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 조선 시대 관료는 과거(科擧)와 음서(蔭敍), 천거(薦擧) 등의 방식을 통해 선발되었다. 과거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대과(大科)[문과(文科)·무과(武科)], 소과(小科)[사마시(司馬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잡과(雜科) 등으로 나뉘며, 능력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음서는 조상의 음덕(蔭德)에 따라 그 자손을 관료...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금산 서원(錦山書院)은 신체인(申體仁)[1731~1812]이 1776년(영조 52) 자제와 문생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금연 정사(錦淵精舍)의 후신으로 1981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금산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15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봉양 중학교·봉양 정보 고등학교 앞 탑산교를 건너 좌회전 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주경(周卿), 호는 남하당(覽下堂)·소당(小棠). 아버지는 김제연(金濟淵)이고, 어머니는 유도인(柳道麟)의 딸 풍산 유씨이고, 부인은 이심재(李深在)의 딸 영천 이씨(永川 李氏)이다. 김석상(金奭相)[1857~1899]은 1883년(고종 20)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 정언을 지냈고 갑오개혁 이후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머물렀...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이자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백암(栢庵).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진고(金振古)이고, 형은 김엽(金燁)이고, 동생은 김찬(金燦)이다. 김욱(金煜)[1587~1637]은 1587년(선조 20) 경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지냈는데, 동네에서 전쟁놀이를 할 때에...
-
조선 후기 의성 비안현 산두촌에 이주한 안동 김씨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신안동]. 자는 덕이(德以), 호는 학록(鶴麓). 아버지는 김계종(金繼宗)으로, 김태(金兌)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충의위 장여익(張汝翊)의 딸 인동 장씨(仁同 張氏)이다. 김진원(金震遠)[1601~1653]은 1601년(선조 34) 안동 예안면 서촌리(書(西)村里)에서 출생하였다. 1609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이며 의병장.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죽암(竹菴).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진고(金振古)이고, 형은 김엽(金燁), 김욱(金煜)이다. 김찬(金燦)[1590~1637]은 1590년(선조 23) 경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형들과 함께 어릴 때 병정놀이를 할 때에도 진을 만들어 병법에 따라 하였다. 특히 기사(...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정이(靜而), 호는 응봉(鷹峯).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외증손이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이종질(姨從姪)이자 문인이다. 부인은 임진왜란시 그를 따라 순절한 평산 신씨이다. 김치중(金致中)[?~1592]은 천품(天稟)이 순후하고 면학(勉學) 독행(篤行)하였으며, 멸사봉공 정신이 투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백(定伯).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나직경(羅直卿)이다. 나천서(羅天瑞)는 생몰년 미상이다. 고려말 공민왕은 요동 수복을 위해 동녕부 정벌을 단행하였다. 1369년(공민왕 18) 12월 이성계(李成桂)를 동북면 원수(東北面 元帥), 지룡수(池龍壽)를 서북면 원수(西北面 元帥)로 삼아 군사 1만 5000명...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중준(仲逡).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郞) 남해준(南海準), 어머니는 군자감 직장(軍資監 直長) 권지(權誌)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할아버지는 증 공조 좌랑(贈 工曹 佐郞) 남추(南樞),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진(南應震), 부인은 신지의(申之義)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남몽뢰(南夢賚)[1620~...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설 교육 기관. 단구 서원(丹邱書院)은 신적도(申適道)[1574~1663], 신달도(申達道)[1567~1631], 신열도(申悅道)[1589~1659] 삼형제의 창의(倡義) 정신을 기리고, 신적도의 아들 신채(申埰)[1610~1672]의 유학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1858년(철종 7)에 창건되었다. 단구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매강 서원(梅岡書院)은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 1길 7-35[매곡리 1537]에 위치하고 있다. 매곡 보건 진료소에서 매곡 1리 노매 경로당 방향으로 30m가량 이동하면 매곡 1리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한 뒤[매곡1리길] 직진하여 약 400m 올라가면 매강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매강...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여경(汝敬). 호는 모암(慕巖). 박진구(朴震龜)와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을 배출하였다. 박하륜(朴河倫)[1748~1788]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21세에 진성 이씨(眞城 李氏)와 혼인을 하였는데 부인 또한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깊었다. 그는 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관료. 본관은 초계(草溪). 증조할아버지는 변원(卞源)이고, 할아버지는 변옥란(卞玉鸞)이고, 아버지는 춘당(春堂) 변중량(卞仲良)이다. 숙부는 변계량(卞季良)이다. 변구상(卞九祥)[?~?]은 세종 대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예를 지냈다. 여러 고을 교수로 부임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시(詩)를 잘 지었으나, 매우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시를 지었...
-
조선 전기 비안현[현 의성군 비안면]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계옥(季玉). 호는 병애(屛崖). 효행으로 이름이 높은 변용(卞勇)의 현손(玄孫)으로 알려져 있다. 변리(卞璃)[1506~1546]는 1506년(중종 1)에 출생하였으며, 1546년(명종 1) 8월 23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는 선산부(善山府)[현 경상북도 구미시]에 거주하였고, 이후...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변리(卞璃)이다. 초계 변씨 집안에는 대대로 효자가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국천 효자라고 불리는 변용(卞勇)으로 변세린은 그의 6세손이다. 변세린(卞世麟)[1562~1612]은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깊은 병에 들어 11년이나 누워서 지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은 마음...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민부(敏夫). 호는 화암(華岩). 변구상(卞九祥)의 손자이고, 예안 감무를 지낸 변옹(卞雍)의 고손자이다. 의성의 초계 변씨 집안에서는 변세린(卞世麟), 변기동(卞箕動) 등 효자와 저명 인물들이 대를 이어 나왔다. 변용(卞勇)[1443~1488]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몸소 흙을 져다 날라 봉분...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빙계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빙계리 산73-1]에 있다. 빙계 휴게소[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낙전길 64]에서 현리낙전길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현리교가 나온다. 현리교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빙계계곡길 표지판 안내 방향]하여 160m 가량 직진하면 빙계 군립 공원 관...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사족의 교육·교화 기구인 동시에 대표적인 향촌 자치 기구의 하나이다. 특히 17세기 이후 경재소(京在所)가 혁파되고 그 중반 이후에는 유향소·향교의 질적 변화가 수반되면서 서원은 향촌 사림의 중심 기구로 부상하여 조선 사회에서 정치·사회·교육·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행사하였다. 현재...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설 교육 기관. 속수 서원(涑水 書院)은 신우(申祐)·손중돈(孫仲暾)[1463~1529]·김우굉(金宇宏)[1524~1590]·조정(趙靖)[1555~1636]·조익(趙翊)[1556~1613] 등 다섯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속수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속길 116-6[속암리 78]에 자리하고 있다. 단밀 파출소에서...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이란 상품이 교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일컫는 말로 ‘장시(場市)’ 또는 ‘장(場)’ 이라고도 부른다. 시장의 형식은 5일, 또는 10일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가, 매일 열리는가에 따라 정기 시장과 상설 시장으로 구분된다. 전통 사회에서의 시장은 대개 5일마다 한 번씩 서는 정기 시장인 오일장(五日場)이었다. 시장은 대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초명은 봉조(鳳朝), 자는 성지(成之), 호는 시남(示南)이다. 아버지는은 통덕랑(通德郞) 신홍교(申弘敎), 어머니는 풍창군(豊昌君) 류유(柳濡)의 딸인 공인(恭人) 풍산 류씨(豊山 柳氏), 조부는 통덕랑 신황(申煌), 증조부는 신중모(申重模), 처는 성언병(成彦秉)의 딸 숙부인(淑夫人) 창녕 성씨(昌寧 成氏), 후처는 이제동(李...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치명(穉鳴), 호는 우은(愚隱)이다. 아버지는 신필교(申必敎), 어머니는 류경원(柳景源)의 딸 문화 유씨(文化 柳氏), 할아버지는 신광헌(申光憲), 증조할아버지는 신정표(申正標), 부인은 권정모(權正模)의 딸 숙인(淑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 후처는 조석교(曺錫敎)의 딸 숙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알려져 있다. 신면횡...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계수(季綏)·순보(順甫). 호는 회당(悔堂). 퇴재(退齋) 신우(申祐)의 6세손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신수(申壽)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형은 신석록(申錫祿)과 신택록(申宅祿)이며, 동생은 신도수(申道洙)와 신헌록(申憲祿)이다. 신원록(申元祿)[1516~1576]은 효성과 학문이 모두 뛰어났다. 11세가 되던...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중수(仲綏). 호는 정은(靜隱). 아버지는 참봉을 역임한 신수(申壽), 어머니는 주부(主簿)를 역임한 박자검(朴自儉)의 딸 의흥 박씨(義興 朴氏), 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역임한 신준정(申俊禎), 증조할이버지는 의성 입향조로 알려진 생원(生員) 신석명(申錫命), 부인은 생원 이숭년(李崇年)의 딸 흥양 이씨(興陽 李...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관료이자 의병. 본관은 아주(鵝洲). 호는 호계(虎溪). 아주 신씨 의성읍 파조(派祖) 신광부(申光富)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원록(申元祿)이고, 아버지는 신흘(申仡)이고, 동생은 신달도, 신열도이다. 신적도(申適道)[1574~1663]는 청년기에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에게 배웠다. 학문과 효행이 뛰어 났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
조선 후기 의성 지역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달부(達夫). 호는 응암(鷹巖). 아버지는 증 좌승지(贈 左承旨) 신몽득(申夢得), 어머니는 증 공조 참의(工曹 參議) 박민수(朴敏樹)의 딸인 증 숙부인(贈 淑夫人) 월성 박씨(月城 朴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역임한 신응규(申應奎), 증조할아버지는 부장(部將)을 역임한 신한(申翰), 부인은 습독(習讀)을 역임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자장(子長), 호는 회병(晦屛). 신숙범(申叔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분구(申賁龜), 아버지는 신도만(申道萬)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 김민행(金敏行)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 유씨(豊山 柳氏) 유후원(柳後元)의 딸이다. 신체인(申體仁)[1731~1812]은 3~4세 때 이웃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면 말도...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계면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곡창 지대로 널려 알려진 지역이다. 들이 넓어 고대부터 촌락이 발달하였다. 면소재지에는 시장이 발달되었고, 서남쪽으로 위천을 끼고 광활한 안계 평야가 곡창을 이루며, 의성군 서부 6개 면의 생활 및 교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교촌리·도덕리·봉양리·시안리·안정리·양곡리·용기리·...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삼국 시대~조선 시대에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 역관(驛館)이라고도 한다. 원(元)의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을 받아 참이 설치됨으로써 역참(驛站)으로 통용되었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전통 사회에서 여자는 주체적인 존재라기보다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따라서 결혼한 여인은 남편을 보필하고 집안을 건사하는 것을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고, 이를 위해 여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았다. 남편이 위급한 때는 단지수혈(斷指輸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따...
-
개항기 의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지(元趾). 증조할아버지는 오계조(吳啓兆)이고, 할아버지는 오시익(吳始益)이다. 생부는 오점근(吳點根)이고, 생모는 권희준(權希俊)의 딸 안동 권씨(安東 權氏), 양부는 오덕근(吳德根)이고, 양모는 김인술(金仁述)의 딸 안동 김씨(安東 金氏)이다. 부인은 이한성(李漢星)의 딸 숙부인(淑夫人)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고, 후처는...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숙(子淑). 아버지는 오필달(吳必達)이다. 해주 오씨는 오철조의 6대조인 오국화(吳國華) 때부터 의성에 거주하였다. 오철조(吳哲祖)[1645~1717]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이 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첫돌 때 세상을 떠나 철모르고 상복을 입은 것을 죽는 날까지 마음의 응...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옥천사(玉川祠)는 박장춘(朴長春)[1523~1595]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박장춘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백(元伯), 호는 우천(愚泉)으로 명곡 서원(明谷 書院)[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금성현서로 553-9]에 제향 된 박성양(朴成陽)의 5대조다. 옥천사의 위치는 박장춘 유허비(朴長春 遺墟碑)를 통해 짐작...
-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자기 수양을 통한 경세 치민의 도리를 밝힌 공자의 가르침이다. 흔히 유교가 내성외왕(內聖外王), 즉 안으로는 자기를 닦아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 밖으로는 그 덕을 실천하여 문물과 제도를 만들어 만민을 교화할 수 있는 지위인 임금에 오르는 것을 궁극의 경지로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초명은 경우(景雨), 자는 상지(尙之), 호는 귀은(龜隱). 기자전(箕子殿) 참봉 임희겸(任熙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임훈(任勳)이고, 아버지는 주부 임내중(任乃重)이며, 어머니는 증 승지 신흘(申仡)의 딸 아주 신씨(鵝洲 申氏)이다. 부인은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임경윤(任...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여정(汝貞), 호는 모성당(暮醒堂). 한성부 우윤(漢城府 右尹) 임훈(任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부(主簿) 임내중(任乃重)이고, 아버지는 임경윤(任景尹)이며, 어머니는 참봉(參奉) 박진경(朴晉慶)의 딸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 조분(趙賁)의 딸이다. 임세장(任世章)[1637~1695]은...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장대 서원(藏待書院)은 1610년(광해군 2) 신지제(申之悌)[1562~1624]가 낙향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강당에서 비롯되었다. 1702년(숙종 28) 장대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장대(藏臺)’라는 이름은 당시 의성 현령이었던 장현광이 지은 것으로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의 “군자는 몸 안에 재능과...
-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5일마다 열렸던 사설 시장. 장시(場市)는 조선 시대 지방민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물자를 교환하던 시장으로 장문(場門) 또는 향시(鄕市)라고도 한다. 15세기 중엽부터 이미 개설되었던 조선 시대 장시는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여 18세기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성행하였다. 개시일도 초창기에는 한 달에 2회로 보름 간격이던 것이 한 달에 6회, 5일 간...
-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근계(近溪). 소감(少監) 장사검(張思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헌(張憲)이고, 아버지는 참군(參軍) 장윤의(張允義)이다. 장일신(張日新)[?~?]은 어려서부터 완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1471년(성종 2) 무과 별시에 급제하여, 1486년 동래 현령(東萊 縣令), 진주 판관(晉州 判官)와 경주 판관(慶州 判官), 기장...
-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전통 시대 의성 지역의 저수지 관련 기록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각종 관찬 지리지와 조선 후기 이후의 읍지류(邑誌類)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보통 ‘제언(堤堰)’ 항목이 설정되어 있다. 지금의 의성군은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의성현(義城縣)·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
-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경(善卿). 호는 둔재(遯齋).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정랑을 지낸 복암(幞巖) 정경우(鄭景祐)의 5세손이다. 영일 정씨가 비안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바로 정경우부터이다. 정시교(鄭時敎)[1669~1754]는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나이 겨우 7살에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는데 혼자 힘으로 이겨...
-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개 시설(灌漑 施設). 제언(堤堰)은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강이나 계곡에 구조물을 쌓아올려 물을 저장하는 관개 시설로, 언제(堰堤) 또는 제방(堤防)이라고도 한다. 농경 국가였던 조선에서 관개 시설의 확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관개 시설에 대한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제언에 관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용궁현(龍宮縣)의 일부분[현재 안사면 지역]에 해당한다. 조선은 건국 후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 의성 지역에는 현재 1000년 이상 된 전통 사찰이 9개소나 된다. 이는 신라나 고려 시대에 이미 의성에서 불교가 매우 성행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일찍부터 의성에서 불교가 성행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은 의상 대사이다. 그가 의성에 건립했거나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만 6곳으로 수정...
-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전통 시대에 신하에게 가장 강조하고 요구하였던 덕목은 충(忠)이다. 이 덕목은 자신보다 높은 존재인 임금을 위해 행동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충신은 왕조의 교체기나 국난의 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왕조의 운세가 다하여 기울어져도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
-
경상북도 의성 지역 출신이거나 의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에서 효(孝)의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널리 알려져 있는 화랑의 세속오계에서도 효를 강조하고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효녀 지은 설화에서도 고대에 효를 중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교도(敎導)로 서민에게까지 이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