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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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용식[李庸植]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전승되는 서사적인 1인극 음악.
[개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북 장단에 맞추어 장편의 이야기를 소리, 아니리, 발림을 통해 노래하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8세기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 춘향가(晩華本 春香歌)』에 춘향가 사설이 적힌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현재와 같은 형식의 판소리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화순군 판소리의 전통]
화순군에는 능주 지역에 신청(神廳)이 있었다. 신청은 주로 무가(巫家) 집안의 남성 악사인 재인(才人)이 음악을 교육하고 훈련하던 기관이었다. 신청은 무악(巫樂)을 주로 전승했지만, 구한말 이후에는 판소리 명창 및 고수를 배출하는 기능도 했다. 능주 신청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역임했던 조상엽(曺相燁)[1860?~?]은 명고수로 유명했다.
[화순군 출신의 명창 및 고수]
화순군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는 이진영(李珍英)[1875?~?, 여성], 정명수(鄭明洙)[1895?~?] 등을 들 수 있다. 화순에는 뛰어난 고수가 많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김학섭(金鶴燮), 문남구(文南龜)[1919~?], 오재민(吳在珉)[1918~?, 고수, 전주 대사습 고수 대회 장원], 조병현(曺炳鉉)[1885?~?], 조환서(曺桓瑞), 주봉현(朱鳳鉉)[1875?~?], 주응조(朱應祚)[1875?~?]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주봉현은 “능주 주봉현 선생 북에 때를 벗겨야 올바른 기생 광대 노릇한다”는 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소리꾼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당시 국창으로 손꼽히는 송만갑, 유성준, 이동백, 임방울, 김연수 등이 주봉현의 북에 소리를 다듬었다.
[화순군 병창의 전통]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단가(短歌)를 가야금 반주와 더불어 노래하는 병창(竝唱)이 일제 강점기 이후에 성행하였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병창 및 가야금 산조 예능 보유자였던 정달영(鄭達榮)[1922~1997, 본명 정재국(鄭在國)]과 그의 형 정백옥(鄭白玉)[1905?~?]도 화순 출신이다.
[화순군 판소리의 현황]
현재 화순군에서는 화순 국악 진흥회[김향순 이사장]가 판소리 및 국악 진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화순 국악 진흥회는 2003년부터 화순 국악 전국 대제전을 매년 개최하면서 전국의 국악인과 학생들의 국악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의 제11회 국악 대제전은 화순 하니움 문화 스포츠 센터에서 개최되었는데, 전국에서 350여 명의 국악인이 참가하여 열띤 경연을 펼쳤다. 종합 대상인 국회 의장 상은 판소리 부분 방수지, 고법 부분 대상은 이재현, 기악 부분 대상은 정민조, 무용 부분 대상은 양미나가 각각 수상했다. 또한 화순 국악 협회[임호환 협회장]도 판소리의 보존과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 호남 연정 국악 연수원이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위치해 판소리 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화순군은 판소리 명창과 고수(鼓手)를 배출한 고장이다. 주봉현과 같은 당대 최고의 고수를 비롯하여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병창 및 산조의 예능 보유자였던 정달영 등의 가야금 병창 명인을 배출했다. 이런 국악계의 명인·명창을 통해 일제 강점기 이후 국악의 발전에 이바지하여 화순군은 국악의 성지(聖地)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