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79 |
---|---|
한자 | 舊校里 |
영어공식명칭 | Gugy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태정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55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로 개편 |
구교리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39㎢ |
가구수 | 2,252가구 |
인구[남/여] | 6,639명[남자 3,297명|여자 3,342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 향교가 있는 지역이라고 하여 구교(舊校)라 불리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동리·사포리·서외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해남면 구교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구교마을, 관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역사는 해남향교와 같이 한다. 해남향교는 현산면 향교리에서 고도리-구교리-수성리 순서로 옮겨지게 되었다. 해남향교가 고도지리[현 고도리]에 있을 때는 해진군이 지금 삼산면 계동의 구 옥산현 지역으로 옮겨온 때였다. 구교리로 옮겨온 시기는 1437년(세종 19) 해진군에서 해남현이 독립된 이후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이 지역은 옛 사라향인 고려 옥산현의 한 지역이었으며, 1437년 이전에 해진군, 그 후 해남현의 땅이었다가 해남현 현일면[임진왜란 후]이 되었고 현일면의 구교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구교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알기 어려우나 세종(世宗) 때에 향교를 중심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입향조는 전주이씨라고 전한다. 관동마을의 형성은 대략 1930년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학동마을의 수령 300여 년 된 풍치림(風致林)은 명종 때의 현감이 심었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학동마을의 입향조는 최씨, 이씨, 박씨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자연환경]
해남천의 북쪽, 금강산의 남서쪽 산기슭 아래의 골짜기 끝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구교마을은 산을 등지고 있으며, 마을 내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 구교마을 뒷산에는 서당 부근에 놓여 있다 하여 서당바위, 마당처럼 넓었다 하여 마당바위가 있다. 관동마을은 남대산에 둘러 싸여 있다. 매가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다고 하는 매바위, 수리가 많다는 뜻인 수리바위 등이 있다. 학동마을은 해남군청에서 서쪽으로 약 2㎞ 지점에 있는 도시근교형 마을이다. 학의 형국이라는 부흥산 자락에 위치하며 수지산과 남곽산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에는 300년가량 된 느티나무, 팽나무의 풍치림이 있고, 마을 앞으로 하천이 지난다.
[현황]
구교리(舊校里)는 북쪽으로 마산면 장촌리, 동쪽으로 해리, 남쪽으로 용정리, 남외리, 서쪽으로 마산면 상등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5.39㎢이고, 구교리, 관동리, 학동리의 3개 행정리에 2,252가구, 6,639명[남자 3,297명, 여자 3,34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교마을의 주업은 상업이고. 쌀과 보리, 고추, 마늘이 주요 작물이며, 특작물로는 단감이 있다. 관동마을의 주업은 농업으로, 논농사의 주요 작물은 벼와 보리 등 곡류이다. 학동마을의 주업은 농업으로 벼와 보리 등이 주요 작물이다.
구교리에는 1946년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로 개교한 해남고등학교와 1966년에 해남여자중학교로 개교한 해남제일중학교가 있다. 추원당(追遠堂)[1904년 건립 추정]은 성내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여흥민씨 사충문과 관련된 곳으로, 여흥민씨 17세손인 민희남(閔喜南)을 배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