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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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塞琴縣 |
영어공식명칭 | Saegeumhyeon |
이칭/별칭 | 색금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신동범 |
제정 시기/일시 | 6세기 - 새금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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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757년 - 새금현에서 침명현으로 개편 |
관할 지역 | 새금현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
[정의]
삼국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원에 설치한 백제의 지방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6세기 백제가 해남 지방을 통치하면서 백제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조에 따르며 “침명현(浸溟縣)은 원래 백제의 새금현(塞琴縣)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해남현(海南縣)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르면 “본래 백제의 새금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침명(浸溟)[투빈(投濱)이라고도 함]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들어 지금 이름으로 바꾸고 내속시켰다.”라고 되어 있다.『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해남현은 본래 백제의 새금현(塞琴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침명현으로 고쳐서 양무(陽武)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해남(海南)으로 고쳐서 영암(靈巖)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내용]
새금현은 현재 현산면 일원에 있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해남읍을 비롯하여 삼산면과 현산면·화산면이 자리한 고천암호 및 삼산천 유역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 치소는 현산면 고현리 현산고성을 비롯하여 일평리산성, 읍호리 고다산성, 초호리 백방산성 등에 자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변천]
해남 지역은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까지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4세기 근초고왕 무렵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복속되기는 했으나 다시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해남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간 것은 6세기 성왕대 담로제 실시 시기와 오방(五方) 일군제(一郡制)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에 새금현이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새금현이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초기까지 이어졌다. 757년 경덕왕 때 전국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침명현이 되었고, 양무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 이르러 해남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영암군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황원군(黃原郡)·죽산현(竹山縣)과 통합되어 해남현이 되었다. 1409년(태종 9) 진도군과 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 되었으며, 1437년(세종 19)에 이르러 다시 해남군과 진도군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주변의 향·소·부곡을 병합하거나 이속하였다. 치소는 현산면 고현에서 해진군 설치 이후 삼산면 계동으로 이동하였다가, 해남군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해남읍으로 이전하였다. 이때 해남읍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고대 해남군의 행정구역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