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1365
한자 溫井里洞祭
영어의미역 Communal Village Ritual of Onjeong-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제
의례시기/일시 양력 8월 15일
의례장소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신당/신체 산신당|성황당|동신당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동제.

[개설]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1리 양남이마을과 온정2리 음남이마을에서 매년 양력 8월 15일에 산신, 성황신, 골맥이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온정리는 백암온천관광특구가 있는 온정면 소태리에서 남쪽의 조금리 방면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약 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흐르는 평해 남대천 상류의 동쪽에 온정2리인 음남이마을이 있고, 서쪽에 온정1리인 양남이마을이 있다.

온정리는 인근의 온천에서 유래된 지명이고, 양남이마을은 백암산 기슭의 양지바른 곳에, 음남이마을은 음지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이 두 마을은 양남이마을에 위치한 산신당, 성황당, 동신당의 세 군데 제당에서 정월 보름과 섣달 보름에 동제를 지내 오다가 2006년부터 양력 8월 15일에 지내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세 군데 제당 중에서 산신당은 양남이마을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계곡의 개천 변에 위치하고 있다. 성황당 혹은 수구당은 양남이마을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조성된 마을 숲에 위치하고 있다. 동신당은 양남이마을의 동북쪽 가장자리 도로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소태리 방면에서 온정리로 접어드는 초입에 해당한다.

온정리 산신당은 당목, 제단,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느티나무 네 그루 앞에 2단으로 시멘트 제단을 조성하였고, 제단 위편에 작은 입석을 세웠다. 장방형의 화강암제인 입석에는 접은 한지를 금줄로 묶어두었다. 주변은 평면 삼각형으로 돌과 시멘트로 담장을 둘렀으며, 마을 쪽인 동쪽으로 출입구를 냈다. 산신당의 신격은 백암산 신령님이다.

온정리 성황당 혹은 수구당은 마을 숲 내에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에 돌과 시멘트로 방형의 담장을 두르고, 내부에는 양남이마을 서쪽 기슭에 위치한 온정리 산신당과 동일한 형태로 2단의 제단을 쌓고 입석을 세웠다. 장방형의 입석에는 한지를 접어 금줄로 묶어두었으며, 담장 동쪽으로 출입구를 내었다. 성황당의 신격은 수구신 내외이다.

동신당은 마을 입구 산사면의 하단부에 있는 느티나무와 장방형의 입석, 돌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나무는 밑동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동신당의 신격은 동구신, 골맥이신이다. 온정리 주민들은 세 군데 제당 중에서 수구신인 성황 내외를 모신 수구당을 우선으로 여기고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온정리의 산신당, 성황당, 동신당의 구성은 상당, 중당, 하당의 전형적인 제당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절차]

최근 제의를 간소화하기 이전에 온정리에서는 동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다섯 명의 헌관과 세 명의 집사와 도가를 선정하였다. 제관은 마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성씨 순으로 한 명씩 정했다. 온정리가 1리와 2리로 분구되기 전에는 양남아와 음남아를 가리지 않고 제관을 선정하였으나, 분구된 이후로 한동안 해마다 번갈아 동제를 지냈다.

최근에는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제관을 별도로 선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섯 명의 헌관 중에서 세 명은 수구당을 담당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각기 산신당과 동신당을 담당하였다. 각 당에는 한 명의 집사가 헌관을 도와 제를 지냈다.

제사는 산신당에서부터 시작하여 불을 지피는 순으로 수구당, 동신당에서 차례로 지냈다. 단작만 올리는 산신당과 동신당에 비하여 수구당에서는 세 명의 제관이 나이순으로 세 차례 잔을 올린다. 각 당에서는 19세기 말엽에 주민이 작성한 축문을 읽는다.

소지는 제관, 이장, 동민 전체의 순으로 올린다. 과거에는 제사를 마치면 철상하여 음식을 도가로 가져와 제관들이 음복하고 나머지는 제관들이 나누어 가져갔다. 당시에는 제관 외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특히 여성들에게는 제물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축문]

산신제 축문

維歲次 某年某月朔某日 日辰 幼學姓名 敢昭告于/ 白岩之神 伏惟 載彼白岩 鎭玆南阿 利人澤物 惟山之性 然由祈禱/ 自古在昔 百百藤幣 潔潔粢需 嘿應冥佑 興替補廢 尙 響

성황제 축문

維歲次 某年某月朔某日 日辰 幼學姓名 敢昭告于/ 城隍之神 伏惟 城隍在上 一洞仰止 祭祀以時 依前之規/ 謹封紙燭 誠潔粢需 庸伸虔告 臨之浪浪 俾無憂虞 永賜神佑 尙 響

동구제 축문

維歲次 某年某月朔某日 日辰 幼學姓名 敢昭告于/ 洞口之神 伏惟 洞有洞口 主帝靈神 迎至新祉 呵噤不祥/ 卜日掃坍 齊沐虔告 物雖不腆 撣竭誠力/ 神之聽之 黙應冥佑 然和且平 家道巷誦 尙 響

[부대행사]

과거에는 동제를 마친 다음날 동회를 개최하였다. 동회를 마치면 술을 한 잔씩 하고, 윷놀이와 지신밟기를 하였다. 지신밟기는 여러 날 행했으며, 16일에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였다.

[현황]

온정1리에서는 동절기에 지내오던 동제를 2006년부터 광복절인 양력 8월 15일에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자정 무렵에서 오전 10시로 변경하였다. 제관이 주도하던 방식에서 마을 주민 누구나 참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함으로써 주민의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동제 지속의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