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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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摩震國 |
영어음역 | Majingu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태봉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후삼국 시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이 속했던 국가.
[명칭 유래]
마(摩)는 ‘크다[大]’, 진(震)은 ‘동쪽[東]’이라는 뜻으로, 마진(摩震)은 ‘위대한 동쪽의 나라’를 의미한다. 당시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발해가 진국(震國)이라 일컬었던 것을 의식하여 붙인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진’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위대한 동쪽의 나라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진성여왕 대에 이르러 각지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몰락한 신라의 왕족으로서 세달사의 승려 궁예는 원주에서 봉기한 양길(梁吉)에게 투탁하면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양길이 일찍이 치악산 일대와 주천·제천 등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궁예의 공이 컸다. 이후 북으로 진출하여 송악 출신의 왕건(王建)을 부하로 맞아들이고 패서(浿西) 지역에 영향력을 뻗쳤다. 강릉, 철원 등 옛 고구려 지역을 확보한 후에는 고구려의 뒤를 잇는다면서 스스로 왕을 칭하고 관제를 마련[901]하였다.
얼마 후 철원으로 근거지를 옮겨 국호를 마진이라 하고 904년 무태(武泰)라는 연호를 제정하여 7년간 사용하였다. 911년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바꾸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바꾸었다가, 914년 다시 연호를 정개(政開)로 바꾸었다. 918년 태봉국은 궁예를 축출한 왕건에 의해 고려로 계승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마진국은 철원을 수도로 하고 오늘날의 강원도·황해도·경기도·충청남도·충청북도를 아우르는 넓은 영역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기였기 때문에 각 지역의 호족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처신하는 반독립적인 존재였다. 궁예가 승려이던 시절에 몸을 의탁한 세달사가 제천에 인접한 영월 태화산에 있었으므로, 제천 지역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궁예의 정치적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와 궁예 열전에는 “904년(효공왕 8)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라고 하였으며, 911년에는 연호를 수덕만세, 국호를 태봉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