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
진안 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개항기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아명(兒名)은 광욱(光旭), 일명 광순(光珣·光詢). 친아버지는 고정상(高鼎相)이다. 사위는 항일 투사로 유명한 기산도(奇山度)이다. 고광순(高光洵)[1848~1907]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다. 의병장으로 진안 이산묘의 영광사에 배향된 인물이다. 1895년(고종 32) 일제가 명성황후를...
-
진안 이산묘에 배향된 개항기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 통정대부 용양위 부호군 고휘진(高輝鎭)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고제량(高濟亮)[1864~1907]은 족손(族孫)인 고광순(高光洵)과 어린 시절부터 뜻을 같이하고 의병을 일으킬 때에도 고락을 함께하였다. 1906년 4월에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林炳燦)이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순...
-
조선 최대의 역모 사건이라고 불리는 기축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기축년) 10월 2일에 일어났다. 그래서 기축옥사 또는 정여립(鄭汝立)의 난이라고 불리고 있다. 정여립의 자는 인백(仁伯)·대보(大輔), 호는 죽도 선생(竹島先生)이라고 불렸다. 그가 태어난 곳에 대한 기록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주 동문 밖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고, 남문 밖[현 교...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내동산에 있는 폭포. 내동산 폭포는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의 내동산[887m]에 있는 폭포이다. 높이는 20여 m로 덕현리 동산 마을에서 오를 수 있다. 내동산 폭포에서 물을 맞으면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고, 내동산 폭포 옆에 있는 약수암(藥水庵)과 관련하여 옛날에 신씨 부인이 내동산 폭포에서 목욕하고 신병이 완치되었기에...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가옥.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비사랑 마을에 있는 고지집은 산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통나무나 죽각재를 가로로 포개어 벽체를 꾸민 집으로 모서리와 교차부는 서로 아래위를 따서 물리거나 부재의 틈을 진흙으로 마감하는 형식으로 남부 지방에서는 강원도 산간 지방, 지리산 주변 소백산맥 일부 지방...
-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명경안(明敬安)[1852년~?]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문태수는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한 후 전라북도 동부 산악 지대를 무대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명경안은 문태수 의진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이용이(李用伊) 등과 함께 1909년 2월 5일 용담에서 문태수 의진의 의병장 김상진(金尙鎭)의...
-
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장.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지리산에 들어가 거의한 후 진안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경기도 양주에서 각도의 의병진이 모일 때 호남군 100여 명을 이끌고 합세하여 호남 창의대장에 추대되었으나 진격계획이 좌절된 후 다시 본래의 근거지로 돌아와 활약하였다. 본관은 남평(南平). 본명은 태현(泰鉉), 별명은 태서(泰瑞). 태수는 의병장 시절의...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서식하는 두꺼비과에 속하는 양서류. 물두꺼비[Bufo stejnegeri]는 우리나라의 경기도 북부 및 강원도 산지와 지리산 등지의 고산 지대 산간 계곡에서 주로 발견된다. 두꺼비에 비해 작고 고막이 없으며 수중 생활을 해서 뒷다리의 물갈퀴가 두꺼비에 비해 잘 발달되어 있다. 물두꺼비는 크기 4~6㎝ 내외의 소형 양서류이다. 등...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 「산타령」은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이다 하루 중에 이 노래를 부르는 시점은 늦은 오후이다. 받는 소리 마지막이 “~ 산이로구나”로 끝나기 때문에 「산타령」이라고 한다. 노래의 분포 영역이 전라북도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까지 포괄하는 전형적인...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있는 가옥.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에 있는 고지집은 산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통나무나 죽각재를 가로로 포개어 벽체를 꾸민 집으로 모서리와 교차부는 서로 아래위를 따서 물리거나 아니면 부재의 틈을 진흙으로 마감하는 형식으로 남부 지방에서는 강원도 산간 지방, 지리산 주변 소백산맥 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있는 가옥.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에 있는 고지집은 산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통나무나 죽각재를 가로로 포개어 벽체를 꾸민 집으로, 모서리와 교차부는 서로 아래위를 따서 물리거나 아니면 부재의 틈을 진흙으로 마감하는 형식으로, 남부 지방에서는 강원도 산간 지방, 지리산 주변 소백산맥...
-
개항기 매천 황현이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누정 쌍계정에서 지은 시. 「쌍계정」의 저자 황현[1855~1910]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다. 그는 시재를 널리 인정받아 이건창·김택영·강위와 더불어 한말 4대가로 불리며, 한말 최고의 시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문집으로는 『매천집』이 있다. 쌍계정 누각은...
-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안왈오(安曰五)[?~?]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손상되는 상황이 도래하자 의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안왈오를 포함한 의병대들은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擧義)한 후, 전라북도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명을 이끌...
-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운보(雲甫), 호는 만휴당(晩休堂). 고조할아버지는 성균 생원 양욱(梁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통덕랑 양이관(梁以寬)이고,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양경일(梁擎日)이고 아버지는 양우정(梁禹鼎)이다. 외할아버지는 동래(東萊) 정인화(鄭仁和)이고 부인은 거창 신씨이다. 양하룡(梁夏龍)[1699~1784]은 전라북도 남원군...
-
고려 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왜구(倭寇)는 삼국 시대부터 출현하였지만, 고려 시대에는 고종(高宗) 때부터 시작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빈번하게 침략하였다.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재위 1349~1351]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약 40여 년 간이며, 그 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 간[1374~1388]에 가장 극심...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진안 지역에 북한군이 들어온 것은 7월 22일 무렵이었다. 이날 대전·영동·무주를 거쳐서 덕유산 일대에 집결한 북한군 2개 중대 병력이 진안군을 습격하자 경찰 병력은 장수로 철수하였다. 미군 제24사단 38연대가 9월 28일...
-
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개항기의 의병 운동은 크게 제1차 의병 전쟁[1895~1896년]과 제2차 의병 전쟁[1905~191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제1차 의병의 활동 기록은 없고 제2차 의병에 이석용을 비롯하여 문태수·유지명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정미조약으로...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이성계의 왕 등극을 도운 소금 장수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전해지는 「이성계의 등극을 도운 소금 장수」 이야기는 목신들의 대화를 엿들은 소금 장수 배극금이 산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이성계에게 지리산 우투리를 제거해야 임금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이성계 등극 후 초대 정승을 제수 받았다는 내용이다....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진안군은 진안읍을 비롯하여 용담면·안천면·동향면·상전면·백운면·성수면·마령면·부귀면·정천면·주천면의 11개 읍면과 77개 법정리, 303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진안 지역은 동쪽으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백두 대간, 서쪽으로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호남 정맥과 주화산에서 부...
-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문태서(文泰瑞) 호남 의병단에 가입하여 전북 장수·진안·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조경화(趙京化)[?~?]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조경화를 포함한 의병대들은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擧義)한 후, 전라북도 무주에서 의병 수십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1906년 9월 하순에...
-
진안고원길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는 진안고원길 걷기 프로그램이다. 어린 시절 해질녘이면 마을 어귀에 자리잡은 주막[점방]에 아버지를 모시러 갔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같은 성화에 못 이겨 나서는 길이지만 술에 불쾌하게 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올 일을 생각하면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마을길을 터벅터벅, 그리고 느릿느릿 걸었던 기억...
-
조선 전기 조위(曺偉)가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을 바라보고 지은 세 편의 시. 「진안마이산」의 저자 조위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7세에 이미 시문을 지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사가독서에 첫 번째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는 박식하고 문장이...
-
1945년 해방 이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역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비록 거대 지주들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중소 지주들이 진안군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943년에 조선 총독부는 진안군에 4개의 저수지[반월제·포강제·월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