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상주목 단밀현의 읍지. 『단밀현지(丹密縣誌)』는 조선 시대 경상도 상주목의 속현(屬縣)이었으며, 현 의성군 단밀면과 단북면 일대로 편제된 단밀현(丹密縣)의 읍지이다. 상주목의 읍지인 『상산읍지(商山邑誌)』 목록 다음에 단밀현과 관련된 내용들을 항목별로 수록해 놓은 것으로, 1994년 의성 문화원에서 『단밀현지』 부분만 별도 영인하여 『의성지 집록(義城誌集...
-
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비안현(比安縣)[현 의성군 비안면]의 읍지. 『비안여지승람(比安輿地勝覽)』은 현재 의성 지역에 편입된, 경상도 비안현의 읍지이다. 현재 조선 후기에 편찬된 3종의 『비안여지승람』이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관찬 읍지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순서대로 각각 1729년(옹정 7) 6월, 1758년(건륭 23), 1878년(광서 4) 8월에 편찬되었...
-
조선 후기 의성 지역 관련 기록이 담긴 신경준(申景濬)의 문집. 『여암전서(旅菴全書)』는 18세기 중·후반 활약한 실학자 신경준의 문집이다. 신경준의 시문과 논고는 20세기 들어서 문집으로 간행되었는데, 그중 『여암전서』는 1939~1940년 사이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간행된 것이다. 신경준은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강계고」, 「산수고」, 「가람고」 등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 지리학...
-
1962년 박재구(朴在九)와 임태순(任台淳)의 주도로 편찬된 의성 지역 향토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인문 지리적 내용을 담은 읍지이다. 해방 이후 외래 문물이 밀려들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홀히 하는 추세가 지속되자, 우선 우리 고을의 전통을 계승·유지하자는 의도에서 1962년 지역 유림들 주도로 편찬된 의성 지역의 읍지이다. 현대에 편찬된 읍지이나 구성은 전 근대 이전 편찬되었...
-
1932년 류천(柳川)이 편찬한 의성 지역의 향토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인문 지리적 내용을 담은 사찬(私撰) 읍지이다.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행정 구역 개편과 새로운 문물 유입에 따른 변화된 시대상이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다. 전통 읍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몇몇 항목의 제목과 용어는 현대적 내용을 반영하였다. 편찬자는 류천이며, 발행자는 류상묵(柳...
-
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의성현의 읍지. 『의성현지(義城縣誌)』는 조선 시대 의성현 지역의 인문 지리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읍지로, 전통적인 읍지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와 1895년 편찬된 『영남읍지(嶺南邑誌)』 수록 『의성현지』는 모두 본 읍지가 저본이다. 부세(賦稅) 관련 조항이 상세하며, 훗날 정부의 명으로 편찬되는 『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질그릇이나 사기 그릇,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터. 가마터는 인간이 토기를 발명하여 사용한 신석기 시대 이래로 남겨지기 시작한 유적이다. 선사 시대의 가마터 유적은 주로 토기를 굽던 토기 가마와 숯을 만들기 위한 사용한 숯가마가 있으며,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토기 가마뿐만 아니라 자기 가마, 옹기 가마, 기와 가마를 비롯하여 쌈을 찌는 삼가마,...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로(大老). 조선 초기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 都巡問使)를 역임한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강지해(姜之海), 할아버지는 강의정(姜儀貞), 증조할아버지는 강미(姜美)이며, 5형제 중 막내로 위로 강효손(姜孝孫)·강계손(姜繼孫)·강충손(姜忠孫)·강신손(姜信孫) 등이 있다. 모계는 확인...
-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건마산(乾馬山) 일대에서 벌어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건마산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위치한 산으로, 걸마산·부마산·성재 등으로도 불린다. 높이는 395m이며 단촌면 병방리와 점곡면 송내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2002년 출판된 『의성 지명 유래』에 따르면, 건마산에는 병방산성이 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발발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에 의해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을 말하며, 단순한 건조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구조물은 ‘건물(建物)’ 이라고 한다.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교육·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
757년부터 고려 초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구현(高邱縣)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의성현(義城縣) 고적조에 “의성현 북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일대로 추정된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고악(高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구현은 원래 신라의 구화현(仇火縣)이었다. 경덕왕이 전국의 지...
-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삼한 시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召文國)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문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로 추정할 수 있다. 2세기 이후 신라로 편입되었다.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3세기 경상도 지역 상황은 변한·진한으로...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후삼국 시대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이때 의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왕건과 견훤 모두가 중시하는 곳이었다. 양자가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의성의 호족 홍술(洪術)이 고려에 귀부하자 왕건은 이를 우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의성부(義城府)를 설치하였...
-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작성된 옛 문서.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된 고문서 작성 지역은 조선 시대의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이었던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이었던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 일부이다. 고문서는 1945년 이전 관부가 개인에게 발급하거나, 관부와 관부 사이에 작성...
-
경상북도 의성 지역과 관련한 1945년 이전 편찬 기록 자료와 서적.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고문헌과 관련된 곳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인 단밀현(丹密縣), 예천군(醴泉郡)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그리고 용궁현(龍宮縣)의 일부가 해당된다. 고려 시대 이래 이들 지역의 토성(土姓) 세력 중에서도 특...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해 있는 삼국 시대까지 조성된 무덤. 경상북도의 중앙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의성군은 한때 조문국(召文國)이라는 국명을 가지고 흥망성쇠를 겪었고, 멸망한 뒤에는 신라의 지배 하에서 중요한 거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의성 지역의 지형은 동남쪽의 팔공산을 중심으로 북으로 팔공산-가산-청화산-만경산, 서북으로 팔공산-화산-연점산-황학산-기룡산-갈라산으로 이어지는 높...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 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무덤은 주거 지역과 좀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착 생활과 함께 사용된 무덤 양식이므로, 하천가의 구릉 지대나 평야 지대에...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공정리 공실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사곡면 공정리 공실 마을에서 서쪽으로 개설된 지방도 912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400m 진행하다 보면 지방 도로에 연접한 북쪽 산자락의 사면 상에 고분 떼가 자리 잡고 있다. 고분 떼의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남대천 주변의 충적지에는 과수원과 밭이 경작되고 있다. 공정리...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조선 시대 관료는 과거(科擧)와 음서(蔭敍), 천거(薦擧) 등의 방식을 통해 선발되었다. 과거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대과(大科)[문과(文科)·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뉘며, 능력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음서는 조상의 음덕(蔭德)에 따라 그 자손을 관료...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단촌면사무소에서 의성군 점곡면, 옥산면을 잇는 지방도 914호선를 따라 약 2.5㎞ 지점의 동쪽에 등용사가 있다. 고분 떼는 등용사의 맞은편 남쪽 능선에 위치한 늠메골 일대에 밀집 분포한다. 능선 정상부의 남쪽으로는 높은 산을 배경으로 골짜기가 깊으며 북쪽 능선 말단부는 등용사 및 지방도 914호선 일대로 넓은 평야가 펼...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터. 관덕리 마산 봉수터 유적과 관련하여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의성현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산 봉화는 [남쪽의 영니산 봉화를 받아] 북쪽으로 15리 거리에 있는 안동에 속한 일직현의 감곡산 봉화에 보낸다[馬山烽火 北望 安東任內 一直縣地 甘谷山烽火 相去十五里].” 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선사 시대~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관덕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488-1전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안동 방향으로 8.5㎞ 가다가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2.5㎞ 정도 이동하면 단촌면 관덕 2리 마을에 이른다. 관덕리 유물 산포지는 마을과 등룡사 사이에 있는 밭에 있다. 유물 산포지의 서쪽에는...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석. 교안리 마안대 각석은 자연 암벽에 새겨진 각자로 구체적인 건립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산80에 위치해 있으며, 교안 4리 입구에서 노인정 방향으로 하천을 따라 200m가량 이동한 지점의 산기슭 암벽에 있다. 암벽의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암벽을 파내고 ‘마안대(馬鞍臺...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교안리 절터 부근은 대나무 밭과 경작 등으로 파괴가 심하여 절터로 추정되는 유구(遺構)를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이 일대에 남아 있는 탑재의 조각 기법과 규모 등으로 볼 때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교안리 절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산253에 있다.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안동 방면으...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각석. 교촌리 관어대 각석은 자연 암벽에 새겨진 각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비안현(比安縣)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늦어도 1530년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되나, 각자를 한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산42에 있다. 교촌리의 선돌 마을 남쪽 위천 강변에서 500m가량 내...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교촌리 선돌은 안계면사무소에서 남동쪽 안계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토매 삼거리가 나온다. 토매 삼거리에서 국도 28호선[서부로]을 따라 비안면 방향으로 3㎞ 정도 가면 교촌리가 있다. 교촌리 선돌은 교촌리의 선돌 마을 도로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교촌리 선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전체 형태는 직사각 기둥이나 정면에서 볼 때...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개항기 정자. 구미리 감애정은 감애(鑑厓) 신학홍(申學泓)이 1800년대 말에 건립하였다. 구미리 감애정은 구미리를 지나는 지방도 927호선과 국도 5호선이 만나는 구미 삼거리에서 호동 마을 방향으로 약 100m 정도 가면 좌측 구미리 마을 뒷편 야산 기슭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800년대 말에 건립되었다고 전하지만 구체적인 연도는 알 수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구미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427-1답에 있다. 유적의 경위도는 N36°18´33.590˝ E128°36´12.6316˝이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안계 방향으로 30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선돌 떼. 구미리 선돌 떼는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 안계 방향으로 30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 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2㎞ 정도 가면 왼쪽에 구미리가 있다. 구미리 입구에 구미 정미소가 위치하는데 길을 사이에 두고 공장과 창고가 위치하고...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가옥. 구미리 신상렬 가옥은 국도 5호선과 지방도 927호선이 만나는 구미 삼거리에서 보이는 구미동 마을의 구미동 경로당에서 구미지를 바라볼 때 우측에 있는 야산 자락에 위치한다. 구미리 신상렬 가옥은 ㄱ자형의 사랑채와 一자형의 안채, 一자형의 고방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가옥의 우측 뒤 언덕 위에는 사당을 배...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구산리 고인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545-1에 있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안계 방향으로 3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2.5㎞ 정도 가면 구미 삼거리가 나온다. 구미 삼거리에서 지...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구성리에 있던 신라 시대 고분 유적. 구성리 고분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봉로 27[구성리 408-1]에 있다. 의성읍에서 지방도 912호선을 따라 8.2㎞ 가다가 신감리로 들어서기 전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지방도 79호선을 따라 10㎞ 정도 가면 옥산면사무소에 이른다. 고분 떼는 옥산면사무소 북쪽에 있는 북동-남서향 구릉 일대로서 현재 옥산 중학...
-
조선 후기 의성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형중(瑩仲), 호는 농아(聾啞). 아버지는 구인징(具麟徵)[1688~1753], 어머니는 신방윤(申邦尹)의 딸 영해 신씨(寧海 申氏)와 임이옹(任爾雍)의 딸 풍천 임씨(豊川 任氏)이다. 할아버지는 무과(武科) 출신의 구시준(具時準)[1653~1718]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구인경(具仁慶)[1629~1687]이다. 처는 이경...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에 있는 재실. 구암리 금당재는 남호(南灝), 남신충(南藎忠), 남추(南樞), 남해준(南海準)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영양 남씨 문중의 재실이다. 의성읍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지방도 914호선을 따라서 가다 보면 길 좌측에 구암리 구암 마을이 있다. 구암 마을 뒤편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구암리 금당재는 1750년경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95...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字)는 수옹(壽翁), 호(號)는 송계(松溪)이다.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좌정승 벼슬을 지낸 송은(松隱) 구홍(具鴻)의 손자이고, 능성 구씨 좌정승파의 파조(派祖)이다. 구익령(具益齡)[?~?]은 능성 구씨 9세손으로 조선 태종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성 군사(義城郡事)가 되었는데, 이때 의성으로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지중(智中), 호는 도해와(蹈海窩).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의 후예이며, 진사 구사종(具嗣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구연(具淵)이며, 아버지는 사재감(司宰監) 첨정(僉正) 구광정(具光廷)이고, 어버니는 참봉 정찬(丁瓚)의 딸인 의성 정씨(義城 丁氏)이다. 부인은 참봉 이언각(李彦覺)의 딸이다. 구혜(具譓)[160...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正), 호는 자락당(自樂堂)·사재당(思齋堂).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성 수성장으로 활약한 권희순(權希舜)이다. 권수경(權守經)[1584~1659]은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의성에 거주하며 학문에 힘썼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향인(鄕人)의 추대와 장현광(張顯光)의 천거로 의성 의병장 겸 좌도 의병 도유사(義城 義兵將...
-
조선 전기 의성에 거주한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여(子輿), 호는 행정(杏亭). 고려(高麗) 삼한 벽상 삼중 공신 태사(三韓 壁上 三重 功臣 太師) 권행(權幸)의 19대손이다. 권유륜(權有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내시 직장(內侍 直長) 권아(權雅)이고, 아버지는 청산 현감(靑山 縣監) 권상의(權尙宜)이며, 어머니는 창신 교위 중랑장(彰信校尉 中郞將) 권후(權厚)의 딸...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장(德章), 호는 제호(濟湖)이다. 아버지는 권중시(權中時)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 金氏)로 김동옥(金東玉)의 딸이다. 권호(權濩)[1796~1829]는 이병원에게 수학하였으며, 1825년(순조 25)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암(雲庵). 고조할아버지는 행정(杏亭) 권식(權軾)으로 경상도 의성군 사촌의 안동 권씨 입향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숭조(權崇祖)이고, 할아버지는 상의원 직장(尙衣院 直長)을 지낸 권사형(權士衡)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 권무성(權武成)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순천 장씨(順天 張氏)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금산 서원(錦山書院)은 신체인(申體仁)[1731~1812]이 1776년(영조 52) 자제와 문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금연 정사(錦淵精舍)의 후신으로 1981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금산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15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봉양 중학교·봉양 정보 고등학교 앞 탑산교를 건너 좌회전 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전해지는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금속이나 돌 등에 새긴 글씨나 그림을 통칭하여 이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에 글자를 새겨 놓은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주로 사적비·탑비·묘비·묘지 등에 새겨진 글씨가 대부분이다. 금석문은 당대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어 1차 사료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의성 지역에서 확인된...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금성산 고분군 대리리 2호분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51에 있다. 의성 IC에서 동쪽으로 지방도 912호선을 따라 13㎞ 정도 가다가 의성읍 방향으로 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500m 정도 가면 금성산 고분군에 이른다. 이곳은 금성산 서쪽 자락 쌍계천 강가 평야 지대로 U자 형태로 돌출한 대리리의 두 구릉 안쪽 좁...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학리에 있는 산성 유적. 금학리 산성터 유적의 변천 과정은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자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0여 년 전인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의성현 성곽조에는 기록이 없지만 고적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황산성은 현의 동쪽 40리에 있는데 서쪽 석축의 길이가 45척이었으나...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초기 철기 시대 유물 산포지. 기도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기도리 718-721전에 있다. 의성 IC에서 지방도 92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12㎞ 정도 가면 안평면 소재지에 이른다. 유물 산포지는 안평면 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2㎞ 이동하면 나오는 치실마을 입구 구릉 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1991년 9월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766-1번지 일원에 분포한다. 길천리 가마터 유적은 길천2리 천동 마을 동쪽의 계단식 밭으로 개간된 구릉 말단에 위치하는 기와 가마터와 천동 마을의 민가에 위치하는 자기 가마터 유적으로 구분되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유적이다. 주변에서 채집되는 자기편과 와편으로 볼 때 조선...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길천리 고분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길천리 산745에 있다. 의성 IC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의성읍 방향으로 5.5㎞ 정도 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소로를 따라 200m 정도 가면 길천 2리 천동 마을에 이른다. 고분 떼는 천동 마을 동쪽이자 천동지 서쪽에 해당하는 구릉상에 위치한다. 길천리 고분 떼의 서남쪽 1.8㎞...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원구(元龜), 초명은 서정(瑞廷). 아버지는 충렬왕, 충선왕 대의 관료로 찬성사를 지낸 김훤(金晅)이다. 김개물(金開物)[1272~1327]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충선왕이 세자 때 총애를 받아 즉위한 후 감찰사(監察史), 전부시 승(典符寺 丞) 등을 제수받았다. 그런데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국헌(國憲), 호는 귀재(歸齋). 아버지는 사재감 정(司宰監 正) 김천강(金天降), 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전공시사(門下評理 判典工寺事) 김중기(金重器), 증조할아버지는 문하평리 판례의시사(門下評理 判禮義寺事) 김구(金龜)이다. 처는 생원(生員) 조석린(趙錫麟)의 딸 숙부인 풍양 조씨(豊壤 趙氏)로 알려져 있다. 김고는 함창...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舊]安東).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처사(松隱處士)·사휴자(四休子). 김자첨(金子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효온(金孝溫)이고, 아버지는 지례 현감 김극해(金克諧)이며, 어머니는 연안 강씨(延安 姜氏) 사용(司勇) 강재(姜載)의 딸이고, 부인은 영양 남씨(英陽 南氏) 남치(南畤)의 딸이다. 김광수(金光粹)[1468~1563]는 어...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아들은 김승전(金承滇)이다. 김굉(金紘)[?~1374]은 처음 충혜왕을 섬기다가 면직되어 나주에 거주하면서 전민(田民)을 강탈하였다. 공민왕대에 왜구가 나주에 침입했을 때 목포 사람들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한 공으로 복직되었는데,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바쳐 전라도 포왜사(全羅道 捕倭使)로 임명되어 자못 전공을 쌓았다. 또한 홍건적이...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선안동]. 자는 화숙(和叔), 초명은 서형(瑞亨)이다. 7대조 할아버지는 김방경(金方慶)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구정(金九鼎)[1340~1389]으로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분파조(分派祖)이다. 할아버지인 김자첨(金子瞻)[1369~1454]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의 안동 김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아버지 김효온(金孝溫)[1412~...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유용(幼用), 호는 기서(沂墅). 초명은 기운(驥雲). 김종택(金宗宅)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양식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곤수(金坤壽)의 딸 이고,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 참봉 이휘양(李彙陽)의 딸이다. 김기선(金驥善)[1806~1883]은 어려서 종조부인 김기진(金沂進)에게 배우고 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자유(子唯), 호는 기계(奇溪). 김종택(金宗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해진(金海進)이고, 아버지는 김양식(金養植)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곤수(金坤壽)의 딸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 참봉 김재진(金在振)의 딸 이다. 백부(伯父) 김양정(金養楨)에게 출계(出系)하였다. 김노선(金魯善)[1811...
-
근대 의성의 열녀. 본관은 영양(英陽). 아버지는 선산에 사는 남성한(南成漢)이다. 의성 김씨 집안의 김덕휘(金德輝)와 혼인하였다. 영양 남씨[?~1939]는 19세 때 김덕휘와 혼인하였으나 시댁에 이르기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청상의 비운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기울어져 가는 가세의 버팀목이 되었다. 세태의 변화로 개가의 권유도 적지 않았으나 굳...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각(伊覺), 초명은 경민(景民), 호는 설강(雪崗). 김유신 장군의 후예이며 김일손(金馹孫)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창녕 현감(昌寧 縣監)을 지낸 김대장(金大狀)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士郞)을 지낸 김순(金錞)이고, 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이다. 부인은 김언형(金彦亨)의 딸 경주 김씨(慶州...
-
조선 전기 의성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문경(文卿), 호는 첨성(瞻省). 흥무왕 김유신 장군의 38세손이며, 고조할아버지는 판관을 지낸 김성대(金性大)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예의 판서(禮儀 判書) 김신빈(金信彬)이다. 할아버지는 동부 참봉(東部 參奉) 김이렴(金以濂)이다. 아버지는 참봉 김태옥(金泰玉)이고, 어머니는 한상문(韓尙文)의 딸 청주 한씨(淸州 韓氏...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간지(幹之), 시호는 문장(文長). 부인은 유정(柳汀)의 딸이다. 김말(金末)[1383~1462]은 1417년(태종 17)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 학유(成均 學諭), 1427년(세종 9) 부사정(副司正)에 제수되었으며, 여러 번 관직을 옮겨 성균관 대사성(成均館 大司成)에 이르렀다. 1447년(세종 31) 처음에 김반(金泮)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형원(馨遠), 호는 만각재(晩覺齋). 아버지는 희옹(希翁) 김태원(金泰元)[1692~1767]이고, 어머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 朴氏) 박후석(朴垕錫)의 딸 이고, 두 번째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 이춘만(李春萬)의 딸이다. 고조부인 죽장(竹庄) 김정(金䂻)[16...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복초(復初), 호는 구암(龜庵). 아버지는 석간(石澗) 김학(金嶨)[1671~1748]이며, 어머니는 김은좌(金殷佐)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김복원의 5대조 할아버지는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1555~1641]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지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진중에서 죽었다. 고조할...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仁), 호는 만취당(晩翠堂). 연산군 때 이름난 선비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서애 유성룡의 외종질(外從姪)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사원(金士元)[1539~1601]은 절충...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숙(正叔), 호는 후송재(後松齋).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의 아우이다. 김사정(金士貞)[1552~1620]은 젊어서 재예와 총명이 과인하였으며, 가훈에 따라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퇴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겸(士兼), 호는 독수헌(獨秀軒). 의성 사촌의 입향조인 김자첨(金子瞻)의 6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지례 현감을 지낸 김극해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이고, 할아버지는 김당(金溏)이다.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김만겸(金萬謙)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부인은 부장 안수...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백옥(白玉), 호는 남애(南厓). 할아버지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直長) 김준(金濬)이고, 어머니는 부장(部將) 권돈(權暾)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부인은 진사 이형남(李亨男)의 딸 진성 이씨(眞城李氏)이고, 후처는 첨지중추부사 안벌(安橃)의 딸 죽산 안씨(竹山 安氏)이고, 슬하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맹집(孟輯), 호는 응암(鷹岩). 아버지는 김정신(金鼎臣)이고, 어머니는 진사 신중표(申重表)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고, 부인은 이후삼(李垕森)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김서(金瑞)[1769~1824]는 김종덕(金宗德)의 문인으로서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1819년 가주서(假主書), 권지 승문...
-
고려 전기 의성 출신의 왕족으로 의성 김씨(義城 金氏)의 시조. 아버지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며, 어머니는 고려 태조 왕건의 장녀인 낙랑 공주(樂浪 公主)이다. 외할머니는 충주 출신 태사내사령(太師內史令) 유긍달(劉兢達)의 딸인 신명 왕후 유씨(神明 王后 劉氏)이다. 낙랑 공주는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가 고려에 투항한 후 그와 결혼하였다. 원래 혼인 전에는 안정 숙의 공...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주경(周卿), 호는 남하당(覽下堂)·소당(小棠). 아버지는 김제연(金濟淵)이고, 어머니는 유도인(柳道麟)의 딸 풍산 유씨이고, 부인은 이심재(李深在)의 딸 영천 이씨(永川 李氏)이다. 김석상(金奭相)[1857~1899]은 1883년(고종 20)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 정언을 지냈고 갑오개혁 이후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머물렀...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의은(義隱). 의성 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10세손이며 의성 김씨 찬성공파(贊成公派) 중시조이다. 김성단(金成丹)은 생몰년 미상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고려 말 왕조의 멸망을 예견하고 의성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스스로 고려에 충성을 맹세하고 의성에 은거한다고 하여 의은(義隱)이라...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시호는 희헌(僖憲). 아버지는 판서 김석아(金錫我)이다. 김순(金淳)[?~1462]은 1432년(세종 14)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443년 우헌납(右獻納)으로 양전 편의지책(量田 便宜之策)을 올렸다. 1444년 지평(持平)에 임명되고, 1448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450년(문종 1) 성균관 사예(成均館...
-
경상북도 의성군 빙계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시호는 문경(文敬). 고조할아버지는 함흥 소윤(咸興少尹) 김호지(金好智)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예조 정랑(禮曹 正郞)으로 후에 예조 참판(禮曹 參判)에 추증된 김통(金統)이고, 할아버지는 성천 부사(成川 府使)를 역임하고 예조 판서에 추증된 김익령(金益齡)이고, 아버지...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할아버지는 목은 이색(李穡)의 외숙부인 함녕군(咸寧君) 김요(金饒)이다. 안렴사 신우(申祐)와 사돈간이다. 함창 김씨(咸昌 金氏) 의성군 단밀면 입향조이다. 김안도(金安道)는 생몰년 미상이며, 조선 태종 때 봉훈대부(奉訓大夫) 종성 부사(鍾城 府使), 재령 군수(載寧 郡守), 진주 목사(晉州 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 멸망 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제언(濟彦), 호는 정암(定菴). 김치응(金致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종택(金宗宅)이고, 아버지는 김해진(金海進)이며, 어머니는 예안 김씨(禮安 金氏)로 김훈(金訓)의 딸이며,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 黃氏)로 생원 황반로(黃磻老)의 딸이다. 김양정(金養楨)[1785~1847]은 어릴 때 가학에 정진하였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치홍(穉弘)·경집(敬集), 호는 율원(栗園). 김기응(金箕應)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낙진(金樂進)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 李氏)로 이종수(李宗洙)의 딸이며,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순(金淳)의 딸이다. 김양휴(金養休)[1777~1854]는 20대 이전까지는 친족 할아버지인 김종덕(金宗德)과 김종섭(金宗燮)에게 수학...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송암(松菴). 김진고(金振古)의 아들로, 함께 무과에 급제한 동생으로 백운 김욱(金煜)과 죽암 김찬(金燦)이 있다. 김엽(金燁)[1586~1637]은 어릴 때부터 진(陣) 놀이를 할 때 진두지휘하는 솜씨가 놀라웠다고 전해진다. 1620년(광해군 12) 두 아우 김욱, 김찬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열지(熱之), 호는 맹암(孟巖), 시호는 양소(襄昭)이다. 김영렬(金英烈)[?~1404]은 1394년(태조 3)에 경기우도 수군첨절제사(京畿右道 水軍僉節制使)가 되고 1395년 왜선(倭船) 1척을 나포하여 포로 21인을 바치고 내구마 1필과 비단과 궁온(宮醞)을 하사받았다. 1396년 왜선(倭船) 2척을 추자도(楸子島)에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상락 김씨(上洛 金氏)]. 자는 송서(宋瑞), 호는 구은(龜隱). 빙계 서원(氷溪 書院) 원장 옥계(玉溪) 김상유(金尙瑜)[1605~1678]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소북(韶北) 김은좌(金殷佐)이고, 아버지는 김이성(金履成)이며, 어머니는 이숙(李淑)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부인은 김세주(金世柱)의 딸 선성 김씨(宣城 金...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 의성 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9세손으로 의성 김씨의 중시조이다. 아버지는 김공우(金公瑀)이며, 부인은 영동정(令同正) 강후주(姜后柱)의 딸이다. 김용비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이 쳐들어와 경상북도 안동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몽진했을 무렵 의성 일원의 도적 무리를 다스려 소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그 난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이자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백암(栢庵).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진고(金振古)이고, 형은 김엽(金燁)이고, 동생은 김찬(金燦)이다. 김욱(金煜)[1587~1637]은 1587년(선조 20) 경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지냈는데, 동네에서 전쟁놀이를 할 때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자익(子益). 호는 위애(渭厓). 고성 현령을 지낸 귀재(歸齋) 김고(金觚)의 5대 손이다. 아버지는 김덕린(金德隣)이고, 어머니는 의흥 박씨(義興 朴氏)이다. 부인은 박충인(朴忠仁)의 딸인 비안 박씨(比安 朴氏)로 기업(基業), 희업(熙業), 휘업(徽業), 진업(振業)을 낳았다. 김유인(金有仁)[1591~1654]은 어려서...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욱(文郁). 증조할아버지는 현신 교위 부사직(顯信 校尉 副司直)을 지낸 김한동(金漢仝)으로 의성 김씨 부사직공파의 파조이자, 중사촌 마을의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내금위 돈용교위 부사맹(內禁衛 敦勇校尉 副司猛)을 지낸 김만정(金萬禎)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이고, 어머니는 김광수(金光粹)의 딸 안동 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증조할아버지는 현신교위 부사직(顯信校尉 副司直)을 지낸 김한동(金漢仝)으로 의성 김씨 부사직공파의 파조이자, 중사촌 마을의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내금위 돈용교위 부사맹(內禁衛 敦勇校尉 副司猛)을 지낸 김만정(金萬禎)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이고, 어머니는 김광수(金光粹)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고조할아버지는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예빈시 직장(直長)을 지낸 김준(金濬)이고,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사복시 정(司僕寺 正)에 추증된 양진당(養眞堂) 김상린(金尙璘)이고, 아버지는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사주(沙洲) 김양좌(金良佐)이고,...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덕부(德夫), 호는 지암(持菴). 아버지는 김치명(金致明)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중(金萬重)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 金氏)로 김필균(金弼均)의 딸 이다. 초명은 김태린(金台鱗)이다. 김재경(金在敬)[1841~1926]은 13세에 사자서(四子書)를 읽고, 19세에 주자(朱子)의 『역학 계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우여(禹如). 호는 봉와(鳳窩). 아버지는 김병덕(金炳德)이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김제균(金濟均)[1796~1849]은 15살 때 아버지 김병덕(金炳德)이 세상을 떠났다. 슬퍼하는 마음이 지나쳐 몸이 상할 정도였다. 장삿날에는 아버지를 묻고 나서 그 곁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온갖 방법으로 달랬으나 말을 듣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직보(直甫), 호는 구재(苟齋).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주억(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慶州 崔氏) 구석의 딸이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동생이다. 김종경(金宗敬)[1732~1785]은 어려서 용모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도언(道彦), 호는 천사(川沙).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는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김주의(金冑疑)의 딸이다. 부인은 한산 이씨(韓山 李氏) 이시화(李時和)의 딸이다. 김종덕(金宗德)[1724~1797]은 평생 향리(鄕里)에서 학행(學行)을 행한 인물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주억(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여주 이씨(驪州 李氏)로서 이헌주(李憲周)의 딸이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동생이다. 김종발(金宗發)[1740~...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홍보(弘輔), 호는 제암(濟庵).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김주억(金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 柳氏) 유형(柳瀅)의 딸이다. 김종덕의 동생이다. 김종섭(金宗燮)[1743~1791]은 천성이 조용하고 침착하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김해(金海). 자는 경도(敬道). 호는 수성재(守省齋). 김종숭(金鍾崇)[1856~1923]은 어려서부터 온화한 성품으로 그 언어와 행실이 항상 공손하였다. 또한 남을 돕는 데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항상 사람들의 앞장을 섰다.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밖에서 별식이 생기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드리고, 기이한 일을 보거나 듣게...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아버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이웃하는 사곡면 음지리의 이재필(李載馝)이고, 김종행과 혼인하였다. 성주 이씨[?~1791]는 19세에 혼인하여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그런데 이듬해 남편이 그만 병에 걸려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죽었다. 그 후 동서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죽는 날에 죽으면 저승에서...
-
조선 후기 의성 비안현 산두촌에 이주한 안동 김씨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신안동]. 자는 덕이(德以), 호는 학록(鶴麓). 아버지는 김계종(金繼宗)으로, 김태(金兌)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충의위 장여익(張汝翊)의 딸 인동 장씨(仁同 張氏)이다. 김진원(金震遠)[1601~1653]은 1601년(선조 34) 안동 예안면 서촌리(書(西)村里)에서 출생하였다. 1609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이며 의병장.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죽암(竹菴).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진고(金振古)이고, 형은 김엽(金燁), 김욱(金煜)이다. 김찬(金燦)[1590~1637]은 1590년(선조 23) 경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형들과 함께 어릴 때 병정놀이를 할 때에도 진을 만들어 병법에 따라 하였다. 특히 기사(...
-
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참봉(參奉)을 지낸 홍간(洪諫)의 딸로 태어나 선산인(善山人) 김철(金喆)과 혼인하였다. 김철은 고려 말의 충신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예복(金禮復)이다. 김철은 4형제 중 셋째로 맏형인 김희(金喜)는 의병장으로 단밀 전투에서 순직하였으며, 동생인 김계(金啓)는 「용사일기(龍蛇日記)」와 「용담록(龍潭錄)」을 남긴 학자였다. 김철(金喆...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율(而栗), 호는 역락재(亦樂齋). 부사맹(副司猛) 김만정(金萬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김처선(金處善)이고, 아버지 김응주(金應周)이며, 부인은 의령 옥씨(宜寧玉氏) 옥구(玉球)의 딸이다. 김치관(金致寬)[1569~1661]은 9세 때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3년(선조 36)에는 남산[...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이(靜而), 호는 응봉(鷹峯).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외증손이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이종질(姨從姪)이자 문인이다. 부인은 임진왜란시 그를 따라 순절한 평산 신씨이다. 김치중(金致中)[?~1592]은 천품(天稟)이 순후하고 면학(勉學) 독행(篤行)하였으며, 멸사봉공 정신이 투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옥(敬玉). 김해 김씨 대제학공파의 파조인 김득하(金得河)의 후예로, 아버지는 선필(善筆)로 이름난 김임현(金任鉉)이다. 김형두(金亨斗)[1852~1924]는 1906년(광무 10)까지 연풍 군수로 여러 해 재임하면서 청렴결백했고, 사재(私財)로 농우(農牛)를 구입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줘 영농하게 하는 등 선정(善政)...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성간(聖侃). 연산(連山) 현감을 지낸 김세갑(金世甲)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상혁이고, 어머니는 단양 우씨(丹陽 禹氏)이다. 김형석(金衡錫)[1655~?]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홀로 된 어머니를 섬기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한겨울 어머니가 갑자기 물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에 강가를 헤매고 있...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려(成麗), 호는 춘계(春溪). 5대조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며, 고조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대장(金大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순(金錞)으로 화(禍)를 피하여 경상도 청도(淸道)에서 경상도 의성군 팔지리(八智里)로 이거하였다. 할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아버지는 설강(雪崗) 김득민(金得民)이고, 부인은 김...
-
고려 전기 의성 지역에서 활동한 장군. 원래 이름은 홍술(洪術)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게 김씨 성을 사성받은 것으로 보인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아들로 김원윤(金元尹)과 김왕립(金王立)이 있다. 김홍술(金洪術)[?~929]은 원래 신라 말 진보현(眞寶縣)의 촌주 출신이었다. 그는 신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여 진보 성주(眞寶 城主)가 되었다가 922년(태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거원(巨源)·여수(汝收), 호는 경암(敬庵). 처음 이름은 설(渫)이다. 할아버지는 인의(引儀) 김세우(金世佑)이고, 아버지는 김사정(金士貞)이며, 어머니는 조희로(趙希老)의 딸 양천 조씨(陽川 趙氏)이고, 부인은 배한림(裵翰林)의 딸 흥해 배씨(興海 裵氏)이다. 김회(金淮)[1578~1641]는 어릴 때 아버...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용회(用晦)이다. 김훤(金晅)[1234~1305]은 1260년(원종 1) 과거에 합격했다. 1269년(원종 10)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원종의 아우인 안경공(安慶公) 창(昌)을 세웠을 때 뒷날 충렬왕이 되는 세자는 원에 있었다. 원 황제가 세자를 동안공(東安公)으로 책봉하고 군대를 고려로 보내 임연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백계(栢溪). 고려 말 충신 백암 김제(金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예복(金禮復)이고, 어머니는 단양 우씨이다. 부인은 안강 노씨이다. 김희(金喜)[1563~1592]는 1563년 의성군 비안면 서부 2리에서 태어났다. 품성이 맑고 곧았으며, 지조도 굽힘이 없었다. 일상생활에 있어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백(定伯).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나직경(羅直卿)이다. 나천서(羅天瑞)는 생몰년 미상이다. 고려말 공민왕은 요동 수복을 위해 동녕부 정벌을 단행하였다. 1369년(공민왕 18) 12월 이성계(李成桂)를 동북면 원수(東北面 元帥), 지룡수(池龍壽)를 서북면 원수(西北面 元帥)로 삼아 군사 1만 5000명...
-
조선 후기 의성 지역의 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명원(明遠), 호는 소계(小溪). 아버지는 남영환(南永煥)이며, 어머니는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유겸조(柳謙祚)의 딸 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조지복(趙志復)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하회리의 충효당(忠孝堂)[서애 종택]에서 태어났다. 남만회(南萬會)[1826~1886]는 어려서 총명하고 재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중준(仲逡).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郞) 남해준(南海準), 어머니는 군자감 직장(軍資監 直長) 권지(權誌)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할아버지는 증 공조 좌랑(贈 工曹 佐郞) 남추(南樞),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진(南應震), 부인은 신지의(申之義)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남몽뢰(南夢賚)[1620~...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무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사앙(士仰). 판서 남휘주(南輝珠)의 9세손이며, 의의정(依依亭) 남우량(南佑良)의 후예(後裔)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충순위 남중청(南中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남거(南琚)이고, 할아버지는 판결사 남세우(南世祐)이다. 아버지는 부사직 남호(南灝)이고, 어머니는 권사형(權士衡)의 딸 안동 권씨이고, 생부는 남응진(南應震...
-
조선 후기 의성에 이주해 온 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효재(孝哉), 호는 신촌(新村). 판결사(判決事) 남세우(南世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 부사 남호(南灝)이고, 아버지는 참봉 남추(南樞)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 권희언(權希偃)의 딸 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 직장 권지(權誌)의 딸이며, 신충(藎忠)에게 입양되었다. 남해준(南海準)[1...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노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단북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23호선[이연길]을 따라 동쪽으로 1.5㎞ 정도 가면 노연리가 나온다. 노연리 마을을 지나 막다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912호선[도안로]을 따라 480m 정도 이동하면 도로 오른쪽에 용천·오룡[정안 1리]라는 마을 표지석이 나오고 거기서 90m 정도 이동하면 왼쪽으로 포장된 농로가 있다. 그...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지역의 옛 지명. 신라 시대에 원래 달이현(達已縣)[또는 다이현(多已縣)]이었으나, 757년(경덕왕 16) 12월에 이루어진 군현 개편 때 다인면 지역은 달이현(達已縣)에서 다인현(多仁縣)으로 개칭되어 상주에 소속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1 상주조에 “다인현은 본래 달이현(達已縣)이었는데[혹은 다이(多已)라고도 한다] , 경덕왕 때 지금의...
-
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단밀현(單密縣)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단밀현(丹密縣)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래 신라의 무동미지현(武冬彌知縣)이었고, 갈동미지(曷冬彌知)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경덕왕 때 갈동미지현에서 단밀현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의성 지역 문...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대사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산266-4와 대사리 산266-5에 있다. 의성 IC에서 지방도 92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7.2㎞ 정도 북쪽으로 가면 안평면 도옥리의 노인 회관이 나온다. 이곳에서 소로를 따라 서쪽으로 개울을 건너 용립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북서-남동향 구릉이 있는데,...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도금동(都今同)[?~?]은 어느 해 날씨가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재워두고 아내와 함께 김을 매러 논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있던 병들고 늙은 아버지가 더운 날씨 탓인지 정신이 혼미하여 아기를 닭으로 잘못 알고 솥에 넣고 삶아버렸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내는 아이를 찾다 솥에 넣어졌다는 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 있는 고분 떼로 크게 2개 군으로 나뉘어져 분포한다. 1군은 상덕 마을 북동쪽 구릉 일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에 해당한다. 김상규(金商奎)의 묘 주위에 10여 기의 봉토분이 분포한다. 2군은 상덕 마을 남쪽에 위치하는 중덕 마을 동쪽 구릉 일대로 산자락에 민묘들과 섞여 있으며, 약...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에 있는 신라 시대 유물 산포지. 도덕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도덕리 804전에 있다. 의성 IC에서 서쪽으로 국도 28호선을 따라 18.5㎞ 가면 안계면 면소재지에 이르고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안사면 쪽으로 3.8㎞ 가면 안계면 도덕리 상덕 마을에 이른다. 이곳은 안계 평야의 동남쪽 가장자리를 둘러싼 산악 지대의 초입에 위치한다...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에 있는 봉수터.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기사는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비안현조에 “간점현 봉화는 비안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25리 300보 거리에 있는 군위 땅의 마정산 봉화를 바라고, 북쪽으로 30리 270보 거리에 있는 안정현 땅의 대암산 봉화를 바라본다[肝岾峴烽火 在縣南十五里許 南望軍威地 馬井...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도암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놓은 바위. 도암리 성혈암은 바위 면에 새겨진 바위그림 또는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다산, 풍요를 기원하는 등의 당시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유적으로, 그 생성 연대는 바위그림, 고인돌의 축조 시기와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인면사무소에서 서릉길을 따라 왼쪽으로 250m 정도 가면 지방도 923호선[자미로]과 만나...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각석. 도원리 천인대 각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새겼는지 구체적인 경위가 알려져 있지 않다.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산8에 있다. 봉양면에 있는 도리원교 옆 작은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약 150m 정도 지점 우측 바위에 있다. 강변 바위 절벽에 오른쪽에서 왼쪽, 가로 방향으로 ‘천인대(千仞坮)’라고 음각하였다. 전체 크기는...
-
1693년(숙종 20) 울릉도에서 안용복(安龍福), 박어둔(朴於屯) 두 사람이 일본 오야 가문의 어부들에 의해 일본에 납치되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를 ‘본국의 죽도(竹島)’라고 하면서 조선인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 이것이 ‘울릉도 쟁계(鬱陵島爭界)’[일본에서는 ‘죽도 일건(竹島一件’]라고 한다. 조선 정부에서 ‘울릉도 쟁계’ 해결을 위해 울릉도...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 근대 정자. 금파(錦坡) 박종량(朴宗良)[1804-1876]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반남 박씨 정자이다. 박종량은 1804년(순조 5) 월촌리에서 태어났으며, 휘는 종량(宗良)이고, 자는 성필(聖弼)이며, 금파(錦坡)는 호이다. 시조 박상충(朴尙衷)은 고려 말 학문과 절의로 세상에 알려져 세상이 ‘반남 선생(潘南先生)’이라고 일컬었으며 관직은 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 정자. 동변리 송고정(松皐亭)은 송고(松皐) 박윤함(朴允諴)[1510~1594]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반남 박씨 문중의 정자이다. 박윤함의 자는 사순(士純), 호는 송고(松皐)이다. 문정공 박상충의 현손으로서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 사사하여 학덕이 저명했으며, 그 기록이 성균관(成均館)에 보존되어 전하고 있다. 만년에 임진왜란이...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점곡 저수지 안골에 있는 장흥 마을의 동쪽으로 약 300m 되는 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고려 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깨진 탑의 기단석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다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탑을 옮기기 전까지는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마을 쪽으로 30m 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성헌(誠軒). 마근(馬謹)[1627~1700]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착실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극진하였다. 어머니의 병에 기러기가 특효라는 소리를 듣고 잡으려 했다. 하지만 활솜씨 서툰 그로서는 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병은 점점 깊어 가는데 기러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자 안타까운 마음에 땅을 두드리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음관(蔭官).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국강(菊岡). 임진왜란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녹훈된 마온종(馬溫宗)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마도진(馬道晉)[1764~1841]은 1764년(영조 40)에 출생하였으며, 1841년(헌종 7)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흥 마씨가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는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 출신이다. 1962년에 간행된...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의성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노부(魯夫), 호는 지곡(智谷),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치원(馬致遠)이고, 아버지는 태종 대 좌명공신에 녹훈되어 병조 판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장흥 부원군(長興 府院君) 마천목(馬天牧)이고, 어머니는 목사 이빈(李彬)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성여(誠如), 호는 모국(慕國). 고조할아버지는 이조 참의를 지낸 마중규(馬仲規)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 도승지를 지낸 마정도(馬呈圖)이다. 할아버지는 병조 참지를 지낸 마세준(馬世駿)이고, 아버지는 도사를 지낸 마생해(馬生海)이고, 어머니는 목사 김용(金鎔)의 딸인 영인(令人)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다. 부인은 정부인...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마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마전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마전리 901답에 있다. 의성 IC에서 지방도 92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10.5㎞ 정도 이동하면 마전리 유물 산포지에 이른다. 마전교 다리 동쪽 대바골 마을과 재골 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낮은 동서향의 구릉의 남쪽 사면에 유적이 있다. 마전리 유물 산포지가 있는 구릉의 서쪽...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군련(君戀), 호는 오천(梧川), 시호(諡號)는 충정(忠靖). 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치원(馬致遠)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영(馬榮)이며, 어머니는 대장군 신용재(申用材)의 딸 정경 부인(貞敬 夫人)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고, 부인은 목사 이...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는 봉수(烽燧)터 유적. 명고리 봉수터 유적은 의성군 단촌면 상화 1리와 점곡면 명고 1리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400m 봉우산 정상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가 방형(方形)인 석축으로 된 연대(烟臺)가 허물어진 상태로 잔존하며 주변에는 민묘(民墓)가 조성되어 있다. 현재 명고리 봉수터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파악되지 않으며 봉수의 연결 통로는 알 수...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는 연경묘(延慶墓) 수호 관련 봉표(封標). 명고리 연경묘 봉표 각석은 순조의 세자로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翼宗), 즉 효명 세자(孝明 世子)의 묘인 연경묘(延慶墓) 수호에 필요한 향탄 생산을 위해 목재를 보호할 목적으로 새긴 봉표(封標)이다. 한편 의성 지역에 전해지는 전설에는 세종의 아들 연경의 무덤을 위해 새긴 봉표라고 한다. 연경묘는...
-
조선 후기 의성 의 열녀. 본관은 남양(南陽). 문경공(文景公) 홍길문(洪吉文)의 8세손이다. 문경제 처 남양 홍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아들이 모두 피살되었다. 왜구의 마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힘없는 아녀자들을 겁탈하려 하였다. 살기 위해 욕됨을 감수할지, 아니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해야 할지 양단의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씨는...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통일 신라 시대 지명. 의성 지역에는 초기 국가 성립 시기에 조문국(召文國)이라는 소국이 존재하였다. 185년(벌휴왕 2)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여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고, 행정 구역을 개편한 757년(경덕왕 16)에는 조문군을 문소군(聞韶郡)이라 개칭하였다. 경덕왕 때 문소군은 진보현(眞寶縣)·비옥현(比屋縣)·안현현(安賢縣)·단밀현(丹密縣)을 속현으로 관할...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누각. 교남사대루(嶠南四大樓), 즉 영남 지방의 사대루로 불렸던 누각 중 하나이다. 교남사대루는 문소루와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안동의 영호루(映湖樓)를 말하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당리 문소루는 의성읍 원당리에서 철파리를 지나가는 국도 5호선과 지방도 914호선이 만나는 원당 삼거리에서 의...
-
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병조 판서를 지낸 여자신(呂自新)의 증손녀이자, 절도사를 지낸 여윤철(呂允哲)의 손녀이다. 문응주 처 함양 여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시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었다. 의지할 데 없는 아녀자들만 남게 되자 왜구들은 집안의 여인들을 욕보이려 덤벼들었다. 이에 시어머니인 남양 홍씨는 남편과 자식의 원수인 왜구에게 욕을 당하느니...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문익점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는 비. 문익점(文益漸)[1329~1398]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갔다가 고려로 귀국할 때 종자(從者) 김룡(金龍)을 시켜 목화 몇 송이를 딴 후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겨...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문흥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문흥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문흥리 361-1묘에 있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오른쪽 안동·의성 방면으로 6㎞ 정도 가면 문흥리 너들 마을이 있다.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 도로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소나무 주변으로 민묘가 형성되어 있고 그 가장자리와...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정숙(正叔), 호는 신재(愼齋). 증조할아버지는 여성군(驪城君) 민무질(閔無疾)이고, 할아버지는 민촉(閔矗)이고 아버지는 민흥(閔興)이다. 부인은 박경인(朴景仁)의 딸 함양 박씨(咸陽 朴氏)이다. 형은 민세경(閔世卿)이다. 민세정(閔世貞)[1471~1538]은 1471년(성조 2)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났다....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박곡리 고인돌은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900-7에 있다. 안평면사무소에서 안평 의성로를 따라 왼쪽으로 350m 정도 이동하면 삼거리에 위치한 안평 파출소 마당의 오른쪽, 안평면 자율 방범대 건물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박곡리 고인돌은 굄돌이 없는 개석식으로, 상석의 형태는 장방형이다. 상석의 크기는 장축 325㎝, 단축 2...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敬公) 박의중(朴宜中)이다. 박길상(朴吉祥)[?~?]은 성종 연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밀직사(密直使)를 지냈다. 밀양 박씨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 입향조로서 내두 마을과 외두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아들 성균 진사 박울(朴蔚)이 비안면으로 유배될 당시 함께 왔다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무관.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효숙(孝叔), 호는 옥간(玉澗).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박경신(朴景信)이고.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등(朴登)이고, 아버지는 우천(愚泉) 박장춘(朴長春)이고, 어머니는 정암(靖菴) 유습(柳隰)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박무선(朴茂先)[1547~1629]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인 박장춘의 명을 받...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겸(孝兼), 호는 두곡(杜谷)이다. 박사숙(朴嗣叔)[1556~?]은 1556년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에서 태어났다. 젊을 때부터 강개한 점이 남달랐다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거느리고 경주 의진에 참여하여 분투하였다. 용감한 전투를 치루고 적지 않은 공을 거두었으나 세력이 미약하여 성이 함락되자 적삼을 벗어 손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 자는 경서(景瑞). 호는 송파(松坡). 박대륜(朴大倫)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이 배출되었다. 박상천(朴祥天)[1768~1823]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성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9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하게 할 지경이었다. 그 후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데 정...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병산(屛山)[비안(比安)]. 호는 율정(栗亭), 시호는 문충(文忠). 고려 문화시중을 역임하고 벽상공신으로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던 박우(朴瑀)는 병산 박씨의 1세가 되는 중시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판도사 판서(版圖司 判書)를 지낸 박계오(朴繼五)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직장(直長) 박종주(朴宗柱)이고, 할아버지는 예부 낭중(禮部 郎中) 박윤보(...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금은(琴隱).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할아버지는 판윤부사(判尹部事) 박사직(朴斯直), 증조부는 전객령(典客令) 박원두(朴元㺶), 부인은 첨사(詹事) 정승계(鄭承桂)의 딸 정부인(貞夫人) 동래 정씨(東萊 鄭氏)로 알려져 있다. 박성양(朴成陽)[?~?]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하며,...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찬지(纘之), 호는 학천(鶴川). 강계 판관(江界 判官) 박충무(朴冲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직(司直) 박유부(朴有阜)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경신(朴景信)이며 어머니는 동래 정씨(東萊 鄭氏) 감찰 정기(鄭琦)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로 이세헌(李世憲)의 딸이다. 박승(朴承)[1520~1577]은 1526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모재(茅齋). 중랑장(中郞將) 박윤후(朴允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성양(朴成陽)이고, 아버지는 강계 판관(江界 判官) 박충무(朴沖武)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간(侃)의 딸이고 부인은 영천 최씨(永川 崔氏)이다. 박안부(朴安阜)[?~?]는 음직(蔭職)으로 출사하여 1465년(세조 11) 식년시(式年試)에...
-
의성 현령을 역임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상산(尙山)]. 초명은 안신(安信). 자는 백충(伯忠). 시호는 정숙(貞肅). 아버지는 박문로(朴文老), 할아버지는 박전(朴瑔),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정(朴元挺)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손자 박사춘(朴士春)이 1462년 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은거하면서, 이곳의 상주 박씨 입향조가 되었다고 한다. 박안신(朴安臣)[1369...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유배되어 정착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참의(參議) 박경문(朴景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밀직사(密直事) 박주(朴柱)이고, 아버지는 박길상(朴吉祥)이다. 박울(朴蔚)[?~1519]은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여, 이후 성균관에 들어 수학하였다. 그러던 중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발발하자, 사화에 관련된 유생으로 지목되어 경상도 비안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대경(大卿). 아버지는 강계 판관(江界 判官)을 역임한 박충무(朴沖武), 어머니는 권간(權侃)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숙부인 흥양 이씨(興陽 李氏), 할아버지는 정헌공(定憲公) 박성양(朴成陽), 증조할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부인은 이격(李格)의 딸 예안 이씨(禮安 李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경. 호는 효학(孝鶴). 박세장(朴世章)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이다. 박윤(朴閏)[1684~1753]은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후덕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수려하였다. 그러한 바탕 위에 안으로 엄한 가정 교육을 받고, 밖으로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바른 몸가짐으로 사물을 접하는데 있어 그 도리를 다했다. 어떤 사...
-
조선 전기 의성 사촌 지역으로 이주한 박남 박씨의 입향조.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순(士純), 호는 송고(松皐). 박병덕(朴秉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좌위 부사맹(忠佐衛 副司猛) 박자(朴礠)이고 아버지는 돈용교위 사용(敦勇校尉 司勇) 박서(朴瑞)이고, 어머니는 이현손(李賢孫)의 딸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고, 부인은 훈도(訓導) 김만경(金萬敬)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여장(汝章), 호는 만회헌(晩悔軒). 박광춘(朴光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혼천(朴混天)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종검(朴宗儉)이며, 어머니는 순천 장씨(順天 張氏)이고, 부인은 신지의(申之義)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박이장(朴以樟)[1624~1711]은 1646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장옥(章玉), 호는 화암(華庵). 할아버지는 박기영(朴基榮)이고, 아버지는 박기현(朴基賢)으로 박치준(朴致準)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황재단(黃載慱)의 딸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다. 박장문(朴璋文)[1812~1880]은 1855년(철종 6)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은거하였는데 강학과 학문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백(元伯), 호는 우천(愚泉). 사직(司直) 박유부(朴有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박경신(朴景信)이고, 아버지는 박등(朴登)이며, 어머니는 김원호(金員琥)의 딸 월성 김씨(月城 金氏)이고, 부인은 유습(柳隰)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박장춘(朴長春)[1523~1595]은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남달라 1559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필(聖弼), 호는 금파(錦坡). 박상삼(朴象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성현(朴成玹)이고, 아버지는 박경원(朴敬源)이고, 어머니는 신진환(申震煥)의 딸 아주 신씨(鵝州 申氏)이고, 부인은 김혁운(金赫運)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다. 박종량(朴宗良)[1804~1876]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의심스러운 부분의 뜻을...
-
고려 후기 함양 박씨의 의성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지량(朴之亮)[?~1292]은 1271년(원종 12) 수로방호사(水路防護使)가 되고, 1274년(충렬왕 즉위)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전하였다.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를 거쳐 키타큐슈(北九州)를 쳤으나 태풍을 만나 고려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1280년(충렬왕 6) 1...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중옥(仲玉), 호는 도오(陶塢), 초명은 시찬(時瓚). 생원(生員) 박윤화(朴允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기함(朴基咸)이고, 아버지는 박치도(朴致道)이고, 어머니는 이암(李馣)의 딸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고, 부인은 이준(李晙)의 딸 선성 이씨(宣城 李氏)이다. 박충원(朴忠源)[1735~1787]은 1742년에 아버지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여원(汝元), 호는 병애(屛崖). 율정 박서생(朴瑞生)의 7대손이다. 박충인(朴忠仁)[1565~1612]은 어려서 정랑(正郞) 김희(金喜)에게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비안 북쪽 화장굴(花藏窟)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병사(兵使) 이각(李珏)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출전하였다. 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순(子淳), 호는 죽포(竹圃). 참봉 박경복(朴景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춘수(朴椿樹)이고, 아버지는 박조원(朴調元)이고, 어머니는 부사직(副司直) 김원정(金元汀)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고, 부인은 전주 최씨(全州 崔氏)이다. 박태고(朴太古)[1557~1643]는 일찍이 효우(孝友)로서 이름이 높았다. 부모가...
-
조선 후기 의성 지역에 거주한 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응회(應會), 호는 소은(韶隱). 박서(朴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윤함(朴允諴)이고, 아버지는 박항(朴恒)이고, 어머니는 주부(主簿) 김광희(金光禧)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부인은 박색(朴穡)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박태형(朴泰亨)[1566~1618]은 일찍이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에서 수업...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여경(汝敬). 호는 모암(慕巖). 박진구(朴震龜)와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을 배출하였다. 박하륜(朴河倫)[1748~1788]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21세에 진성 이씨(眞城 李氏)와 혼인을 하였는데 부인 또한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깊었다. 그는 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비안(比安). 호는 북촌(北村).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절제사를 지낸 박충인(朴忠仁)의 아들이다. 박효순(朴孝純)[1603~1645]은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영변의 부원수 신경발(申景拔)의 예하에 배속되어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일선 지휘관으로 적과 육박전을 직접 치르며 『병난 일기(兵難 日記)』를 남겼다. 인조(仁祖)가 상(...
-
개항기 의성의 열녀. 배치용 처 순흥 안씨[?~?]는 태어난 집안이나 출가한 집안 모두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남달랐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와 지아비를 섬기는 데 있어 조금도 소홀함도 없었다.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모두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올발아 일가친척이며 이웃들이 한결 같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자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관료. 본관은 초계(草溪). 증조할아버지는 변원(卞源)이고, 할아버지는 변옥란(卞玉鸞)이고, 아버지는 춘당(春堂) 변중량(卞仲良)이다. 숙부는 변계량(卞季良)이다. 변구상(卞九祥)[?~?]은 세종 대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예를 지냈다. 여러 고을 교수로 부임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시(詩)를 잘 지었으나, 매우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시를 지었...
-
조선 전기 비안현[현 의성군 비안면]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계옥(季玉). 호는 병애(屛崖). 효행으로 이름이 높은 변용(卞勇)의 현손(玄孫)으로 알려져 있다. 변리(卞璃)[1506~1546]는 1506년(중종 1)에 출생하였으며, 1546년(명종 1) 8월 23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는 선산부(善山府)[현 경상북도 구미시]에 거주하였고, 이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변리(卞璃)이다. 초계 변씨 집안에는 대대로 효자가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국천 효자라고 불리는 변용(卞勇)으로 변세린은 그의 6세손이다. 변세린(卞世麟)[1562~1612]은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깊은 병에 들어 11년이나 누워서 지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은 마음...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민부(敏夫). 호는 화암(華岩). 변구상(卞九祥)의 손자이고, 예안 감무를 지낸 변옹(卞雍)의 고손자이다. 의성의 초계 변씨 집안에서는 변세린(卞世麟), 변기동(卞箕動) 등 효자와 저명 인물들이 대를 이어 나왔다. 변용(卞勇)[1443~1488]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몸소 흙을 져다 날라 봉분...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이(大而), 호는 농눌(聾訥). 첨정(僉正) 변득인(卞得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영(卞瑩)이고, 아버지는 변삼오(卞三迕)이고, 어머니는 호군(護軍) 오준신(吳俊臣)의 딸 울산 오씨(蔚山 吳氏)이고. 부인은 윤역(尹墿)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다. 변태화(卞泰和)[1682~1761]는 가학으로 글 읽기를 시...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병방리 고분 떼는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위치한다. 고분 떼는 병방 마을 북쪽 뒷산에서 시작해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성재[395.8m]를 향해 길게 뻗은 구릉에 축조되었다. 병방리 고분 떼 북쪽에는 미천(眉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미천 주위에는 후평들(後坪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후평들 건너 능선에는...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있는 산성 유적. 병방리 산성터 유적은 해발 365.8m의 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의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돌로 성벽을 쌓았다. 병방리 산성터 유적의 변천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 기록은 1832년경에 발간된 『경상도읍지(...
-
1636년(인조 14)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의병이 일어난 전쟁.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는 16세기 말까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1623년(인조1) 반정 이후 집권한 인조와 서인 정권이 이전의 광해군과 달리 향명배금(向明排金) 정책을 내세우게 되면서 후금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결국 조선은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의성군의 봉수와 관련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의성군 관내 봉수 유적들은 『경상도지리지』의 의성현(義城縣)을 비롯하여 비안현(比安縣), 안정현(安貞縣), 다인현(多仁縣) 조에 나타나 있다. 의성현조에는 “영니산 봉화는 현의 남쪽 20리 정도에 있...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봉양리 고분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650-3임 일대에 있다. 안계면사무소에서 안계길을 따라 토매 삼거리 방향으로 700m 정도 가면 안계 석물 공장이 나온다. 안계 석물 공장 옆으로 난 도로[봉양길]를 따라 2.4㎞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동쪽 방향[개천지길]으로 200m 정도 가면 오른쪽...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봉양리 산성터 유적에 포함된 높이 221.8m의 산봉우리에 해당한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봉성산 혹은 봉화산이라고도 부르며, 봉양리 산성터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갯길을 봉우재 또는 봉화재라 부른다.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 시대 여...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근대 이후 비석 떼. 봉양리 비석 떼는 모두 개천지[개천 저수지]와 관련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최고 최대의 수리 시설을 축조 보수한 것을 기념하여 수령의 공덕을 영세에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특히 개천제 중축 기념비는 중축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서 의미가 크다. 4기의 비석이 가지런히 서 있는 개천제는 순조 때 비안 현감 현인복과 고종...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산성 유적. 봉양리 산성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하고개 마을 동쪽에 있는 높이 229.5m의 대암산과 그 북쪽으로 연결된 높이 207m의 봉우리를 감싸며 남북으로 길게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암산을 봉성산 혹은 봉화산이라고도 부르며, 산성을 동서로 관통하는 고갯길을 봉우재 또는 봉화재라 부른다...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 놓은 바위. 성혈암은 바위에 구멍을 낸 것으로, 바위에 그림을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유적이다. 생성 연대 역시 바위그림이나 고인돌 축조 시기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양리 성혈암 1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에 있다. 안계면사무소에서 남동쪽 안계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토...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성혈을 새겨놓은 바위. 봉양리 성혈암 2은 안계면사무소에서 안계길을 따라 토매 삼거리 방향으로 700m 정도 가면 안계 석물 공장이 나온다. 안계 석물 공장 옆으로 난 봉양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위양 1리에 위치한 자오사가 있다. 봉양리 성혈암 2는 자오사의 요사(寮舍) 배수로 암반 위에 자리하고 있다. 봉양리 성혈암 2은 5개의 성혈(性穴...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 유물 산포지. 봉양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252-2답에 있다. 의성 IC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28호선을 따라 18.5㎞ 이동하면 안계면소재지에 이르고,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5㎞ 가면 봉양 1리 석정 마을이 있는데, 그 북쪽 논과 논둑에 유물 산포지가 있다. 유적의 서쪽 지역에는 위천이 낙동강 쪽으로...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부곡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이른바 향·부곡 등의 잡소(雜所)는 모두 갖추어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내용으로, 삼국 시대부터 부곡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특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였던 부곡은 고려 중기 이후 그 성격이 변질되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면서 거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입적 승려를 추모하여 고승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탑 또는 유골을 안치한 승려의 묘탑. 부도는 고승이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조성된 묘탑(墓塔) 형태의 조형물로 고승의 무덤이라 하여 승탑이라고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부도는 대부분 석재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석조 부도라 하며, 그...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불교적 신념을 담은 그림. 의성 지역의 현존하는 불화는 8점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정수사에 봉안된 후불탱화로 「정수사 영산회상도」와 「정수사 지장시왕도」, 그리고 「의성 수정사 신중 탱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고운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고운사 칠성 탱화」와 「고운사 후불탱화」,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지장사에 봉안된 「지장사 후불탱화」와...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사적(史蹟)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놓은 것. 비(碑)는 기록한 재질에 따라 목비(木碑)·석비(石碑)·철비(鐵碑)로 구분되나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돌에 새긴 석비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는 대부분 기념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조상과 같은 특정 인물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
757년부터 1421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비옥현은 원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으로, 혹은 병옥(幷屋)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경덕왕 때 아화옥현을 비옥현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고 한다. 경덕왕은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한화(漢化) 정책을 펼치며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757년 9주(州)·...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각석. 빙계리 빙계동 각석은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의 글씨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글씨라고도 전해지나, 명확한 건립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4-3에 자리하고 있다. 빙계동 마을 건너편에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그 아래로 계곡을...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각석. 빙계리 풍혈 각석이 있는 빙계 계곡은 경북 8승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곳을 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얼음 구멍[빙계동 각석]과 바람 구멍[풍혈 각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석 경위와 시기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129-9[빙계리 산70]에 자리하고 있다. 빙계 계곡 안 풍혈 근처의 산자락 바위 면...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사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사미리 고인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사미리 744-1에 있다. 춘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6㎞ 정도 이동하면 사미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79호선을 따라 1㎞ 정도 북쪽으로 이동하면 사미 마을이 있다. 사미리 고인돌은 사미 마을의 동쪽 도로와 접한 얕은 구릉의 가장자리에 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사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사미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사미신감로 121[사미리 746전]에 있다. 계곡을 따라 남북으로 조성된 가음면 면소재지에서 사곡면 오상리로 가는 지방도 68호선[사미신감로]를 따라 4.2㎞ 정도 가면 사미 마을에 이른다. 마을 회관 북서쪽의 북서-남동향 구릉의 동쪽 자락 개간된 밭 일대가 사미리 유물 산포...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사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선돌. 사부리 선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사부리 509-2답에 있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오른쪽 안동·의성 방면으로 900m 정도 가면 온천 삼거리가 나온다. 온천 삼거리에서 왼쪽 안평·신평 방면으로 80m 이동하여 다시 오른쪽으로 1.7㎞ 정도 가면 왼쪽으로 고물상이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사부 2리...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가로숲은 일명 서림(西林)이라고 한다. 사촌 마을 서편 들판을 가로질러 조성된 약 1,000m 길이의 방풍림인 사촌 가로숲은 김자첨이 14세기 말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 비보 사상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숲은 1999년 천연기념물 405호로 지정되었다. 사촌 가로숲은 사촌 마을 서쪽에 조성한 숲이다. 사촌 마을은 안동 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사촌 마을의 입향조 김자첨은 고려 때 충신 충렬공 김방경을 중시조로 한 안동 김씨[도평의공파]이다. 그 후 혼인 관계로 안동의 권식[1450년], 풍산의 유태춘[1758년]이 이주하면서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유씨 등이 어울려 사는 집성촌이 되었다. ‘사촌’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서 지었다 한다. 사...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사촌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사촌 마을의 입향조는 김자첨이며, 고려 때의 충신인 충렬공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의 인물이다. 이후 혼인 등을 통해 사촌 마을에 권식[1450년], 유태춘[1758년]이 이주해 오면서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유씨 등이 어울려 사는 집성촌이 되었다. ‘사촌’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사진촌(沙眞...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사촌 마을에 있는 가옥. 사촌 마을의 입향조인 김자첨은 고려 때의 충신인 충렬공 김방경의 6세손으로, 1392년 안동 회곡에서 사촌 마을로 이주 정착하였다고 한다. 사촌 마을의 안동 김씨는 그 후로도 안동 지방의 명문가와 혼인을 맺으며 입지를 다졌다. 서애 유성룡도 외가인 이곳 사촌리 안동 김씨 종택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사촌 마을은 조선 시대에 대...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의성 지역의 산성과 관련한 내용이 실린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 사료는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의성현(義城縣)조에 금산석성(金山石城)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금산석성은 의성현의 남쪽 15리에 있는데 둘레 1,516보로 높고 험준하며 성내의 네 곳에 샘이 있다. 그리고 군창이 있는데 군위...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에 있는 산성 유적. 화장산성은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의 내용에 보이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왜장(倭將)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비안현을 점령했지만, 천연의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이 화장산성은 끝내 점령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비안현의 각종 문서들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의 붙여졌...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삼산리에 있는 봉수터. 삼산리 백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 봉수 체계인 직봉(直烽)과 간봉(間烽)의 노선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문헌 기록에도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삼산리 백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삼산리 산99에 자리하며, 삼산 1리 웃고산 마을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간 해...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삼산리에 있는 산성 유적. 삼산리 산성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삼산 2리 오산 마을 동쪽에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된 토석 혼축의 테뫼식 산성이다. 남북으로 길게 땅콩 모양의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 일부만 석축 성벽을 축조하였는데 현존하는 높이는 약 1m 정도이다. 나머지 북쪽과 서쪽 일부는 석축하지 않고 삭토하여...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봉수터 유적. 상화리 계란산 봉수터 유적은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의 봉우산에 자리하고 있다. 계란산 봉수는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을 통해 직봉(直烽)의 노선에 포함됨을 알 수 있으며, 남쪽의 의성읍 고성산의 봉화를 받아 북쪽의 단촌면 관덕리 마산 봉수로 전달하였다. 현재 지름 25m 정도에 둘레가 100m가량 되는 외부 담장 석축이 확인되며, 봉...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유적.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축성 방법과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 邑誌)』의 의성현지(義城縣誌)에 계란산 봉수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계란산 봉수는 현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북쪽의 마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신지(申之), 호는 귀정재(歸靜齋). 할아버지는 서벽(徐璧)이고, 아버지는 서극제(徐克悌)이고, 어머니는 봉사(奉事) 박몽형(朴夢珩)의 딸 함양 박씨(咸陽朴氏)이고, 부인은 참판(參判) 손방(孫昉)의 딸 월성 손씨(月城 孫氏)이다. 서영희(徐永禧)[1584~1655]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외가가 있는 의성군 가음으로 이거...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사족의 교육·교화 기구인 동시에 대표적인 향촌 자치 기구의 하나이다. 특히 17세기 이후 경재소(京在所)가 혁파되고 그 중반 이후에는 유향소·향교의 질적 변화가 수반되면서 서원은 향촌 사림의 중심 기구로 부상하여 조선 사회에서 정치·사회·교육·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행사하였다. 현재...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도구를 만든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앞선 시기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온 시대이다.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 혹은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석기 제작의 기술은 세계 각지에 존재하며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거석 기념물. 선돌[立石]은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거석 문화이다. 선돌은 대개 단독으로 세워진 것이 많지만 유럽의 경우, 열을 지어 있거나, 원형으로 배치한 것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연석을 수직으로 땅에 세워 놓은 형태가 많다. 선돌은 크게 세 가지의 기능으로 구분된다. 첫째, 무덤의 표시, 즉...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의 역사. 선사 시대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던 시대를 말한다. 인간이 처음 출현한 때로부터 글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기까지로 이 기간은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95% 이상을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선사 시대를 몇 개의 시대로 구분하는데,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철기 시대 등이 여기에 속...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성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떼. 성암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성암리 1309답에 있다. 단북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정안리 방향으로 2㎞ 정도 가면 정안 삼거리가 나온다. 정안 삼거리에서 단북면사무소 방향으로 이동하여 면사무소 앞에서 지방도 923호 도로를 따라 다인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단북면 성암 1리 칠성 마을에 이른다. 마을 앞 소...
-
고려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소(所)는 수공업·광업·수산업 부문의 공물(貢物)을 생산하는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소의 주민은 전문적인 물품 생산에 종사하는 공장(工匠)으로 신분적으로는 천민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한편으로는 일반 촌락 가운데 자연적·사회적 입지 조건에 따라 특정 물품의 생산에 유리한 촌락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
조선 후기 의성군 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비안. 부사직(副司直) 손승렬(孫承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절이고, 아버지는 손경지(孫景智)이다. 손윤업(孫胤業)[1568~?]은 어린 시절 가학을 전수받고, 고응경(高應擎)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161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2년(광해군 14) 상주 지역 유림들과 도의를 나누며 사귀었다. 1633년 정경세(鄭經世)가 별...
-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문호(文虎), 호는 추하(秋河). 부인은 능주 구씨(綾州 具氏)이다. 손정표(孫廷彪)[1849~?]는 지금의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 일대에 거주하였는데, 어려서 천성이 총명하였고 성장함에 문장이 훌륭했다고 한다. 고종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역임하였다. 스스로 호를 추하(秋河)라 정하였으며, 고향 신흥리에서 친우들과 학문...
-
조선 후기 단밀현[현 의성군 단북면]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병산(屛山)], 자는 창숙(昌叔), 호는 만와(晩窩)이다. 아버지는 손익진(孫翼振), 어머니는 이창국(李昌國)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 할아버지는 손치(孫緻), 증조할아버지는 손명삼(孫命三), 부인은 김우빈(金禹彬)의 딸 숙인(淑人)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알려져 있다. 손흥조(孫興祖)[1765~1832...
-
조선 후기 경상도 비안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복(福). 손경원(孫敬源)의 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회령 판관(會寧 判官)을 지낸 손근(孫瑾)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손의형(孫義亨)이고,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손전(孫荃)이고, 어머니는 우성윤(禹成允)의 딸 숙부인(淑夫人) 단양 우씨(丹陽 禹氏)이고, 처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송내리 가마터에서 채집되는 와편과 가마 구조의 잔해로 보아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와요지(瓦窯址)]로 추정된다. 송내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의 문헌 자료에도 관련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송내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555, 561, 562,...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송내리 고분 떼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산95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안동 방향으로 8.5㎞ 가량 가면 단촌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포장도로를 따라 점곡면을 향해 6㎞ 가량 가다보면 송내 마을에 이르게 된다. 고분 떼는 송내 마을 서북쪽에 있는 높이 100m 미만의...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송내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산97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경상북도 안동시 방향으로 8.5㎞ 가면 단촌면 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동쪽 점곡면 방향으로 포장 도로를 따라 6㎞ 이동하면 점곡면 송내리의 송내 마을에 이른다. 송내리 유물 산포지는 송내 마을 서쪽 구릉 하단부의 밭...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지언(知彦), 호는 원재(元齋). 아버지는 신준(申埈), 어머니는 손지효(孫至孝)의 딸 경주 손씨(慶州 孫氏)이고, 할아버지는 신흠도(申欽道), 증조할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신한(申僩)이다. 처는 장원준(蔣元浚)의 딸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다. 신내석(申乃錫)[1691~1742]은 1691년(숙종 17) 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형보(亨甫), 호는 만오(晩悟). 신준정(申俊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신수(申壽)이고, 아버지는 신흘(申仡)이며, 어머니는 박윤(朴倫)의 딸 순천 박씨(順天 朴氏)이고, 부인은 이난수(李鸞壽)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신달도[1576~?]는 어려서 족형(族兄) 신홍도(申弘道)에게 학문을 배우고, 16세...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신리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신리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신리리 산83에 있다. 사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12호선[의성사곡로]을 따라 북서쪽 중리 방향으로 3.5㎞ 이동하면 오상 삼거리가 나온다. 오상 삼거리에서 왼쪽 금성·춘산 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79호선[사미신감로]을 따라 2.8㎞ 정도 가면 도로의 오른쪽으로 신리리가 나온다...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신리리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신리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신리리 산78에 있다. 의성읍에서 동남쪽으로 지방도 912호선을 타고 8.2㎞ 이동한 후 다시 국도 79호선을 따라서 남쪽으로 4㎞ 정도 가면 신리 마을에 이른다. 유물 산포지는 비봉산[672m] 동북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신리 마을에서 신리교를 건너 마주보이는 북동-남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초명은 봉조(鳳朝), 자는 성지(成之), 호는 시남(示南)이다. 아버지는은 통덕랑(通德郞) 신홍교(申弘敎), 어머니는 풍창군(豊昌君) 류유(柳濡)의 딸인 공인(恭人) 풍산 류씨(豊山 柳氏), 조부는 통덕랑 신황(申煌), 증조부는 신중모(申重模), 처는 성언병(成彦秉)의 딸 숙부인(淑夫人) 창녕 성씨(昌寧 成氏), 후처는 이제동(李...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치명(穉鳴), 호는 우은(愚隱)이다. 아버지는 신필교(申必敎), 어머니는 류경원(柳景源)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 할아버지는 신광헌(申光憲), 증조할아버지는 신정표(申正標), 부인은 권정모(權正模)의 딸 숙인(淑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 후처는 조석교(曺錫敎)의 딸 숙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알려져 있다. 신면횡...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이 고령(高靈). 교리(校理)를 지낸 신호(申濩)의 손자이다. 신복성(申福成)[1568~1628]은 서울에 거주하다 도호(道湖) 마을, 현재 의성군 단밀면 용곡 1리로 옮겨와 살았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었으며, 자라서는 그 마음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그리고 형제들과의 우애 또한 두터웠다. 161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단북(丹北)의 월봉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석형(錫亨). 호는 자족재(自足齋).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신견(申堅), 어머니는 신효성(申孝誠)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할아버지는 신사도(申師道),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역임한 신심(申伈), 부인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경(金鏡)의 딸 의인(宜人)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극첨(極瞻), 호는 수은(洙隱). 신덕주(申德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극모(申極模)이고, 아버지는 신광병(申光炳)이며, 어머니는 성주 도씨(星州 都氏)로 도이윤(都以潤)의 딸이고, 부인은 의흥 박씨(義興 朴氏)로 박신조(朴信祖)의 딸이다. 신상교(申尙敎)[1812~1872]는 1836년(헌종 2) 별시(別試) 무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언유(彦由).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이고, 할아버지는 증 호조 참의(贈 戶曹 參議) 신원록(申元祿)이고,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지낸 신심(申伈)이고, 어머니는 사맹(司猛)을 지낸 장륜(蔣崙)의 딸 의인(宜人)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고, 부인은 이시경(李時慶)의 딸 성산 이씨(星山 李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희지(喜之), 호는 흥계(興溪).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신준정(申俊禎)이고,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 참의(贈 戶曹 參議) 신원록(申元祿)이고, 어머니는 이병절(李秉節)의 딸 증 숙부인(贈 淑夫人) 벽진 이씨(碧珍 李氏)이고, 부인은 사맹(司猛)을 지낸 장륜(蔣崙...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신안리의 조선 시대 가마터. 의성군 안평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금당천을 따라 하류로 3.5㎞ 내려가면 도옥교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2㎞ 정도 가면 신안2리 지붕골 새터 마을이 있다. 새터 마을 남동쪽의 골짜기 상에 신안리 가마터가 위치한다. 봉양면과 경계를 이루는 높이 263m 산의 북쪽으로 뻗은 구릉 동쪽 경사면 좁은 골짜기인 점골에는 점곡 저수지를 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진보(晉甫), 호는 나재(懶齋). 신준정(申俊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수(申壽)이며 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어버니는 순천 박씨(順天 朴氏)로 박윤(朴倫)의 딸이며, 부인은 문소 김씨(聞韶 金氏)로 김굉(金浤)의 딸이다. 신열도(申悅道)[1589~1659]는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6년(선조...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이며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호는 퇴재(退齋). 아버지는 신윤유(申允濡)로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부인은 약목 유씨(若木 柳氏)이다. 신우(申祐)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혜왕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봉상(奉常)·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을 거쳐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일설에는 전라도 안렴사(全羅道 安廉使)에 이르렀다고도 한...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계수(季綏)·순보(順甫). 호는 회당(悔堂). 퇴재(退齋) 신우(申祐)의 6세손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은 신석록(申錫祿)과 신택록(申宅祿)이며, 동생은 신도수(申道洙)와 신헌록(申憲祿)이다. 신원록(申元祿)[1516~1576]은 효성과 학문이 모두 뛰어났다. 11세가 되던...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중수(仲綏). 호는 정은(靜隱). 아버지는 참봉을 역임한 신수(申壽), 어머니는 주부(主簿)를 역임한 박자검(朴自儉)의 딸 의흥 박씨(義興 朴氏), 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역임한 신준정(申俊禎), 증조할이버지는 의성 입향조로 알려진 생원(生員) 신석명(申錫命), 부인은 생원 이숭년(李崇年)의 딸 흥양 이씨(興陽 李...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첫 이름은 신원유(申元濡)이다. 부인은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아주 신씨(鵝洲 申氏) 의성 입향조이다. 신윤유(申允濡)는 생몰년 미상이며,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냈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그의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의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당개(唐介)에 버금간다 하...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월(寧越). 초명은 일화(一和). 자는 화숙(和叔). 호는 구암(龜巖). 아버지는 신명담(辛命聃), 어머니는 권영의 딸 예천 권씨(醴泉 權氏)와 이덕승(李德升)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 할아버지는 신동도(辛東道), 증조할아버지는 신필감(辛必甘), 부인은 장달룡(張達龍)의 딸 순천 장씨(順天 張氏)로 알려져 있다. 신일화(辛日和)[1760...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초명은 희필(希弼), 호는 돈암(遯巖). 신춘(辛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 參議) 신세조(辛世祖)이며, 아버지는 원종공신(原從功臣) 신한수(辛漢壽)이고,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 鄭氏)로 정홍준(鄭洪峻)의 딸이며, 부인은 광산 김씨(光山 金氏)로 김인태(金仁泰)의 딸이다. 신재호(辛在浩)[1514~?]는 15...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관료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호는 호계(虎溪). 아주 신씨 의성읍 파조(派祖) 신광부(申光富)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원록(申元祿)이고, 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동생은 신달도, 신열도이다. 신적도(申適道)[1574~1663]는 청년기에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에게 배웠다. 학문과 효행이 뛰어 났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신채(申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대석(申大錫)이고, 아버지는 신덕일(申德溢)이며, 어머니는 이성구(李星耈)의 딸 예안 이씨(禮安 李氏)이고, 부인은 안이순(安履順)의 딸 순흥 안씨(順興 安氏)이다. 숙부인 신덕순(申德洵)에게 출계하였다. 신정모(申正模)[1691~1742]는 어려서는...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경백(景伯), 호는 도와(陶窩). 신성구(申聖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도발(申道潑)이고, 아버지는 신종인(申種仁)이며, 어머니는 선산 김씨(善山 金氏) 김기대의 딸이고,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 김원묵(金元黙)의 딸이다. 신정주(申鼎周)[1764~1827]는 3~4세에 글을 해독하기 시작해 7~8세에 『통감(通鑑)...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관료.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순부(順夫), 호는 오봉(梧峰). 고려 충신 효자 신우의 후예이고, 구미파조(龜尾派祖) 신광귀(申光貴)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고, 부인은 함안 조씨(咸安 趙氏)이다. 아들은 신홍망(申弘望)이고, 형제로는 신지효(申之孝), 신지신(申之信), 신지의(申之義), 신지행(申之行), 신지경(申之敬), 신지훈(申之訓)...
-
조선 후기 의성 지역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달부(達夫). 호는 응암(鷹巖). 아버지는 증 좌승지(贈 左承旨) 신몽득(申夢得), 어머니는 증 공조 참의(工曹 參議) 박민수(朴敏樹)의 딸인 증 숙부인(贈 淑夫人) 월성 박씨(月城 朴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역임한 신응규(申應奎), 증조할아버지는 부장(部將)을 역임한 신한(申翰), 부인은 습독(習讀)을 역임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경(子卿), 호는 인재(忍齋). 참의(參議) 신원록(申元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신적도(申適道)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 첨정(僉正) 윤순조(尹淳祖)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 권익창(權益昌)의 딸이다. 신채(申埰)[1610~1672]는 어린 시절부터 총...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장(子長), 호는 회병(晦屛). 신숙범(申叔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분구(申賁龜), 아버지는 신도만(申道萬)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민행(金敏行)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 柳氏) 유후원(柳後元)의 딸이다. 신체인(申體仁)[1731~1812]은 3~4세 때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면 말도...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신하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유물 산포지. 의성 IC에서 국도 28호선을 따라 서북쪽으로 약 21㎞ 가면 단북면 면소재지에 이른다. 면 소재지에서 다시 지방도 923호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4㎞ 정도 가면 안계 평야의 위천 하류에 위치한 신하 2리 하제 마을에 이른다. 높이 115m의 북동-남서향 구릉 서쪽에 하제 마을이 있고 구릉과 마을 남쪽에는 위천이 사행하...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대중(大中), 호는 정봉(鼎峰). 신수(申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원복(申元福)이고, 아버지는 신엄(申儼)이며,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선산 김씨(善山 金氏) 김윤덕(金潤德)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 김씨(安東 金氏) 김응용(金應鏞)의 딸이다. 신홍도(申弘道)[1558~1612]는 6세에 『대학』, 9세에 『논어』를 읽...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字)는 망구(望久), 호는 고송(孤松). 신응규(申應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며, 아버지는 승지 신지제(申之悌)이고, 어머니는 함안 조씨(咸安 趙氏)로, 조지(趙址)의 딸이며,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 李氏) 이민환(李民寏)의 딸이다. 신홍망(申弘望)[1600~1673]은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급제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구지(懼之), 호는 성은(城隱). 아버지는 신원록(申元祿)이며, 의성(義城) 사람이다. 신흘(申仡)[1550~1614]은 아버지가 사망하자 삼년상을 마친 후 묘소 아래 집을 지어 ‘영모(永慕)’라는 편액을 달고 애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영가 교수(永嘉敎授)를 지냈다. 전쟁이 일어나자 형인 신심(申伈)을 도와 창...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일대에 설치된 신라 시대의 소경. 신라의 소경제(小京制)는 고구려의 3경제(三京制)의 설치와 운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직접적인 설치 계기는 6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체제 정비와 수도의 도시 계획 일환이었다. 지증왕(智證王)[재위 500~514] 대에 지방 행정 조직인 주와 군제가 실시되고, 중앙과 변경 지역에 이르는 관도와 우역이 정비됨...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안정리 고분 떼는 안계면 안정리 대지 마을 북동쪽 해발 100m 내외의 능선 상에 위치한다. 이곳은 마을 동쪽에 위치한 해망산(海望山)의 서쪽 자락으로 마을 주위에 작은 골짜기와 구릉이 있는 다소 산간 오지에 고분 떼가 자리 잡고 있다. 안계면 안정리 고분 떼는 정식 발굴된 적은 없다.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
고려 초에서 1421년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안정현은 원래 신라의 아시혜현(阿尸兮縣)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경덕왕 때 아시혜현을 안현현(安賢縣)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사』 지리지 안정현(安定縣)조에 따르면 고려 초에 안현현을 안정현으로 변경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서의 ‘고려 초’는 대체로 940...
-
757년부터 고려 초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안현현(安賢縣)은 원래 신라의 아시혜현(阿尸兮縣)이었다. 아시혜현은 아을혜(阿乙兮)라고도 불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경덕왕 때 아시혜현을 안현현으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다고 한다. 안현현의 명칭 변경은 757년에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고유 지명과 관직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치는 과정...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석. 양지리 몽선대 각석은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새겼는지 건립 경위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양지리 몽선대 각석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 산10에 있다. 주월사의 삼성각 뒤편 계곡의 자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주월사 삼성각 바로 뒤편 바위에 ‘몽선대(夢仙臺)’, ‘월영 폭포(月暎 瀑㳍)’, ‘취...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각석. 양지리 월영 폭포 각석은 각석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시대 사족들이 월영 폭포 인근에서 풍류를 즐기며, 경관을 기념하기 위해 새건 것으로 추정된다. 양지리 월영 폭포 각석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 산10에 있으며, 각석은 고운사의 말사인 주월사와 인접해 있다. 주월사의 전각인 삼성전(三聖殿) 뒤편으로 계곡이 있으...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위치한 조선 시대 각석. 양지리 취하암 각석의 조성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시대 사족들이 인근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경광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듯하다. 인접한 ‘몽선대(夢仙臺)’와 ‘월영 폭포(月暎瀑㳍)’ 각석의 조성 시기 및 경위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양지리 취하암 각석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 산10에 있다. 인근에 고운사의 말...
-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의성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여 청동기 시대에 삼한의 소국이 이곳에 성립되었다. 삼한의 소국 가운데 난미리미동국(難彌離彌凍國)[단밀면]·여담국(如湛國)[금성면 탑리리], 조문국[금성면] 등이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다고 비정되고 있다. 185년(신라 벌휴이사금 2)에 조문국을 정벌한 신라는 조문군(召文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삼...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삼국 시대~조선 시대에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 역관(驛館)이라고도 한다. 원(元)의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을 받아 참이 설치됨으로써 역참(驛站)으로 통용되었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전통 사회에서 여자는 주체적인 존재라기보다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따라서 결혼한 여인은 남편을 보필하고 집안을 건사하는 것을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고, 이를 위해 여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았다. 남편이 위급한 때는 단지수혈(斷指輸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영귀정(詠歸亭)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광수(金光粹)[1468~1563]가 세운 정자이다. 김광수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이며, 유성룡(柳成龍)의 외조부이다. 1501년(연산군 7) 32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혼란한 정국을 뒤로하고 낙향하여 영귀모암(詠歸茅菴)을...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영니산 봉수는 조선 시대 봉수 체계인 직봉(直烽) 노선 즉 의흥현 승목산 → 의성현 영니산 → 의성현 마산 → 안동 일직현 감곡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봉수 중 하나이다. 영니산 봉수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 조선 전기 각종 지리서에서 의성현에 있는 주요 봉수로 기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도이(道以), 초명(初名)은 정방(定邦). 증조할아버지는 장사랑(將士郞) 오충주(吳忠柱)이고,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오유신(吳有信)이고, 아버지는 오경운(吳慶雲)이고, 어머니는 훈도(訓導)를 지낸 유경량(柳景亮)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고, 부인은 충순위(忠順衛) 이덕창(李德昌)의 딸 성주 이씨(星州 李氏)이다...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금산(錦山). 고려 말의 충신으로 해주 오씨 의성 입향조이다. 오국화(吳國華)는 생몰년 미상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예의 전서(禮義 典書) 등을 거쳤다. 1392년(공양왕 4) 경상도 안렴사(慶尙道 安廉使)가 되어 의성 지역을 순시하였는데, 그때 마침 정몽주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선죽교(善竹橋...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오류리에 있는 신라 시대 유물 산포지. 오류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오류리 산42-1에 있다. 옥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30호선을 따라 동남쪽 금봉 자연 휴양림 방향으로 8㎞ 정도 가면 옥전 초등학교 오류 분교장에 이른다. 오류 분교장에서 다시 남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무덤실 거리 또는 무덤실골 입구의 산자락에 오류리 유물 산포지가 위치한...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아주 신씨 오봉공파의 종택 건물. 오봉 종택(梧峰宗宅)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신지제(申之梯)[1562~1624]를 파조로 삼고 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 오봉공파(梧峰公派)의 종택이다. 살림집인 오봉 종택, 서당인 낙선당(樂善堂), 사당인 오봉 사당(梧峰祠堂)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1987년 5월 13...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인(伯仁), 호는 금사(錦沙).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 경상도 안렴사를 역임하고 왕조 교체기 경상도 의성현에 은거한 오국화(吳國華)이고, 할아버지는 오진(吳進)이고,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오찰(吳札)이고, 부인은 아산 장씨(牙山 蔣氏)이다. 오영년(吳永年)[1471~1520]은 1489년(성종 20)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일순(吳一淳)이고, 할아버지는 오득심(吳得心)으로 임진왜란 중 군기 장리(軍器 掌吏)로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여, 삭령진(朔寧陣)에서 전사하였다. 동생으로 오찰립(吳札立)이 있다. 오자립(吳自立)[?~1637]은 경상도 의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오일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636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고려징사(高麗徵士) 오국화(吳國華)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충지(吳忠智)이고, 어머니는 진산 강씨(晉山 姜氏)이고, 부인은 이상지(李祥之)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오천송(吳千松)[?~1639]은 경상도 의성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인 오충지가 사망하자 묘소를 구봉산 넘어 어의곡(於...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숙(子淑). 아버지는 오필달(吳必達)이다. 해주 오씨는 오철조의 6대조인 오국화(吳國華) 때부터 의성에 거주하였다. 오철조(吳哲祖)[1645~1717]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이 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첫돌 때 세상을 떠나 철모르고 상복을 입은 것을 죽는 날까지 마음의 응...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옥연리 고분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 1리 사천 마을 남쪽 120m 지점에 있는 완만한 구릉 상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북쪽에는 위천(渭川)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휘감아 흐르고, 위천 안쪽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고분군의 남쪽에는 높이 137.8m의 야산이 솟아있는 배산 임수 지형을 보여준다. 옥연리 고...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옥연리 고인돌 떼 1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 산80에 있다. 비안면사무소 앞 강변길을 따라 구미·소보 방면으로 500m 이동하면 면 소재지 앞에 위치한 위천을 가로지르는 이두교가 나온다. 이두교를 건너 500m 정도 이동하면 오른쪽으로 연결된 길[만세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1.3㎞ 정도 이동하면 옥연 2리...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옥연리 고인돌 떼 2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 산131에 있다. 비안면사무소 앞 강변길을 따라 구미·소보 방면으로 500m 이동하면 면 소재지 앞에 위치한 위천을 가로지르는 이두교가 나온다. 이두교를 건너 1.26㎞ 정도 가면 쌍계리·도암리 방면과 구미·소보 방면으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구미·소보 방면으로...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에 있는 신라 시대 유물 산포지. 옥연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 84임에 있다. 의성군봉양면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28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8.3㎞ 이동한 지점에서 위천 남쪽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나 있는 소로로 진입하여 1㎞ 정도 가면 비안면 옥연리 아침잣골 마을이 나온다. 마을 남쪽에 높이 70m의 완만한 구릉이 있는데 그 말단부...
-
929년(태조 12) 후백제 견훤의 의성 지역 공격이 있었다. 장군 홍술이 있는 의성은 결국 패배하고 홍술은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왕건은 애통한 심정으로 ‘나의 좌우수(左右手)를 잃었다’고 하였다. 후에 홍술은 의성의 성황신으로 모셔졌으며, 의성은 의성부로 승격하였다. 신라 말 고려 초의 후삼국 정립기(後三國 鼎立期)에 의성 지역이 지닌 지리적 중요성과 왕건과 의성 지역민이...
-
고려 말 왜구가 경상북도 의성 일대에 침입한 사건.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져 해안 지방을 넘어 내륙으로까지 그 피해가 미쳤다. 의성 지역도 이 시기에 왜구의 침입을 두 차례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왜구는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고려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침입하여 약탈과 살인 등을 일삼았던 해적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일본 남북조의 혼란기에 발생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 용재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위치한다. 고분 떼는 용기리 용재 마을에서 동쪽으로 450m, 신당 저수지의 북서쪽 50m 지점의 완만한 구릉에 위치한다. 안계면 용기리 고분 떼가 정식 발굴된 적은 없다.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군 일대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05년 역시 대구 대학교 중앙 박...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분묘. 안계면 용기리 용재 마을 동쪽 구릉에 조영되어 있는 용기리 고분 떼와 같은 능선에 해당하며 분묘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안계면 풍산 김씨 분묘가 정식 발굴된 적은 없다.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군 일대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05년 역시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각석. 용남리 부흥대 각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새겼는지 구체적인 경위가 알려져 있지 않다. 용남리 부흥대 각석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 산2-1에 있다. 백학산 끝자락 지점에 있다. 마을 내에 있는 남산 교회 진입로에서 100m 지점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바위 면을 약간 다듬어 세로로 ‘부흥대(賦興臺)’라고 새겼다. 글자를...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에 있는 마애비(磨崖碑). 용남리 비석 떼는 비안 현감의 선정을 기념한 선정비 2기이다. 조선 후기에 비안현 주민들이 현감의 공덕을 기려 바위에 새긴 마애비이다. 채응일은 1752년(영조 28) 7월부터 1756년 정월까지 비안 현감으로 재임하였고, 이귀응은 1783년(정조 7) 6월부터 1785년 10월까지 비안 현감으로 재임하였다. 용남리 비석 떼는...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무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용무리 고인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용무리 산11에 있다. 다인면사무소에서 왼쪽으로 서릉길을 따라 250m 이동하여 지방도 923호선[자미로]을 따라 남서쪽 다인면 방향으로 3㎞ 정도 이동하면 용무리가 나오고 65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으로 소로가 있다. 소로를 따라 다시 600m 정도 더 가면 의성군 상하수도 사업...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용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 용연리 자족재(龍淵里 自足齋)는 신봉석(申鳳錫)[1631~1704]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아주 신씨 문중의 재사이다. 신봉석은 의성현(義城縣) 출신의 조선 후기 유학자로 자는 석여(錫予)이고, 호는 자족재(自足齋)이다. 1655년(효종 6) 응제시(應製試)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효종에게 지필묵(紙筆墨)을 받은 바 있으며, 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용연리에 있는 해주 오씨(海州 吳氏) 재실. 용연리 추모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용연2길 103-4[용연리 187]에 있다. 용연리에 있는 의성 농공 단지에서 원당리 방향으로 가다가 원당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국도 28호선을 따라 약 500m 정도 가다 보면 우측 도로 가에 자리하고 있다. 용연리 추모재는 1919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용연리 추모재는...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용천리에는 고인돌 떼가 3곳 확인된다. 후천 마을 북쪽 농협 양곡 창고 주변을 용천리 고인돌 떼 1, 후천 마을 남쪽 들막새 지역을 용천리 고인돌 떼 2, 용호 마을 남서쪽 구릉 하단을 용천리 고인돌 떼 3으로 구분한다. 용천리 고인돌 떼 1은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 391-1묘·용천리 391-3묘·용천리 391-4묘·...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용천리 고인돌 떼 2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 353-1에 있다. 비안면사무소 앞 일반 도로를 따라 오른쪽[서쪽] 예천·안계 방향으로 1.8㎞ 이동하면 용천 1리가 나온다. 마을의 서쪽[용천 2리]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도로의 왼쪽으로 소나무 숲이 나온다. 소나무 숲이 끝나는 부분, 즉 마을의...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용천리 고인돌 떼 3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 473에 있다. 비안면사무소 앞 일반 도로를 따라 오른쪽 예천·안계 방향으로 1.8㎞ 이동하면 용천 1리가 나오고 마을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용천리 고인돌 떼 2가 있는 소나무 숲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 150m 가고 용천 2리 경로당을 돌아 100m 정...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근대 이후 건립된 비석 2기. 박서생의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와 병호 충렬사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유지비이다. 박서생은 야은 길재의 제자로 조선 초 다방면에서 활약한 학자로 사적비는 그의 삶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병호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박충인(朴忠仁)과 박효순(朴孝純)을 배향했던 서원이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조선 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문숙(文叔).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우희현(禹希賢), 어머니는 호군(護軍) 정응정(鄭應精)의 딸 연일 정씨(延日 鄭氏)와 첨추(僉樞) 정침(鄭琛)의 딸 연일 정씨이며,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역임한 우선규(禹善圭), 증조할아버지는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義)를 역임했으며 경상도 비안현 입향조인 우홍서(禹弘緖), 부인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문경(文景). 우종(禹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숭(禹崇)이고, 아버지는 우성금(禹成金)이고, 어머니는 김귀난(金貴難)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고, 부인은 서승봉(徐承鳳)의 딸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다. 우선희(禹善希)[1660~1744]는 지금의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서 태어나서 중년에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로 이...
-
조선 전기 의성에 입향한 관료.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즉(聖則), 호는 만수재(晩修齋). 고려 말 유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우즙(禹楫)이고, 할머니는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버지는 전연사(典涓司) 참봉 우수평(禹水平)이고, 어머니는 진사 홍계원(洪啓元)의 딸 부림 홍씨(缶林 洪氏)이고, 부인은 참봉 정정상(丁政祥)의 딸 의성 정씨(...
-
조선 전기 의성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화당(和堂), 호는 국헌(菊軒). 고려 말 유학자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예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우즙(禹楫)이고, 할머니는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버지는 전연사(典涓司) 참봉 우수평(禹水平)이고, 어머니는 진사 홍계원(洪啓元)의 딸 부림 홍씨(缶林 洪氏)이고, 동생 우홍서(禹弘緖)와 함께 의성 지역에 입향하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홍술로 106[원당리 산1]이 있는 조선 시대 및 근대 비석 떼. 원당리 비석 떼의 건립 경위는 자료가 현전하지 않아 건립 당시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조선 말 대부분의 선정비가 그러하듯 선정을 기념하는 건립이라기보다는 혼란한 정세를 역설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선정비는 건립 연대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① 현령 김후...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재실. 원당리 첨성재는 고려 시대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던 김득하(金得河)[1400~1490]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김인환(金仁煥)과 김성환(金成煥)이 건립한 재사이다. 김득하의 자(字)는 문경(文卿), 호(號)는 첨성(瞻省)이다. 원당리 첨성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홍술로 38[원당리 42-6]에 있다.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의성군 농...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신기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경상북도 안사면 월소리 신기 마을 북서쪽에 있는 모소교의 남서쪽 밭에 위치한다. 고분 떼 북쪽에는 신평천(新平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으로 넓은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고분 떼 남서쪽에는 높이 348.2m 산이 솟아 있으며, 산 정상부에서 흘러내린 구릉 말단부에 고분 떼가 있다. 안사면...
-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재실. 월소리 도장암(月沼里 道藏庵)은 신사국(申思國)·신사억(申思億) 형제가 시묘(侍墓)하던 곳에 건립한 평산 신씨 재사이다. 월소리 도장암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안사풍천길 783-78[월소리 586]에 있다. 월소리에 있는 무랭이 마을에서 마을 뒤쪽의 도장산으로 약 850m 정도 올라가면 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월소리 도장암은 17...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위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근대 비석 떼. 위양리 비석군의 건립 경위는 비석 외에는 현전하는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비석을 통해 건립된 시점만을 확인할 수 있다. 각 비의 건립 연대는 우선 ① 서상경 영세 불망비는 1902년에, ② 김상현 청덕 불망비는 1891년에, ③ 이학년 청덕 선정비는 1675년에, ④ 차능문 청덕 선정비는...
-
1604년(선조 37) 강원도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이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한 뒤 글씨·감상문·그림 등을 엮어 작성한 기행문. 조선 시대 의성현 출신의 문신 이광준[1531~1609]은 강원도 관찰사 재임기인 1604년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이 유람에는 이광준 이외에도 두 아들 이민성[1570~1629)과 이민환[1573~1649], 간성 군수(杆城 郡守) 최립[1539~1612...
-
조선 후기 단밀현[현 의성군 단밀면]에 거주한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숙정(叔整). 초명은 존(袸). 호는 도암(道巖). 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유성룡(柳成龍), 어머니는 현감(縣監)을 지낸 이경(李坰)의 딸 정경 부인(貞敬夫人) 전주 이씨(全州 李氏), 할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유중영(柳仲郢), 증조할아버지는 군수(郡守)를 지낸 유공작(柳公綽), 부인은 판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원(聖源)·중부(仲溥), 호는 민산(閩山).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다. 병촌(屛村) 유태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태계(迨溪) 유숭조(柳崧祚)이며, 아버지는 유진구이고, 어머니는 선성 김씨(宣城 金氏) 김낙생(金樂生)의 딸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남운(金南運)의 딸이다. 유도수(...
-
조선 후기 단밀현[현 의성군 단밀면]에 거주하였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능(子能). 호는 이송당(二松堂). 생부는 군수(郡守)를 역임한 유진(柳袗), 어머니는 현감(縣監) 권채(權采)의 딸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와 하옥(河沃)의 딸 정부인 진주 하씨(晉州 河氏), 계부(季父)는 익위사 세마(翊衛司 洗馬)를 역임한 중부(仲父) 유단(柳褍), 할아버지는...
-
조선 후기 의성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인백(仁伯), 호는 병촌(屛村). 유후갑(柳後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성징이고, 아버지 유행(柳涬)이며, 어머니는 권명일(權命一)의 딸 안동 권씨이고, 부인은 김남응(金南應)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유태춘(柳泰春)[1729~1814]은 1764년(영조 40)에 안동부(安東府) 월전리(月田里)[경상...
-
조선 전기 비안현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포(子包), 호는 가촌(嘉村). 현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모흥리 일대에서 세거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비안현에 속했던 곳으로, 유포의 후손들이 비안 지역을 모두 떠난 상태라 정확한 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포(柳砲)의 생몰 연대는 미상이며, 이력은 명확하지 않으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수부(粹夫), 호는 달촌(達村). 초명(初名)은 윤선각(尹先覺)이나 윤국형(尹國馨)으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 윤지숭(尹之崇)이고, 할아버지는 이성 현감(利城縣監)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윤정림(尹廷霖)이고, 아버지는 경산 현령(慶山縣令)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윤희렴(尹希廉)이다....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가마터. 윤암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각골 마을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다. 이곳은 윤암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마터 주변에서 채집되는 와편의 형태와 문양으로 볼 때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운영된 기와 가마터로 추정된다. 윤암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떼. 점곡면 윤암리에 위치한다. 점곡면 소재지에서 점곡교를 지나 옥산면 소재지를 잇는 지방도 79호선 중간 지점의 윤암리 각골 마을에서 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두 개의 구릉 상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의 북쪽에는 미천(眉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고분군의 동쪽 구...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윤암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1153천·윤암리 436전에 있다. 점곡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난 길[점곡로]을 따라 200m 정도 이동하여 삼거리가 나왔을 때 청송·의성·옥산 방면[동변길]으로 280m 이동하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680m 정도 이동하면 윤암 삼거리가 나온다. 윤암 삼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재실. 윤암리 이산재는 진주 목사를 지낸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1620~1681]와 아들인 남명하(南明夏), 손자인 남윤주(南胤冑)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윤암리 이산재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77[윤암리 438-1]에 있다. 윤암리에 있는 의성 소계당에서 점곡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400m 정도 가다보면 도로변...
-
조선 전기 의성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간(仲簡), 호는 매고(梅皐). 증조할아버지는 윤잠(尹岑)이고, 할아버지부는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을 지낸 윤지숭(尹之崇)이고, 아버지는 이성 현감(利城 縣監)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윤정림(尹廷霖)이고, 어머니는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의 후손인 경력(經歷) 조수(趙琇)의 딸 평양 조씨(平壤 趙氏)이다....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義兵)이란 유사 시 자발적으로 일어나 조직된 민병을 말한다.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한 것이므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기본적인 무기나 군량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의병은 한국사의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대략 6,500여 개가 넘는다. 공룡 발자국 화석의 숫자만 따진다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이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은 전라남도 일부 해안 지역을 재외하고는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경상 분지가 공룡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중생대 백악기 무렵에 형성된 퇴적층으로 덮...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대리리·학미리 일대에 있는 고분 유적. 금성산 고분군은 삼국 시대의 고총 고분으로 금성산(金城山)의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모지산(暮知山)[162.6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금성면소재지에 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국보 제77호] 서쪽에 연결된 국도 28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좌우에 연결된 능선 대부분이...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학미리·탑리리 일대에 있는 삼국 시대의 고분군. 금성산 고분군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다. 태백산맥 지맥의 하나인 보현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휴화산인 금성산[높이 531m]의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모지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삼국 시대의 고총과 고분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의 중앙부는 군위군 우보면에서 의...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丹北面)에 있었던 삼한 시대의 저수지. 대제지는 우리나라 수리 관개 농업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저수지로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위치하였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그 기원이 밝혀지고 있으나, 커다란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초기 국가들이 등장하는 때와 맞물리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가능...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일원에 설치된 조선 시대 양잠소 터.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일원에 있었던 도회잠실은 조선 시대 양잠을 장려할 목적으로 시범적으로 설치한 잠실이다. 1416년(태종 16) 2월에 양잠을 국가적인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가평(加平)의 속현인 조종(朝宗)과 양근(楊根)의 속현인 미원(迷原)에 잠실을 새로 설치하고 뽕나무를 심게 하였으며, 이듬해 의성·개성·...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7[사촌리 207] 사촌 마을에 위치한 누각형 가옥.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김사원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천성이 인자하여 자신의 재산을 털어 기민(飢民)을 진휼하여 지방민의 추앙을 받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인 정제장(整齊將)으로 추대되었...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소우당 고택은 소우(素宇)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주택이다.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하였다고 전한다. 의성 소우당 고택은 영천 이씨(榮川李氏)의 집성촌인 산운리 산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탑리리에서 가음면사무소 방향으로 난 지방도 68호선을 따라 약 2㎞ 정도 가다...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 양식. 신라가 낙동강 상류 지역 진출 이후 출토되는 재지계 토기 중에서 금성산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다른 지역의 토기와 구분될 정도로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를 ‘의성 양식 토기’라 부르는데 낙동강 상류 지역 출토 토기 중에서 소지역 양식이 정의된 몇 안 되는 토기 양식이다. 의성 양식 토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은 이희발(李羲發)[1768~1859]이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 문중의 고택이다. 의성 운곡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61[산운리 158]에 있다. 산운 생태 공원 주차장 입구 앞에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산운 노인 회관이 나온다. 노인 회관 옆에 난 조그마한 길을...
-
929년 의성 지역에서 벌어진 후백제군과 고려군의 전투. 후삼국 정립기인 929년 7월 후백제가 의성 지역을 공격하였다. 전쟁 중에 의성 지역을 지키던 성주 홍술이 전사하고 의성은 함락되었다. 후백제는 이 의성 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같은 달에 지금의 풍산 지역인 순주(順州)를 함락하고, 10월에는 지금의 문경 지역인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과 가은현(加恩縣)을 공격하는 등 929...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에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 2길[제오리 111 외] 1,656㎡에 산포하고 있다.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의성 읍내를 벗어나면 ‘공룡 발자국’이라 쓰여진 안내판이 있고, 국도 28호선 의성에서 영천 방향으로 내려가다 10㎞ 지나면 사곡이라는 마을로 좌회전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
1603년 의성 향교에서 발생한 위판(位版) 도난 및 훼손 사건. 1603년 의성 향교에서 위판의 도난 및 훼손 사건이 발생하였다. 유교 국가에서 지방 교화의 핵심이던 향교의 문묘 훼손은 매우 큰 사건으로, 이 사건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도 수록되어 있다. 의성 지역은 향교가 건립되기 이전부터 공자에게 향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19세기 전후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성현지(...
-
고려 초부터 1018년 이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쟁패할 때 고려의 태조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과 대결하면서 지방 호족인 성주나 장군 등이 귀부할 경우 그들이 관할하는 지역에 부(府)를 설치하여 우대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울부, 흥려부, 보성부, 경산부, 의성부 등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은 그 중에서도 군사적으로 요충지에...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양 남씨(英陽南氏) 가옥. 윤암리는 1652년 남해준(南海準)과 그의 아들 남몽뢰(南夢賚)가 의성 점곡면 월촌[동변리]에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는 영양 남씨 세거지이다. 의성 소계당(義城 小溪堂)은 윤암리에 있는 영양 남씨 고택 중 하나이다. 의성 소계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3...
-
16~17세기 의성 아주 신씨(鵝洲 申氏) 가문 출신의 신지제(申之悌)·신홍망(申弘望) 부자 및 그 후손과 관련된 전적(典籍)과 고문서(古文書).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위치한 오봉 종택(梧鳳宗宅)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과 고문서 자료이다. 오봉 종택은 의성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신지제[1562~1624]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아주 신씨 종택이다. 신지제·신홍망 부자 때부터...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재(書齋). 의성 이계당은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1620~1681]가 1651년(효종 2)에 건립하여 강학하던 서재이다. 남몽뢰는 1642년(인조 20) 식년시 생원 3등 4위로 합격하였으며, 1651년 식년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예조 정랑·진주 목사 등을 지냈으며, 1666년(현종 7) 예제 개혁을 상소하였...
-
조선 후기 의성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준수(俊秀), 호는 학동(鶴洞). 증조할아버지는 통훈대부 통례원 좌통례(通訓大夫 通禮院 左通禮)에 증직된 이종림(李宗林)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參贊官)에 증직된 이세헌(李世憲)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 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 吏曹參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호은(湖隱). 이덕방(李德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이의명(李宜明)이고, 아버지는 형조 판서 이희발(李羲發)이고, 어머니는 이귀락(李龜洛)의 딸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고, 부인은 밀성 박씨(密城 朴氏)이다. 이노벽(李魯璧)[1789~1835]은 아버지에게 가학을 전수 받았으나, 7세가 되던 1795년(정조 19)에 아버지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중실(仲實).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護軍) 이훈(李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直長) 이한(李漢)이고, 아버지는 인의(引義) 이희정(李希程)이며, 어머니는 아산 장씨(牙山 蔣氏)로 장윤종(張胤宗)의 딸이고 부인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충손(金忠孫)의 딸이다. 이두춘(李逗春)[1561~?]은 어려서부터 가학(家學)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관보(寬甫), 호는 경정(敬亭). 진사(進士) 이세헌(李世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이여해(李汝諧)이며, 부친은 관찰사(觀察使) 이광준(李光俊)이고,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 申氏)로 인의(引義) 신권(申權)의 딸이며, 부인은 양양 권씨(襄陽 權氏)로 권문연(權文淵)의 딸이다. 이민성(李民宬)[1570~1629]...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장(而壯). 호는 자암(紫巖). 시호는 충간공(忠簡公). 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한 이광준(李光俊), 어머니는 인의(引義) 신권(申權)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이여해(李汝諧),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이세헌(李世憲), 처는 광주 이씨(廣州 李氏)와 군수(郡守) 홍귀상(洪龜祥)의 딸...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백실(伯實), 호는 간와(澗窩).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護軍) 이훈(李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直長) 이한(李漢)이고, 아버지는 인의(引義) 이희정(李希程)이며, 어머니는 아산 장씨(牙山 蔣氏)로 장윤종(張胤宗)의 딸이고, 부인은 풍기 진씨(豊基 秦氏)로 진효선(秦孝先)의 딸이다. 이발춘(李發春)[1555~1623...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사홍(士弘). 아버지는 이우성(李宇成). 어머니는 김수항(金壽恒)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 할아버지는 이식춘(李植春), 증조할아버지는 이민화(李敏華). 처는 유담(柳潭)의 딸 숙부인(淑夫人)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알려져 있다. 이상관의 가문은 당시 경상도 상주목 단밀현[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에 세거하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가완(可完). 성산군(星山君) 이능일(李能一)의 후예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리(李惟利)이고,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忠武衞 副司果) 이중보(李仲保)이고, 아버지는 참봉과 사섬시정(司贍寺 正)을 지낸 이구령(李龜齡)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고, 부인 승지(承旨) 구중윤(具重允)의 딸 능성 구씨(綾城 具氏)이다....
-
조선 전기 의성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영오(影午), 호는 화수헌(花樹軒).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후(李仁厚)이며, 아버지는 신녕현감(新寧縣監) 이고(李考)이고, 어머니는 연안 이씨(延安 李氏)이며, 부인은 함양 박씨(咸陽 朴氏) 경부(慶阜)의 딸이다. 이세남(李世南)[1464~1524]은 경상도 성주에서 태어나 경상도...
-
조선 전기 의성에 거주했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전(士典), 호는 우암(牛巖). 증조할아버지는 이려(李麗),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이사형(李斯亨), 아버지는 증 통훈대부 통례원 좌통례(贈 通訓大夫 通禮院 左通禮) 이종림(李宗林), 어머니는 장수산(張壽山)의 딸 증 숙인(贈 淑人) 옥산 장씨(玉山 張氏)이다. 부인은 한보정(韓保井)의 딸 증 숙부인(贈 淑夫人) 청주...
-
조선 전기 단밀현[현 의성군 단밀면]의 성산 이씨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윤중(允中).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이벽(李璧)이고, 할아버지는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이고,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이항(李沆)이고, 어머니는 정경 부인(貞敬 夫人) 진주 강씨(晋州 姜氏)이고, 부인은 부윤(府尹)을 지낸 권수(權秀)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화언(華彦), 호는 석포(石圃). 형조 참판 이민환(李民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중경(李重烱)이다. 이수태(李秀泰)[1673~?]는 문장이 섬세하고 잘 썼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났으며,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741년(영조 17)에 증조부의 유의(遺意)를 받들어 『자암...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로 이주해 온 이이남의 아버지로서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충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승대(勝大), 호는 의제(義齊). 이집(李諿)의 7세손이 된다. 이승창(李承昌)[1588~1637]은 정온(鄭蘊)의 문인으로, 1617년(광해군 9) 사마시에 급제하고, 1632년(인조 10)에 장릉 참봉(章陵 參奉)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후(汝垕). 좌찬성(左贊成) 이항(李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종(李守種), 아버지는 참봉(參奉) 이청(李淸), 어머니는 주석수(朱碩守)의 딸 상산 주씨(商山 朱氏)이다. 이심근(李深根)[1576~1637]의 선대는 한양과 인근에 거주하였는데, 증조할아버지 이항이 정적으로부터 무고를 당하자 할아버지 이수종이 관직에 뜻...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원래 본관은 전주(全州)이나 고려가 멸망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으로 낙향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이연계(李連桂)를 시조로 하여 대흥 이씨(大興 李氏)로 분관하였기 때문에 본관은 대흥(大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6촌형이며, 태종에 의해 대흥군(大興君)으로 봉함을 받았다. 대흥 이씨(大興 李氏) 의성 입향조이다. 이연계[?~1407]는 고려 말...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단북면 소재지가 위치하는 이연리 이실 마을·중연 마을의 단북면사무소 북서쪽 200m 구릉 상에 위치한다. 이연리 고분군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구릉이 있고, 남쪽에는 위천(渭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위천 주변으로는 충적 평야인 이연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연리 고인돌 떼는 이연리 고분 떼와 같은 능선에 있으...
-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이연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 이연리 844묘에 있다. 단북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23호선[단북 다인로]을 따라 북으로 2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해발 60m 미만의 얕은 구릉이 위치하는데, 이 구릉에 이연리 고인돌 떼가 위치한다. 구릉의 북쪽으로 민묘가 조성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밭이 경작되고 있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대래(大來), 호는 근인당(近仁堂). 이이식(李爾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담(李曇)이고, 아버지는 이세달(李世達)이고, 어머니는 남두욱(南斗煜)의 딸 영양 남씨(英陽 南氏)이고, 부인은 신천걸(申天杰)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생부(生父)는 이기징(李箕徵)이다. 이의태(李宜泰)[1701~1779]은 성리학에 뜻...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수옹(壽翁), 호는 개곡(開谷). 증조할아버지는 증 통정대부贈 通政大夫) 공조 참의(工曹 參議) 이희성(李希聖), 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이득춘(李得春), 아버지는 봉열대부(奉列大夫) 종묘서 직장(宗廟署 直長)을 지낸 이의준(李義遵), 어머니는 산음 현감(山陰 縣監) 김대현(金大賢)의 딸 풍산 김씨(豊山 金氏), 부인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이일(理一). 호는 죽파(竹坡). 생부는 이철재(李澈在), 계부는 통덕랑(通德郞) 이연재(李淵在), 모친은 최효술(崔孝述)의 딸 경주 최씨(慶州 崔氏), 조부는 이노구(李魯求), 증조부는 이가발(李家發)로 알려져 있다. 이장섭(李章燮)[1854~1907]은 1854년(철종 5) 출생하였으며, 경상도 의성현 산운 마을[현 경상...
-
개항기 의성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장손은 이문영(李文榮)이다. 이장회(李章繪)[1861~1946]는 권계칠(權季七)의 문인으로 학문을 연마하고, 부모를 매우 극진히 모셨다.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에 1894년 갑오창의(甲午倡義) 당시 의성 유학(幼學)으로 의병을 이끌고 참모로 참전하여 병정(兵丁)을 단속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을 세우고 1896...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자신(子愼), 호는 만옹(慢翁). 참봉(參奉) 이여해(李汝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 이광준(李光俊)이고, 아버지는 형조 참판(刑曹參判) 이민환(李民寏)이며, 어머니는 광주 이씨(光州 李氏)이고, 부인은 연안 이씨(延安 李氏)로, 안악 군수 이분(李衯)의 딸이다. 좌승지(左承旨) 이민성(李民宬)에게 출계하였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창호(菖湖). 이여해(李汝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 이광준(李光俊)이고, 아버지는 부윤 이민환(李民寏)이다. 이정숙(李廷橚)[?~?]은 스스로 탐구하여 독실히 공부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가는 뜻을 버리고 향리에서 학업에 열중하였다. 유집(遺集)이 있다....
-
조선 전기 의성 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균(仲勻), 호는 용재(慵齋)·용헌(慵軒)·부휴자(浮休子)·상우당(尙友堂)·태정일씨(太庭逸氏)·장육거사(藏六居士). 이만실(李蔓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이승직(李繩直)이고, 아버지는 생원 이시민(李時敏)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권계경(權啓經)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권탁의 딸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백앙(百仰). 아버지는 사과(司果) 이징(李澄), 어머니는 참봉 하만계(河萬溪)의 딸 의인(宜人) 진주 하씨(晉州 河氏), 할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 이수견(李守堅), 증조할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한 이항(李沆), 부인은 한유영(韓有英)의 딸 숙부인(淑夫人) 청주 한씨(淸州 韓氏)로 알려져 있다. 이지암의 후손들은 조선...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의병·학자·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수(子秀), 호는 반계(盤溪), 효사재(孝思齋). 경주 이씨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2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건(李建)이고,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이연년(李延年)이고, 어머니는 김철손(金哲遜)의 딸 분성 김씨(盆城 金氏)이다. 이탁영(李擢英)[1541~1610]은 1541년(중종 36) 경상도 의...
-
임진왜란 때 경상도 의성현 출신의 이탁영이 작성한 일기. 임진왜란 당시 이탁영(李擢英)은 경상도 감영의 영리로 있으면서, 경상도 관찰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탁영은 임진왜란 당시 도(道)의 행정을 담당함과 동시에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睟)의 참모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만록』은 전란 당시 이탁영 본인이 담당한 행정 업무와 직접 목격한 사건들을 기록한 일기인 것이다. 이탁영은 『정만...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학(景學), 호는 학헌(學軒). 아버지는 농은(農隱) 이집필(李集弼)이고, 어머니는 강릉 최씨(江陵 崔氏)이다. 이하영(李夏榮)[1777~1846]은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가학을 이으며,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우은 신면황(申冕璜)과 더불어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水淨寺)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는 뜻을...
-
조선 전기 비안현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경숙(敬叔). 아버지는 호조 참판(戶曹 參判) 이공(李拱), 어머니는 현령(縣令) 금이간(琴以間)의 딸 봉화 금씨(奉化 琴氏),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순지(李純之), 증조할아버지는 병조 판서(兵曹 判書) 이맹상(李孟常), 부인은 김석견(金碩堅)의 딸 김씨(金氏)[본관 미상], 후처는 사정(司正) 성신인(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우문(又文), 초명은 영발(英發), 호는 운곡(雲谷). 이수춘(李秀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덕방(李德枋), 아버지는 이의명(李宜明),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 尹氏)로 윤덕은(尹德殷)의 딸이고,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로 이귀락(李龜洛)의 딸이다. 이 집안은 16세기 이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에 세거 하고...
-
조선 후기 의성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이보(伊甫), 호는 동강(桐岡). 이철손(李哲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龍驤衛 副護軍) 이훈(李壎)이고 아버지는 직장(直長) 이한(李漢)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교수(敎授) 김만경(金萬敬)의 딸이고, 부인은 아산 장씨(牙山 蔣氏) 장윤종(張胤宗)의 딸이다. 이희정(李希程)[1532~1612]...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지역의 옛 지명. 열혜현(熱兮縣)은 니혜현(泥兮縣)이라고도 하는데, 757년(경덕왕 16) 12월에 일계현으로 개칭되면서 고창군(古昌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예속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고구현(高丘縣)과 함께 의성부(義城府)로 통합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지리지1 고창군조에는 “일계현(日谿縣)은 본래 열혜현(熱兮縣)[혹은 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경우(景雨), 자는 상지(尙之), 호는 귀은(龜隱). 기자전(箕子殿) 참봉 임희겸(任熙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임훈(任勳)이고, 아버지는 주부 임내중(任乃重)이며, 어머니는 증 승지 신흘(申仡)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부인은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임경윤(任...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천(醴泉). 임성무(林盛茂)[1673~1729]는 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 2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으나 어머니만은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하도록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가지고 와서 어머니께 드리고, 시장에...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여정(汝貞), 호는 모성당(暮醒堂). 한성부 우윤(漢城府 右尹) 임훈(任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부(主簿) 임내중(任乃重)이고, 아버지는 임경윤(任景尹)이며, 어머니는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 조분(趙賁)의 딸이다. 임세장(任世章)[1637~1695]은...
-
1862년 비안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 항쟁. 임술민란(壬戌民亂)은 1862년 지배층의 수탈과 억압에 대한 저항과 불만으로 발생한 농민 항쟁이다. 경상도 단성(丹城)[현 진주 일대]에서 시작되어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70여 개 고을에서 발생하였다. 의성 지역에는 비안현(比安縣)에서 농민 항쟁이 발발하였다. 현 경상북도 의성 지역은 조선...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의성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 조선·명(明)의 연합군이 벌인 전쟁이다. 1차 침입을 ‘임진왜란’, 2차 침입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하는데, 7년 간 두 차례에 걸친 침입을 통칭할 때는 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중징(重徵), 호는 강와(剛窩). 전적(典籍) 임세헌(任世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이원(任爾元)이고, 아버지는 임수국(任壽國)이며 어머니는 이비(李柲)의 딸 재령 이씨(載寧 李氏)이다. 부인은 김이표(金履標)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임필대(任必大)[1709~1771]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일대인 오...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음관(蔭官).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의 문신 서하부원군(西河府院君) 임자송(任子松)의 후손으로만 알려져 있다. 임희우(任希雨)[?~?]의 이력은 『조선환여승람』과 『의성승감』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재주와 문무를 겸비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성진(義城陣)의 찬획(贊劃)으로 활동하며 여러 책략을 제시했다고 한다. 또한 음직(蔭職)으로 벼슬이 주부...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 선바위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옥산면 입암리 선바위 마을 북서쪽 350m 지점인 위천(渭川)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선바위 마을 동쪽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고분군이 있다. 입암리 고분 떼 서쪽에는 위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현재는 이 일대가 개간되면서 강 양안으로는 ‘전평들’과 ‘비덕들’이 펼쳐져 있다. 입암...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떼. 입암리 선돌 떼는 옥산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 의성군, 안동시 길안면 방면으로 지방도 79호선을 따라 1.7㎞ 정도 가면 입암 1리 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300m 이동하여 끝에서 다시 오른쪽을 100m 정도 가면 민가가 나오고 민가를 지나면 바로 옆에 위치한 논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마을...
-
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한다. 경상북도 내 다른 시·군과는 직선거리가 울진군을 제외하면 모두가 80㎞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로상의 거리도 도로망의 발달로 점차 단축되고 있다. 또한 중앙선 철도가 금성면, 의성읍, 단촌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중앙고속도로는 봉양면, 안평면을 통과하면서 봉양면 도원리에 의성 IC가 설치되어 있다. 의성 지역에는 예부터 비안현, 단밀현...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에 있는 조선 시대 기와 가마터. 작승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의 문헌 자료에도 관련된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작승리 가마터 유적은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 591, 592-1, 594, 595, 597, 602, 603, 산80 일원의 신승동 마을 구릉 말단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사곡면 오상...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작승리 고인돌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 산81에 있다. 사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12호선[의성 사곡로]을 따라 북서쪽 중리 방향으로 3.5㎞ 이동하면 오상 삼거리가 나온다. 오상 삼거리에서 왼쪽 금성·춘산 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79호선[사미 신감로]을 따라 1.2㎞ 정도 가면 신승동 마을이 시작되고 오른쪽에 폐교...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사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12호선[의성 사곡로]을 따라 북서쪽 중리 방향으로 3.5㎞ 이동하면 오상 삼거리가 나온다. 오상 삼거리에서 왼쪽 금성, 춘산 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79호선[사미 신감로]을 따라 1.2㎞ 정도 가면 신승동 마을이 시작되고 오른쪽에 폐교[사곡 초등학교]가 위치한다. 작승리 선돌은 민가 담벼락 중간에...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장대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 645-1답·장대리 산35임·장대리 665전·장대리 661답에 있다. 봉양면사무소에서 국도 28호선[도리원 3길]을 따라 예천·안계 방향으로 30m 정도 이동하면 봉양 교차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 안동·의성 방향으로 국도 5호선[경북 대로]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2.5...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장대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 산32에 있다. 의성군 봉양면 소재지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서 의성읍 방향으로 2.4㎞ 정도 이동하면 구미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금성면 방향으로 3.2㎞ 가면 봉양면 장대리의 장대 마을에 이른다. 장대 마을의 과거 도리원 초등학교 일산 분교장 북쪽 구릉 자락에...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장림리 새터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단촌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3㎞ 되는 지점으로 장림 마을 북쪽 500m 지점, 새터 마을 서쪽 250m 지점의 능선 상에 해당한다. 고분군이 위치하는 구릉의 주위는 서쪽으로 높은 산이 연결되어있고, 동쪽으로는 새터 마을을 두고 미천(眉川)으로 흐르는 작은 하천과 그 양편에 형성된 좁은 경작지가 있다....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산(牙山), 호는 효효재(囂囂齋), 시호는 문익(文翊)이다. 1344년 의성 교동[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교동]에서 출생하여 포은정몽주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났고 전공 전서(典工 典書)를 역임하였다 한다.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모운재(慕雲齋)가 있다....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5일마다 열렸던 사설 시장. 장시(場市)는 조선 시대 지방민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자를 교환하던 시장으로 장문(場門) 또는 향시(鄕市)라고도 한다. 15세기 중엽부터 이미 개설되었던 조선 시대 장시는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여 18세기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성행하였다. 개시일도 초창기에는 한 달에 2회로 보름 간격이던 것이 한 달에 6회, 5일 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상(汝常). 장괄(張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덕명(張德明)이고, 아버지는 장익(張翊)이며, 어머니는 초계 변씨(草溪 卞氏) 군자감 정 변처정(卞處貞)의 딸이고, 부인은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아들 장한정(張漢楨)과 장한상(張漢相)이 모두 현달하였다. 장시규(張是奎)[1627~1712]는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
-
조선 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문중(汶中), 호는 신재(愼齋). 진주 판관(晉州 判官) 장일신(張日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숙(張叔)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된 찰방(察訪) 장문서(張文瑞)이다. 장운(張運)[1535~1605]은 지금의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효우가 출중하여 여러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며, 법도를 세...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근계(近溪). 소감(少監) 장사검(張思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헌(張憲)이고, 아버지는 참군(參軍) 장윤의(張允義)이다. 장일신(張日新)[?~?]은 어려서부터 완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1471년(성종 2) 무과 별시에 급제하여, 1486년 동래 현령(東萊 縣令), 진주 판관(晉州 判官)와 경주 판관(慶州 判官), 기장...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이의(而義), 호는 심지(心智). 증조할아버지는 중문 지후(中門 祗侯)를 지낸 장을유(蔣乙濡)이고, 할아버지는 삼화 현령(三和 縣令)을 지낸 장흥계(蔣興繼)이고, 아버지는 사정(司正)을 지낸 장연(蔣延)이고, 어머니는 사직(司直)을 지낸 장비(張斐)의 딸 순천 장씨(順天 張氏)이다. 부인은 찰방(察訪)을 지낸 김자강(金自江)...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각석. 장춘리 검암 각석은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다. 비안면 장춘 1리 경로당에서 동쪽으로 약 500m 지점 산기슭에 양수장이 있고, 양수장 뒤편으로 약 30m 지점의 남쪽 절벽에 새겨져 있다. 각석 자체에는 건립 경위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검암 중각기(儉巖 重刻記)」에 검암을 중각(重刻)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개항기의 각석. 장춘리 계석암에는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건립 경위를 확인할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에 따르면, 본래 바위의 이름은 ‘계석(桂石)’이었다. 당시 바위 주변에서 살며 십여 세대를 이어온 선산 김씨의 후손 김재성(金在誠)이 자신의 가계와 이 바위가 변치 않고 ‘옛과 같이 계속 이어져[繼昔]’ 오고 있고, 마침 이런 이어짐...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1리 높이 231m의 봉우재 정상에 위치한다. 둘레가 30m 정도 되는 둥근 타원형의 석축 연대(煙臺)가 남아 있으나 형태가 완전하지 않다. 유적 일대는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복성리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며 구체적인 봉화의 연결통로는 알 수 없으나, 동쪽으로 약 3㎞ 거리...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비안면사무소 앞 일반 도로에서 서쪽 장춘리 방향으로 3.2㎞ 정도 이동하면 오른쪽에 위천을 가로지르는 장송교가 있다. 장송교를 지나면 바로 장송 마을이 있다. 장춘리 선돌은 장송 마을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민가로 들어가는 길 입구 오른쪽 연자방아 옆에 위치한다. 장춘리 선돌은 장방형의 직사각기둥 모양으로 윗부분이 일부 깨어졌...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각석. 장춘리 성재암 각석은 의성군 비안면 장춘 1리 항골의 남쪽 산중턱 바위 면에 자리하고 있다. 바위에 새겨진 내용으로 볼 때에 임진왜란 당시 어느 누군가가 창의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와 구체적인 활동 내용이 무엇인지가 각석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건립 연대는 “임진후육...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장춘리 절터는 주변에 높은 산이 없고 농경지가 넓게 펼쳐진 가운데 솟은 낮은 구릉지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밭 가운데 비로자나 석불 좌상(毘盧舍那 石佛 坐像)이 있고, 주변에 기와 파편이 많이 발견되어 절터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 경 불상을 모시는 전각을 짓는 도중에 좌대(座臺)와 기단석(基壇石)이 발견되어 지금과 같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치군(致君), 호는 귀래정(歸來亭). 사직(司直) 장번(蔣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과(司果) 장사종(蔣嗣宗), 아버지는 사정(司正) 장인(蔣嶙), 어머니는 현감(縣監) 홍준(洪濬)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 부인은 권대성(權大成)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다. 장팔국(蔣八國)[1562~1633]은 어려서부터 총명...
-
조선 후기 비안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필경(弼卿). 아버지는 경기도 수군 절도사(京畿道 水軍節度使)를 역임한 장시규(張是奎),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 李氏), 할아버지는 장익(張翊), 증조할아버지는 장덕명(張德明)이다. 사위가 병조 판서(兵曹 判書)를 역임한 이삼(李森)으로 알려져 있다. 장한상(張漢相)[1656~1724]은 1656년(효종 7) 경상도 비안...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군좌(君佐), 호는 구천(龜川). 증조할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장심(蔣諶)이고, 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장윤종(蔣胤宗)이고, 아버지는 삼척 부사(三陟 府使)를 지낸 장용(蔣龍)이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진성 이씨(眞城 李氏)이다. 부인은 정부인 함안 조씨(咸安 曺氏)이고, 후처는 정부인 해주 오씨(海州 吳氏)이다....
-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지금의 의성 지역은 조선 시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었던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이었던 다인현(多仁縣)과 용궁현(龍宮縣)의 일부[현재 안사면 지역]가 해당한다. 의성 지역은 후삼국 시대에 활약했던 홍유(洪儒)와 김홍술(金洪術)의 출신지로서 호족 세력이...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경지(景之). 호는 계산(桂山). 아버지는 증 통정대부 군자감 정(贈 通政大夫 軍資監 正) 전상량(全尙亮), 어머니는 오정수(吳淨水)의 딸 숙부인(淑夫人) 해주 오씨(海州 吳氏), 할아버지는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를 역임한 전의복(全義復), 증조할아버지는 전희남(全希男), 부인은 정산흘(鄭山屹)의 딸 숙부인 연일 정씨(延...
-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전흥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느리미 마을 서쪽의 달곡천 건너편에 있는 자기 가마터이다. 달곡천 변의 능선 하단부에 입지하며 주변에서 채집되는 자기편과 가마 구조의 잔해들로 보아 조선 시대 가마터로 추정된다. 근래 경작과 관련하여 유적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전흥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에 대해서 현...
-
조선 전기 비안현의 영일 정씨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대유(大有), 호는 후엄(帿嚴). 할아버지는 정안손(鄭安孫)이고, 아버지는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의 명현(名賢)이요 학유(學諭)를 지낸 정휘(鄭輝)이다. 세 형제 중 장남으로, 둘째 정창우(鄭昌祐)는 생원이고, 셋째 정연우(鄭延祐)는 부장(部將)을 지냈다. 정경우(鄭景祐)[?~?]은 경상도 예천군 다인현[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부(子孚), 호는 매창(梅窓)·신곡(神谷). 의영고 직장 정윤소(鄭允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정언보(鄭彦輔)이고, 아버지는 정두(鄭枓)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사직 권식(權軾)의 딸이다. 양구 현감 정사성(鄭士誠)이 형이다. 정사신(鄭士信)[1558~1619]는 6세 때부터 형에게 수학하였고, 17세...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 정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 정수사의 본존불인 석가불을 중앙에 커다랗게 배치하고 그 좌우로 협시 보살을 비롯하여 권속이 둘러싼 구도로, 특히 법의 문양, 문수보살을 장식한 금채 등이 장식적으로도 독특한 면을 보인다. 「정수사 영산회상도」 하단의 화기(畵記)에 ‘옹정구년신해(雍正九年辛亥)’라고 기록되어 있어 1731년(영조 7)에 제작된 작품임...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 정수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 지장보살도. 「정수사 영산회상도」와 같은 연대, 같은 작가가 그린 것으로 화기(畵記)에 ‘옹정구년신해(雍正九年辛亥)’라고 기록되어 있어 1731년(영조 7)에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어, 18세기 불화 연구에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중앙에 본존인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을 높은 대좌(臺座)에 커다랗게 배치하고, 본존의 하단...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복여(福汝). 호는 월봉(月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로 아버지는 정전섬(鄭全暹)이다. 정악(鄭岳)[1779~?]은 12살 때 아버지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는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하고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이 못...
-
의성 출신의 조선 개국 공신이자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몽송(夢松). 증조할아버지는 정전(丁悛)이고,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정천간(丁千幹)이고,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정빈(丁贇)이고, 어머니는 판도판서를 역임한 김윤(金潤)의 딸 상주 김씨(尙州 金氏)이고, 부인은 김연(金燕)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김씨(金氏)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읍지(...
-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개 시설(灌漑 施設). 제언(堤堰)은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강이나 계곡에 구조물을 쌓아올려 물을 저장하는 관개 시설로, 언제(堰堤) 또는 제방(堤防)이라고도 한다. 농경 국가였던 조선에서 관개 시설의 확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관개 시설에 대한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제언에 관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
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라고 하는 삼한 시대 초기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은 원래 조문국이었다고 기록된 이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의성 지역에는 조문국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와 『...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의 고분군에서 발굴된 금동관. 조문국 금동관은 조문국의 옛터라고 추정되는 의성군 금성면 일대 탑리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다. 이 금동관은 신라화한 지방 토착 세력이 신라 왕에게 받은 하사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국 금동관은 5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전하는 의성 탑리리 고분Ⅰ 덧널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띠 모양의 테두리 위에 가장자리를 가늘게...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된 신라 시대 행정 구역. 사로국은 벌휴왕 2년(185) 2월에 의성 지역 조문국을 정벌하면서 낙동강 상류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조문국을 정벌한 후, 신라는 이 지역을 조문군으로 삼아 소백산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서 활용하였다. 신라는 한 국가를 병합한 뒤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경상남도 김해의 금관가야나 경상북도 고령의 대가야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 정상부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성. 의성군 금성산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성으로 조문군(召文郡)의 군치(郡治)가 금성면 일대였음을 입증하는 유적이다. 조문성은 기록을 통해 볼 때, 금학산 고성, 지금의 금성산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성이 위치한 금성면 일대는 신라가 영남 일원에서 북쪽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즉 소백산맥 안팎을 연결...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용궁현(龍宮縣)의 일부분[현재 안사면 지역]에 해당한다. 조선은 건국 후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
-
조선 시대 일본막부에 파견된 공식 외교 사절단. 통신사(通信使)는 조선이 일본의 막부 장군(幕府將軍)에게 파견했던 공식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1403년(태종 3)과 1404년 조선과 일본이 각각 명으로부터 책봉을 받으면서 대등한 처지의 교린국이 되어 상호간에 사절, 즉 통신사와 국왕사를 파견하게 되었다. 때에 따라서 보빙사(報聘使)[답례로서 외국을 방문하는 사절]·회례사(回禮使)...
-
조선 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함안 조씨(咸安 趙氏)의 입향조이자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일보(日輔), 호는 경모당(敬慕堂). 생육신인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대포 만호(大浦 萬戶)를 지냈으며, 병조 참판에 증직된 검암(劒巖) 조우(趙堣)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永川) 수복 전투에서 군공을 세워 훈련원 봉사 겸 별시위에 제수되었는데,...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학중(學仲), 호는 창헌(蒼軒). 조광현(趙光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시태(趙時泰)이고, 아버지는 조희창(趙希昌)이고, 어머니는 서치용(徐致龍)의 딸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다. 부인은 아주 신씨(鵝州 申氏)이다. 조우각(趙友慤)[1765~1839]은 일찍부터 같은 동네의 김종덕(金宗德)에게 학문을 배웠다. 조광조(趙光...
-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에 있는 봉수터. 중율리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율리의 높이 401.6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다. 의성군의 다른 봉수터 유적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봉수 시설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나 부분적으로 연대(煙臺)로 추정되는 석축 구조물이 허물어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봉수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와편들이 흩어...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창길리 선돌은 안평면사무소에서 안평 의성로를 따라 왼쪽으로 35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지방도 927호선[봉호로]을 따라 북으로 1.4㎞ 정도 가면 창길 1리가 나온다. 안평면 창길리 창리 마을 입구, 삼거리 국도변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창길리 선돌은 ‘창길 1리’ 마을 표지석 뒤쪽에 눞혀져 있는데 형태는...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세계사에서 철기 문화의 시작은 기원전 1400년경 히타이트(Hittite) 왕국에서의 철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 보급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 전국 시대 연나라로부터 철기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고, 자체적인 철기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에 이루어져 주조, 단조 철기까지 제작되었다. 철기 생산의...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청동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당시의 시대상은 본격적 농경의 시작, 무문 토기의 사용, 마제 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개시 연대는 오르도스 청동기와의 교차...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경주 최씨 입향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언(明彦). 관가정(觀稼亭) 최청(崔淸)의 후손이다. 최명후(崔明厚)[?~?]는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선조 연간에 남쪽의 예천 모정리(茅亭里)[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로 이주·개척하여 우거하였다. 후에 정자를 짓고, ‘모운(慕雲)’이라 하였다....
-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신라 시대 지명.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위치한 조문국은 신라에 의해 멸망한 후 조문군으로 편제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매조홀현(買召忽縣)’은 ‘미추홀(彌鄒忽)’로 표기된 바 있고, ‘미추(未鄒)’ 이사금을 ‘미조(未召)’라고도 표기하기도 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통해서 ‘조(召)’와 ‘추(鄒)’가 서로 환치할 수 있었던 이표기였음...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전통 시대에 신하에게 가장 강조하고 요구하였던 덕목은 충(忠)이다. 이 덕목은 자신보다 높은 존재인 임금을 위해 행동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충신은 왕조의 교체기나 국난의 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왕조의 운세가 다하여 기울어져도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봉수터. 치선리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자치 마을 서편에 있는 높이 230m 산 정상부의 치선리 산성터 내에 있다. 봉수터는 산성 터 내에서도 북쪽으로 치우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하며, 연대(烟臺)로 추정되는 석축 구조물이 일부 잔존하고 있다. 서쪽으로 팔성리 고성산 봉수터를 조망할 수 있으나, 치선리 봉수터의 봉화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신라 시대 산성 유적. 치선리 산성터는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자치 마을 서편에 있는 높이 230m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700m 정도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성내에는 치선리 봉수터가 있으며 성벽을 따라 곳곳에 성문지(城門址)나 망루지(望樓址)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정확한...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불교 예배의 주요 대상이 되는 조형물.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석탑은 2005년에 발행된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 따르면 19기[석탑재 1기, 석탑 18기]가 있다. 지역별로는 의성읍, 다인면, 신평면, 춘산면에 각 1기, 금성면, 단촌면에 각 2기, 비안면, 안평면에 각 3기, 안사면에 5기가 분포한다. 시대별로는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이 7기, 통일 신...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단군 사당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1432년(세종 14)에 신인손(辛引孫)을 경상도 관찰사로 임명하고 특별히 명령하여 빙산(氷山) 중턱에 천제(天帝), 즉 옥황상제(玉皇上帝)인 단군을 모시는 태일전(太一殿)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태일전(太一殿)은 원래 강원도 통주에 있었다가 이 시기 의성 지역으로 이건된...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토매리에 있는 신라 시대 유물 산포지. 토매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토매리 66-5와 토매리 산2에 있다. 의성 IC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28호선을 따라 18.5㎞ 가면 안계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900m정도 떨어진 토매 3리 가매골과 안가매골 사이에 있는 구릉의 동쪽과 서쪽 양사면에 토매리 유물 산포지가 위치한다. 유...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작승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사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912호선[의성 사곡로]을 따라 북서쪽 중리 방향으로 3.5㎞ 이동하면 오상 삼거리가 나온다. 오상 삼거리에서 왼쪽 금성, 춘산 방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79호선[사미 신감로]을 따라 600m 정도 가면 춘산, 가음 방면과 금성 방면으로 나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금성 방면으로 가는 도로 맞은편에 묘역...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터. 팔성리 고성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높이 211.4m의 구봉산 정상에 위치한다. 팔성리 고성산성 터를 이루고 있는 높이 200m 내외의 아홉 개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 가운데, 두번째 봉우리에 봉수터 유적이 있다. 산성 내 시설로 파악되므로 산성의 건립 시기인 삼국 시대에 건립된 봉수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산성 유적.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산30번지 일대에 분포하는 포곡식(包谷式) 토축 산성이다. 산성이 위치한 골짜기는 남서쪽으로 열려 있으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200m 내외의 아홉 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 위에 산성을 축조하였다. 삼국 시대에 처음 축성하여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 기록으로 보아 정유재란(丁酉...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있는 정자. 팔성리 봉의정은 콘크리트조의 팔각정이다. 봉의정이라는 이름은 ‘소소구성 봉황래의(簫簫九成 鳳凰來儀)’라는 옛글에서 취한 것이다 팔성리 봉의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산1에 있다. 구봉산(九峰山)의 제1봉 정상에 해당한다. 팔성리 봉의정은 1981년에 의성군청에서 건립하였다. 팔성리 봉의정은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 중에 제1봉에 만...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하령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하령리 고분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하령리 산36에 있다. 의성 IC에서 지방도 92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12㎞ 정도 가면 안평면 소재지에 이른다. 안평면 소재지에서 다시 북쪽으로 3.9㎞ 이동하면 큰하령 마을이 나오는데, 그 북쪽의 대밀골과 큰골 사이의 능선 서쪽 자락에 고분 떼가 위치한다. 지푸게나무골 골짜기를...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하령리에 있는 선돌 떼. 하령리 선돌 떼는 안평면사무소에서 안평 의성로를 따라 왼쪽으로 350m 정도 이동하여, 오른쪽 지방도 927호선[봉호로]을 따라 북으로 1.8㎞ 정도 가면 하령교를 지나 나오는 삼거리에 오른쪽 삼춘리, 하령리 방면으로 700m 정도 가면 하령리가 나온다. 오른쪽 마을로 난 길을 따라 200m 정도 가면 하령리 경로당이 있다. 하령리...
-
조선 전기 의성으로 이주해 온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진양(晋陽)]. 자는 굉지(浤之). 현감 하순(河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縣令) 하계지(河繼支)이고, 아버지는 하윤(河潤)이고, 어머니는 대사헌을 지낸 김지경(金之慶)의 딸 일선 김씨(一善 金氏)이고, 부인은 현감 홍억령(洪億齡)의 딸 남양 홍씨이다. 하취굉(河就浤)[1469~1524]은 1496년(연산군 2) 아우...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향(鄕)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였던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 구역이다. 흔히 향·소(所)·부곡(部曲)으로 연명되면서 일반 군현제 영역과 구분하여 부곡제 영역이라고 부른다. 향의 주민은 소·부곡 주민과 함께 일반적인 양민과 다른 노비·천민과 유사한 특수한 열등 계급의 지위로 보기도 하지만 신...
-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건립되었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조선은 건국과 함께 지배 이념을 불교(佛敎)에서 유교(儒敎)로 교체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체제의 확립과 이념 보급을 위해 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아직 국가의 영향력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교화를 위해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 아래 전국 각지에 향교(鄕校)를 설립하였다. 향교가 처음 설립된 것은 고려...
-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호족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전환기에 각 지방의 유력자로서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지방의 민중들을 행정적·군사적·경제적으로 직접 지배한 지방 세력으로서, 주로 성주(城主)·장군(將軍)으로 지칭되며, 사회 변동을 주도하였다. 호족이란 용어의 사용과 관련하여서는 이견(異見)이...
-
고려 전기 의성 출신의 장군. 본관은 의성. 초명은 홍술(洪術), 시호는 충렬(忠烈). 딸은 고려 태조의 26번째 부인인 의성 부원 부인(義城 府院 夫人) 홍(洪)씨로 의성 부원 대군(義城 府院 大君)을 낳았다. 홍유(洪儒)[?~936]는 궁예 말기인 918년 6월에 기장(騎將)으로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태...
-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성(花藏山城)에서 벌어진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화장산성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산제리 화장산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시대 산성이다. 의성군 비안면, 안평면, 안사면을 경계로 하여 370m 능선을 따라 약 4㎞의 산성이 수축되어 있다. 현재 천연의 암굴(岩窟)을 거점으로 한 유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화장(花藏)’이라는 이름은 임진...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의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방향으로 2.3㎞ 정도 가면 도로변의 화전리 화전 마을에 이른다. 고분군 떼는 마을 북쪽 해발 60~75m의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의성읍에서는 서남쪽으로 직선거리로 12㎞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방향에서 흘러온 금당천이 유적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화전리 고인돌 떼는 봉양면사무소 뒤쪽 국도 5호선 넘어 화전리 원지 마을 서쪽 들판에 있는 소나무 숲[약 500평 규모, 높이 40~50m] 묘 주변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낙동강의 대지류인 위천이 곡류하면서 형성된 충적 평야이다. 소나무 숲에 모두 12기가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 3기씩 군집을 이루어 남북으로 4열로...
-
조선 후기 의성에 부임한 지방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영(汝濚). 황영(黃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산 군수(安山 郡守)를 지낸 황도형(黃道亨)이고, 아버지는 양성 현감(陽城 縣監)을 지낸 황석(黃錫)이고,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주우(金柱宇)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고, 부인은 부사(府使) 이송로(李宋老)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황응일(黃應一)[165...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떼. 효선리 고인돌 떼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1501잡에 있다. 춘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8호선[금성현서로]을 따라 서쪽으로 6㎞ 정도 이동하면 사미 삼거리가 나온다. 사미 삼거리에서 국도 79호선[사미신감로]을 따라 우측의 의성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왼쪽으로 효선리가 있다. 효선리 마을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 있는 각석. 효선리 모설암 각석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 산158-1에 있다. 효선 2리 마을 입구에 있는 경작지 앞 하천 가에 속칭 모실 바우라고 하는 암벽이 있는데, 그 위에 새겨져 있다. 하천 가에 가로로 상당히 넓은 암벽이 있고, 그 위에 많은 글자들이 가로, 혹은 세로로 새겨져 있다. 가장 우측에 세로로 글자 크기 가로·세로 10.5...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효선리 백원정은 용강(龍岡) 김수연(金壽延)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김선방(金善邦)이 건립한 정자이다. 효선리 백원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3길 103-8[효선리 430-2]에 있다. 가음면에서 사곡면 방향으로 지방도 79호선을 타고 가다보면 덕동 마을이 나오는데, 덕동 마을을 지나 약 900m 정도 더 가서 나오는 삼...
-
경상북도 의성 지역 출신이거나 의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에서 효(孝)의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널리 알려져 있는 화랑의 세속오계에서도 효를 강조하고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효녀 지은 설화에서도 고대에 효를 중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교도(敎導)로 서민에게까지 이른 것은...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안동 방향으로 8.5㎞ 가다가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포장 도로를 따라서 5.4㎞ 가면 후평리 마을에 이른다. 고분 떼는 후평리 마을의 북쪽과 폐교된 후평 초등학교 동북쪽의 구릉 상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송내동 고분 떼와 연결된다. 2009년 10월 16일부터 2010년 1월 1...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후평리 김동주 가옥은 1686년에 이 참봉이 건립한 이후 9대에 걸쳐 천 석을 누렸던 지주 집안의 99칸 집이었으나, 한말에 가세가 기울어 30여 년 동안 비어 있던 것을 1932년에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구미리에 살던 김동주(金東周)가 매수하였다. 후평리 김동주 가옥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길 14[후평리 1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