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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223
한자 美術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금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 인천 미술인 협회 발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 인천 미술인회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7년 - 인천 예술인 협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인천 지부 발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2년 - 대한 미술 협회 인천 지부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4년 - 인천 미술 협회 통합 발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인천 남구 미술 협회에서 제1회 남구 미술 협회 작품전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4년 - 인천 미술인 협의회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인천 미술인 협의회에서 『황해 미술』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9년 - 인천 미술 박람회 열림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0년 - 인천 환경 영상 미술제 개최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기반으로 아름다움을 시각적,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변천]

1. 일제 강점기 인천의 미술

1920년대 인천 미술 활동은 전시회 소식과 미술인들의 동정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미술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며, 일제 강점기에 미술이라는 개념이 정립, 성장되어 갔다. 특히, 조선 총독부가 주관한 조선 미술 전람회[약칭, 선전(鮮展)]는 우리나라 서양화 도입과 그 정착 단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으며, 이러한 상황은 인천 화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전 도록』에 나타난 자료에 소개된 입선 작가의 명단에는 인천 지역 거주 화가들의 이름도 나오는데, 일본인의 비율이 높은 편으로 상당수의 일인 화가들이 인천에 살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인 화가 단체인 인천 양화 연구회와 1924년 결성된 인천 하양회, 같은 해에 결성된 강화 서화 구락부, 한국 최초의 기독교 청년 단체로 인천에서 결성된 엡윗 청년회와 한용 청년회가 서화 전람회의 주최자로 등장하였다.

인천 출신의 동양화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는 1924년 선전에 출품하여 3등상을 수상하였으며 처음에 김용수와 더불어 인천에서 2인전을 가졌으나 활동 기반은 인천 지역이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은 인천 출신 최초의 미학자·미술사가로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하여 한국 미술사의 이론적 정립에 크게 공헌했다.

1936년 이후에 와서야 이무영(李茂榮), 김영건(金永健), 박응창(朴應昌), 최석재(崔錫在), 김진태(金晉泰) 등의 한국인 화가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1930년대~1940년대 사이에 일본 동경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생 출신이 주축이었다. 1940년대 초반 암울하던 식민지 시대 말기, 이 화가들은 이무영이 경영하던 낙랑 다방을 활동 근거지로 삼았다. 낙랑 다방은 전시장도 겸했다고 전해진다.

2. 8·15 해방 후 인천의 미술

8·15 해방 직후의 인천 미술은 동양화, 서양화, 조각, 판화, 미술, 공예, 창작, 도안, 무대 미술, 사진 미술 등 전문화된 분과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작가 개인의 미술 이념에 따른 단체가 속속 발족되기 시작하였다. 1946년 12월 9일 최초의 순수 미술인 인천 미술인 동인회가 결성되었다. 1947년 인천 미술인 협회가 발족하고, 인천 미술인회가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서양화에 박응창(朴應昌)·김학수(金學洙)·우문국(禹文國)·김찬희·이명구(李明久)·윤기영(尹岐泳)·한봉덕(韓奉德), 서예에 류희강(柳熙綱)·박세림(朴世霖)·장인식(張仁植), 미술 평론에 이경성(李慶成) 등이 참여하였다.

1947년 서울에서 우익 진영의 예술인들이 단합하여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문총(文總)]가 결성되어 이것을 시발로 인천 지역에서도 문학·음악·미술인들이 주동하여 인천 예술인 협회를 창립하였다. 후에 1950년 6월에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인천 지부가 발족되었으나 6·25 전쟁이 터져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그 시기에 김찬희, 김학수, 윤기영, 김진명(金鎭明), 이병태(李炳泰), 우문국, 이명구 등이 인천 화단을 지키며 활동을 계속하였다.

미술인들을 총괄하여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산하의 단체로서 대한 미술 협회[대한 미협]의 인천 지부가 결성된 것은 1952년이다. 김영건, 박응창, 윤기영, 최석재, 박흥만(朴興萬), 장선백(張善栢), 류희강, 박세림, 장인식, 이경성 등이 합류하여 회원전을 개최하였다. 정부의 예술 단체 일원화 방침에 따라 많은 단체들은 1954년 인천 미술 협회로 통합되었다. 인천 미술 협회는 1961년에 한국 미술 협회 인천 지부로 개칭되었다.

3. 1960년대 인천의 미술

1960년대에는 범화단적인 결속체로서 출범한 인천 앙데팡당전이 196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한국 미술 협회 인천 지부가 주관하여 인천 지역에 연고를 둔 미술인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1962년에는 소성(邵城) 미술전으로 개칭되었다. 당시의 인천 화단은 개인전과 중·고등학교의 학생 미술전, 연례 공모 행사인 아동 실기 대회 발표전 정도를 개최하였는데, 1960년대 초에 한국 미술 협회 회원들이 주동이 되어 시내 매란 다방에 인천 미협 상설 화랑을 연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시기의 이색적인 동호회인 오소회(五素會)는 1969년 제1회전을 시작으로 1978년 제8회전까지 개최하였다. 오소회는 50대 중반 연령의 동호인 모임으로 현역 전업 작가는 물론 대학 교수와 현직 인천 시장이 참여했으며, 회화[동양화·서양화]와 서예, 평론가의 그림까지 포함하여 은성 다방에서 문화계 모임이 이루어졌다.

한편, 경기도 미술 전람회는 인천시에서 열린 첫 공모전이었는데, 현재 인천광역시 미술 대전으로 명명되어, 한국 미술 협회 인천 지부 주관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또한, 1954년에 인천시 문화상[현재 경기도 문화상]을 제정·공표하였다.

4. 1970~1980년대 인천의 미술

1970~1980년대의 인천 미술계는 1974년에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정원에 ‘우현 고유섭 선생 30주기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모 기념비 및 기념 동상의 건립과 1974년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에 이당 기념관 개관이 실적으로 남은 사업이었다. 인천 화단의 특이한 현상은 서예 부문이 타 부문에 비해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검여 류희강이 있었다. 1976년에 열린 오종욱(吳宗旭)의 조각전이 인천 최초의 조각 개인전이다.

1979년 동양화 그룹 일수회(一樹會)의 창립을 필두로 1980년대 이후 인천 수채화회[1981년], 추인전(秋仁展)(1982년), 인천 여류 작가회[1983년], 인천 사생회·인천 조각회[1984년], 인천 청년 작가회·인천 서예가 협회[1986년], 인중·제고 동문전[1987년], 해랍전[1988년] 등의 단체전이 열렸으며, 인천 미술을 결산하는 인천 미술사 30년전[1981년], 인천 미술의 조명전[1982년]도 열렸다. 1980년대에 인천 미술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이념적 대립’이라는 경쟁 풍토가 조성되고 각종 미술 단체가 결성되어 ‘오늘의 인천 미술, 그 형상전’[1987년], ‘오늘의 인천 미술전’, ‘인천 미술, 그 내일을 위한 모색전’[1988년] 등 표제마다 ‘인천 미술’을 강조하는 전람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미술 작품이 밀폐된 실내 공간인 화랑, 전시실에서 벗어난 이색 전시가 등장한다. 1989년 처음으로 ‘몽마르뜨 거리전’이 인천광역시 중구청 앞길에서 열리고, 이후 ‘자유 거리전’으로 개칭을 하여 월미도에서 열렸다.

5. 1990년대 이후 인천의 미술

1990년대에 들어서서 가가 갤러리, 동아 갤러리, 신세계 갤러리, 다인 아트 갤러리 등이 건축되지만 양적으로 늘어나는 미술 인구에 비해 발표 공간은 부족한 상태였으나, 1994년부터 인천 종합 문화 예술 회관을 중심으로 미술 활동이 증가하였다. 한국 미술 협회 인천 지부가 주관하여 1990년부터 연례 정기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1993년에 창립된 ‘대한민국 청년 미술제’는 1998년 제6회까지 개최되었고 이후 ‘인천 포스트’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4년에 결성된 인천 미술인 협의회는 민중 미술 계열의 재결속으로 정기전을 주제별로 개최하고, 심포지엄 개최, 기관지 『황해 미술』 발행[1995년] 등을 하였다. 한편, 조각 부문의 경우, 처음 ‘인천 조각 15인전’[1984년]부터 시작하여 ‘인천 조각 12인전’[1987년], ‘인천 조각 15인전’[1988년], ‘인천 조각 21인전’[1989년]까지 계속되다가 1990년부터 1997년까지는 인천 조각회의 명칭으로 매년 정기전이 개최되어 결국 인천 조각가 협회가 발족되었다. 1999년에 열린 인천 미술 박람회[인천 아트 페어, 약칭 IAF]는 인천 종합 문화 예술 회관 전시실과 인근의 신세계 미술관 등에서 조성되었다. 이 박람회는 인천 미술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행사로, 인천 미술계에 자생적 에너지를 공급함과 동시에 미술의 사회적 수용 패턴에 건전하게 작용할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인천에서 개최된 ‘인천 환경 영상 미술제’는 환경 문제와 영상 미술의 역할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인천 미술의 구습과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예측 가능한 미래를 타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6.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와 인천의 미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한국 미술 협회 인천광역시 지부가 있어서, 지역을 기반으로 ‘인천 아트 페어’를 비롯해 다양한 전시회를 기획 및 개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92년에 건립한 송암 미술관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으로 이전하여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개관식을 가졌다. 송암 미술관OCI 인천 공장[옛 동양 제철 화학] 창업자인 송암 이회림[1917~2007] 명예회장이 50여 년간 국내외에서 수집한 고미술품 8,400여 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송암 미술관과 미술품 8,400여점을 인천광역시에 기증하였다.

한편 1992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거주, 활동하는 미술인들이 지역 사회 미술 발전과 작품 창작 의욕을 고취하기 위하여 인천 남구 미술 협회를 결성하였다. 1992년 제1회 남구 미술 협회 작품전을 시작으로 매년 미추홀구 미술 협회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작품전에는 미추홀구 지역 미술계 중견 및 원로들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이 참여한다. 회원은 2012년 5월말 현재 60명이며, 분야는 서예, 서양화, 한국화, 문인화, 도자기, 조각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2012년에는 인천 종합 문화 예술 회관 소전시실에서 창립 20주년 기념 ‘제20회 인천 미추홀구 미술 협회전’을 거행하였다. 창립 이래 인천 미술계의 중견 및 원로 작가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인천 미추홀구와 인천 지역 미술 분야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실버 미술 대전은 만 65세 이상의 아마추어 미술가들을 위한 전국 규모 아마추어 실기 대회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홈페이지 공지 사항에서 참가 신청서를 내려 받아 문화 예술과로 방문, 접수하면 된다. 전국 기초 자치 단체 중 최초로 한국 미술 협회 인천광역시 지부가 주최하고 대한민국 실버 미술 대회 조직 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회이다. 제1회 실버 미술 대회는 효 사상을 고취하고 건강한 실버 청춘의 문화 활동의 장을 만들고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청사 일원에서 2011년 9월 17일 개최되었다. 인천광역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강원도에서 108명이 참가하여, 총 115점이 출품되었다. 인천의 실버 미술 대회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이라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인천의 효 사상을 내외에 알리고 건강한 실버 문화를 창달에 이바지하였다.

인천광역시 남구 학산 문화원의 주민 문화 자치 동아리에서 전시 관람과 미술사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학산네 미술 동아리인천광역시 남구 학산 문화원에서 2006년부터 미술 전시관 관람과 미술 체험 놀이 등을 기획, 진행해 오던 주부들로 구성된 문화원 회원들의 소모임이다. 미술사와 미술 작가,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고 학습하며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시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채롭고 참신한 미술 놀이 체험과 미술관 나들이를 기획했다. 2010년 11월 자녀들의 성장과 일부 회원들의 취업 등으로 해산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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