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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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郡邑誌 |
영어공식명칭 | Yangju-gun Eupj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양진아 |
[정의]
개항기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관할하였던 양주군에서 편찬한 읍지.
[개설]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1895년 5월 이후에 편찬하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주군의 읍지이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이 포함된 양주군의 대략적인 역사, 지리, 경제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편찬/간행 경위]
『양주군읍지』는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포괄하던 경기도 양주목(楊州牧)이 1895년 5월 지방 제도 개정으로 인하여 한성부 양주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8월 지방 제도 개정으로 인하여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1895년 5월 이후에 편찬된 읍지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양주군읍지』는 필사본 1책 14장이며, 육침선장(六針線裝)으로 제책되었다. 표지는 능화무늬의 황지(黃紙)이고 본문은 저지(楮紙)이다.
[구성/내용]
『양주군읍지』의 항목은 채색된 양주군의 지도와 건치연혁(建置沿革)·관원(官員)·군명(郡名)·성씨(姓氏)·산천(山川)·제언(堤堰)·토산(土産)·봉수(烽燧)·궁전(宮殿)·학교(學校)·서원(書院)·역원(驛院)·발참(撥站)·목장(牧場)·면리(面里)·불우(佛宇)·사묘(祠廟)·능묘(陵墓)·고적(古蹟)·명관(名官)·인물(人物)·제영(題詠)·진공(進貢)·장시(場市)·교량(橋梁)·민호(民戶)·군액(軍額)·조적(糶糴)·공해(公廨)·관방(關防)·형승(形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면리 항목에는 읍내(邑內)·고주내면(古州內面)·회암면(檜巖面)·진답면(陳畓面)·현내면(縣內面)·산내면(山內面)·청송면(靑松面)·내동면(內洞面)·별비곡면(別非谷面)·접동면(接洞面)·영근면(嶺斤面)·진벌면(榛伐面)·건천면(乾川面)·진관면(眞官面)·금촌면(金村面)·상도면(上道面)·하도면(下道面)·와공면(瓦孔面)·독음면(禿音面)·구지면(龜旨面) 등 총 34개 면이 기재되어 있다.
34개의 면 중에서 접동면·진벌면·건천면·진관면·금촌면·상도면·하도면·와공면 등이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해당한다.
민호 항목에는 호구(戶口)·전부(田賦) 정보가 기재되어 있는데, 내용이 1871년에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의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와 동일하다. 반면 진공·장시 항목 등의 경우에는 「양주목읍지」와 다른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양주군읍지』는 일부 내용이 1871년에 간행된 『경기읍지』의 「양주목읍지」를 저본으로 작성되어 편찬 시점인 1895년 5월 이후의 지역 상황이 전부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양주목읍지」와 다른 내용들도 있어 19세기 후반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영역을 관할하던 한성부 양주군 또는 경기도 양주군의 사회경제적 변화상을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