 4분합문으로 되어 있다. 마루는 툇마루와 뒷편에 쪽마루를 두었고,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으며, 내부 전면에 재실 건립에 대한 기록을 적은 「시기재중건사실기(始基齋重建事實記)」가 걸려 있다.
[현황]
시기재의 전면에 「시기재 중건사실급방명록비」가 있다. 입구에는 시기재 안내판이 있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시기재에 배향된 오자치는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된 인물이며, 오자치의 영정이 남아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정이 남겨져 있는 인물과 관련된 재실이며, 관리가 잘 되어 관람이 용이하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