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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12
한자 義兵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이석용|문태수|유지명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개설]

개항기의 의병 운동은 크게 제1차 의병 전쟁[1895~1896년]과 제2차 의병 전쟁[1905~191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제1차 의병의 활동 기록은 없고 제2차 의병에 이석용을 비롯하여 문태수·유지명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석용 부대]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정미조약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면서 진안 지역에서 의병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석용은 ‘호남 의병 창의 동맹’을 결성하여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의 지역을 거쳐 태인·남원으로 이동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문태수 부대]

문태수는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무주에서 의거하여 덕유산을 근거로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활약하였고, 용담 일대에서도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문태수는 서울 진공 작전을 위하여 각 도의 의병 부대가 경기도 양주에 모여 13도 창의군을 편성했을 때 호남 창의 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유지명 부대]

유지명은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스스로 창의 대장 혹은 삼남 의병 대장을 칭하면서 수백 명의 의병을 지휘하였다. 1907년 9월 22일에 용담 건무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용담·고산·은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0월 3일 밤에는 정성일·김치삼 등 수십 명을 이끌고 용담읍의 일본인 거주지에 들어가 일본인 2명을 사살하고, 한국인 경찰 정상권을 쓰러뜨리고 무기를 탈취하였다. 유지명과 함께 활약한 진안 지역 출신의 의병은 김치삼·박순용·정성일 등이다.

[김동신 부대]

김동신은 대전 출신으로 금산·용담·전주 등에서 의병을 모은 뒤 지리산 일대를 근거로 활약하며 인근의 의병장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였다. 1907년 9월 15일 용담 내원사 일대에서 활약하던 이석용과 부대를 합쳤으나, 통수권과 전략 등의 문제로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자 곧 부대를 다시 나누어 돌아갔다.

[전해산 부대]

전해산의 봉기는 1908년 하반기 전라북도 지역의 의병 운동에 전기를 마련하였다. 전해산은 이석용의 참모였으나 1908년 5월 무렵에 이석용과 상의하여 남하한 후 7월에는 독자적으로 의병 부대를 결성하였다. 전해산 부대의 주력은 전라도 각지의 농민이었지만 그 외에 대한제국 장교 출신인 정원집을 비롯하여 군대의 일부가 가담하여 다른 의병 부대보다 강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타 의병 활동]

김봉조·김옥현·박경실·원용구·조진봉 등이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의병 부대에 종군하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진안 지역 의병 활동의 의미]

후기 의병에서 전라도의 의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1909년에는 일본 군경과의 교전 회수 및 의병의 수가 전국의 47.2% 및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전라남도에서 기삼연이 호남 창의 회맹소를 결성하여 후기 의병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면, 전라북도에서는 진안 지역의 이석용이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석용은 진안 지역에서 호남 의병 창의 동맹을 결성하고 전라북도 지역의 의병 활동을 이끌었다. 또 전해산과 같이 그의 참모 가운데 독립하여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진안 지역의 의병은 전라북도 의병의 시작과 확대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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