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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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泉庵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1[별내동 산97-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종록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22년 - 석천암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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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956년 - 석천암 요사채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1월 23일 - 석천암 대웅전 소실 |
현 소재지 | 석천암 - 경기도 남양주시 불암산로 190-1[별내동 산97-2] |
성격 | 사찰 |
전화 | 031-527-8988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 소속 사찰.
[개설]
석천암(石泉庵)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산 정상 부근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다. 절 중심에 있는 커다란 암벽의 미륵불이 석천암의 상징이다.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석천암은 신라 흥덕왕 대의 승려 지증(智證)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지증은 840년(문성왕 2)에 17세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826년에서 835년까지인 흥덕왕 대에 지증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것은 신빙성이 약하다.
또 조선 시대인 1882년(고종 19)에 오위장(五衛將)이었던 이장군(李將軍)이 병제 개편으로 오위가 해체되자, 불암산에 들어와 이미 황량해진 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기록을 신뢰한다면 이 무렵에는 사실상 폐사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1922년에는 거사 김한구(金漢九)가 다시 석천암을 수리하여 공부하였다. 1956년에 들어서 절의 주지가 승려들이 거주하는 건물인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활동 사항]
석천암은 2011년 1월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석천암에 봉안되었으나 해외로 유출되었던 석천암 지장시왕도(石泉庵 地藏十王圖)가 2016년 조계종과 문화재청의 공조로 환수되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석천암에는 법당과 절의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 칠성각이 있다. 법당은 4단 절벽의 아래쪽 바위면에 붙여 지은 건물이다. 법당 안쪽 벽에는 아미타삼존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법당과 요사채 사이에는 마애미륵불이, 왼쪽 절벽에는 약사여래 등이 조성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석천암 법당 옆에 위치한 칠성각 안에는 「칠성탱화(七星幀畵)」와 「산신탱화(山神幀畵)」, 십육나한 중 첫 번째 존자인 독성존자를 그린 「독성탱화(獨聖幀畵)」 등이 그려져 있으며, 독성상이 있다.
또 석천암에는 석천암 지장시왕도, 곧 지장보살과 저승의 판관인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알 수 없는 경위로 해외에 유출되었다. 이후 독일의 경매장에 나왔던 석천암 지장시왕도는 조계종과 문화재청에 의하여 국내로 환수되었다. 석천암 지장시왕도는 그림에 적힌 글에 따르면 법총(法聰), 희원(凞圓), 혜호(慧皓) 등의 승려에 의하여 그려져 1848년 부처님 오신 날에 석천암에 봉안되었다고 전한다. 환수되었을 당시 그림은 이미 서양식 액자에 넣어진 형태였으며, 이후 2022년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되기도 하였다. 2022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