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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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琮 |
영어공식명칭 | Park Jong |
이칭/별칭 | 자미(子美),단구자(丹丘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미선 |
조선시대 이괄의 난·병자호란 당시 전라도 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박종(朴琮)[1578~?]의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자미(子美), 호는 단구자(丹丘子)이다.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수찬(修撰) 박린(朴嶙)이며, 아버지는 예빈시정(禮賓寺正) 박응현(朴應鉉)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박경(朴璟)과 형제이다.
박종은 1578년(선조 11)에 태어났으며,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며, 1615년(광해 7)에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나 그 후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스스로를 단구자(丹丘子)라고 불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의곡(義穀)을 모았으나 난이 평정된 이후에 모은 의곡을 감영에 바쳤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의 문서유사(文書有司)가 되어 문서를 정리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정묘호란이 화의(和議)로 끝나자 여산(礪山)까지 세자를 호의하고 나서 전라도 광주로 돌아왔다.
박종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각 읍 의병의 소모(召募) 책임자인 도유사(都有司)를 맡아 의병을 일으켜 근왕병을 이끌고 청주에 갔으나 굴욕적인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통곡하며 전라도 광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