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454
한자 咸陽白龍城禪師華果院遺墟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5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주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7년 - 화과원 설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8월 31일연표보기 -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함양: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정혜원 스님이 관리
소재지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50 지도보기
성격
지정 면적 13,709㎡
관리자 재단법인 대각회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농장 터.

[개설]

백용성[1864~1940]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에서는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실천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산림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과수를 심고 화과원(華果院)이라는 농장을 설립하였다. 화과원은 일제 강점기 독립자금을 대던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항일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역사·문화적 거점공간이었다.

[변천]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임야와 황무지를 매입하여 1927년 창건한 농장 화과원에서는 배나무, 감나무 밤나무, 감자 등과 구운 도자기를 판매하여 수익을 냈으며, 이 수익금은 군산항을 통해 중국 상해와 용정 등지에 독립자금으로 보내졌다. 이후 6.25 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다가, 1991년 정혜원 스님이 부임하면서 관리하게 되었다.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는 2000년 8월 31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2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50번지 백운산 8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현황]

백용성은 사원 경제의 자립을 위해 1929년 경상남도 함양군에 자급형 농장인 화과원(華果院)을 설립하고 선농불교(禪農佛敎) 운동을 펼쳤다. 또한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해외 독립운동 단체에 보내기도 했다. 『화엄경』 등 경전의 한글화 작업과 일요 어린이 법회 개설, 거리 포교 및 찬불가 도입 등으로 불교 대중화와 포교 방법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양복을 입고 금광도 개발하는 등 절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도 크게 힘썼다.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백운산의 8부 능선에 있어 외부에서의 접근이 쉽지 않다. 백용성 선사는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를 거점으로 일제의 억압을 피해 뒷산으로 넘어 다니며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2018년 기준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에는 법당터, 선방터 등 9개소의 건물터와 축대, 석조물, 가마터 등이 남아 있다. 고목이 된 배나무 등의 과일나무 또한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농장이었던 화과원은 독립운동자금을 대던 농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일독립운동과 불교개혁의 역사·문화적 거점이었으며,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백용성의 업적을 후손에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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