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거일리 고분군은 거일리 남쪽의 해안에 접해 형성된 구릉에 위치한다. 거일리 개바위마을에서 남쪽으로 덕운수산공장으로 가는 진입로의 왼쪽 골짜기 일대에 자리한다. 안동대학교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신라 토기인 대부호와 굽다리접시 등이 수습됨에 따라 고분군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식으로 발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검성리 중금성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나곡천을 건너 직진하다가 북면 나곡4리 태봉마을로 가는 길로 들어서서 나곡천을 다시 건너면 서쪽으로 검성리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하금성마을을 지나 중금성마을에 이른다. 여기에서 상금성마을이 있는 남쪽으로 가다 보면 서쪽에 백산지골과 분지골을 남북으로 둔 해...
-
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현재의 울진 지역은 고려시대에 들면서 남쪽의 평해와 북쪽의 울진이 구분되어 읍격의 변화를 보인다. 남쪽의 평해는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적 상황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면서 북쪽의 울진과 구분되어 문헌에 기록되어 나온다. 이때부터 울진과 평해는 서로 다른 행정체계를 분명히 보인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 산성. 고모산성에 관한 첫 기록은 『여도비지(與圖備志)』 평해군 고성조에 ‘고모성(姑母城)’이라는 성의 이름만 확인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평해군 성지조(城池條)에도 ‘고성’이라는 성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후 『강원도읍지』·『평해군지』·『울진읍지』 등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울진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죽변읍에서 해안의 구 국도를 따라 3㎞ 가량 북상하면 신화리와 고목리쪽에서 흘러내리는 하천과 마주치게 된다. 여기서 하천을 따라 1.2㎞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구 국도에서 고목3리 감나무골로 들어가는 소로(小路)에 닿는다. 이 소로의 오른쪽에 나직하고 완만한 경사의 산이 있다. 고목리 고인돌군은 이 산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북면 고목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고목리 요지라고 하였다. 고목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고목리 요지 두 기는 고목리 지장동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죽변면 소재지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북면으로 가다 보면 동류하는 계천에 의해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나타난다. 그 뒤쪽으로 해발 30~40m 정도의 얕은 구릉 아래에 고목리 기곡동과 터골이 형성되어 있다. 고목리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 뒤쪽에 있는 얕은 구릉 위에 위치한다. 고목리 유물산포지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古墳)은 글자 그대로 옛무덤을 뜻하기도 하나, 고고학에서는 특정 시기의 무덤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고고학 자료로 볼 때,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장례법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무덤의 양식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든 무덤, 특히 고분의 구조는 크게 매장시설(埋葬施設)·봉분(封墳...
-
일반적으로 고분(古墳)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옛 무덤을 일컫는다. 고분은 입지·외형·규모 및 시설, 그리고 내부 구조와 피장자(被葬者)·부장품(副葬品) 등 많은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고분 및 출토 유물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 생활 풍속, 장법,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울진군의 고분은 그 분포 상황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산성. 고산성 일대에는 산성이 위치해 있는 고성리의 지명과 더불어 산성의 북쪽에 있는 ‘산성교’, 성 아래 마을인 ‘성밑’, ‘성저동’, ‘성안’ 등 산성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전한다. 고산성에 관한 문헌 자료를 보면, 지금의 울진읍내에 있었던 고읍성이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버리자, 한성판윤 장순열(張巡...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마을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고성리 출토 석촉은 1960년대 초에 출토되었다. 당시 울진교육청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출토 상태에 대해서는 당시의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석촉은 모두 4점으로 재질은 점판암이며, 단면은 아주 얇은 편육각형(扁六角形)이다. 이 가운데 1점은 유경식(有莖式)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읍성지. 고읍성에 관한 문헌 사료의 기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현동오리(在縣東五里)’라 하여 당시 시점을 고산성(古山城)에 읍치를 두고 구 읍지로서 울진읍성[고읍성]을 바라보았다. 둘째, 고읍성의 둘레는 1,210척으로 기재되어 있다. 1,210척을 당시의 교정 척도로 환산하면 약 377m이다...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시설(墓域施設)·무덤방[墓室]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 혹은 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울진현의 치소인 토축 읍성지. 고현성에 관한 기록은 오래된 지리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1631년 간행된 『울진군지(蔚珍郡誌)』의 울진읍 성곽 고현성조에서 ‘재현동현내동해곡토축위읍려공민왕이십년임자위왜구분선이읍우왕숙(在縣東縣內洞海曲土築爲邑麗恭愍王二十年壬子爲倭寇焚燹移邑于王淑)’으로 확인된다. 고려 신...
-
조선 중기 현풍곽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이곤(爾坤). 시조는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를 지낸 포산군(苞山君) 곽경(郭鏡)이고, 아버지는 참봉 곽지정(郭之亭)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로 김윤의(金潤義)의 딸이고, 부인은 영해박씨로 박영조(朴寧祖)의 딸이다. 큰아들은 보공장군(保功將軍) 곽자견(郭自堅)이고, 둘째 아들은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곽익(郭益)이다. 154...
-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경상북도 울진군 망양정과 월송정을 포함한 관동팔경 병풍 그림. 각폭 세로 59㎝, 가로 30.5㎝ 크기의 8폭 민화 병풍으로,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
조선 후기 문인 허필(許佖)[1709~1761]이 그린 월송정을 포함한 관동팔경 병풍 그림. 『관동팔경도병』은 각 폭 가로 42.3㎝, 세로 85㎝의 크기의 8폭짜리 실경산수화 병풍이다. 각 그림마다 화제(畵題)와 풍경의 느낌을 묘사한 시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관동팔경도병』의 「월송정」은 소나무 숲과 모래 해변이 펼쳐진 왼쪽으로는 굴미봉으로 여겨지는 바위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국도 36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금강송면 소재지인 삼근리가 나오고, 여기서 직진하여 큰 고개를 넘으면 낙동강 수계가 시작되는 광비천과 만난다. 사행하는 광비천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옥방휴게소가 나온다. 광회리 유물산포지는 이 일대에 2개의 군으로 구분되어 위치한다. 하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받침돌·묘역시설·무덤방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상 크게 북방식·기반식·뚜껑식·위석식 등 4종류로 나뉜다. 지금까지 울진 지역에서 지표 조사로 확인된 70여 기 가운데 북방식과 위석식은 보이지 않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 터. 근남면 구산리에서 백자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구산리 요지라고 하였다. 구산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백자 편을 근거로 볼 때 조선 후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구산리 요지는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의 유물산포지. 왕피천이 구고동마을에서 둥글게 만곡하는 동쪽 끝에 독골이라는 작은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를 따라 서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비교적 넓은 곡간평야에 형성된 원심동이 나온다. 시름바위골과 원심골 사이에 형성된 원심동의 서쪽에 강릉유씨 민묘가 있다. 구산리 유물산포지는 이 민묘 앞...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황보천을 건너 기성면으로 가다가 구산리로 가는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구산마을 뒤에 구미골이 길게 남동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구산리 유물산포지는 이 골짜기의 아래쪽 끝부분의 좌우 능선 해발 30~45m에 위치한다. 이 능선의 정상은 해발 50m 전후...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탄생한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화석 인류의 전개, 자연 환경의 변화, 석기의 발달 단계에 따라 전기·중기·후기로 나뉜다. 대체로 전기는 400만~12만5천년 전, 중기는 12만5천년 전~4만 또는 3만5천년 전, 후기는 4만 또는 3만5천년 전~1...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통치구역. 대부분의 문헌 기록에서 평해군이 원래 고구려의 ‘근을어’, 즉 신라 땅이 아닌 본래 고구려의 땅이라고 하고 있다. 고구려가 468년(장수왕 56)에 삼척 지방을 장악하고 481년(장수왕 69) 미질부[현 경상북도 흥해]까지 남하하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이때 쯤 중간에 위치한 평해가 잠시 고구려의 지배...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 섶밭밑마을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금음리 고분군은 섶밭밑마을의 북쪽에 있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바다를 향해 뻗은 구릉의 상부와 사면에 분포한다. 봉분이나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신라 토기편만 산재되어 있다. 지형이나 출토된 토기편으로 판단하면 신라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주체로 한 고분들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가다 남대천을 건너 지방도 924호선을 따라 백암온천으로 가는 국도 88호선으로 가기 직전에 군도를 따라 직진하면 금천리로 가게 된다. 금천리 유물산포지는 금천3리 노느실마을에 조금 못 미쳐 동쪽에 있는 해발 156m 정상에서 남서로 뻗은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의 앞으로는...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 토호인 금초(今草)가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 고려 무신정권기에 농민과 천민이 주체가 되어 발생한 농민봉기는 고려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였다. 무신의 난 이전에도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이 산발적으로 지배층에 저항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천민들까지 참가하는 양상으로 발전되면서 전국적...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토축 읍성. 기성읍성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평해군 읍토성조에 ‘주회이백구십사보(周回二百九十四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평해의 구호(舊號)는 기성(箕城)으로 1357년(공민왕 6)에 기성현이 평해군으로 편입되면서 군소재지를 현재의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토축 읍성은 기성현 시절 군의 치소였던...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기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 가마 터.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기양리 589-1번지 터밭 일대와 기양리 731-3번지 옹기점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589-1번지를 기양리 요지Ⅰ, 731-3번지를 기양리 요지Ⅱ라고 부른다. 기양리 요지 Ⅰ·Ⅱ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단지, 지표 조...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기양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가다 매화면소재지인 매화리에서 매화천을 건너 남쪽으로 가면 기양2리 여양동이 나온다. 여양동 옹기점들로 건너가서 매화천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에 충적대지와 충적대지의 동쪽 끝에 해발 100m 전후의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기양리 유물산포지는 시시골과 바까미골 사이에 형성된...
-
조선 전기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천뢰(天賚), 호는 만은(晩隱).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이다. 중시조(中始祖)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녕군(金寧君) 김시흥(金時興)이다. 아버지는 밀양부사(密陽府使) 김지을(金之乙)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로 호조참판(戶曹參判) 김한성(金漢聖)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황문경(黃文景)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지장서재에서 학문을 닦는 한편 병서를 탐독하고 무예를 익혔다. 20세 때부터는 쇠도리깨 쓰는 법과 말 타는 법을 연습하여 인근 가치산(迦治山) 정상을 뛰어 오르내리는 것이 비호와 같았다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 중의 일부는 울산을 거쳐 육로로 북상하고, 또 다른 부대는 강릉에 상...
-
고려 후기 평해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예의판서(禮儀判書) 김원로(金元老)이다. 평해군수로 재직할 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로 바꾸었는데, 동해로 뛰어든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의 절개를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시 한 수를 써서 벽에 걸어둔 채 행방을 감추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
-
통일신라시대 울진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배권을 행사한 진골 귀족. 원성왕(元聖王)의 즉위와 김주원의 명주 퇴거는 무열왕계에서 부활 내물왕계로 왕권이 실질적으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이때부터 사실상 신라 하대가 전개되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명주로 퇴거한 김주원은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하여지고 아울러 강릉 등 인근 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지방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함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령 김태희의 선정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82-4번지 죽변마을에 있으며, 울진읍 읍내에서 지방도 917호선을 타고 북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하당리 삼거리에서 두천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북면 두천리 외말래의 두천변에 있는 울진 내성행상불망비(內城行商不忘碑) 좌측에 있다. 김태희 선정비는 장방형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나곡리 고인돌은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골말의 북쪽에 있는 나직한 구릉 아래인 산기슭에 위치한다. 이곳은 골말과 나리마을 사이에 동서로 나지막하게 돌출해서 가로막고 있는 산 아래로 가파른 경사가 끝나고 나직한 넓은 대지로 이어지는 곳으로 대지 아래로는 세천이 흐르고 있다. 고인돌은 울진군 북면 나곡2리 6...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나곡리 유물산포지는 동쪽과 서쪽 두 곳으로 나뉘어 떨어져 있다. 국도 7호선을 따라 북면 소재지를 지나면 나곡천을 못 미쳐서 서쪽 능선 아래에 새마을 창고가 있는 나곡3리 오동이 있다. 유물산포지1은 서쪽의 해발 116m인 오촉산에서 동해 쪽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린 해발 25m에서 1...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태실.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태를 묻었다. 태실은 아기 태실과 가봉 태실로 구분된다. 아기 태실은 최초로 설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어릴 때부터 어버이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고기를 잡아 공양하여 병에 차도를 얻었다고 한다. 18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살이를 하였고 그 후 모친상을 당하여서도 여막살이를 하였다. 25세 때 진사시에 등과하여 소문이 고향에 자자하였으며, 관찰사가 초빙하여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천(伊川)교수가 돌아가자 요승(妖僧) 학조(學...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영양남씨 입향조. 본관은 영양(英陽).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이다. 시조는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며, 분파조는 진사 남유지(南有智)[일명 삼기(三起)]이다. 아버지는 남봉우(南鳳羽)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판관(判官)을 지낸 장온고의 딸이다. 부인은 김을환(金乙環)의 딸이다. 목사(牧使) 남회(南薈)와 생원(生員) 남매(南邁) 두 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현감 남신(南䢻)의 7세손이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만호(萬戶) 남몽길은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의 수하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김유(金瑬) 등과 함께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으로 책봉되고 녹권(錄券)이 하사되었으며 벼슬이 부사직(副司直)에 올랐고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추증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증손이다. 남사고는 천품이 재주 있고 사리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항상 『소학』을 책상에 두었고 특히 역학, 천문, 지리에 정통하여 기(氣)의 묘를 능수능란하게 관찰하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이 『주역(周易)』을 논하다가 남사고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남...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송정(松亭). 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의 넷째 아들이자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아우이다. 1417년(태종 17) 과거에 등재하여 1425년(세종 7) 서사(筮仕)에 올랐고, 1439년(세종 21) 통찬(通贊)에 올랐으며, 1440년(세종 22) 승훈(承訓), 1444년(세종 26) 감찰이 되었고, 그 해 9월에 용...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할아버지는 남광우(南光佑)이고, 할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아버지는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안윤(安玧)의 딸이다. 부인은 증지평(贈持平) 경안(景顔)의 딸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오른갈[노음] 옛집을 찾아가 문안을 올리는데 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시조는 신라 때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고, 분파조는 고려 때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남홍보(南洪輔)이다. 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宗簿侍令判事) 남승고(南承顧)이다. 부인은 강릉최씨(江陵崔氏)로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맏아들 남호(南顥)는 만호공파(萬戶公派)의 시조가 되었으며, 둘째 아들 남이(南頤)는...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희백(姬伯)이다. 송정공(松亭公) 남수(南須)의 후손으로 임천공(臨川公) 남세영(南世英)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남치홍(南致鴻)이다. 남치일(南致馹)의 양자가 되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우며 일찍부터 독훈장을 두고 한마음으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많은 책을 읽고 학문에 힘써 일가를 이루었다. 1876년(고종 13...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현령 남각(南閣)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치인(南致仁)이고, 할아버지는 남장손(南長孫), 아버지는 남징(南澄)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참봉 남언륜(南彦倫)이다. 선조 때 진사로 장사랑(將仕郞)을 역임하였다. 1590년(선조 23) 세거지인 선사(仙槎)[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부]에서 경상북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영의공 남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예빈경 남혁(南奕)이고, 할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 남승고(南承顧)이다. 아버지는 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세종(世宗) 때 정읍현감(井邑縣監)으로 재임하면서 청백리로 존경을 받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충순 남명(南溟)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남기수(南麒壽)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남응건(南應乾)이며, 어머니는 철원최씨로 최윤호(崔潤湖)의 딸이다. 부인은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이종원(李種元)의 딸이다. 광해군 때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로 재임 중에 인목대비 김씨가 서궁에 유폐된 것을...
-
조선 전기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단천군수 남득공(南得恭)이고, 할아버지는 제주목사를 지낸 정일재(精一齋) 남회(南薈)이다. 아버지는 생원 남계안(南繼顔)이고,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교위 남가(南稼)의 아우이다. 부인은 거제반씨(巨濟潘氏)로 반득청(潘得清)의 딸이다. 성종(成宗) 때 정의(旌義)를 하였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내서(乃瑞), 호는 목은(牧隱). 영양군(英陽君) 남홍보(南洪輔)의 후손으로 진사 남응량(南應亮)의 7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춘적(南春迪)이고, 할아버지는 남석희(南錫羲)이다. 아버지는 성공(聖公) 남기목(南基霂)이고, 어머니는 웅천주씨로 주봉양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최씨로 최배규(崔配奎)의 딸이다. 일찍이 경사...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예빈경 남혁(南奕)이고, 할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 남승고(南承顧)이다. 아버지는 신호위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이고, 어머니는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울릉도 해안에 도적들이 자주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자 1438년(세종 20) 수백 명의 사람을 데리고 가서 도망하여 숨어 있던 도적들을 수색하여 김...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정일재(精一齋). 할아버지는 현감 남봉우(南鳳羽)이고, 아버지는 단천군수 남득공(南得恭)이다. 어머니는 김을환(金乙環)의 딸이고, 부인은 풍산유씨로 직장 유정(柳汀)의 딸이다. 1416년(태종 16) 진사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다. 이 해 김맹헌(金孟獻)·이근백(李勤伯)·남간(南簡) 등과 더불어 동주계를 만들어 그...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 매림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노음리 고분군은 근남면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는 왕피천의 남안에 형성된 들판의 남단에 위치한 노음리 매림동과 그 북편의 개눕들이 접하는 곳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이 울진군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작성할 때 실시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고분군에는 현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근남면 노음리 일대에 있는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노음리 요지라고 하였다. 노음리 요지는 노음초등학교 뒤편 밭 일대에 있는데, 정확한 소재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 524-1 일대이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의 근남면 방향으로 약 2㎞ 정도를 오다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왕피천이 동해와 합류하기 직전의 남쪽에는 장평들·장승들·개눕들 등과 같은 매우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평야의 동쪽·서쪽·남쪽은 해발 40~200m 정도의 구릉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노음리 유물산포지는 이곳에 두 곳으로 나뉘어 위치한다. 유물산포지1은 당두마을 북서쪽에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조개더미. 조개더미는 옛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의 껍질이 쌓인 곳을 말한다. 이 안에는 조개 껍질뿐만 아니라 물고기뼈나 짐승뼈 등 당시 사람들이 먹은 뒤 버린 온갖 자연 유물과 부러진 바늘이나 용도 폐기된 작살과 낚시 등 살림살이 가운데 못 쓰게 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조개더미 유적은 당시의 환경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던 망대(望臺). 능허(凌虛)는 ‘허공을 가르다’, ‘비상하다’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절경에 위치한 정자나 누각 등에 많이 사용하던 관용어였다. 울진읍 고성리 산성 동편의 옛 울진읍성 요새지에 있었던 망대이다. 능허대 터로 추정되는 울진읍성의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있고, 서쪽에는 청고동(靑皐洞)이 있다. 강 건너에는 가원...
-
평해황씨 해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황응청의 문집 목판.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1524~1605]은 조목(趙穆), 박성(朴惺), 이산해(李山海) 등과 교유하며 평해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나 아들 셋이 모두 앞서 타계함으로써 문집이 1권 1책밖에 간행되지 못하였다. 1권 1책의 목판으로 목판대는 19.2㎝(세로)×42.8㎝(가로)이며 반엽광곽(...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덕구리 소지골에 있는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덕구리 요지라고 하였다. 덕구리 요지는 덕구리 덕구저수지 둑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거리의 소지골 건너편에 있는데, 정확한 소재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산117번지이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북면 방향...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덕산리 원덕산마을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은 덕산리 원덕산마을의 남쪽 앞산에 위치한다. 산은 독립된 형상으로 그 동사면에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잔해가 발견된다. 덕산리 고분군은 2004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한 울진군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을 위해 실시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고분군이 분포하는 원덕산마을 앞산의...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후리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덕신리 고분군은 덕신리 후리동의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후리동에서 울진 쪽으로 난 국도 7호선 좌우 능선의 상부와 사면, 그 사이 계곡부에 분포한다. 국도 7호선의 울진-영덕 간 4차선 확장공사로 인해 고분군의 일부가 파괴됨에 따라 2002년 6월부터 12월까지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의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후리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산포지. 민무늬토기산포지는 민무늬토기들이 흩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고고학적 용어로, 청동기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유구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동해안 국도 7호선 주위에 있는 덕신리 후리동에서 국도를 따라 300m 가량 북쪽으로 가면 도로 좌우의 산이 간격을 좁혀 병목처럼 작은 계곡을 이루는...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후리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동해안 국도 7호선 주위에 있는 덕신리 후리동에서 국도를 따라 300m 가량 북쪽으로 가면 도로 좌우의 산이 간격을 좁혀 병목처럼 작은 계곡을 이루는 곡저평야가 있다. 덕신리 유물산포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동쪽 산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2000년 국도 7호선 확·포장을 위한 지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 웃마을과 아랫마을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덕천리 고분군은 덕천리의 울진원자력발전소 남쪽에 있는 웃마을과 아랫마을에 걸쳐 위치한다. 울진원자력발전소 후문 진입로 동쪽 구릉과 평지 일대이다. 이 밖에 울진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곳에도 상당수의 신라 고분들이 분포했다고 한다. 전자를 덕천리 고분군2, 후자를 덕천리 고분군1로 나누어 부른...
-
1871년 경상북도 울진군의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영해 이필제의 난에 가담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고종이 즉위하면서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적으로 산적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농민층 안정을 위한 토지 개혁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강행된 경복궁 중건 사업으로 원납전(願納錢)을 징수하고 당오전(當五錢)을 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외말래마을 주변 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봉토분. 울진군 북면 두천리 외말래마을을 휘감고 도는 두천천의 북편에 형성된 산지의 산자락에 분묘가 있다. 봉토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봉분이 거의 삭평되고 내부 주체가 드러나 있다. 회곽은 장축 길이 200㎝, 단축 너비 100㎝, 높이 52㎝이며, 벽체의 두께는 21㎝이다. 남아 있는 상태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자기 가마 터. 북면 두천리 사기점마을에 있는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두천리 요지라고 하였다. 두천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자기 편을 근거로 살펴볼 때 조선 후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두천리 요지...
-
임진왜란 중 1593년 경상북도 울진군 덕천리 마분동에서 김언륜이 왜군과 벌인 전투. 김언륜은 1565년(명종 20)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동네 지장서재(智藏書齋)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틈만 있으면 병서 읽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27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울진에서는 고읍성 전투와 덕천리 분투골 전투가 치열하게...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죽포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매화리 고분군은 울진군의 남쪽에 있는 매화면의 소재지인 매화리의 동편 강당골을 둘러싼 해발 50m 내외의 능선에 위치한다. 남쪽에 새로 건설된 국도 7호선의 매화교차로가 있다. 2001년 11월 16일에서 12월 26일까지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구덩식 돌덧널무덤 1기가 발굴 조사되어 신라 토기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명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울진읍 명도1리 도청마을 뒤쪽에는 동쪽으로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세천이 흐르며, 그 주변에는 논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명도리 고인돌군은 도청마을 뒷산 주변에 4기가 각각 떨어져 위치한다. 모두 뚜껑식 고인돌이다. 1호 고인돌은 명도1리 130번지 전병정의 집 마당에 위치한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크...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두산(斗山). 사문진사공(四門進士公) 박원(朴元)의 15세손으로 아버지는 박대곤(朴戴昆)이다. 1607년(선조 40) 경주판관(慶州判官), 1618년(광해군 10) 호군(護軍), 1624년(인조 2) 선천부사(宣川府使)를 거쳐 가선대부무령군(嘉善大夫務寧君)에 봉해져 이등공신이 되었다. 1625년 충청병사(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군.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 방비에서 북쪽 건너골과 벼랑골 사이 4부 능선쯤에 있다. 회곽묘가 확인되는 봉토분이 있고, 그 주변에 무연고 분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확인된 회곽묘는 너비 1m, 높이 42㎝ 정도이고 길이는 알 수 없다. 회곽묘는 도굴되었다. 조선시대 울진 남쪽에 자리를 잡았던 사대부, 또는 유력 세...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중소형 성곽. 백암산성(白巖山城)은 백암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1㎞ 가량 떨어진 ㅅ자형 가지능선에 축성되어 있으며, 험한 지형을 이용한 연곽식(連郭式)의 내외성(內外城)을 갖춘 산성으로, 울진과 봉화, 영양의 내륙을 비롯해 동해로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신라시대 구대림(丘大林), 황락(黃...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봉산리 선사유적 북쪽으로는 태백산맥 금장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정명천(正明川)이 있다. 정명천 하구에는 충적지대와 넓은 사구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봉산리 선사유적은 정명천의 남쪽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려 바다까지 형성된 해발 45~67m의 낮은 구릉지대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봉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 전기에는 더욱 정비되어 서울의 남산인 목멱산(木覓山)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국경과 해안에서 올라오는 봉수 노선은 크게 직선 봉수[直烽]과 간선 봉수[間烽]로 구분된다. 직선 봉수는 기간 선로이며, 간선 봉수는 직봉과 직봉 사이의 중간 지역을 연결하는 보...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옹지마마을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 봉평리 고분군은 봉평신라비 남쪽 개천 건너편의 옹지마마을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군의 주변에 봉평신라비전시관이 건립되어 2011년 6월 개관하였다. 현재 고분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출토되어 신고된 유물들로 보아 6세기 무렵의 구덩식 돌덧널무덤 또는 앞트기식 돌덧널무덤들이 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봉평리 고인돌은 울진읍 명도2리 아산마을과 죽변면 봉평2리 반정마을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아산마을에서 반정교를 지나자마자 도로변 왼쪽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이 있다. 고인돌은 이 산의 구릉 하부에 자리한 민묘 뒤쪽에 위치한다. 앞에는 세천이 흐르고 논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기반식 고인돌로 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비리마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봉평리 유물산포지는 봉평리 초평동 앞으로 흐르는 작을 개울의 북쪽 충적지에 위치한다. 뒤에는 해발 33.4m 구릉 정상에서 남쪽으로 세발 쇠스랑처럼 뻗어내린 능선이 있으며, 이 능선의 북쪽에는 목가골이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낮은 구릉이 골실골을 가운데에 두고 ‘∩’꼴을 이룬 골짜기의 앞...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 시설·무덤방[墓室] 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에 의해 크게 북방식·기반식·뚜껑식·위석식 등 4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기금까지 발굴 조사되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받침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상 크게 북방식·기반식·뚜껑식·위석식 등 4종류로 나뉜다. 지금까지 울진 지역에서 지표 조사로 확인된 70여 기 가운데 북방식과 위석식은 보이지 않고...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불망비 및 선정비. 부구리 비석군은 모두 6기이며, 부구리 일대에 있던 선정비들을 옮겨 세운 것으로 크기에 맞추어 정렬되어 있었으나 2010년 10월 울진 봉평 신라비 전시관 비석거리로 이전하였다. 마모가 심하여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비대는 모두 새로 만들었다. 북면 봉평리의 울진 봉평 신라비 전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부구리 가는골과 감나무골마을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가는골에 있는 요지를 부구리 요지Ⅰ, 감나무골마을에 있는 요지를 부구리 요지Ⅱ라고 하였다. 부구리 요지 Ⅰ·Ⅱ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자기 편을 근거...
-
경상북도 울진군을 지나가는 통일신라시대 동해안 교통로. 신라는 삼국통일 후 지방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교통로를 정비하였다. 『삼국사기』 권37 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조(三國有名未詳地分條)에는 경주 왕경을 중심으로 한 북해통(北海通)·염지통(鹽池通)·동해통(東海通)·해남통(海南通)·북요통(北傜通)이라는 5통의 교통로가 열거되어 있다. 5통은 왕도를 중...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사계리 평지말 일대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사계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사계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자기편을 근거로 살펴볼 때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사계리 요지는 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기성면 소재지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가다 사동3리 하사동로 들어가면 마을이 동해에 붙어서 형성되어 있다. 마을 뒤쪽에는 해발 74m의 야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다. 사동리 유물산포지는 절골로 불리는 이 구릉의 남쪽 골짜기 일대에 위치한다. 2002년에 처음으로 조사할 당시에는 현재 하사동이 있는 해안...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 때 강원도 평해군 소속 3개소의 봉수 중 하나였다. 조선 전기에는 북쪽의 근남면 산포리 전반인산 봉수대에 신호를 전달하는 단일 노선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쪽의 기성면 봉산리 표산 봉수대에 응하는 새로운 노선이 신설되었다 한다. 사동리 상사동의 북서쪽 해발 94.0m의 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제단 터.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오곡의 우두머리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울진 지역에서는 매년 2월과 8월, 동지와 섣달 그믐날에 수령이 임금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와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또한 사직단에서 지냈다. 사직단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의 월...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고려 전기 토축 읍성지. 산내성에 관한 사료로는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산내성조에 있다.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長山城)이 신라 말 왜구에 의해 폐허가 되자, 고려 초에 장산성에서 내륙으로 서쪽 5리 떨어진 산내성에 축성하여 이읍(移邑)하고 군민을 위무하여 이산(離散)되었던 민심을 결집하여 대읍을 이룩하였다. 성종 때 삭방...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망양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 산포리 선사유적은 왕피천이 동해로 유입되는 하구변의 얕은 구릉에 위치한다. 산포리 선사유적은 2003년 울진군에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망양정 공원정비사업부지에 대한 경북문화재연구원의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는 9~10월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망...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 새방이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왕피천의 한 지류인 광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불영사가 있고, 불영사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금강송면 소재지인 삼근리에 이른다. 삼근리의 서쪽에서 심하게 사행하는 곳을 지나면 삼근2리 새방이마을이 나온다. 삼근리 유물산포지는 새방이마을의 남쪽에 형성된 해발 240~27...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 아니골과 버기미골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기성면 소재지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사동리가 있고, 여기서 서쪽으로 삼산리로 가는 새 도로가 나 있다. 삼산리 고분군은 이 도로를 따라 한곡재를 넘어 나오는 도로 오른쪽 능선에 위치한다. 1991년 안동대학교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2004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삼산리 고인돌은 삼산1리를 지나는 척산천의 북쪽 지류인 세천변 평지에 위치한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크기는 260×140×140㎝이며, 장축은 남서-북동 방향이다. 남쪽 단면이 원래의 덮개돌 밑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 상밤티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분묘군. 후포면 삼율리 상밤티마을 북쪽 능선 너머 자반골 끝자락에 있다. 봉토분 20여 기로 구성되었고, 내부 구조는 알 수 없다. 봉분은 많이 삭토되었고, 주변이 경작지로 개간되어 분묘군의 흔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곳곳에 도굴 흔적이 있고, 주변에서 청자편 등이 채집되었다. 고려시대 울진 남쪽 지...
-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 단서암(丹書岩)에 있었던 매향비. 매향(埋香)은 미륵불(彌勒佛)의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매우 귀한 향·약재(香·藥材)인 침향(沈香)을 마련하기 위하여 향목(香木)이나 송목(松木)·진목(眞木)·상목(橡木) 등을 갯벌에 묻는 의식이며, 침향한 향을 매개로 장래에 하생(下生)할 미륵불을 만나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행위이다. 연해지방민들은 매향의식을 통하...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각.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동 지담(池潭) 위에 있다. 1774년(정조 19)에 몽천서원(蒙泉書院) 옆에 창건(創建)된 비각이다. 삼조어비(三朝御批)란 효종이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에게 내린 비지(批旨)와 숙종이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에게 내린 비지, 그리고 정조가 황림(篁林) 윤사진(...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상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 터. 북면 상당리에서 백자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상당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상당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백자편을 근거로 조선 후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상당리 요지는 북면 상당리 평지마을에서 서쪽으로 사기...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객사. 관(館)은 보통 객관(客館) 또는 객사(客舍)라고 불리며, 다른 지역에서 온 관원들을 대접하던 장소이다. 조선시대에는 객관에 궐패(闕牌: ‘궐(闕)’자를 새겨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셔 두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객사인 선사관은 동대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선사관의...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외침에 대비하여 흙과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우리나라는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산지로 되어 있어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옛부터 자연적·인공적 외침에 대비하며, 스스로의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왔다.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외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지. 성산성에 관한 문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성산성조에 “현(縣)의 남쪽 성산동에 석축유지(石築遺址)가 있으나 지금은 사실을 알 수 없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의 정확한 존폐 여부와 운영 기간 등을 알 수 없다. 성이 위치한 구산리는 과거에 잠미동[잘미동]으로 불...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왕피천의 한 지류인 광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금강송면의 소재지 삼근리에 이른다. 삼근리에서 상류 쪽으로 더 가면 광천의 지류인 대광천을 만나게 되고, 이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소광리 후곡동이 나오는데, 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대광천의 서쪽 지류를 따라 호음달마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평해군(平海君) 손익담(孫翼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고, 어머니는 정선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로 감찰 신자의(申子儀)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
신라시대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평해손씨 입향조. 895년(진성여왕 9) 평해를 식읍으로 받아 경주에서 평해로 이주한 평해손씨 울진 입향조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사도(司徒) 손직(孫稷)의 후손이다. 신라 육부(六部) 촌장 중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가 다른 촌장과 함께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추대하여 사로국을 건국함으로써 개국공신이 되었고, 32년에 그...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수곡리 막금마을 북쪽의 폐교된 수곡초등학교 교정 서쪽에 2기의 고인돌이 위치한다. 그중 1기는 운동장에 접해 있는데 주변을 철책으로 둘렀다. 덮개돌의 크기는 260×185×45㎝로 장방형의 화강암 재질이며 장축은 동서향이다. 덮개돌 아래로 할석으로 된 받침돌 네 개가 받치고 있는 기반식 고인돌이다. 특히...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 묘역시설(墓域施設), 무덤방[墓室] 등의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 따라 크게 북방식, 기반식, 뚜껑식, 위석식 등 네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지금까지 울진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시설·무덤방[墓室] 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에 의해 크게 북방식·기반식·뚜껑식·위석식 등 4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기금까지 발굴 조사되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바위그림.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381-1번지에는 천연기념물 제96호인 울진의 굴참나무가 있다. 수산리 바위그림은 이 굴참나무가 있는 뒷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산 정상부에서 내려다 보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왕피천이 흐르고, 산의 정상부에는 군참호가 있다. 바위그림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구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신석기시대는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 경제를 배경으로 정착 생활·토기·간석기 등으로 대표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농경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토기의 제작이나 간석기와 같은 신석기 문화의 특성을 갖춘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농경보다는 토기군이 출현한 때부터 기원전 8...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안주씨(新安朱氏) 사직공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한적과 고문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주요 한적은 주환벽(朱奐壁)의 『고파집(古坡集)』, 주필혁(朱必赫)이 쓴 『기휴재문인록(棄休齋門人錄)』, 황여일(黃汝一)이 지은 『효자전(孝子傳)』 등이다. 이것 외에도 주련(朱鍊)이 받은 교지와 시권 등의 고문서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한적은 모...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북면 신화1리 새말마을 한가운데로 국도 7호선이 나 있는데, 이 국도의 서쪽으로 계곡과 산이 형성되어 있다. 계곡 옆 산 구릉 위에 5기의 고인돌이 각각 떨어져서 분포하고 있다. 1~3호 고인돌은 거의 일직선상으로 하나의 군을 이루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세천이 흐르고 동쪽은 산으로 둘러져 있다. 1호 고...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 새말에 있는 고려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북면 소재지로 가다 보면 신화1리 새말이 나오는데, 유적은 새말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두 갈래로 뻗은 해발 40m의 구릉 사이에 있다. 신화리 유물산포지는 2000년 국도 7호선 확장을 위한 예비 조사 때 도로 예정 지역 안에서 조갯날돌도끼·토기편 등을 채집함에 따라 알...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
신라시대 울진 지역이 속했던 지방통치구역. 신라시대 실직주가 설치되었던 지역은 원래 울진·평해와 강원도 삼척까지를 포함한 소국(小國)의 하나로 실직국(悉直國), 또는 실직곡국(悉直谷國)이라 불렸다. 실직국은 음즙벌국(音汁伐國)과의 영토 분쟁을 계기로 102년(파사이사금 23) 신라에 복속되었다. 주(州)는 특정 지역명이 덧붙여져 있고, 신라의 대외팽창과정에 따라 설치·이동되는 것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던 신라시대 국가제사인 소사(小祀)에 편제된 산. 악발(岳髮)은 발악(髮岳)이라고도 한다. 우진야군(于珍也郡)[지금의 울진군]에는 악발[일명 발악]에 산천 신앙이 있었으며, 이 지역의 전통 신앙인 산천 신앙은 신라의 국가적인 명산대천제(名山大川祭)에 소사로 편제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각 지역의 신앙 체계와 토착 세...
-
조선 중기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순흥안씨 입향조. 안오상은 사초 문제에 연좌되어 평해군수(平海郡守)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에 정착하여 순흥안씨 평해파를 형성하였다. 1831년 대홍수로 인하여 30세손 안하원(安夏源)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자산마을로 이주하여 순흥안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본관은 순흥(順興)....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날아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안오상의 신도비. 오곡리 날아실마을 동편 김질골과 제사골 사이의 구릉지 남쪽 끝자락에 있다. 안오상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축(安軸)의 후손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었으나 치적을 인정받아 화(禍)를 면하였고, 1548년(명종 3) 평해군[현 평해읍]에 들어와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가 되...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울진현 고적 안일왕산성조에는 ‘석축주칠백오십삼척금폐(石築周七百五十三尺今廢)’로 기록되어 있다. 안일왕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작 당시인 1530년에는 이미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일왕성의 축성 기원과 연대에 대해서 『울진군지』에는 ‘실직왕(悉直王)이...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소재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증조할아버지는 호장 안득재(安得財)이고, 할아버지는 호장 안희서(安希諝)이다. 아버지는 봉익대부밀직제학에 추증된 안석(安碩)이고, 어머니는 검교군기감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부인은 검교군기감 문구(文龜)의 딸이다. 1299년(충렬왕 25) 성균관시에 급제...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과 원. 서울에 있는 중앙관서에서 지방 시찰 또는 지방에서 중앙과의 행정 연락을 위한 교통 통신과 그 밖에 기찰사무(譏察事務)를 관장하는 지방분장소에는 역(驛)이 있었다. 이러한 역원제도는 487년(신라 소지왕 9)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려 초 1079년(성종 2) 6월 역의 대소에 따라 역전(驛田)을 지급하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영양남씨 중랑장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는 222책이며, 『진무원종공권(振武原從功臣錄券)』을 제외한 모두가 남영번의 넷째 아들 송정(松亭) 남수(南須)의 계보를 잇는 가계의 자료들이다. 고서는 남사고(南師古)의 『격암선생일고(格菴先生逸稿)』와 남봉호(南奉鎬)의 『남봉암시문집(南奉菴詩文集)』, 남진영(南軫永)의 『무실재사고(務實...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 무릉동과 초산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매화면 오산리 무릉동 서편에는 범들이라는 약간 넓은 들이 있고, 이 들의 남서쪽과 남동쪽에 해안을 향해 뻗는 구릉에 고분군이 있다. 이중 남서편 구릉의 고분군을 오산리 고분군1이라 하고, 남동편 구릉의 고분군을 오산리 고분군2라 부르고 있다. 2004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울진군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기성에서 매화로 가다 우든내물 하천에 놓인 오천교를 지나 동쪽으로 들어서면 동해를 따라 오산리가 사구 위에 형성되어 있다. 2007년 울진종합레저타운을 세우기 위한 예비 조사에서 확인되었는데, 분포 범위가 매우 넓어서 세 개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유물산포지Ⅰ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옥계서원을 기념하는 비. 옥계서원은 1740년(영조 16)에 읍내리 옥계동에 창건되어 「우암선생진상(尤庵先生眞像)」을 봉안하였다. 그 후 1777년(정조 1)에 초평(草坪)으로 이건하여 경본(京本)을 개모(改模)하여 영당(影堂)이라 하다가 1829년(순조 29)에 선생신판(先生神板)을 봉안하였고, 옥계서원(玉溪書院...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토석 혼축 산성지.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하자 태자는 부왕에게 그 불가함을 역설했으나 불가항력으로 천년사직이 고려로 넘어갔다. 태자는 마의(麻衣)를 입고 모후(母后) 송씨(宋氏)와 함께 왕피리로 와 있다가 모후는 이곳에서 작고했으며,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후 고려 31대 공민왕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역원 터. 외선미리 다시원지는 옛 평해군에서 서부 내륙 지역 간의 교통로에 설치되었던 역원으로, 지방 행정 시설 기능과 공무 및 일반 여행자의 교통 편의 기능이 복합된 독특한 행정 교통 건축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처음 설치된 다시원의 건물 터 32×35m 범위에서 5동 이상의 건물...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세불망비. 온정면 외선미리 원마마을에서 안마마을 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는 권숙도의 밭과 최용숙의 집 담장 경계에 세워져 있다. 군수겸울도첨사 심의완 영세불망비는 파손이 심한데, 비신의 상부를 반원형으로 하여 비수를 표현하였으며, 비대는 없다. 비의 너비는 33.5㎝이고, 두께는 10.5㎝이다. 군수 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백암온천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국도 88호선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원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여기서 구지골을 형성하고 있는 작은 계곡을 따라 서쪽으로 약 800m 정도를 올라가면 오른쪽에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곡저평야가 있다. 이곳에 외선미리 유물산포지가 있는데, 험준한 산에 둘러...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중 하나. 영남 지역에는 BC 2세기 말에서 BC 1세기 초 사이에 진한(辰韓)이 성립되었으며, 3세기 중엽 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 연맹체가 있었다. 진한 12국 가운데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울진 지역의 옛 지명은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고구려 시대의 지방통치구역. 울진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지명이 우진야(于珍也)이다. 이는 『삼국사기』[1145]를 비롯하여 『고려사』[1451], 『세종실록지리지』[143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지지』[1864]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고우이(古亏伊)라고도 불렀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구산포(丘山浦)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였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기성면 구산리 마을의 중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율령비. 울진봉평신라비는 대구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인 매일신문에 1988년 4월 15일자로 특종으로 보도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발견 당시 울진봉평신라비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118번지 주두원씨 소유의 논에 밑 부분의 극히 일부만을 바깥으로 드러낸 채 거꾸로 박혀 있는 상태였다. 논의...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표지석. 봉산(封山)은 국가에서 일반인에게 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왕실의 관곽(棺槨) 제작에 사용하기 위한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이다. 황장봉산(黃腸封山) 제도는 1680년(숙종 6)에 시작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19세기 초에 황장...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장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조선 중기 장백손(張伯孫)이 호방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무관의 관직을 거쳐 오는 동안 받은 교지 31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백손이 1490년(성종 21) 선략장군행충무위우도부사직에 임명되었을 때 받은 고신(告身)으로부터 1523년(중종 18) 마지막 관직인 어모장군행오위도총부경력에 임명될...
-
울진장씨 고산성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울진장씨 고산성파는 낭장공파를 이룬 장인숙(張仁淑)의 계보를 잇는 고산(古山) 장동유(張東維)의 후손들이다. 이 문파 소장의 고문서는 교지, 망기, 명문, 분재기, 서목, 소지, 시권, 완문, 입안, 전령, 첩문, 표기, 호구단자, 준호구, 양안, 입지 등 총 122점이다. 울진장씨 고산성파 소장의 고문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왕피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수군 주둔지. 울진포진은 본래 울진읍 현내동 고현포에 토성을 쌓아 설치하였는데, 1512년(중종 7)에 울진현에서 남쪽으로 11리 되는 근남면 수산리 수산역 동편 비래봉에 석축을 쌓아 이축하였다. 울진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을 주둔시켰는데, 수군만호는 종4품을 배치하였다가 1574년(선조 7)에 정...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남쪽의 남대천과 북쪽의 황보천 사이에 형성된 평해읍 월송리 일대는 동쪽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서쪽은 해발 90m의 산에서 동해로 뻗은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송리 민무늬토기산포지는 월송1리 달효마을에 있는 월송초등학교의 남쪽 밭 일대에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 민무늬토기편들이 흩어져...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비석군. 비석은 모두 6기로 선정비(善政碑)가 3기이고, 불망비(不忘碑)가 3기이다. 조선 후기에 평해군수를 역임하면서 이 지역의 주민을 위해 업적을 남긴 관리들을 기리고자 평해군 주민과 유림, 향리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비석은 월송리에 있었으나 2010년 이전하여 현재는 봉평리 봉평 신라비 전시관 비석거리에 배열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평해 남대천을 건너 평해읍으로 들어서면 동해 가에 해발 6m 정도의 미구릉으로 보이는 모래 언덕에 월송정이 세워져 있는데, 월송리 유물산포지는 이곳에 있다. 월송리 유물산포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여러 종류의 토기나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구를 알 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태실 터. 태실이란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胎)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즉, 태(胎)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라 하여 예로부터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특히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고 묻었다. 태실은 아기태실[阿只胎室]과 가봉태실(加封胎...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병영진지. 월송포진은 문헌 사료에 "평해군의 동(북) 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는데, 전선(戰船)은 없고 바다쪽의 왜구를 막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호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관직(...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황보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 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황림. 증조할아버지는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이고, 할아버지는 삼족당(三足堂) 윤여용(尹如龍)이다. 정조 때 전국에 묻혀 있는 선비를 천거하라는 어명에 따라 울진현령 이병정(李秉鼎)이 윤사진의 행장과 저서 등을 강원감사 윤사국(尹師國)에게 올렸고, 윤사국은 이 행장과 저서 등을 정리하여 승정원에 올렸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평중(平仲), 호는 우암(憂菴). 증조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윤여호(尹汝好)이고, 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윤희성(尹希聖)이다. 아버지는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몽열(尹夢說)이고, 어머니는 삼척김씨(三陟金氏)로 김흥시(金興時)의 딸이다.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 조임(趙任)의 딸이다...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시조는 벽상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태사(壁上三韓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 윤신달(尹莘達)이고, 분파조는 금자광록대부야성군(金紫光綠大夫野城君) 윤혁(尹赫)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궁촌[현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용평리]을 떠나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 산곡(山谷)마을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은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시조는 벽상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태사(壁上三韓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 윤신달(尹莘達)이고, 평안도관찰사와 이조판서를 역임한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8세손이다. 1528년(중종 2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동해안을 순시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가 발생하여 윤씨 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하토일마을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읍남리 고분군은 울진읍 시가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하토일마을의 북편 해발 약 60m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읍남리 고분군에 대해서는 지표 조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으나 성격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2004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한 울진군의 문화유적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읍남리 고인돌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 구릉 하부에 위치한다. 앞으로는 세천인 토일천이 흐르고 주변으로는 논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기반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크기가 200×130×55㎝이며, 형태는 평면이 장방형이고 단면은 판석형이다. 덮개돌의 암질은 편마암이며, 장축은 동서 방향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읍남리 바위그림은 읍남리 토일천의 남쪽 옆 정상부에 위치한다. 울진읍 토일리를 지나 상토일 방향으로 500m 가량 서북향으로 가다가 내를 건너 서남쪽 바릿재 옛길 방향으로 접어들면 야트막한 산봉우리 밑자락에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이 있다. 곳집의 형상은 나무 원통과 흙벽을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울진 읍내로 가다 보면 왕피천을 건너고 다시 남대천이 나온다. 남대천을 건너면 바로 동쪽 말루동마을 뒤에 바다와 인접한 해발 67m의 능선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읍남리 유물산포지는 이 구릉 일대에 위치한다. 해안과 인접한 해발 67m의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남산에 있는 조선시대 진화시설 터. 읍남리 남산 봉우리에는 옛부터 이중의 토병(土甁)을 묻어 두고서 넓적한 뚜껑돌로 덮어 놓은 곳이 있다. 이 봉우리를 흔히 진화봉(鎭火峯)이라 한다. 진화봉은 울진 근교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전한다. 읍남리 진화봉이 설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
고려 후기 울진 지역을 주제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초명은 운백(芸伯).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秘書郞) 이효진(李孝進)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창세(李昌世)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이자성(李自成)이고, 어머니는 흥례이씨로 이춘년(李椿年)의 딸이다. 부...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성지(性之), 호는 송곡(松谷). 아버지는 선산부사(善山府使) 이윤수(李允粹)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군수 권조(權組)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봉화금씨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살았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급제하고, 1506년(중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동몽...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이보혁의 유애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14-23에 있으며, 나곡리에서 갈령재로 올라가는 도로변의 밭 중앙에 이보혁 휼민유애비가 자리하고 있다. 국도 7호선을 타고 가다가 나곡교차로에서 나곡4리로 우회전하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 1.2㎞를 가면 고포마을에 못 미쳐 이보혁 휼민유애비가...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尙衣院) 관리였던 이일휴(李日休)이고, 할아버지는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이진승(李晋昇)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이천주(李天柱)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사재감(司宰監)에서 일한 김규원(金珪原)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문림랑(文林郞) 황비(黃庇)의 딸이다. 아들은 충정공(...
-
조선 전기 입향한 전주이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전주. 시조는 신라시대 사공을 지낸 증성공(甑城公) 이한(李翰)이고, 분파조는 양소공(襄昭公) 이화(李和)이다. 조선 태조(太祖)의 둘째 형이며, 부인은 정경부인 강릉최씨이다. 세조는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후 단종을 따르는 충신들을 죽이거나 유배시켰다. 이에 왕실의 종친인 이제문(李制文)은 자신의 일문 16명이 도끼와...
-
조선 중기 예천임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예천. 시조는 충절공(忠節公) 임팔급(林八及)이고, 중조는 고려의 문헌공(文憲公) 임계미(林季美)이다. 또한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서하공(西河公) 임춘(林椿)과 형조판서를 지낸 예천군(醴泉君) 임계중(林季仲)의 후손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인 직장공(直長公) 정재(鄭載)가 자손이 없었는데, 효성이 지극한 임긍(林兢)은 부모의 명에 따라 외할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한양(閑良), 자는 양선(養善), 보명(譜名)은 순호(淳浩).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후손이며, 임수현(林秀鉉)의 아들이다. 1838년 (헌종 4) 8월 15일 길곡(吉谷)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문사가 높았다. 1886년(고종 23) 3월에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송암(松菴) 장연(張演)이고, 어머니는 원주이씨이다. 맏아들은 순천부사(順天府使) 장의신(張儀臣)이고, 둘째 아들은 장응복(張應福)이다.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나라에서 여러 번 군읍(郡邑)을 맡겼으나 사양하고, 10여 년 동안 벽촌에 은거하면서 교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계몽하고...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시조인 장말익(張末翼)의 19대손이다. 부인은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인조 때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으로 삼척포첨사(三陟浦僉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황제를 암살하고자 심양(瀋陽)에 잠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같이 갔던 동지인 역사(力士) 승려 개남(介南...
-
고려 전기 울진부원군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호는 매계(梅溪). 시조인 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태사(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太師) 장정필(張貞弼)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계(松溪) 장지현(張之賢)이다. 정종(靖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호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렀으며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졌다. 울진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찰방 장천말(張天末)의 손이다. 장백손은 1471년(성종 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487년(성종 18)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금위에 제수되었다. 1490년(성종 21)에 갑산진병마만호가 되었는데, 그 때 북쪽 오랑캐가 침입해 들어오자 조정에서 영안감사로 파견할 것을 의논하였다. 1491년(성종 22) 여진족...
-
경상북도 울진군 월계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장백손 소유의 소라로 만든 술잔. 장백손(張伯孫) 나배는 1531년(중종 26) 장백손이 강계도호부사(江界都護府使)로 있을 때 지역 주민이 선사한 술잔이라고 한다. 장백손은 울진장씨로 1471년(성종 2)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87년 무과에 급제한 이래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많은 무공을 세웠다. 특히,...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우진읍성의 옛터로 전해오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신라 말 국력이 쇠잔해졌을 때 왜적이 죽변항의 방비가 소홀함을 보고 죽변항을 거쳐 장산성으로 내침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고려 때 읍의 치소를 울진읍 고현성(古縣城)으로 옮기고 이곳 장산성을 수축하지 못하였다. 죽변면 후정1리 서편으로 장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일...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울진부원군 장말익(張末翼)의 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영동정판문하성사(令同正判門下省事) 장영의(張令宜)이고,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냈다. 아버지는 동정(同正) 장한련(張漢連)이며, 어머니는 울진임씨로 임유무(林惟茂)의 딸이다. 1205년(희종 1)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전리판서(典...
-
1205년 진사시 병과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내린 급제 패지. 고려 후기 울진장씨 울진 입향조인 장말익(張末翼)의 후손인 장양수가 진사과 병과에 급제하면서 하사받은 홍패이다. 희종 원년에 실시한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공원(貢院)의 판정에 의하여 교지(敎旨)로 병과 급제를 사급(賜給)하기로 하고, 첩(牒)이 이르자 당시 수상(首相) 등 5명의 재상이 그 교지를 받들어 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장언성은 참봉 장언겸(張彦謙)의 아우이다. 1594년(선조 28)에 제용감참봉을 지냈고 1597년(선조 31)에 승사랑군자감봉사를 지냈다. 풍치가 호협(豪夾)하고 학문이 정숙하였다. 임만휴(任萬休)는 만사(挽詞)에서 양주학(楊州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관계없이 청사에 이름이 전해질 수 있음을 머리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 있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생. 본관은 울진(蔚珍). 호는 남곡(南谷). 강계부사 장백손(張伯孫)의 후손이다. 장영전은 동생인 사류(四柳) 장영수(張永銖)와 우애가 돈독하였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 엄하였다. 주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고 형제가 함께 문학을 논하고 시를 지으니, 향중에서는 다시 깨어날 집이라 하였다. 장만초(張晩樵)·남봉산(南鳳山)·윤벽(尹碧)·전당운...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명거(溟擧). 울진장씨 시조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의 19세손이며, 아버지는 물재(勿齋) 장현(張絢)이다. 장위한은 1657년(효종 8) 7월 20일 구만동(九萬洞)에서 태어났으며, 학문과 덕행이 출중하여 명망이 높았다. 벼슬은 절충장군행용양위에 이르렀고, 1728년(영조 4) 통정대부를 증직받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예빈승(禮賓承) 장거석(張擧碩)이다. 장인행은 1316년(충숙왕 3)에 직장동정을 지냈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고려 왕실 회복을 위해 힘쓰다가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생활로 평생을 마쳤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지은 시가 있는데 “대륙에는...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장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정칙(正則), 호는 우와(愚窩). 아버지는 취죽헌(翠竹軒) 전유추(田有秋)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장여길(張汝吉)의 딸이다. 부인은 신안주씨로 주개신(朱介臣)의 딸이다. 형의 아들 전덕철(田德哲)을 후사로 삼았으나 일찍 죽었다. 아홉 살 때 중양절 모임에서 지은 「중양(重陽)」이라는 시에서 “나그네는 청천월에 취...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흑포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전반인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 가운데 1개소였다. 남쪽의 사동산 봉수대, 북쪽의 죽진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연변 봉수대이다. 전반인산 봉수대는 산포리 흑포동에서 보면 마을 남쪽 진넘골 끝의 해발 100m인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동...
-
조선 중기 울진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묵암(黙菴) 전필위(田弼違)이다. 전선은 연산군 때 이이첨(李爾瞻)을 능지처참시킬 것을 주장하는 소를 대표로 올렸다. 과거에도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벽지에서 물욕 없이 학문을 즐기며 한가로이 지냈다. 우암 송시열의 인정을 받았는데, 송시열이 유배 가는 길에 특별히 “늦은 봄 귀양 가는 나그네 역소에 발...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회정(晦亭). 할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전희경(田希慶)이고, 할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서성윤(徐成允)의 딸이며,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문원공(文元公) 전경은(田耕隱)이다. 전자수는 고려 말에 첨의평리겸진현관대제학(僉議評理兼進賢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정담은 1575년(선조 8)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니탕개(尼湯介)의 변(變)에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 김제군수(金堤郡守) 재직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권율(權慄)의 지휘 하에 나주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 해남현감(海南...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 터. 울진읍 정림리 산119번지에서 백자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정림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정림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백자 편을 근거로 조선 후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한다. 정림리 요지는 울진읍 정림리 진모래...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 시설·무덤방[墓室] 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외형에 의해 크게 북방식·기반식·뚜껑식·위석식 등 4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기금까지 발굴 조사되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세불망비. 정명리 비석군에는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세워진 관찰사 정시성·강선, 어사 오명준의 영세불망비 3기가 있다. 비의 건립 연대는 1682년(숙종 8)부터 1707년(숙종 33)년 사이이다. 정명리 어현마을 북쪽 국도 7호선변 기성휴게소 맞은편 어티재에 3기의 비가 위치한 것을 최근에 아래쪽인...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황보천을 건너 기성면으로 가다 보면 서쪽에 정명2리 어티마을이 나온다. 정명리 유물산포지는 어티마을 맞은편의 도로 동쪽 골짜기 일대에 위치한다. 정명리 유물산포지는 울진군의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만들기 위한 기초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비록...
-
조선 전기 야성정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야성(野城). 시조는 야성군(野城君) 충간공(忠簡公) 정가후(鄭可侯)이며, 분파조는 사성공(司成公)이다. 아버지는 봉열대부행현감 정득화(鄭得和)이고 어머니는 영인(令人)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현재 자손들은 온정면, 영덕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정자함은 1439년(세종 21)에 등제(登第)하여 홍문관교수, 강릉판관, 성균관사성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평해읍에서 국도 7호선에서 남대천을 건너 지방도 924호선을 따라 백암온천 입구에서 남쪽으로 남대천의 상류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온정면 조금리 하조금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좀더 내려가면 서쪽으로 조금리 상조금마을이 나온다. 상조금마을에서 하조금마을까지는 매우 긴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조금리 유물...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평해군과 울진군은 함께 강원도에 속했으나,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존재하다가 1914년 군과 면을 통폐합할 때 합쳐져 울진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현재의 울진군이라는 하나의 행정단위체제가 되었다. 평해군은 통합되기 전 울진군의 남쪽에 위치한 하나의 군이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울진(현)보다...
-
조선 왕실은 자녀가 태어나면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胎)를 땅속에 묻었다. 이때 땅 속에 뚜껑을 갖춘 돌로 만든 태함(胎函)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 등도 함께 묻었다. 태실 앞에는 태비(胎碑)를 새웠으며, 태봉산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고, 태봉의 둘레 일정 구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
-
조선 중기 신안주씨 울진 입향조. 주선림은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주내근(朱乃謹)의 묘를 오류촌(五柳村) 진덕왕릉(眞德王陵)의 밑에 몰래 두는 바람에 후환을 우려하여 오지인 경상북도 울진군 구만촌(九萬村)으로 피해 오는 것이 계기가 되어 입향조가 되었다. 본관은 신안(新安). 분파조(分派祖)는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이며, 할아버지는 정...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안(新案). 자는 중용(重用).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주득신(朱得臣)이고, 할아버지는 주소(朱熽)이며, 아버지는 국서(國瑞) 주환익(朱奐翼)이다. 주연은 1691년(숙종 127년)에 구만동에서 출생하였다. 1774년(영조 50)에 등용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냈...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신안(新案). 호는 죽재(竹齋), 삼의정(三宜亭). 분파조(分派祖)는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이며, 증조부는 정일현감(廷日縣監)을 역임한 주내근(朱乃謹)이며, 아버지는 전적감찰(典籍監察)을 역임한 주선림(朱善林)이다. 주의는 1491년(성종 22)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06년(중종 원년)에 문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석수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현재 경상북도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몇 편의 글에서 경상북도에서 출토된 구석기에 대해 매우 소략하게 언급했을 뿐, 유적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최근 동해안의 구석기 유적을 조사하면서 울진 주인리 유적·영해 삼계리 유적·포항 임곡 유적을 발견함에 따라 경상북...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 터. 북면 주인리에서 기와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주인리 요지라고 하였다. 주인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기와 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주인리 요지는 북면 주인리 대수동 서낭당 맞은편에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북면 소재지에서 부구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주인초등학교를 지나 주인리 대수동으로 가다보면, 동쪽의 해발 227m인 청룡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내려와서 물길을 한번 반전시키는 대수호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지점이 있다. 주인리 유물산포지는 서쪽으로 길게 돌출한 하천의 맞은편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교수공(敎授公) 주세창(朱世昌)이다. 부인은 울진장씨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가족을 이끌고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안일왕성으로 피신했으나 일가친척이 왜병들에게 무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분연히 일어났다. 또한 “고을 백성들이 하루 이틀도 아닌 수많...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죽변곶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 가운데 1개이다. 남쪽의 죽진산 봉수대, 북쪽의 항출도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연변 봉수대이다. 죽변곶 봉수대는 죽변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옥 뒤편에 위치한다. 마을 안에 봉수대가 위치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죽변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죽변중고등학교 북쪽에는 해발 41.4m의 얕은 구릉이 남동으로 흐르고 있었으나 학교 개설로 인해 절토되었으며, 구릉의 남은 부분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유물산포지1은 이 구릉의 남서 사면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2는 죽변항의 동쪽...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신라시대 토축 성지. 죽변리 죽변성지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 때 신라 국경인 소공령(召公嶺)과 해상에서 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토축으로 성을 조성하고 수군 2,000명을 주둔시켰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죽변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내륙에서 바다로 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내봉동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지. 죽진산 봉수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죽진산 봉수지의 봉수망은 남쪽으로는 전반인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죽변곶 봉수대와 응하였다. 죽진산 봉수지는 내봉동 동쪽 해안가에 돌출된 해발 55m인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지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진복리 오원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오원마을은 해안가로 마을 앞 동쪽은 바다이며, 뒤편 서쪽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복리 고인돌은 해안가의 산기슭에 뚜껑식 1기와 기반식 1기가 위치하며, 구릉에 뚜껑식 1기가 위치한다. 1호 고인돌은 진복1리에서 북쪽으로 100m 가량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보통식당’ 옆 근남면 진복1리 4번지...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있는 삼국시대 울진 지역의 지명과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비.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세운 기념비로, 북한산(北漢山)·황초령(黃草領)·마운령(摩雲嶺)에 있는 비와는 달리 비문 서두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아 그 성격을 규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를 척경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척산리 고인돌군이 위치한 곳은 마을 서쪽의 구릉성 산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동쪽으로는 기성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동해와는 약 450m 떨어져 있다. 기성들 남쪽으로는 정명천이 휘감아 돌아가듯 바다로 흘러들어 이곳은 고인돌의 입지 조건으로 양호한 편이다. 고인돌은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에 5기가 하나의 군...
-
조선 중기 울진 출신 문인 황중윤(黃中允)이 지은 「천군기」의 필사본. 동명(東溟) 황중윤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아버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에게 공부하여 가학을 계승하였다. 황중윤의 저술들은 『동명문집』으로 간행되기도 했으나 많은 필사본이 간행되지 않은 채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왔다. "숭정계유중추(崇禎癸酉仲秋)에 황중윤서(黃中允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구리와 아연 또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처음으로 금속기를 사용한 시기를 말한다.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무문 토기와 마제 석기를 제작하였으며, 벼농사와 정착 생활을 하였다. 시기는 대체로 BC 10세기경부터 BC 3~4세기경까지로 보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최복하는 고려 말 한성부윤(漢城府尹),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2리 무령현(武靈峴)에 은거하였다. 은거 당시 상국(相國) 이구(李玖)의 관동이군(關東二君)에게 보낸 시에서 “봉지(鳳地)의 사간(司諫)이 선사(仙槎)에 높이 누워/ 일찌감치 어부가의 뜻을 알았네/...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 호는 정재(貞齋). 할아버지는 고려 대사간(大司諫) 최복하(崔卜河)이고 아들은 최면(崔沔)이다. 조선 세종 때 벼슬이 삼군도진무사(三軍都鎭撫使)에 이르렀다. 단종에 이어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아들 최면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 사실은 『세조실록(世祖實錄)』, 『금폭원기(錦幅原記)』, 『홍재전서(弘齋全書)』,...
-
1490년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강릉최씨 입향조.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농산(弄山). 시조는 최흔봉(崔欣奉)이고, 분파조는 최안소(崔安沼)이다. 부인은 직장동정(直長同正)을 지낸 울진장씨 장을보(張乙寶)의 딸이며, 아들은 무사직(武司直)을 지낸 최덕윤(崔德潤)과 사정(司正)을 지낸 최옥윤(崔屋潤)이다. 최운생은 산수를 좋아하여 울진군 매야(梅野)에 왔다가...
-
조선 후기 강릉최씨 울진 입향조. 시조는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이고, 분파조는 대사헌(大司憲) 최응현(崔應賢)이다. 철종 때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사회 기강이 문란해지고 민심이 혼란에 빠지자, 1855년(철종 6) 벼슬을 버리고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일명 골마] 탁적산(托跡山) 아래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선현 추모와 강학 수도에 전념하고 가학(家...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주경안과 관련한 석단(石壇) 터.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산봉우리에 돌로 단(壇)을 만들고 7년 동안 매일 새벽 닭이 울 때 그 위에서 아군이 승리하기를 하늘에 기원하였던 데서 축천대(祝天臺)라 하였다.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른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토기는 흙을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하며, 과거 수렵 및 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진다. 아직까지...
-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소재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및 한적. 소장하고 있는 고서 420책은 대부분 목판본으로 학술적 문화재적 의미를 지니는 유일 귀중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가문이 도학(道學)의 학문적 전통을 견지하며 독자적 학문체계를 구축하면서도 여러 학파와 폭넓은 교류관계를 통해 학문적 범주를 확대하고 있었음을 볼 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하성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동헌 터. 울진군 평해읍 하성리마을 서편에 있는 느티나무가 있는 주변 일대이다. 옛 동헌 및 관련 건물의 초석들이 확인되었으며, 확인되는 건물은 남향 배치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또한 초석은 원형 주좌를 가진 다듬은 초석이다. 현재 집들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규모나 상황은 알 수 없다. 차...
-
1738년 월송정을 소재로 하여 겸재 정선이 그린 담채화. 정선(鄭敾)[1676~1759]이 63세 때인 1738년에 8촌 친척 아우인 우암 최창억을 위해 제작한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11폭 중 한 폭이다. 지본담채(紙本淡彩)에 가로 57.7㎝, 세로 32.2㎝이다. 그림에는 ‘월송정(越松亭)’이란 화제가 쓰여 있으며, 빽빽이 들어찬 긴 소나무 숲을 화면 중앙에 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산포지. 민무늬토기산포지는 민무늬토기들이 흩어져 있는 곳을 일컫는 고고학적 용어로 청동기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유구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평해읍의 북쪽에 있는 평해읍성의 뒤편으로는 해발 20m 전후의 낮은 구릉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 구릉의 동쪽 끝에는 평해여자중학교와 평해여자정보고등학교가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향교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평해 지역 지방관의 업적을 기리는 13기의 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향교 안 태화루 앞에는 13기의 비석이 있었다. 향교 직원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1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12개의 비석은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이다. 비석들은 태화루 남쪽 석축 아래 동서로 나란히 배열되...
-
1603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세워진 평해 지역 북천교 건립기념비. 1603년(선조 36) 3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월송리 지역에 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하여 돌다리를 세웠다. 다리 건립 공사가 끝난 후 평해북천교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건립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평해북천교비에 보이는 평해군수 조인징(趙仁徵)은 『울진읍지』에 의하면, 1599년(선조...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유물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일정한 시기에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고고학적 용어다. 남대천을 앞쪽에 둔 평해읍 평해리는 남쪽에 넓은 충적대지인 평해들을 두고 서쪽과 북쪽에는 해발 50~70m의 산에서 동쪽 남대천으로 뻗은 낮은 구릉들이 형성되어 있다. 평...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축 읍성.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울진군지(蔚珍郡誌)』에서는 선덕왕 갑인(甲寅)에 석성(石城)으로 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선덕왕 때에는 갑인이라는 간지가 없어 정확히 연대를 알 수 않다. 『여도비지(輿圖備志)』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축성 연대를 고려 말로 기록하고 있다. 1357년(공민왕 6)...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평해황씨 해월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선조와 광해군 대에 걸쳐서 활동한 황여일(黃汝一)[1556~1622]과 황중윤(黃中允)[1577~?] 부자와 관련된 필사 원본 자료들로서 당시 울진 지역 사림의 학문 경향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내사본(內賜本) 『대학언해(大學諺解)』는 황여일이 1590년(선조 23)...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표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평해군에 소속된 3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전기에는 북쪽의 기성면 사동산 봉수에 신호를 전달하는 단일 노선이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남쪽의 평해읍 거일리 후리산 봉수에 응하는 새로운 노선이 신설되었다. 표산 봉수대는 봉수마을 서쪽에 위치한...
-
조선 후기 화가 강세황이 월송정을 포함한 관동 지역과 금강산 등을 그린 시서화 합벽첩. 『풍악장유첩』은 1788년(정조 12)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강세황이 김홍도, 김응환 등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할 때 그린 그림으로, 14면으로 제작된 시서화 합벽첩이다. 13일 강세황은 일행들과 함께 회양관아를 출발하여 신창으로 향하였고 14일 장안사에 도착하였다. 15일 장안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 있는 고려시대 자기 가마 터. 북면 하당리에서 자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하당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하당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단지,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상감청자 편과 자기 편을 근거로 볼 때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된다. 하당리 요...
-
신라시대 울진 지역이 속했던 지방통치구역. 신라가 진출하기 전 지금의 강릉 일대와 울진이 포함된 지역에는 예국(濊國)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후 신라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예국은 삼척에 있던 토착세력과 함께 동해안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하슬라주(何瑟羅州)는 512년(지증왕 13)에 예국의 세력권에 설치한 지방 통치구역이다. 주(州)는 특정...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울진 지역에서 활동한 군수, 현령, 관찰사 등의 선정비. 조선시대 군수, 현령, 관찰사 등 울진 지역 백성과 호흡을 같이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명관(名官)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울진 지역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향인(鄕人) 임경필(林敬弼)이 1922년 9월 2일에 자비로 새마실[新村] 도로변에 25좌(座)를 정열(整列)...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항출도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된 4개소의 봉수대 가운데 1개소이다. 남쪽의 죽변곶 봉수대, 북쪽의 삼척 가곡산 봉수대에 응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긍출도산(亘出道山) 봉수로 표기되어 있다. 항출도산 봉수대는 나곡리 나실마을의 북쪽에 있는 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일대에 설치된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685년(신문왕 5)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그 중 명주(溟州)는 북쪽으로 통천을, 서쪽으로 안동시 임하와 청송을, 남쪽으로 청하까지의 영역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울진과 평해 지역은 명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월송정을 포함한 관동 지역과 설악산, 금강산의 명승지를 그린 화첩. 『해산도첩』은 김홍도가 1788년 가을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 및 관동팔경 지역으로 사생 여행을 떠나 그린 그림이다. 『해산도첩』의 「월송정」은 소나무 숲과 모래 해변이 펼쳐지며, 왼쪽으로는 소나무 숲 사이에 굴미봉으로 여겨지는 바위가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석축으로 쌓...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평해황씨 해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해월 황여일의 문집 목판. 해월 황여일(黃汝一)[1556~1622]의 문집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은 1776년(영조 52) 후손 황상하(黃尙夏)와 이형복(李亨福) 등에 의해 명계서원(明溪書院)에서 제작되었다. 권두에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양사언(楊士彦)의 발문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근남면 행곡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행곡리 요지라고 하였으며, 행곡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 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요지로 추정된다. 행곡리 요지는 근남면 행곡리 천전동 남쪽의 산록에 있...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자치 규약. 조선시대 군읍 또는 향촌 사회에는 그 구성원이나 단체의 조직 체계와 운영상 갖가지 내부 규약과 각종 명부인 좌목(座目)들이 있었다. 그러한 규약에는 향규(鄕規)를 비롯하여 향약(鄕約)·동약(洞約)·계약(契約) 등이 있으며, 좌목에는 향안(鄕案)과 동안(洞案) 및 각종 계안(契案) 등이 있었다. 향규는 유향소의 조직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호월리 고인돌은 세천이 남대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다. 호월교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장니골교가 있다. 고인돌은 장니골교 입구 왼쪽에 자리한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산 구릉의 기슭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기반식으로 덮개돌은 크기가 300×230×70㎝이며, 형태는 평면이 타원형이고 단면은 우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옹기 가마 터. 울진읍 호월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호월리 요지라고 하였다. 호월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없으나,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 편을 근거로 일제강점기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월리 요지는 울진읍 호월리 와현마을 내에 있는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산포지. 포항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으로 가다가 울진 읍내에 들어가기 전 남대천 위에 만들어진 울진교에서 내려 남대천의 북안을 따라 상류쪽으로 가다보면 남대천이 심하게 곡류하는 곳의 북쪽에 호월1리가 나온다. 호월리 유물산포지는 호월1리 무월마을의 서쪽에서 남대천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해발 40m 전후의 얕...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신라 말 고려 초에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신라 말 고려 초에는 많은 호족들이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며 지방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이러한 호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헌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려 태조가 930년에 고창[지금의 안동] 전투에서 견훤의 군대를 크게...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화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화성리 고인돌은 화성2리 범상골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 서쪽의 동에서 서로 뻗은 산 구릉 위에 위치한다. 산 구릉 아래에는 세천이 흐르고 주변으로는 논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고인돌은 외형상 뚜껑식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크기가 190×140×30㎝이며, 형태는 평면이 육각형이고 단면은 판석형이다. 덮개돌의 암...
-
신라시대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후대로 갑고(甲古)·을고(乙古)·병고(丙古) 삼형제가 있었는데, 갑고는 기성군(箕城君)[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 을고는 장수관(長水貫), 병고는 창원군(昌原君)으로 봉해져 각각 평해황씨, 장수황씨, 창원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평해황씨는 고려시대 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장수황씨는 시중(侍中) 황경(黃瓊)을, 창원황씨...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노동동과 새마을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의 노동동[황보리 고분군]과 새마을[황보리 고분]에 있는 삼국시대[신라]의 고분군이다. 울진읍의 남쪽 기성면 소재지의 남측에 있는 평해읍 월송리에서 황보천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면 황보리 황보들과 만난다. 이 들을 향해 북에서 남으로 흐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 터. 보통 가마 터[窯址]란 각종 토기·도기·자기·벽돌·기와 등을 고온에서 소성하였던 구조물인데, 가마라고 하면 보통 목탄[숯]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목탄가마 또는 탄요(炭窯)라 하여 넓은 범주에 포함시킨다. 가마는 열의 흐름의 방향에 따라 열이 위로 올라가는 승염식(昇焰式) 요, 옆으로 흐르는 횡염식(橫焰式) 요,...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국도 7호선을 따라 남대천을 건너서 평해읍에서 기성면으로 가다 보면 황보천이 나온다. 황보교를 건너 서쪽으로 하천을 따라가면 금강들과 메기들 사이로 해발 60m 정도의 얕은 구릉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황보천으로 뻗어 있다. 동쪽의 구릉은 공동묘지로 이용되고 있다. 황보리 유물산포지는 구릉이 두 갈래로...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할아버지는 금오장군(金吾將軍)·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이고,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황유중(黃裕中)이다. 형제로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황진(黃璡)과 숭록대부삼중대광보국(崇祿大夫三重大匡輔國) 황용(黃庸) 등이 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적장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과거에 뜻을 버리고 민중 속에 살면서 임선생(任先生)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호연정(浩然亭)이란 정자를 지어 활동했으며 자호(自號)를 동은(東隱)이라 하였다. 이한명(李漢明)이 호연정에 와서 “유원(劉院) 신선님 어느 해...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海月)·매월(梅月)·만귀(晩歸). 고려 충렬왕 때 첨의평리문하시중을 역임한 황서(黃瑞)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황세충(黃世忠)이고 할아버지는 성주목사 황우(黃瑀)이다.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 황응징(黃應澄)과 충무위사직(忠武衛司直) 정창국(鄭昌國)의 딸 숙부인(淑夫人) 영덕정씨(盈德鄭...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발견된 조선 중기 황여일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 황여일(黃汝一)[1556~1622]은 울진 출신의 문신으로 황응징(黃應澄)의 아들이다. 자는 회원(會元)이며, 호는 해월(海月)이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쳐 울진 지역의 사림으로서 뿐만 아니라 관료와 문장가로서도 폭 넓은 명망을 얻었다. 황여일 유품은 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조선 선조(宣祖)조에 출생하여 벼슬이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모함하자 경상도(慶尙道)의 소수(疏首)가 되어 4차에 걸쳐 상소를 올렸다. 1620년(광해군 12)에는 사신으로 발탁되어 중국에 다녀왔다. 만년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월야동(月夜洞)에 수월당(水月堂)을 짓...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후리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후리산 봉수대는 봉수제가 운영되던 조선시대에 강원도 평해군에 소속된 3개소의 봉수대 중 1개소였다. 남쪽은 경상도 영해부 대소산에 응하고, 북쪽은 표산에 응한다. 후리산 봉수대는 후리산의 해발 178m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하는 곳은 남쪽과 북쪽으로 시야가 넓고 주변 지...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단 무덤. 후포리 선사유적은 후포3리의 바다쪽으로 돌출한 해안단구 상면인 해발 45m의 등기산[속칭 등대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정상부의 동쪽과 남쪽은 해안 절벽이다. 이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동북쪽과 동남쪽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고, 뒤쪽에는 후포항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이러한 입지는 바다와 관계가 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