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 골마마을에 있는 고려장 터와 관련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 골마마을 마산 동남쪽으로 약 15㎞ 지점에 삼산리 산1번지와 인접된 산이 있는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때 고려장(高麗葬) 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산에는 고분군이 넓게 형성...
-
1919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윤병관, 장식 등이 주도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의주·원산 등지에서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울진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매화리 매화장터와 북면 부구리 흥부(興富)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의 전면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경상북도 울진 일대에서 있었던 전쟁으로, 민족해방을 표방한 북한군은 점령 지역에서 인민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을 숙청하고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군민들을 강제 동원하는 등 공포 정치를 펼쳤다. 1950년 9월 연합군이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반격을 감행함으로써 이후 북한군의 세력권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및 그 자녀로 구성된 단체. 유공자의 명예 선양과 유공자 및 그 자녀들의 복리 증진, 국가 차원의 호국 안보, 민주 수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1년 6·25참전용사회를 결성하고 초대 지회장에 진명화가 선출된 후 2002년 6·25참전전우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6년 뒤인 2008년 2월 6·25참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에서 가래질을 하면서 부르는 농업노동요. 가래는 흙을 뜨고 파는 데 쓰는 연장으로서, 이 가래를 이용하여 노동을 하는 것을 가래질이라고 한다. 가래질은 우리나라에만 있던 협동 노동의 한 방법으로, 어업노동에서의 가래질과 농업노동에서의 가래질, 그리고 묘가래질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평해읍 거일1리에서 전해 오는 「가래 소리」는 농업노동요로...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에서 전해오는 가리바위에 얽힌 이야기.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가리바위 이야기」는 바위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2001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1리 동쪽 문암산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 속에 가리바위라고 부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과 호월리의 옛 명칭에 관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읍 고성2리 가원동의 옛 명칭은 가무원(歌舞原)이다. 1593년(선조 26)에 왜병들이 울진현 성을 공격하기 위해 이 마을에 가무단(歌舞團)을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하여 성 안에 있던 아군들의 시선과...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불리던 시가와 산문 중간 형태의 문학. 보통 가사의 형식은 주로 4음보의 율문(律文)으로, 3·4조 또는 4·4조를 기조로 하며, 행수(行數)에는 제한이 없다. 마지막 행이 시조의 종장과 같은 형식인 것을 정격(正格), 그렇지 않은 것을 변격(變格)이라고 한다. 울진 지역에서 불리던 가사는 대개 ‘시집살이의 고됨’, ‘혼인할 여성의 마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울진현의 고산성(古山城)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 마을에서 가무단으로 하여금 노래와 춤판을 벌이게 하였다. 고산성을 방어하던 조선군의 시선이 가무단에 쏠린 틈을 노려 왜군은 산성 반대편의 북문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부터 마을을 가무원(歌舞原)이라 하였고, 그 뒤 마을을 둘러싼 산세와 지세가 아름다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있는 무동력 소형 어선. 가이선 어로는 주로 혼자서 하는데, 한 손으로 작은 노를 저으며 수경을 통해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다른 한 손으로 문어·해삼·전복 등을 잡는다.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는 6·25전쟁 직후에 70여 명의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터를 잡아 일구었기에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불린다.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이들은 함경남도...
-
경상북도 울진군의 가정에서 집안을 지켜주는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며 평안을 비는 신앙. 가정신은 집터와 가옥, 가족들과 관련된 신으로 조령[조상신], 성주, 영등, 삼신, 조왕, 용단지, 텃제, 배성주[혹은 뱃서낭]를 비롯하여 측간신, 문신[혹은 수문장], 장독신, 제석신 등이 있다. 그러나 가정신이 아니더라도 객귀 물리기, 아이팔기 등과 같은 민속신앙적인 신앙 행위도 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1리에 있는 산과 절터에 관한 이야기.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고목1리에 있는 가치산은 고려 때 이름 모를 일곱 성씨의 노인들이 마을을 개척할 때 ‘가치산하유지장서재(伽治山下有智藏書齋)’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산 이름을 가치산이라 하고, 동네 이름을 지장이라 하였으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 들 이름에 관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간물나들과 내평은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에 있는 들로, 울진 북쪽에서는 가장 큰 들이다. 이 들은 동해안 가까이에 접하고 있어 옛날에 간물[海水]이 들락날락했다는 의미에서 ‘간물나들’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 말인...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3리에서 마을에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간물을 담아서 산에 묻어 놓은 항아리. 울진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마을에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간물, 곧 바닷물이나 소금물을 담은 그릇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묻었다고 한다. 간물단지는 간물을 담는 그릇을 부르는 명칭으로, 울진군에서는 북면을 비롯한 여러 자연 마을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 중단마을에서 전해오는 화산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 중단마을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화산(火山)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 마을의 화산은 산에 있는 화기가 너무 강하여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지형이었기에 산의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매점이 있었다 하여 갈매점 또는 갈매동이라 한 것이 점차 변하여 갈면동으로 되었다고 한다. 1574년 경에 사람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갈면리가 되었다. 갈면리의 북서쪽은 금장산 지맥이 중첩되어 있고, 고초령(高草嶺)의 대령산(大嶺山)이 높이 솟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갈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사당 터. 묘(廟)는 사당(祠堂) 또는 가묘(家廟)라고 불리며,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장소이다. 계묘는 1704년(숙종 30) 호조참판과 양주목사를 역임했던 돈제공(豚齊公) 정수택(鄭洙澤)이 불천위(不遷位)[큰 공훈을 세워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하사받아 세워졌다. 처음에는 경...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 있는 고개. 후포면 삼율3리에서 약 2㎞ 거리에 있는 구릉형의 산악으로 이 지방 제일의 명당이라 한다. 백씨(白氏)의 선영이 이곳에 있는데 옛날 그 종손이 묘터를 보려고 지관을 걸어가게 하였다. 이에 지관이 불만을 품고 그 묘 앞에 있는 못의 둑을 허물어 물을 빼야만 명기가 더 할 것이란 말을 하였다. 백씨가 이 말을 듣고 못...
-
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광택과 김응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으로 시중겸병부령(侍中兼兵部令)를 지냈다. 신라 하대의 진골 출신이며, 아버지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유정(金惟靖)이다. 그는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에...
-
최필달·최흔봉·최문한을 시조로 하고 최복하·최운생·최두홍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강릉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통을 달리하는 고려초 삼중대광으로 개국공신이었던 최필달계, 고려 태조의 부마였던 최흔봉계, 고려 충숙황의 부마로 삼중대광에 오른 최문한계의 세 계통이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 양양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한국의 개신교는 서양 선교사들의 전파와 한국인 스스로 자신들을 구도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1832년 네덜란드 선교회의 칼 구쯔라프와 1866년 영국 런던 선교회 소속 로버트 토마스가 선교를 위해 입국한 적이 있으나 박해와 순교로 본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876년 강화도조약...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3리의 거문개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여 공동으로 지내는 굿. 거문개 별신제는 산포3리 거문개에서 5년에 한 번씩 하던 굿으로, 마을의 무병과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하며 행해졌다. 거문개에서 행하는 서낭제사는 정월 대보름과 4월 성주 생일날에 지내는데, 5년에 한 번씩 정월 대보름날 서낭고사를 지낸 후 1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소곡리에 있는 바위에서 유래한 자연지명. 연재(然齋) 김형문(金炯文)이 네모난 바위[210㎝×190㎝]의 앞면에 장방형[80㎝×52㎝]을 파고, 그 안에 명필 한일동의 해서체 글씨로 ‘거연대(居然臺)’라고 가로로 새겨 놓았던 데서 유래하였다. 동쪽에는 붉은색 산등(山嶝), 서쪽은 쇠치봉[鼎峙峯], 남쪽은 대왕산(大王山)이 있다. 북쪽은 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 있는 자연마을. 이곳의 지형이 금부(金釜)와 같아 크게 번창할 것이라 하여 거응이 되었다. 이곳은 금은보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곳이라 하여 예부터 옥방(玉房)이라 하였다. 실제로 거응동에서 영양으로 이어진 지방도를 따라 2㎞ 정도 남쪽에 옥방광산터가 있다. 광회2리를 구성하는 자연마을 가운데 하나인 거응동은 16세기 후반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기[게]알과 같이 생겼다 하여 기알·거일 또는 게알이라 하였다가 거일리라 불렸다. 본래 평해군 하리면(下里面)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저장동(猪場洞)·직고동(直古洞)·상남산동(上南山洞)·하남산동(下南山洞)이 통합되어 거일리로 개편되었다. 1980년 12월 1일 평해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평해읍 거일리가 되었다. 거...
-
경상북도 울진군의 산업 중 토목 및 건축 관련 공사를 시행하는 업종. 건설업은 토목과 건축 그리고 이에 따르는 공사를 시행하는 산업으로 크게 일반 건설업, 특수 건설업, 전문 건설업으로 구분된다. 일반 건설업과 특수 건설업은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전문 건설업은 서울특별시장이나 각 광역 시장 또는 도지사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건설업 면허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갱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 건잠마을의 광천 위에 있는 다리. 대흥리 건잠마을의 원래 이름은 건지암(乾地岩)인데 마을 주위에 큰 암석이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에 발음이 변하여 건잠(乾岑)으로 되었다. 건잠교(乾岑橋)는 건잠마을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는 22m, 총 폭은 8.5m, 높이는 4m이다. 총 2차선의 차도는 폭이 7m이고...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630년경 검성리를 개척한 선비 주씨(朱氏)가 항상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었다 하여 수거령이라 하였다. 그 후 행정구역 개편 때 뒷산에 성(城)이 있었다 하여 검성리(劍城里)라 하였다. 1630년경 신안주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이후 영일정씨, 영월엄씨, 울진장씨 순으로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이 중 영월엄씨는 중금성마을...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검성리 내골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통 가옥. 검성리 까치구멍집은 지붕 용마루의 양쪽 합각에 둥근 구멍이 있는데,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낸 둥근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집으로, 마구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특징이다. 까치구...
-
대들보를 중심으로 여러 채가 겹으로 되거나 잇달린 울진 지역의 가옥. 겹집은 홑집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복렬형 가옥이라고도 한다. 한 용마루 아래 간살이의 일부는 한 줄로 배치되고, 일부는 앞뒤 두 줄로 배치되어 있는 살림집을 말한다. 용마루 아래 방들이 한 줄로 배치된 홑집에 대칭되는 것으로, 양통집까지를 포함해 겹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함경남도·평안북도와 평안북도의 주...
-
어머니가 혼인을 앞둔 딸에게 결혼해서 경계해야 할 도리에 대하여 지은 가사 작품. 「경계가」의 주된 내용은 출가하는 딸에게 양반가에서 지켜야 할 부덕을 가르치는 데서 비롯하였다. 그리고 뒷날에는 여인들의 일상생활과 삶의 고뇌까지 노래하게 되었으나, 그 중심은 언제나 교훈적이었다. 이러한 규방가사는 도덕을 숭상하고 예의와 염치를 중히 여기는 경상도 양반 계층이 지녀야 할...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 중기의 집 터. 경렴당은 1654년(효종 5) 울진현령 정두제(鄭斗齊)가 건립하였으며, 이후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울진현령으로 부임하여 중건하였다. 경렴당은 계산을 조망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경관이 절경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며, 오도일의 「경렴당(景濂堂)」이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祠廟). 경무사는 1684년(숙종 10)에 금계사(琴溪祠)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851년(철종 2)에 중건하면서 경무사라 개칭하였다. 그 후 1877년(고종 14)과 1940년에 재차 중건하였다. 마을 뒷산의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경무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건물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祠宇). 죽변면 봉평2리 절골과 외골 사이로 뻗어내린 구릉 말단에 있다. 1941년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였고, 고려 후기 충신인 문명공 야은 전녹생(田祿生), 문혜공 뇌은 전귀생(田貴生), 문원공 경은 전조생(田祖生), 매정 선생 전자수(田子壽) 등 사현(四賢)을 모시며 매년 음력 10월 3일 배향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사회복지단체. 경북지체장애인협회 울진군지회는 울진군 관내 거주하는 지체장애인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장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 사회 참여 확대, 재활 및 자립을 도모하여 지체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9년 3월 30일 울진군 장애인협회가 창립되었고, 초대 회장에는 남상천이 취임하였다. 19...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도립 공공도서관. 지역 주민들의 지식습득과 정보욕구 충족을 위해 양질의 최신 자료를 제공하고, 교양함양과 여가선용을 위해 다양한 평생교육 강좌를 운영하는 등 지역의 지식창고 및 평생교육 센터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 설립되었다. 아울러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인쇄자료뿐 아니라, DCLC[디지털 콘텐츠 학...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경제인들이 상호 협력과 권익 보호를 위해 구성한 단체. 경제단체가 설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일 업계나 동일 조직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가 일정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나 노동자들이 단체를 구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경제단체가 구성될 경우 업계나 조직의 목소리가 통일되어 정부가 산업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는...
-
경상북도 울진의 지역민들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및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적 활동의 총체.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이란 인간의 공동 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 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을 가리킨다.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을 지칭하나,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시킨다....
-
영분공을 시조로 하고 김백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고, 후손의 계파가 매우 복잡하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경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 영분공의 후손이다. 1775년(영조 51)에 김백규는 노소론의 당쟁을 피하여 전라남도 강진에서 울진군 산두촌에 입향하였다. 문장공 김태서의 후손인 김한동은 정조 때 양양에...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달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인 이알평은 신라 개국공신이다. 중시조 원대손 이거명은 신라의 좌명공신이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중시조 직계 계대에서 성암공파, 이암공파, 익재공파, 호군공파,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등 8개, 지손 계대에서는 판전공파, 월성군파, 직장공파, 석탄공파,...
-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시조로 하고 최한우·최형암·최영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경주최씨의 시조인 소벌도리는 신라의 전신 사로육촌 가운데 돌산고허촌의 촌장이었다. 이후 신라 말의 석학 최치원을 중시조로 하여 그의 후손들이 26개 파로 분파되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경주최씨들은 최청의 후손들인 관가정파와 최현우의 후손인 화숙공파를 비롯하...
-
1932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건립한 일제강점기 때의 최시창·최면 부자를 기리는 제단. 최시창(崔始昌), 최면(崔沔) 부자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의 계룡산 자락 동학사지(東鶴寺址) 내에 단종 및 그를 복위하려다 순절한 충혼들을 모신 숙모전(肅慕殿)에 위패가 있다. 이에 울진의 후손들은 1904년부터 1963년 사단법인 숙모회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건립된 최시창·최면 부자를 기리는 제단비. 최시창과 최면 부자가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순절하고 나서 1458년(세조 2) 동학사(同鶴寺)의 한 스님이 사육신(死六臣)을 제사하였는데, 이를 들은 세조가 비단 등을 내렸고, 1464년(세조 10)에 각(閣)을 전(殿)으로 만들고 다시 혼을 불러 숙모전(肅慕殿)이라 하였으며, 1807...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울진군의 지형은 태백산맥과 태백산맥 동록의 해안저지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태백산맥은 지형적 특성에 의해 다시 중앙산맥과 해안산맥으로 구분된다. 이중 중앙산맥은 온정리-매화천-울진을 연결하는 구조선 서쪽에, 해안산맥은 그 동쪽의 산열을 의미한다. 한편, 해안저지는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고...
-
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중등 교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고등학교의 입학 자격은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법령에 의해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에 한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고등학교도 있...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고도가 높은 산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400~1,000m 정도 높이의 고산 지역에서 여름철의 신선한 기후와 긴 일조 시간 및 많은 강우량을 이용하여 가축 사육이나 채소·감자·화훼류 등을 재배하는 농사를 말한다. 고랭지는 일반적으로 기온이 낮고 적설 기간이 긴 반면, 일조 시간이 길기 때문에 품종 개량은 물론 재배법을 개선하면 유리한 농업 경영이 이...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현재의 울진 지역은 고려시대에 들면서 남쪽의 평해와 북쪽의 울진이 구분되어 읍격의 변화를 보인다. 남쪽의 평해는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적 상황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면서 북쪽의 울진과 구분되어 문헌에 기록되어 나온다. 이때부터 울진과 평해는 서로 다른 행정체계를 분명히 보인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 산성. 고모산성에 관한 첫 기록은 『여도비지(與圖備志)』 평해군 고성조에 ‘고모성(姑母城)’이라는 성의 이름만 확인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평해군 성지조(城池條)에도 ‘고성’이라는 성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후 『강원도읍지』·『평해군지』·『울진읍지』 등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울진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고등동(古等洞)과 시목동(柿木洞)에서 ‘고(古)’자와 ‘목(木)’자를 따 ‘고목(古木)’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고등동·시목동·신리동(新里洞)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목리로 개편되었다. 고목리는 고목1리, 고목2리, 고목3리의 세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죽변읍에서 해안의 구 국도를 따라 3㎞ 가량 북상하면 신화리와 고목리쪽에서 흘러내리는 하천과 마주치게 된다. 여기서 하천을 따라 1.2㎞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구 국도에서 고목3리 감나무골로 들어가는 소로(小路)에 닿는다. 이 소로의 오른쪽에 나직하고 완만한 경사의 산이 있다. 고목리 고인돌군은 이 산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구장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전통 가옥. 고목리 전현이 가옥은 까치구멍집 구조를 갖고 있다. 까치구멍집은 지붕 용마루의 양쪽 합각에 둥근 구멍이 있는데,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낸 둥근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 산간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집으로 마구간을 비롯한 모든 편의시설을 집...
-
일반적으로 고분(古墳)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옛 무덤을 일컫는다. 고분은 입지·외형·규모 및 시설, 그리고 내부 구조와 피장자(被葬者)·부장품(副葬品) 등 많은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어 존재하고 있으며 고분 및 출토 유물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 생활 풍속, 장법,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울진군의 고분은 그 분포 상황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산성. 고산성 일대에는 산성이 위치해 있는 고성리의 지명과 더불어 산성의 북쪽에 있는 ‘산성교’, 성 아래 마을인 ‘성밑’, ‘성저동’, ‘성안’ 등 산성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전한다. 고산성에 관한 문헌 자료를 보면, 지금의 울진읍내에 있었던 고읍성이 왜구의 침입으로 불타버리자, 한성판윤 장순열(張巡...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있는 고산성(古山城) 관련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2006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산성(古山城)은 1556년(명종 11)에 울진읍성(蔚珍邑城)으로 수축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침입하여 수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이곳에 있는 고산성(古山城)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1431년 경에 울진장씨(蔚珍張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구만동(九萬洞)·청고동(靑皐洞)·성저동(城底洞)·가원동(可原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성리로 개편되었다. 고성리는 고성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2리 성저동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성황목은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고성리 성저동 성황목은 성저동 입구에 있는 남쪽 능선 끝부분 구릉에 위치해 있다. 성저동 입구에 있는 남쪽 능선 끝부분에서 계단을 오르면, 소나무 성황목 앞에 방형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마을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돌화살촉. 고성리 출토 석촉은 1960년대 초에 출토되었다. 당시 울진교육청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출토 상태에 대해서는 당시의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석촉은 모두 4점으로 재질은 점판암이며, 단면은 아주 얇은 편육각형(扁六角形)이다. 이 가운데 1점은 유경식(有莖式)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읍성지. 고읍성에 관한 문헌 사료의 기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현동오리(在縣東五里)’라 하여 당시 시점을 고산성(古山城)에 읍치를 두고 구 읍지로서 울진읍성[고읍성]을 바라보았다. 둘째, 고읍성의 둘레는 1,210척으로 기재되어 있다. 1,210척을 당시의 교정 척도로 환산하면 약 377m이다...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시설(墓域施設)·무덤방[墓室]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 혹은 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검성리에 있는 고개. 옛날 이 고개를 넘어 다닐 때 소등에 짐을 싣고 넘었다고 하여 고적령(古積嶺)이라 하였고, 고개 중턱에 집이 있어 나그네가 쉬어 다녔다고 하여 나그네령이라고도 부른다. 동쪽 응봉산 지맥이 삼척군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뻗어 남쪽으로 금산봉을 이루고 그 아래에 물골들이 있다. 서쪽에는 수거령이 있고, 남쪽은 옥녀봉과 족두리봉이...
-
경상북도 울진군과 영양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 해발 700m 높이의 고초령은 과거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애환을 남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원래 사람이 살지 않은 고개였으나 보부상을 하는 상인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타 지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초령 고개를 넘을 때면 종종 도적들이 나타나 이들의 금품을 탈취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와 관련하여 고초령...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1리에 있는 고파현의 유래를 담은 이야기. 고파현의 동쪽은 국도 7호선 너머에 울진읍 읍내리가 있고, 서쪽은 청고동이 있으며, 남쪽은 남대천 건너에 월변동이 있다. 북쪽에는 산성이 있으며 성저동과 접해 있다. 고파현은 고파목[古坡峴]·구만리(九萬里)·청고개[靑皐峴]라고도 한다. 2001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자연마을. 1680년 경에 난을 피해 아기를 업고 마을에 온 어느 할머니가 배를 구해 떠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는 것에서 고포(姑浦)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규모가 적은 어촌이지만 예로부터 청정해역에서 생산된 미역으로 잘 알려진 곳이어서 고포 미역마을이라 한다. 지명유래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마을이 형성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고려 후기 울진현의 치소인 토축 읍성지. 고현성에 관한 기록은 오래된 지리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1631년 간행된 『울진군지(蔚珍郡誌)』의 울진읍 성곽 고현성조에서 ‘재현동현내동해곡토축위읍려공민왕이십년임자위왜구분선이읍우왕숙(在縣東縣內洞海曲土築爲邑麗恭愍王二十年壬子爲倭寇焚燹移邑于王淑)’으로 확인된다. 고려 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 있는 산. 450년 전에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이곳에서 등대라는 시를 읊을 때 따오기 새가 와서 울었다 하여 ‘곡대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쪽은 동해와 접해 있고, 서쪽은 척산리와 북쪽은 사동리 그리고 남쪽은 기성면 소재지와 접해 있고 그 아래쪽에 정명천이 흐른다. 곡대산의 현재 모습은 옛날과 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 행정 기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자치 단체, 기타 공공 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으로서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이나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각 급 학교, 「정부투자기본관리법」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정부 투자 기관, 「특별법」에...
-
경상북도 울진군의 산업 중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원료를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만들어 내는 산업. 경상북도 울진군의 공업은 타 시·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상북도 내에서 울진군 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0.5%이고, 울진군의 공업 생산액도 경상북도 생산액의 약 0.05%에 불과해 울진군 공업의 상대적인 낙후성을 보여준다. 또한 2011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개되는 자연과학·응용과학·공학 및 생산기술의 총합. 과학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과학과 기술은 밀착되어 있어서 과학은 기술의 진보를 촉진하고, 기술이 제기하는 문제는 과학의 발전을 자극한다. 이와 같은 상호 상승 작용 때문에 과학기술은 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종목(郭鍾穆)은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를 졸업하고 경상북도 영해[현 영덕군]의 송천의숙(松川義塾)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가족을 데리고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구산자(溝山子)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민족학교인 구산자학교(溝山子學校)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
조선 중기 현풍곽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이곤(爾坤). 시조는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를 지낸 포산군(苞山君) 곽경(郭鏡)이고, 아버지는 참봉 곽지정(郭之亭)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로 김윤의(金潤義)의 딸이고, 부인은 영해박씨로 박영조(朴寧祖)의 딸이다. 큰아들은 보공장군(保功將軍) 곽자견(郭自堅)이고, 둘째 아들은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곽익(郭益)이다. 154...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학곡2리 관곡마을에 전해지는 지명 이야기. 관곡마을의 동쪽에는 국도 7호선과 바깥멋질이 있고, 남쪽은 다티고개, 서쪽은 도봉이산 준령 밑에 깊숙이 멋질골이 있으며, 북쪽은 마을 뒷산이다. 멋짓골이라고도 한다. 2001년에 울진군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관곡마을은 평해읍 학곡(鶴谷)2리 자연부락으로 고...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관윤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의 산수가 수려한 계곡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관윤정은 남아 있지 않으며, 관윤...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1952년 5월에 주지 김봉호(金鳳浩)가 창건하였다. 1955년 5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서 관음불상을 모셔와 봉안(奉安)하였다. 그 후 일본에서 대세지불상을 모셔와 봉불(奉佛)했다. 현재 신도 수는 약 200여 명 정도이고 대표는 승려 경율이다. 대웅전은 팔각지붕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의 서쪽을 북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 울진군에서 봉화군 소천면까지의 십이령 중에서 가장 넓은 령의 밑이라 하여 광비라 하였는데 지금은 거리광비, 안광비, 광비로 불리고 있다. 광비천은 십이령 사이의 계곡인 광비를 흐르는 하천이다. 장군봉 서편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다가 봉화군 소천면 옥방 부근에서 90°로 꺽어 울...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만부·김응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인 김흥광은 신라 신무왕의 셋째아들이다. 광산김씨는 크게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낭장공파, 사온직장공파의 5개 파로 분류된다. 조선 중기 때 문신인 김만부는 김은휘의 후손으로 문학에 뛰어나 산수가 좋은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거했다. 한성부윤대호군을 지낸...
-
경상북도 울진군의 산업 중 광물의 채굴(採掘)·선광(選鑛)·제련(製鍊) 등의 작업을 행하는 업종. 광업은 광업법상으로 광물의 채광·채굴 및 여기에 따르는 선광·제련·기타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상으로는 유용 광물의 채굴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만을 주로 지칭하며 따라서 제련에 관련된 산업은 산업 분류상 제조업 중에서 금속 관련 공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광업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발원하여 금강송면, 울진읍, 근남면을 지나 왕피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큰빛내마을과 작은빛내마을을 흐른다고 광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1,119.1m 산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금강송면 삼근리 광천교 부근에서 진조산[908.4m]과 통고산[1,066.5m] 부근에서 발원한 지류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와 삼근리 사이에 있는 다리. 길이는 45m이며, 총 폭은 10m에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8.5m이다. 차선은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7m이다. 1985년도에 준공되었으며, 상부는 RCT 공법에 하부 Ra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다. 국도 36호선에...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가 넓어 보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650년 경에 김녕김씨(金寧金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평해군 근서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도계리(陶溪里)와 광곡리(廣谷里)가 통합되어 광품리로 개편되었다. 광품리는 광품1리와 광품2리 두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광비동(廣比洞)과 남회룡동(南回龍洞)에서 ‘광(廣)’자와 ‘회(回)’자를 따 ‘광회(廣回)’가 되었다. 1500년 경에 구씨(具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광비동·거응동(巨應洞)·남회룡동이 통합되어 광회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과 수단. 1. 조선시대의 교육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는 관학 교육과 사학 교육이 시행되었다. 관학 교육기관으로는 울진향교와 평해향교가 있었는데, 울진향교는 1484년(성종 15)에 울진읍 읍내리에 건립되었고, 평해향교는 1357년(공민왕 6)에 명수학교라는 이름으로 반월산에 창건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기관. 현행 「교육기본법」과 그 시행령에 의거, 울진군에는 초등학교·중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있으며, 고등교육기관으로 경북전문대학 울진캠퍼스가 있다. 2011년 7월 1일 현재 울진군 관내에는 공립병설유치원 16개원, 사립유치원 3개원, 초등학교 14개교, 분교장 5개교, 중학교 9...
-
경상북도 울진군을 연결하는 교통망과 교통 현황. 교통이란 일반적으로 인간·물건·사상·정보 등을 어느 지점으로부터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교통은 인간·물건 등 유기체적인 교통인 운송과 사상·정보 등의 무기체적인 교통인 통신으로 양분되고, 협의의 교통은 운송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운송은 운반하는 목적물에 따라 여객 운송과 화물 운송으로 나...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소재한 기독교인들의 신앙 집단 혹은 예배 공간. 울진 지역의 교회는 교단에 따라 크게 침례교, 감리교, 장로교 소속으로 구분된다. 울진 지역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교회로는 행곡침례교회, 구산침례교회, 울진중앙감리교회, 평해감리교회, 용장교회 등이 있다. 현재 울진 지역의 교회를 교단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말콤펜윅 선교사...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구룡사]에 얽힌 이야기. 사찰연기담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인데, 그 중 구룡사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연유와 다시 사찰의 이름이 바뀐 이유까지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2001년 울진군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가 뒷산 단하봉과 해봉에 올라가 북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산세가 서역의 명...
-
경상북도 울진군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와 민요. 구비문학(口碑文學)은 ‘말로 된 문학’을 의미하고 ‘글로 된 문학’인 기록 문학과 구별된다. 구비문학을 구전 문학이라고도 하는데, 구비문학이라는 용어를 택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구비’라는 말의 어원은 비석에 새겨놓은 것처럼 오래도록 전해온 말을 뜻한다. 즉, 구비문학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고 절실한 공감을 얻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서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바다에서의 안전·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3~5년마다 하는 굿. 구산포(邱山浦)라고 알려진 구산(邱山)은 동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서쪽은 황보2리, 남쪽에는 평해읍 월송2리 군무봉이 있으며, 북쪽은 봉산2리와 인접하고 있다. 신라 말 당나라의 구대림(丘大林)이 귀화하여 이곳에 와서 마을 이름을 구미(丘尾...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청암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등재. 구산리 석등재는 연화문의 하대석과 간주석 일부로 연화 하대석 이하는 매몰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연화문 하대석은 양각의 단엽 팔판복련(八瓣伏蓮)으로 위에 3단의 괴임을 각출(刻出)하고 그 사이에 단엽을 넣었다. 상면 중앙부에는 8각형의 간주석 받침을 호형 1단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마을은 구산 1리, 2리, 달동네로 구분하는데, 이전부터 구산리에 살았던 사람들은 1구에 거주하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주로 2구에 거주한다. 이들 모든 마을을 관장하는 제당이 구산리 성황당이다. 구산리 성황당은 서낭당 또는 큰집이라 불리는데, 원래 여신(女神)을 모셨으나 현재는 골매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구고동(九皐洞)과 성산동(城山洞)에서 ‘구(九)’자와 ‘산(山)’자를 따 ‘구산(九山)’이 되었다. 대부분 13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북평동(北平洞)·성산동·구고동이 통합되어 구산리로 개편되었다. 구산리의 동쪽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굴미봉(掘尾峰) 아래 동쪽으로 바다와 인접하고 있어 구산포(邱山浦)라고 알려져 있으며, 마을 지형(地形)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 하여 구미(龜尾)라고도 하였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근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로 개편되었다. 구산리는 굴미봉 아래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 바다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상당리에 있는 계곡. 구수곡은 응봉산 분수령을 따라 모여든 아홉 계곡 물이 한 계곡으로 합수되는 곳으로 그 계곡을 구수계곡이라 한다. 옛날 전설에 의하면 봉화 사람이 덕구온천 원탕에 갔다가 응봉산 분수령을 따라 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이곳에서 경관이 좋아 머루, 다래를 따먹고 세월을 보내다 갔다는 말이 구전되고 있다. 구수곡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있는 구수곡 계곡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고,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구수곡 이야기」는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구수곡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구수곡은 매봉산 분수령을 따라 모여든 아홉 계곡 물이 한...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구슬령에 살았다는 신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서쪽 외선미리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구슬령[珠嶺]이라는 높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에는 옥녀묘(玉女墓)라고 부르는 푸른 무덤과 옥녀사(玉女祠)라는 사당이 있다. 옛...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구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구암」은 부자가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 아까워 손님치레를 하지 않으려고 마을 앞에 있던 바위를 제거한 후 완전히 망했다는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2001년에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전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에 있는 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350년 고려시대 충정왕 때 안성이씨가 이 마을에 와서 터전을 잡고, 박씨가 개척을 할 당시에 마을의 동쪽에 ‘개’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구암(狗岩)’이라고 부르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서 근남면 수산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36호선은 충청남도 대천에서 영주~봉화~울진을 연결하는 국도로 대천~울진선이라고 한다. 울진군을 동서로 관통하는 국도 36호선의 울진군 기점은 금강송면 광회리이고 종점은 근남면 수산리이다. 울진군 근남면, 울진읍, 금강송면을 지나 봉화군 소천면으로 연결된다. 국도 36호선은...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서 북면까지 동해안을 따라 연결되는 국도. 국도 7호선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개설된 도로로 본래 부산~원산선이라 하였다. 1963년부터 부산~온성 간 도로라 하여 부온선(釜穩線)이라 하였고, 근년에 와서는 동해간선도로(東海幹線道路), 또는 동해선이라고도 한다. 울진군을 통과하는 중심 교통로로서 울진군 구간의 기점은 후포면 금음리이고,...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에서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 88호선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에서 시작해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국도 88호선의 울진 구간은 온정면 외선미리가 기점이고 평해읍 평해가 종점이다. 자연을 만끽하고 느낄 수 있는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도로로, 전형적인 산길 드라이브 코스이다. 울진군 남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는 식물 군락. 경상북도의 식생 분포는 온대 혼합림에 속한다. 온대림 지대는 온대 남부·온대 중부·온대 북부 식생대로 세분되는데, 울진군은 온대 남부 식생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울진군은 위도상 온대 남부 식생대의 북쪽에 해당하여 남부 지역에서 널리 볼 수 있는 낙엽 활엽수림은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대부분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와 기성면 구산리 사이를 흐르는 황보천 위에 있는 다리. 길이 54m, 총 폭 11.7m, 높이 3.5m이다. 차도 폭은 10.2m이고 총 차선 수는 2차선이다. 경간(徑間) 수는 4개이고, 최대 경간 폭은 15m이다. 설계 하중이 DB-19의 2등급 다리이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CS, 교각의 구조 형식은 SG이다. 군무교...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리에 있는 군자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642년(인조 20)에 전순의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전순의 아들은 힘이 무척 센 장사로 태어났다. 부모나 친척들은 아이가 자라서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믿고 아이를 죽이려 하였다. 빨랫돌과 콩 세 가마를 아기의 등에 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우리나라에서 전해 오는 「권주가」는 대개 허무한 인생을 탄식하고 부귀와 장수를 빌며 술을 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나, 울진읍 연지2리에서 전해 오는 「권주가」는 오동나무가 보이는 창을 열어 두고 주모에게 술 한 잔 청하는 감흥을 말하는가 하면, 이 술로 인해 나가는 돈에 대한 염려의 뜻도 담고 있다. 현실적인 인식...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산주의자 단체. 국외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들과 지역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결합하여 만든 울진공작당이 강원도 동해안 각 지역 운동가와의 연대하여 공산주의 운동을 통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개편한 단체이다. 1931년 7월 15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면 연지리 연호정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강령과 행동 방침을 정했으며 8월 15...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울진군 남쪽 가까운 곳이므로 근남면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의 지역으로서, 구고(九皐)·성산(城山)·북평(北平)·막금(幕錦)·두전(斗前)·비월전(飛月前)·상천전(上川前)·천전(川前)·구미(九尾)·천연(泉淵)·오노(五老)·지음(旨音)·당북(塘北)·수산(守山)·비래봉(飛來峯)·전반(全反)·상동정(上洞庭)·하동정(下洞庭)·도촌(島...
-
경상북도 울진에서 개항기 이후 이루어진 건축물. 근대건축은 일본에 의한 강압적인 개항과 서구 열강과의 통상조약 이후 서구 문물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개항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최초의 근대건축물은 일본의 외교 공관이었다. 울진 지역의 근대건축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이루어져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식 건조물이 많지만 여전히 한옥 양식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울진 읍내에서 서쪽에 입지하여 지명을 서면이라 하였다가, 지역내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서 유래된 금강송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본래 울진군의 지역으로서, 하원(下院)·삼근(三斤)·왕피(王避)·봉전(鳳田)·달전(達田)·소조원(召造院)·후곡(後谷)·광천(光川)·전천(前川)·원곡(元谷)·승부(承富)·광비(廣比)·거응(巨應)·남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서 생산되는 버섯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울진의 특산물로 등장하고 있는 복령은 오랜 옛날부터 한방에서 사용되어 온 생약의 하나로, 중국의 문헌이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이뇨작용, 진정작용, 심장수축 강화작용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통의학에서는 진정작용과 이뇨작용, 강장 등...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산. 조선시대 중엽 충주지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을 때는 지명이 없었으나 그 후 광맥 조사차 이곳을 왕래한 지질학자들이 쇠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여 금곡(金谷)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광산은 근래에 폐광되었다. 평해읍의 서쪽으로 200m 정도의 낮은 구릉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삼달1리의 주산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금답동(金沓洞)과 하매동(下梅洞)에서 ‘금(金)’자와 ‘매(梅)’자를 따 ‘금매(金梅)’가 되었다. 1400년경 조선 전기 단천군수(端川郡守)를 역임한 영양인(英陽人) 남득공(南得恭)이 경주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금답동과 중매...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금융관련 기관과 그 현황. 근대화 이전에는 계(契)가 오늘날의 금융 역할을 하였다. 계에는 저축을 하여 목돈을 마련하는 저축계, 계원이 자금을 거두고 이를 대출·운영하여 이식을 도모하는 이식계 등이 있었다. 자금 운용은 신용 대출 방법이 채택되었는데, 차용자가 반환하는 방법에 따라 일수계·월수계 등이 존재하였다. 객주(客主)도 서민 금융 업무를 발...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의 하천 위에 있는 다리. 후포면 지역의 한 자연 부락에는 광물이 풍부한 산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 부락은 쇠가 많이 나는 지역이란 뜻의 쇠골이란 명칭을 얻게 되었다. 금음리(金音里)라는 이름은 쇠골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금음교는 금음리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36m, 총 폭 12m, 높이 3m이다. 차도 폭은...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될 때 금곡동·만산동·야음동·지경동을 병합하였는데, 금곡동과 야음동에서 이름을 따서 금음리라 하였다. 1275년(충렬왕 1) 평해군 남면(南面) 야음리(也音里)가 되었고,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 금음리가 되었다. 1944년 금음리를 금음1리, 금음2리, 금음...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4리 지경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한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洞神)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성황당이 철거되기 이전에는 정월 제사 외에 성황당 준공일인 사월초파일과 음력 팔월 제사를 포함하여 연중 세 차례의 동제를 지냈다. 구체적인 연원은 알 수 없고 마을 수호신인 안씨터전에 정씨 골맥이를 모시...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산. 금장산의 명칭은 이 지역에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장산은 백암산 바로 북쪽에 위치하는 산으로 영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태백산맥에 속하는 산이다. 높이 848.4m이며, 남쪽으로 흐르는 계류는 외선미저수지로 유입된다. 온정면에서 백암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며, 험준한 산골오지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이 지역의 앞 내[川]에서 사금을 캤던 데서 지명을 금나리 또는 금천리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근서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입암리(笠岩里)와 노은리(老隱里)가 통합되어 금천리로 개편되었다. 금천리는 금천1리, 금천2리, 금천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금천리의 동쪽으로는 응봉산(鷹峰山)[38...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 토호인 금초(今草)가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 고려 무신정권기에 농민과 천민이 주체가 되어 발생한 농민봉기는 고려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였다. 무신의 난 이전에도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이 산발적으로 지배층에 저항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천민들까지 참가하는 양상으로 발전되면서 전국적...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의 정명천 위에 있는 다리. 기성면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 모양이 배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성교는 기성면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120m, 총 폭 11m, 높이 4m이다. 차도 폭은 10m이고, 총 차선 수는 2차선이다. 경간(徑間) 수는 6개, 경간 최대 폭은 20m이다. 설계 하중이 DB-24...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해의 옛 고을인 기성현이 있었으므로 기성이라 하였다. 또 다른 설은 기성(箕城)이란 마을 이름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의 모양이 배 같이 생겼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약 800년 전에 한갑산(韓甲山)이란 선비와 신고연(申高然)이란 선비가 송림(松林) 사이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오고...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평해의 옛 이름인 기성의 이름을 따서 기성면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의 지역으로서, 북쪽 먼 곳이 되므로 원북면(遠北面)이라 하여 망양(望洋)·상사(上沙)·하사(下沙)·동잠(東蠶)·서잠(西蠶)·마산(麻山)·구산(邱山)·감률(甘栗)·호전(虎田)·방비(芳非)·웅연(熊淵)·척산(尺山)·암곡(庵谷)·기성(箕城)의 14개 리를 관할하...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토축 읍성. 기성읍성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평해군 읍토성조에 ‘주회이백구십사보(周回二百九十四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평해의 구호(舊號)는 기성(箕城)으로 1357년(공민왕 6)에 기성현이 평해군으로 편입되면서 군소재지를 현재의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토축 읍성은 기성현 시절 군의 치소였던...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간 육성이라는 지표 아래 민주적·자율적·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알뜰하게, 슬기롭게, 새롭게’이다. 1970년 3월 4일 6개 학급으로 지금의 기성초등학교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1970년 12월 30일 현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다. 1994년 12월 9일 ‘대망’ 비를...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지표 아래 ‘도덕인, 개성인, 창조인, 건강인’을 교육 목표로 정하여 교육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한 마음, 향상의 의지, 줄기찬 노력’이다. 1926년 10월 1일, 4년제 기성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1992년 3월 1일 다천초등학교[방율분교 포함]가 기성초등학교의...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 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도덕인’, ‘창의인’, ‘자율인’, ‘봉사인’, ‘건강인’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41년 9월 13일 기성공립보통학교 부설 사동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4년 4월 1일 사동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 1954년 7월 25일 삼산분교장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기전동(基田洞)과 영양동(永陽洞)에서 ‘기(基)’자와 ‘양(陽)’자를 따 ‘기양(基陽)’이 되었다. 1466년 경에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기전동·영양동·두기동(斗基洞)·지품동(池品洞)이 통합되어 기양리로 개편되었다. 기양리는 기양1리, 기양...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가뭄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 문헌에 의하면 기우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민간에서는 산상·냇가 등에 재단을 세워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정결히 하고 마을 전체의 공동 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농경에 의존했던 전통사회에서 기우제는 나라 전반의 주요한 사안이었으며, 그 형태도 다양하였다. 국왕이 사묘에 비는 방식,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모든 형태의 민속. 울진 지역에서 자녀, 특히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이나 집안에서 이를 기원하는 습속으로 산이나 절과 같은 일정한 대상에 치성을 드리는 치성기자와 주술의 힘으로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주술기자가 있다. 울진 지역에서 치성기자는 산·거목·바위 등의 자연물에 대하여 행하여졌다. 산에 대한 치성을 산...
-
경상북도 울진군 가운데 대게를 잡는 해안 지역 마을에서 부녀자들이 행하던 민속놀이. 기줄당기기의 기는 바다의 다족류 생물인 게의 방언이다. 울진 지역에서 게는 붉은 색과 여러 마디의 다리 때문에 벽사의 존재로 인식된다. 기줄당기기는 이 놀이의 방식이 게의 모습처럼 엉금엉금 기는 데서 채택된 명칭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 기줄당기기를 행하고 있는 곳은 울진, 삼척, 밀양...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일정 기간의 평균적인 날씨로 기온·비·눈·바람 따위의 대기 현상. 울진군은 위치적으로는 한반도 중부에 해당하며, 지형적으로는 해안 지방에 위치해 있다. 특히, 태백산맥의 동사면에 위치하여 겨울철 탁월풍인 북서계절풍의 풍하 지역이라는 특성과 동한해류[난류]의 영향으로 인해 동일 위도상의 타도시에 비해 온도가 높다. 그래서 온도가 높을 뿐...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지르매(길마)처럼 되었다 하여 지르매 또는 길마·길곡이라 하였다. 1400년 경에 구씨(具氏)·고씨(高氏)·안씨(安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길곡리가 되었다. 길곡리의 여러 산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매화천을 이루며, 이 하천은 북쪽 근남면의...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길곡리의 길마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길곡리에는 길마촌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옛날 조선시대 초기에 어떤 선비가 말을 타고 이 마을을 지나다가 갑자기 용변이 보고 싶어 나무에 말을 매어두고 볼일을 보고 왔다. 다녀와 보니 나무에 매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영(金琪榮)은 김건(金鍵)의 12세손이다. 1883년 5월 25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원업(金源業)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
조선 전기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천뢰(天賚), 호는 만은(晩隱).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이다. 중시조(中始祖)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녕군(金寧君) 김시흥(金時興)이다. 아버지는 밀양부사(密陽府使) 김지을(金之乙)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로 호조참판(戶曹參判) 김한성(金漢聖)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황문경(黃文景)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길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인 김시흥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김은열의 후손이다. 경상북도 울진군에 세거해 온 김녕김씨들은 시조인 김시흥의 9세손으로, 조선 단종 때 사육신에 연루된 충장공 김문기의 후손들이 가장 많다. 1465년(세조 원년)에 김길상은 단종 복위운동이 사전에 적발되어 근친인 김문...
-
조선 후기 울진 지역의 김대부가 사대부 남성이 경계해야 할 삼강오륜의 도리에 대하여 읊은 가사 작품. 이현보(李賢輔)와 이황(李滉) 등이 우리말 시가에 대하여 호의를 보인 이래로 영남 지역 가사는 박인로(朴仁老)가 작자로서 두드러졌다. 박인로의 가사는 소박성과 직설적인 풍모가 잘 나타난 가사이다. 그러나 영남 지역 남성의 도학적(道學的)이고 풍류적인 기질은 속일 수 없어...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자. 아버지의 등에 종기가 나 백약이 무효하자 3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완치케 하였다. 또 어머니가 눈이 어두워져서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더니 3년 만에 어머니의 눈이 다시 밝아졌다. 그 후 어머니가 임종하려 하자 변 맛을 보고 하늘에 빌다가 잠시 기절하였는데, 꿈결에 한 노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말하기를 “네 효도에 하늘이 감동하여 상제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두(金柄斗)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67세손으로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서 1897년 11월 6일 김창국(金昌國)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상해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모금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하여 고향에서 상해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지장서재에서 학문을 닦는 한편 병서를 탐독하고 무예를 익혔다. 20세 때부터는 쇠도리깨 쓰는 법과 말 타는 법을 연습하여 인근 가치산(迦治山) 정상을 뛰어 오르내리는 것이 비호와 같았다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 중의 일부는 울산을 거쳐 육로로 북상하고, 또 다른 부대는 강릉에 상...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및 독립운동가. 김용욱(金容旭)은 신라 헌강왕(憲康王)의 39세손이다. 1869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서 김이수(金履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용욱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0월 7일 500명의 의병으로 기병하여 영덕군 서면[현 창수면] 불영사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에 대항하였...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각양(朱珏陽)이고, 남편은 영양김씨로 김원근(金源根)이다. 평소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시아버지가 7개월 동안 담종을 앓고 있을 때에 늘 종기를 빨아 내었다. 또 시아버지가 우연히 꿩 우는 소리를 듣고 꿩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주씨가 “제 정성으로 어찌 이를 행할 수 있으리오” 하고 탄식하던 중에 독수리...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양(南陽). 홍응섭(洪應燮)의 딸이며 선비인 안동(安東) 김원진(金源鎭)의 처다.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으며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하자 이것을 자신이 대신할 것을 하늘에 빌었다. 자기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넣자 병이 나았다. 그러나 남편이 또 다시 병이 들어 결국 사망하였다. 남편과 같이 죽기를 각오하다가 시부모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삼척(三陟). 교위공의 36세손으로 아버지는 현릉참봉을 지낸 김동수이다. 일찍이 우산(愚山) 남상규(南相奎)의 문하생으로 한문을 수학하고, 춘천사범학교와 대구사범학교 갑종강습과를 수료한 뒤 울진여자실천학교 교장과 울진초급중학교 초대 교장, 울진고등공민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한평생 교육계에 투신하여 울진 지역의 인재 양성에 공헌하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일수(金一壽)는 김건(金鍵)의 14세손으로 1878년 2월 19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형문(金炯文)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일본...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수(金在壽)는 김건(金鍵)의 14세손으로, 1886년 10월 9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형진(金炯振)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자는 병호(炳浩), 호는 앙모재(仰慕齋).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면 젖을 먹지 않았고 고기와 과실이 생겨도 먼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드리고 난 다음에 먹었다고 한다. 연이은 부모의 상(喪)을 당해서는 슬퍼하기보다는 예(禮)를 다 하고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
-
고려 후기 평해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예의판서(禮儀判書) 김원로(金元老)이다. 평해군수로 재직할 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로 바꾸었는데, 동해로 뛰어든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의 절개를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시 한 수를 써서 벽에 걸어둔 채 행방을 감추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남양(南陽). 홍광석(洪廣碩)의 딸이며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삼척(三陟) 김철중(金哲中)의 처이다. 평소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시어머니가 노병에 고기를 원하자 하늘에 매일 빌었다. 그러던 중 맹호(猛虎)가 노루를 물고 마당에 와서 두고 갔다. 그 고기로 국을 끓여 공양하였고 시어머니가 또 개를 원하자 마침 개장사가 왔기에 개를...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의 시조는 가야의 김수로왕이고, 중시조는 신라의 김유신이다. 후손들은 98파로 분파되었는데, 김유신의 직계인 경파·사군파·삼현파가 대표적이다. 삼현파는 효자인 김극일과 그의 손자인 김일손 그리고 김일손의 조카인 김대유의 세 현인에서 비롯되었다.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1리에 있는 꽃방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죽변면 화성1리 꽃방[花坊]마을은 1515년(중종 10)경에 영양남씨 남수정이 들어와서 살며 15세대로 세거(世居)해오고 있다고 한다. 동네 이름을 ‘꽃방’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마을 중...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안에 소금을 굽던 벌이 있었으므로 나실 또는 나곡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포동, 후근동, 곡리동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나곡리라 하였다. 해안에 소금을 굽던 벌이 있었으므로 나실 또는 나곡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포동, 후근동, 곡리동의 일부 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에서 나라실의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평해읍 오곡2리에 있는 나라실[飛良里]은 신라 진흥왕 이전에 생긴 이름이다. 신라 때 비량현(飛良縣)의 소재지로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에서 학(鶴)이 날아갔다고 하여 학이 날아간 마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를 흘러 금강송면과 봉화군 소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 낙동강은 태백산맥의 준령계곡을 흐르면서 울진을 비롯한 영남 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길이 506.17㎞, 유역면적 23,384.21㎢이다.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어릴 때부터 어버이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고기를 잡아 공양하여 병에 차도를 얻었다고 한다. 18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살이를 하였고 그 후 모친상을 당하여서도 여막살이를 하였다. 25세 때 진사시에 등과하여 소문이 고향에 자자하였으며, 관찰사가 초빙하여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천(伊川)교수가 돌아가자 요승(妖僧) 학조(學...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금계(琴溪). 현감 남이(南頤)의 후손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지조가 정결하여 고집은 있어도 모든 일을 바르게 처리하였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폐백을 정하였다. 부모 상(喪)을 마치고 나서 돌아오지 않고 있자 동문들이 그가 나가서 죽은 줄 알고 모두 슬퍼하였다. 상복을 벗은 후에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하니...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동해에 접한 암벽. 남대문은 칼로 갈라놓은 것 같은 암벽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상륙거점으로 이용하여 마을에 들어와 재물을 약탈하여 갔으며 또한 통로로 숨어 들어오는 왜적들을 활로 쏘아 죽였다는 전설이 있다. 동해에 접하고 있는 암벽으로 폭 약 1m, 길이 50m에 달하고 있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영양남씨 입향조. 본관은 영양(英陽).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이다. 시조는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며, 분파조는 진사 남유지(南有智)[일명 삼기(三起)]이다. 아버지는 남봉우(南鳳羽)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판관(判官)을 지낸 장온고의 딸이다. 부인은 김을환(金乙環)의 딸이다. 목사(牧使) 남회(南薈)와 생원(生員) 남매(南邁) 두 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현감 남신(南䢻)의 7세손이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만호(萬戶) 남몽길은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의 수하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김유(金瑬) 등과 함께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으로 책봉되고 녹권(錄券)이 하사되었으며 벼슬이 부사직(副司直)에 올랐고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추증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여문(汝文), 호는 지산(芝山).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15세손으로 1888년 8월 27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서 남유익(南有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남병표는 4월 13일 낮 울진군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동네 청년 전병항(田炳恒)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화중(和仲). 남윤의 후손으로 1908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상일(南相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복이는 1941년~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용식(南龍湜), 남원수(南源壽) 등 울진군 유생 22명과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명 준향계·후란계·독서회]를 조직하고 상해임시정부에 조직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남부지방산림청 산하 울진국유림관리소. 산림청은 산림의 주인에 따라 크게 사유림과 국유림으로 나누어 그에 알맞은 정책을 펼쳐나간다. 산림청이 국민으로부터 그 관리를 위임받은 국유림에 대해서는 전국 다섯 개의 지방산림청인 중부지방산림청·북부지방산림청·동부지방산림청·서부지방산림청·남부지방산림청을 통하여 직접 경영하고 있다. 그중...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증손이다. 남사고는 천품이 재주 있고 사리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항상 『소학』을 책상에 두었고 특히 역학, 천문, 지리에 정통하여 기(氣)의 묘를 능수능란하게 관찰하였다. 봉래 양사언(楊士彦)이 『주역(周易)』을 논하다가 남사고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남...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시걸(時傑), 호는 서산(西山).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이자 남효영(南孝永)의 손자로서 1911년 1월 9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백연(南百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조선독립공작당사건과 울진적색농민조합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중 극심한 고...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송정(松亭). 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의 넷째 아들이자 만호(萬戶) 남호(南顥)의 아우이다. 1417년(태종 17) 과거에 등재하여 1425년(세종 7) 서사(筮仕)에 올랐고, 1439년(세종 21) 통찬(通贊)에 올랐으며, 1440년(세종 22) 승훈(承訓), 1444년(세종 26) 감찰이 되었고, 그 해 9월에 용...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산. 옛날부터 명산이라 하여 기우제를 지낸 산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현소(玄蘇)라는 일본 고승을 밀파하여 산자수려한 명산의 정기를 쇠진시키기 위하여 남수산 상봉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근년에 군사시설이 정상에 설치될 때 이 쇠말뚝을 뽑았다고 한다. 또 조선 명종 때 남사고(...
-
경상북도 울진군에 거주하는 영양·의령·고성을 본관으로 하는 남씨 종친들의 모임. 남씨대종회 울진군지회는 숭조(崇祖), 목족(睦族), 화합과 제사 등 종친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2년 남씨대종회 울진군지회 설립 초기에는 매년 8~9월 종친회를 개최하였으나, 최근에는 6~7월로 종친회 모임 시기를 변경하였다. 2007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할아버지는 남광우(南光佑)이고, 할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아버지는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안윤(安玧)의 딸이다. 부인은 증지평(贈持平) 경안(景顔)의 딸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오른갈[노음] 옛집을 찾아가 문안을 올리는데 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시조는 신라 때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고, 분파조는 고려 때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남홍보(南洪輔)이다. 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宗簿侍令判事) 남승고(南承顧)이다. 부인은 강릉최씨(江陵崔氏)로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맏아들 남호(南顥)는 만호공파(萬戶公派)의 시조가 되었으며, 둘째 아들 남이(南頤)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으로1915년 8월 14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남석화(南錫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용식은 1941~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복이(南福伊), 남원수(南源壽) 등 울진군 유생 22명과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명 준향계·후란계·독서회]를 조직하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세종(世鍾), 호(號)는 서광(敍光).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으로 1915년 2월 5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진만(南鎭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1~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용식(南龍湜), 남복이(南福伊) 등 울진군 유생 22명이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희백(姬伯)이다. 송정공(松亭公) 남수(南須)의 후손으로 임천공(臨川公) 남세영(南世英)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남치홍(南致鴻)이다. 남치일(南致馹)의 양자가 되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우며 일찍부터 독훈장을 두고 한마음으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많은 책을 읽고 학문에 힘써 일가를 이루었다. 1876년(고종 13...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현령 남각(南閣)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치인(南致仁)이고, 할아버지는 남장손(南長孫), 아버지는 남징(南澄)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참봉 남언륜(南彦倫)이다. 선조 때 진사로 장사랑(將仕郞)을 역임하였다. 1590년(선조 23) 세거지인 선사(仙槎)[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부]에서 경상북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영의공 남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예빈경 남혁(南奕)이고, 할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 남승고(南承顧)이다. 아버지는 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세종(世宗) 때 정읍현감(井邑縣監)으로 재임하면서 청백리로 존경을 받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한익(漢翊).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후손으로 1898년 2월 7일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에서 남병선(南炳旋)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재량은 애국지사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강학하던 매화면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에 재학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전개되자 이...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충순 남명(南溟)이고, 할아버지는 진사 남기수(南麒壽)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남응건(南應乾)이며, 어머니는 철원최씨로 최윤호(崔潤湖)의 딸이다. 부인은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이종원(李種元)의 딸이다. 광해군 때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로 재임 중에 인목대비 김씨가 서궁에 유폐된 것을...
-
조선 전기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단천군수 남득공(南得恭)이고, 할아버지는 제주목사를 지낸 정일재(精一齋) 남회(南薈)이다. 아버지는 생원 남계안(南繼顔)이고,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이다. 교위 남가(南稼)의 아우이다. 부인은 거제반씨(巨濟潘氏)로 반득청(潘得清)의 딸이다. 성종(成宗) 때 정의(旌義)를 하였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초(德初). 남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남용복(南容復)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내서(乃瑞), 호는 목은(牧隱). 영양군(英陽君) 남홍보(南洪輔)의 후손으로 진사 남응량(南應亮)의 7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춘적(南春迪)이고, 할아버지는 남석희(南錫羲)이다. 아버지는 성공(聖公) 남기목(南基霂)이고, 어머니는 웅천주씨로 주봉양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최씨로 최배규(崔配奎)의 딸이다. 일찍이 경사...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양(英陽). 송정공(松亭公) 남수(南須)의 1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남경철(南景喆)이고, 아버지는 남치영(南致營)이다. 1905년(고종 9) 울진군 금강송면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병력과 장비를 갖추고 이듬해 서울을 향해 진격하였다. 진격하던 중 봉화군(奉化郡) 소천면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증조할아버지는 검교예빈경 남혁(南奕)이고, 할아버지는 종부시령판사 남승고(南承顧)이다. 아버지는 신호위중랑장 남영번(南永蕃)이고, 어머니는 최유의(崔有猗)의 딸이다. 울릉도 해안에 도적들이 자주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자 1438년(세종 20) 수백 명의 사람을 데리고 가서 도망하여 숨어 있던 도적들을 수색하여 김...
-
1977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건립된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 남홍보의 제단비. 남홍보는 당나라 안렴사(按廉使)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의 후손으로 고려시대에 관직으로 중대광도첨의찬성사(重大匡都簽議贊成使)를 지냈으나, 사적과 묘소·배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다.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인 남홍보에 대한 행적과 묘소,...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정일재(精一齋). 할아버지는 현감 남봉우(南鳳羽)이고, 아버지는 단천군수 남득공(南得恭)이다. 어머니는 김을환(金乙環)의 딸이고, 부인은 풍산유씨로 직장 유정(柳汀)의 딸이다. 1416년(태종 16) 진사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다. 이 해 김맹헌(金孟獻)·이근백(李勤伯)·남간(南簡) 등과 더불어 동주계를 만들어 그...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 있는 고개. 고개마루가 넓어서 넓재라고 한다. 또 일부에서는 큰 늪과 재가 있다고 하여 큰넓재라고 부른다. 십이령 상에 있는 고개로서 선질꾼이나 나그네가 쉬어 가기 좋은 넓은 재라 하여 넙재라 한다. 넓재는 태백산 준령에 둘러싸인 산간오지이며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진조산[908.4m]이 있으며, 서쪽은 광회1리, 남쪽...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816년(순조 16)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1921년에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평해구씨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노동마을 뒷산 허리 아래에 서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노동서원의...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임금 노동자 계층이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조직적인 활동. 노동부의 「2006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9년 19.8%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7년~2001년 12%, 2002년~ 2003년 11%, 2004년 10.6%, 2...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노동(五老洞)과 지음동(旨音洞)에서 ‘노(老)’자와 ‘음(音)’자를 따 ‘노음(老音)’이 되었다. 145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당북동(塘北洞)·수산동(守山洞)·오노동·지음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노음리로 개편되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 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기초 기본을 중시하는 교육 과정, 재능과 개성을 살리는 창의력 개발, 행복한 미래를 가꾸는 인성 함양’ 등을 교육 방향으로 정하여 교육하고 있다. 교훈은 ‘슬기롭고 꿈이 큰 어린이’이다. 1936년 9월 28일 2개 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60년 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 불영사 계곡에 있는 바위. 노적바위의 지명은 특별히 전래되는 내용은 없으나, 바위의 생김새가 곡식을 쌓아둔 노적가리와 같은 형태인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적바위는 불영계곡 내 불영사와 신계사 중간에 있는 바위이다. 불영계곡의 출발점은 왕피천에서 시작된다. 건잠교에서 금강송면 삼근리에 이르는 18㎞ 구간을 불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몽룡(夢龍), 호는 창유(暢幽). 학산공(鶴山公) 노우명(盧佑命)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종만(盧鍾萬)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논의 김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논매기 소리」는 논농사가 가능한 울진군의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업노동요의 하나이다. 한 마을에 최소 2종 이상의 「논매기 소리」가 존재하는데, 비록 가까운 곳일지라도 가사나 율조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논매기 소리」에는 농사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민중들의 낙관적인 정서가 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농사를 짓는 데 사용한 전통 연장.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사용된 농기구는 논농사·밭농사·화전을 위해 사용한 연장으로, 농지의 개간과 정리·파종·김매기·거름주기·물대기·수확·저장·정미·운반·가축 사육 및 피륙짜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농지를 개간하거나 정리하는데 사용된 농기구로는 따비·쟁기·괭이·가래·쇠스랑·써래·번지·나래·곰방메 등이 있다. 따...
-
경상북도 울진 지역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협동조합. 협동조합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농민·중소기업자 등이 자주적으로 결성한 경제적 이익 단체로서 잉여의 외부유출을 방지하고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동조합은 소비조합·생산조합·금융조합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결성 또는 조직될 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농협중앙회 울진군지부. 1961년 8월 15일 「농업협동조합법」[법률 670호, 1961년 7월 29일 제정]에 의해 개별 회원 농업협동조합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회원 조합의 공동 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설립되었다. 1999년 3월 발표된 협동조합 개혁 방안에 따라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와 인삼...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설운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는 자연부락으로 영양남씨가 개척하였다는 마을이다. 마을의 뒷산 암벽이 황금색이고, 또 사람들이 동네에 황금이 많이 쌓이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간혹...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누각과 정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누정조」에서는 누정을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누각과 정자를 총칭하는 누정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던 망대(望臺). 능허(凌虛)는 ‘허공을 가르다’, ‘비상하다’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절경에 위치한 정자나 누각 등에 많이 사용하던 관용어였다. 울진읍 고성리 산성 동편의 옛 울진읍성 요새지에 있었던 망대이다. 능허대 터로 추정되는 울진읍성의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있고, 서쪽에는 청고동(靑皐洞)이 있다. 강 건너에는 가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서 땅에 받침목을 박을 때 부르는 작업노동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울진군 전역에서는 땅에 받침목을 박을 때는 으레 「다리종목 지짐이 소리」를 불렀다고 한다. 주로 다리를 놓을 때 많이 쓰였던 다리종목, 곧 받침목을 박는 작업은 일고여덟 명의 일꾼이 같이 하는 작업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네 개의 큰 나무를 세워 끝을 모으고, 그 꼭지에 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냇물이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므로 다오내, 또는 다천이라 하였다. 혹은 김응조가 마을에 와서 보니 하천에 다초(茶草)가 많다 하여 다천이 되었다. 1380년 경에 경주이씨(慶州李氏)가 마을을 개척하면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근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다천·중다천·하다천이 통합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달공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달공굴은 달공화상이 수도하다가 부처님을 보게 된 곳이므로, 신성한 장소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심이 얕은 중은 죽었다는 내용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백암사 중턱에 큰 바위가 있는데,...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1리에 속해 있는 자연마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1리에는 세 계곡[三溪谷] 물이 합쳐지는 곳이 있어 이곳을 ‘달내바위골’ 또는 월천암곡(月川岩谷)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조월천(趙月川)이라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이 곳 3계곡 합수처(合水處)에서 수양하면 완치된다는 소문을 듣고 한양에서 찾아와서 초가집을 짓고 오랫동안 살면서 병을 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행하던 놀이. 달넘세는 독립된 한 가지의 놀이 형식이 아니라 송아지띠기, 대문열기와 월월이청청 놀이로 연결되어 연행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달람새라고도 한다. 달넘세는 대개 기성리의 해촌마을에서 성행하며 달밤에 처녀나 새댁들이 칭칭이로 시작하여 밤이 이슥할 때까지 즐긴다. 달을 넘자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려운 일을 극...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2리에서 전해오는 효자 이윤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진군 평해읍 월송2리에는 안성이씨 해은 이윤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윤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는데,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낫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병이 점점 위독해지자 이윤은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약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당계의 계원을 가리키는 용어. 당계는 초상을 치를 때 상가에서 홀로 처리하기 어려운 제반 일들을 서로 분담하여 돕는 상여계로 계원을 당군이라 한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당계는 하나의 마을에 두 개 이상이 존재하거나, 두 개 이상의 마을에서 하나의 당계를 운영하기도 한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3리 대수마을에는 신담계와 구담계라는 두 개...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담배를 주제로 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기성면 기성리에서 전해 오는 「담방구 타령」은 담배농사가 한창일 때 울진 지역에서 널리 불리던 유희요의 하나이다. “구여 구여 다리방구여”로 시작되는 부분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던 「담방구 타령」과 비슷하나, 일반 사설에 포함된 담배의 유입과 기능 등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
-
전득시를 시조로 하고 전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담양전씨의 시조인 전득시는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7세손인 야은 전녹생·뇌은 전귀생·경은 전조생을 고려 말의 충신 전씨삼은이라 하는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는 전씨삼은 가운데 막내인 전조생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고려 말기 강원도안렴사였던 전자수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
경상북도 울진군에 거주하는 담양을 본관으로 하는 전씨 종친들의 모임. 담양전씨 종친회는 유일한 한 뿌리의 자손으로서 자랑스럽고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조상들의 빛나는 얼을 이어받아 파벌 의식을 타파하고, 족종 간 우의를 돈독히 하며 상호 신뢰와 협조로써 담양전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자손만대의 무궁한 번영을 구현하고자 설립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인...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 있는 고개. 고개에 늘 안개가 끼어서 고개를 넘을 때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踏雲)재라 부른다. 답운재는 높이 685.7m이며, 동쪽은 통고산자연휴양림과 인접해 있고, 서쪽은 옥방천을 두고 봉화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광회2리와 북쪽은 진조산 일대로 광회1리와 접해 있다. 태백산맥의 분수령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소광리를 흘러 광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대광천이라는 지명은 큰빛내마을 앞을 흐르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광천은 백병산[1,153m]에서 발원하여 소광리까지, 광천으로 합류되기 전까지의 하천이다. 큰빛내마을은 소광리 장군터에서 북쪽 2㎞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안봉산과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큰 내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대구지방법원 산하 등기소. 대구지방법원이 경상북도 울진군의 등기 사무를 처리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대구지방법원 울진등기소는 1910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 울진군지청으로 개청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변화를 거듭해 왔다. 1924년 12월 1일의 총독부령 제74호에 의해 같은 해 12월 15일 대구지방재판소...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정월 대보름은 일년 세시력 중 가장 많은 의례와 행사 그리고 놀이가 전해지는 날이다. 많은 세시풍속이 중단되었지만 대보름에 행해지는 각종 행사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울진의 많은 마을에서도 대보름은 세시력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동제에서부터 용알뜨기[보름아침 우물물을 제일 먼저 길러온다], 보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지역 노인 단체. 지역 노인의 권익 신장과 노인 복지 증진에 기여하며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69년 3월 노인 상호 간의 친목과 복지 증진을 위하여 자생적으로 울진경로회를 발족하였다. 1975년 8월 25일 울진경로회를 울진노인회로 변경함과 동시에 정식 설립하였다. 이때부터 정식 명칭이 사단법인 대한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의 권익보호를 위한 단체.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에서는 조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베트남 참전의 참뜻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국민들과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베트남 참전 유공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참전 유공자들의 권익 신장과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전몰 군경 유족회. 회원들이 상부상조하여 자활 능력을 배양하고 호국 전몰장병의 유지를 받들어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 조국 통일을 앞당겨 이룩할 수 있는 활동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1963년 8월 7일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범하였다. 회원 간의 상호 부조와 친목, 국가 발전 및 세계 평화와 조국 통일을 앞당...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한국 불교의 신 종단. 1965년 신동환(申東煥)이 서울 아현동에서 창시하였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및 아미타불이 출현할 정토의 존재를 믿고 죽은 후 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승불교의 일파이다. 1966년 대한불교정토종 포교원이 되었다가 1972년 10월에 대한불교정토종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무량수경』을 근본 경전으로 삼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집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을 의미한다. 대해당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태사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해당은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이 후학들을 위해 강학했던 장소이다. 현재 대해당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 터만 전해져 내려온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 이 마을에 대흥사(大興寺)라는 사찰이 있어서 사찰 이름을 따서 대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입석동이 통합되어 대흥리로 개칭되고, 울진면에 편입되었다. 대흥리의 동쪽에는 금산(錦山)[387.9m]이 높이 솟아 있고, 서쪽은 첩첩산으로 멀리 국시봉(國是峯)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대흥리 본동 성황목은 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 우측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대흥리 본동 성황목은 수백 년 된 미루나무로, 주변에 돌과 시멘트로 담을 둘렀고 내부에 낮은 단을 만들어놓았다. 출입구 전면에는 한지를 끼운 금줄을 걸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미루나무를 성황신(城隍神)...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세워졌던 대흥사 창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찰연기담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절을 짓게 된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대흥사 이야기」는 절을 짓기 위해 절터를 고르는 방법이 소개되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 절 터. 대흥사는 남북국시대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에 한 승려가 절을 증축하였다고 전한다. 1802년(순조 2)에 「예조완문(禮曹完文)」에 사산경계(寺山境界)에 표식을 하여 대흥사를 수호토록 하였지만, 그 후 허물어져 법당만 남은 것을 1963년 지금의 읍내리 동림사(東林寺...
-
1907년 황만영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세운 근대 교육기관. 설립자인 황만영은 조선 고종 때의 독립운동가로서 1857년 6월 20일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도량이 넓고 의리가 강하였으며 한학과 병서를 읽고 연구하던 중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하여 의병장 현오우에게 사재 800냥을 희사하기도...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680년경 선비 강씨(姜氏)가 난을 피하여 이곳에 거주하면서 당시 조정의 혼란을 한탄하며 여러 사람에게 덕(德)에 대한 강론을 하였다 하여 덕구(德邱)라 하였다.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구동, 중덕구동, 소야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덕구리라 하고 북면에 편입되었다. 덕구...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는 강원도 평해군 근서면 지역으로, 큰 산 밑에 있다고 하여 덕산이라 하였다. 덕산리는 덕산1리, 덕산2리, 덕산3리로 나누어져 있다. 덕산1리의 속명은 광곡으로, 약 500년 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할 때 지형이 크고 넓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덕산2리의 속명은 직천(直川)인데, ‘고드내’라고도 부른다. 약 40...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때 덕신역이 있었으므로 덕신 또는 역말이라 하였다. 1390년 경 평해황씨(平海黃氏)라는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후리동(厚里洞)·항곡동(項谷洞)이 통합되어 덕신리로 개편되었다. 덕신리는 덕신1리, 덕신2리 두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시대 절 터. 덕신리 사지에 있었던 신흥사는 삼국시대 신라 진덕왕 때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흥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목안삼도(木雁三道)를 파송(派送) 하였더니 일도(一道)는 덕신리의 신흥사에 표착(漂着)하고, 일도는 대흥사(大興寺)에 표착하고, 나머지 일도는 불영사(佛影寺)에 표착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이 곳에 살던 박민덕이라 하는 사람이 마을을 지키며 덕을 쌓았던 데서 마을 이름을 덕걸·덕거리 또는 덕인이라 하였다. 1470년 경에 사람이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평해군 근서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양곡리(良谷里)·구현리(九峴里)·송현리(松峴里)·한송리(寒松里)·소아리(召兒里)의 통합...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했던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덕금동(德今洞)과 퇴천동(退川洞)에서 ‘덕(德)’자와 ‘천(川)’자를 따 ‘덕천(德川)’이 되었다. 1500년 경에 광산노씨(光山盧氏)와 경주이씨(慶州李氏) 두 선비가 해안 가까이에 농지를 개척하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의식요. 「덜구 소리」는 장지(葬地)에서 봉분을 만들기 전 땅을 다질 때나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민요이다. 신명을 돋우도록 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요의 하나로, 울진 지역에서 채록된 두 편의 자료는 사설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전형적인 「덜구 소리」의 형태를 보여준다. 1991년 평해읍 직산리에 사는 장완식[남, 62]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 있는 산. 온곤동의 서쪽에 있는 도덕봉은 우후공(虞侯公) 장인보(張仁輔)가 후손에게 선과 덕과 의를 기르기 위하여 명명한 산으로, 그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10월 8일에 산신제를 지냈던 곳이다. 도덕봉의 동쪽에는 온곤동과 국도 7호선 4차선 도로가 보이며, 서쪽으로는 명도리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연지리와 접하고...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사람·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접하여 갈령산이 경계가 되고, 서쪽은 봉화군 소천면에 접하여 낙동강 조항천이 경계가 된다. 서남쪽은 영양군 수비면과 일월면에 접하여 일월산맥과 고초령 백암산으로 경계가 되고, 남쪽은 영덕군 병곡면에 접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예바위에 얽힌 이야기.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 중 하나로, ‘도예바위’라는 이름은 ‘도예’라는 사람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내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절골이라고 하는 골...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고개. 조선 중기의 문신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의 세 번째 부인이 신행(新行) 올 때 가마가 집 앞 고개를 넘어오는데, 둘째부인이 집에서 가마꼭지를 떼고 오라고 호통치니 신행에 오던 상객(上客)이 오던 고개를 다시 넘어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도지고개는 사동리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와 접해 있다. 서쪽은 마악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유교 사당. 도통사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남대천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불목이골로 접어들어 고산성의 옛 터에 못 미쳐 위치하고 있다. 1924년 신안주씨(新安朱氏) 울진 문중에서 선조인 문공(文公) 주희(朱熹)의 성덕을 기리고자 영당(影堂) 봉안(奉安) 문제를 논의하였다. 1932...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울진에서의 독립운동가는 크게 3·1운동, 청년운동, 신간회, 울진공작당, 창유계의 활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시작된 후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것은 기존의 조선이 아닌 새로운 근대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1리에 있는 독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현풍곽씨 입향조 묘소 앞, 지금의 울진군 북면 고목1리 고등동 방축들 가운데 일자산이 있었다. 곽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당시 부자가 살았다. 부잣집에는 손님이 끊일 새가 없어 안주인은 손님이 오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았다....
-
1975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주세창이 세운 독송정을 기념하는 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 독송정 터에 있는 유허비이다 비석을 세운 이는 종손인 주장환(朱章煥)과 외손인 손등구(孫䓁鳩)이며, 비문을 지은이와 글씨를 쓴 이는 전원식(田元植)과 정문석(鄭文錫)이다. 1973년에 비문이 완성되고, 1975년 4월에 건립되었다. 조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독송정은 1550년(명종 5) 주세창(朱世昌)이 창건하였고, 1671년(현종 12) 현령 정필달(鄭必達)이 무너진 석축과 정자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1952년 불영사 주지 김용호(金龍浩)가 포교를 목적으로 신도 김용식(金容湜)의 기재(寄財)를 희사 받아 민가를 구입하고 개수하여 포교당을 만들고 해인사의 영암 박기종(朴淇宗)을 포교사로 취임케 하여 불영사의 첫 번째 포교당으로서 출발하였다. 그 후 점차 신도가 많아지자 1953년 10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동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축물.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새마을회관 뒤편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1951년 8월에 폐사된 동림사 건물을 불영사 주지 전용호가 지금의 울진읍 읍내리로 이건하여 포교당으로 창건한 후 1952년 10월 승려 박기종이 다시 동림사로 승격시켰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지붕이다. 공포(...
-
평해황씨 해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말기 문신 황중윤의 문집 목판. 『동명선생문집』 목판은 1905년 8대손 황수(黃洙)에 의해 편집 간행된 동명(東溟) 황중윤(黃中允)[1577~?]의 문집 『동명선생문집(東溟先生文集)』 8권 5책의 목판이다. 8권 5책의 목판으로 목판대(木板大)는 19.3㎝[세로]×42.7㎝[가로]이며 반엽광곽(半葉匡郭)은 18.7㎝[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장학재단.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권영호 IB그룹 회장이 설립한 장학 재단이다. 일정액의 자본을 적립해놓고 그 이자로 장학금을 조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IB그룹 계열사들이 매월 각출한 금액 전액을 그대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교육의 평등,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취지 아래 경제적 어려움으로...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드리는 마을의 공동 제사. 경상북도 울진 지역 어디를 가나 전통적인 마을에는 그 마을을 수호해 준다고 믿는 마을신[洞神]을 모신 제당(祭堂)이 있다. 주민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매년 같은 때에 제당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면서 질병과 재액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빈다. 따라서 마을...
-
1871년 경상북도 울진군의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영해 이필제의 난에 가담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고종이 즉위하면서 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적으로 산적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농민층 안정을 위한 토지 개혁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강행된 경복궁 중건 사업으로 원납전(願納錢)을 징수하고 당오전(當五錢)을 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고을 원이 임지로 가는 도중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다음 날 타고 온 말이 보이지 않아 하루 종일 찾다가 다래덩굴 밑에서 말을 찾은 데서 마을 이름이 말래[馬來]가 되었다. 두천(斗川)이란 이름은 말래의 ‘말’을 말 두(斗)자로 표현하고 ‘래’를 내 천(川)자로 표현하여 두천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를 흘러 하당리에서 남대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두천리를 흐르는 하천이라서 두천천이라 한다. 두천천은 두천리와 금강송면 소광리의 경계가 되는 산지에서 발원하여 안말래를 지나 북류하여 말래를 거쳐 동류하여 하당리에서 남대천에 유입되는 남대천의 상류 지천이다. 두천천 유역은 산간 지역이며 하류 하천변에 약간의 농경지를 이룬다....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고,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옛날 통정(通政) 벼슬을 한 진석우(陳錫寓)가 근남면 구산리 성산동(城山洞) 생금암(生金岩) 부근에 살게 되었다. 그가 동네에 들어와서...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도술을 부리는 문사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술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도술을 직접적으로 익히는 방법과 간접적으로 익히는 방법이 있다. 이 이야기는 후자의 방법으로, 문사천은 우연히 낚시질을 하다가 서산선사가 쓴 책을 낚아 올려 비법을 전수받는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나무나 대나무 따위를 뗏목처럼 엮어 고기잡이에 사용하는 원시적인 배. 떼배는 예로부터 수심이 얕은 연안 어장에서 해초를 거두거나 고기를 잡는 데 이용하였으며, 돛이나 다른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움직인다. 삼국시대부터 가벼운 통나무를 뗏목 모양으로 짜서 나무 자체가 가진 부력만을 이용하는 떼배가 쓰였다. 이것은 물이 새어...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ㅁ자 모양의 집. 뜰집이란 건물 가운데에 안뜰을 두어서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집을 말한다. 전통적인 뜰집의 구조는 전면의 중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부엌, 좌측에는 창고와 접하게 사랑채를 구성하고, 안채는 2칸 폭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방과 도장방[규방]을 두는 형태이다. 좌측 상방의 전면에는 뒤주를 두어 좌로 직각을 이루면서 사...
-
1905년 러일전쟁 중 울진의 고포 앞바다에서 일어난 러시아 군함과 일본 군함의 전투. 조선 지배를 선점하려던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일시 저지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명성황후 민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단발령을 내리지만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함으로써 친러 정권이 수립된다. 그 결과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이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마귀 해미에 관한 이야기. 일반적으로 귀신 이야기는 사람들을 놀래거나 위협을 가하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마귀 해미 추짓돌 이야기」에서 나오는 마귀는 힘이 무척 센 친근한 마귀로 표현하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진군 울진읍 고산성(古山城) 외곽 산 중...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 있는 산. 산세가 웅대하고 수려하며 마치 용마가 달리는 모양과 같다 하여 마룡산이라 하였다. 산 정상 가까이 있는 정씨묘소 비문에 ‘마안산(馬鞍山)’이라 적혀 있고, 1912년 남호(南湖)의 『만산기(萬山記)』에 ‘마안산은 동북으로 꿈틀꿈틀 용맥이 뻗어내려 걸터앉은 형상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마룡산은 높이 406m로 평해읍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1리에 있는 청룡거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1683년(인조 12)에 지금의 울진군 북면 신화1리 청룡거리 북쪽에 선비 전순(田錞)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부부는 50세가 되도록 아들을 낳지 못했다. 뒷산에 제단을 세우고 백일기도를 한 뒤에 마침내...
-
임진왜란 중 1593년 경상북도 울진군 덕천리 마분동에서 김언륜이 왜군과 벌인 전투. 김언륜은 1565년(명종 20)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동네 지장서재(智藏書齋)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틈만 있으면 병서 읽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27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울진에서는 고읍성 전투와 덕천리 분투골 전투가 치열하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 있는 소나무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 있는 소나무는 마을을 개척할 당시부터 서 있었다고 전하는데, 나무 둘레가 3.5m이다. 소나무 속에 동공이 생겼다고 하지만, 겉으로 볼 때는 속이 궁글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와 고목리 사이에 있는 산. 조선시대 현령이 지나가다가 금과 같이 중요한 산이라 하였고, 마을사람 유추거사와 임만휴(任萬休)와의 문답 중에서도 이 산을 만금과 같다 하여 만금산이라 불려오고 있다. 만금산은 낮은 구릉으로 북쪽에는 신화리, 남쪽은 고목리, 동쪽은 덕천리 그리고 서쪽은 소곡리와 접해 있으며, 이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 살았던 울진만호(蔚珍萬戶) 이문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백사 이항복(李恒福)은 이문빈에게 강원도 영동 지방에 소금과 약초 등이 많이 생산되니, 그곳에 가 일을 하라면서 울진만호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문빈은 만호로 임명받아 부지런히 일하였고, 관...
-
1907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기관. 1878년 7월 11일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정리 매정동에서 태어난 주진수는 당시 애국 계몽 단체였던 신민회의 울진 지역 활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구국에 대한 대의를 품고 지방 인재 양성을 통한 신문명 보급을 하기 위해 1907년 10월 경상북도 울진의 곽종욱·남상정·전오규·주병웅·진규환·전주석·최정순 등과 함...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2리에 있는 말루(抹樓)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울진읍 읍남2리에 위치한 말루(抹樓)는 어느 시대 어느 성씨가 입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약 1600년경 마을 냇가에서 우연히 발견된 나무토막에 ‘지로(旨老)’라는 글자가 새겨...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일대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윷놀이의 한 종류. 말밭 없는 윷놀이는 울진군 기성면 일대[기성리, 자산리, 정명리]에서 승부를 가리는 말밭과 말밭이 없어 암기로 진행하던 놀이이다. 윷판이 없는 것을 ‘건궁윷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안노인[일명 할머니]들이 많이 행한다. 말밭 없는 윷놀이는 윷과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된다. 말밭 없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룻널을 깐 2층 집,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 누옥, 층루 등으로 불린다. 망북루는 1396년(태조 5) 고성리 고산성으로 읍을 옮기면서 산성의 서문에 지어졌다. 망북루는 북쪽을 바라보게 지어졌으며, 남서북(南西北) 삼면을 관망하던 누각이었다. 성읍(城邑)이...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망사정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등기산 관어대에 위치하고 있다. 망사정은 관찰사 박원종이 창건하였으나 소실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있으므로 망양동이라 하였다. 약 790년 전에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처음 개척하였고, 후에 엄씨(嚴氏), 지씨(池氏), 최씨(崔氏)가 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대곡천(大谷川)을 경계로 망양(望洋)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원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의 망...
-
1950년대 후반부터 1968년대까지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한 문학단체. 망양문학회는 울진군에서 문학에 취미를 가진 초등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1956년 10월 경 조직되어 1960년대 후반까지 활동했던 문학단체이다. 망양문학회의 회지는 등사판으로 연간 발행했다. 회지는 4집까지 내다가 침체되었고, 1965년 2월에 다시 5집을 내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5...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의 뒷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와 접한 산봉우리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관광명소인 성류굴이 있고, 정자 아래로는 망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망양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기성면 망양리 해안에 처음 세워졌으나 1471년(성종 2)에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에 옮겨놓았다...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곽재우와 포수의 이야기. 곽재우의 용맹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지만, 호랑이와 싸우고 죽인 사람은 포수이다. 임진왜란의 의병으로 활약한 곽재우의 용맹성에 비해 조금 소심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룻널을 깐 2층 집,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 누옥, 층루 등으로 불린다. 망월루는 울진현의 객사인 선사관(仙槎館)의 남쪽 문루(門樓)였다고 하나, 현재 선사관이 있었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망월루지 또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영취 주수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룻널을 깐 2층 집,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 누옥, 층루 등으로 불린다. 망학루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평해읍성의 남쪽 문루(門樓)이며, 2층 건물에 12칸 규모였다고 한다. 현재 평해읍성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고 망학루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사방을 전망할 수 있는 토대(土臺). 대(臺)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사방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을 뜻하나, 사방을 볼 수는 없어도 평지보다 우뚝하게 높은 곳으로 산 중턱이나 구릉 위의 높으면서도 편평한 곳을 말한다. 망향대와 같이 건물 없이 지명만 있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건물이 있는 경우도 있다. 망향대는 읍내리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리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먼저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 하여 매화라 하였다는 설과, 조선시대 광해군 때 강원도관찰사 기자헌(奇自獻)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야다강매(野多江梅)」라는 시를 읊었던 연유로 매야(梅野)라 하다가...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원래 명칭이던 원남면은 울진읍 내에서 남쪽으로 멀리 있는 곳이라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며, 2015년 4월 개칭된 명칭인 매화면은 매화나무 단지가 있는 지역 특성에서 유래되었다. 매화면은 본래 울진군 지역으로서, 대잠(大岑)·북수(北水)·이울(以蔚)·길곡(吉谷)·갈면(葛綿)·지품(池品)·영양(永陽)·기전(基田)·두기...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1919년 4월 11일 매화 장날에 3·1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매화시장은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생산한 고품질의 쌀과 보리를 원료로 제조한 ‘매화장수쌀엿’으로 유명하다. 또한 매주콩과 태양초만을 선별하여 고령초 청정 자연수로 제조한 전통 장류 제품인 고령초 전통식품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후기에 개설된...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지표 아래 창의인, 도덕인, 지성인 구현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교훈은 ‘슬기롭게, 알뜰하게, 새롭게’이다. 1952년 7월 2일 울진중학교 매화분교장으로 설립되었으며, 1953년 4월 24일 매화중학교로 승격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중학교 학칙 변경으로 전 6개 학...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길곡리에서 발원하여 갈면리, 기양리, 매화리를 북류하여 근남면 노음리에서 왕피천에 합류하는 하천. 매화면 매화리 앞을 지나는 하천이므로 매화천이라 한다. 매화리는 마을의 형상이 남수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흡사 매화꽃잎과 같고 또 부근의 산봉우리가 매화꽃과 모양과 같은 연유와 강원도관찰사 기자헌(奇自獻)이 이 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이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도덕인, 자주인, 지식인, 건강인을 교육 목표로 정하고 있다. 1923년 1학년 1학급 편성으로 개교하였다. 1963년 경상북도 지정 도서관 연구학교, 1994년 3월 1일부터 경상북도 교육청 지정 독서 교육 시범학교를 2년 간 운영하였다. 2008년 3월...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에 있던 매화초등학교 덕신분교장. 예의 바르고 질서를 지키는 어린이, 내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어린이, 지식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40년 10월 8일 덕신공립심상소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44년 덕신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1993년 3월 8일 병설유치원이 개원하였다. 1994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 있는 고개. 산의 고어인 뫼가 변하여 맷재라 한다. 또 다른 유래는 매가 앉은 형국이어서 맷재라 부른다는 의견도 있다. 북쪽은 백병산과 오미산이 있으며, 서쪽은 태백산맥 준령으로 봉화군 소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한나무재 그리고 남쪽으로는 광회리가 있다. 울진군 십이령 중 10번째 고개이다. 맷재는 큰 고개로 울진군과...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한 각 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면사무소는 시(市)나 군(郡)에 속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이자 보통 몇 개의 리(里)로 구성된 면(面)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일선 공공 행정 기관이다. 2015년 현재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북면, 죽변면, 금강송면, 근남면, 매화면, 온정면, 기성면, 후포면 등 8개의 면이 속해 있으며 각 면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671년(현종 12)에 유림에서 창건하였고, 황응청(黃應淸), 황여일(黃汝一) 양현(兩賢)을 봉안하고 명계서원이라 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후, 1881년에 향토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강학소를 건립하였으며, 1982년에 다시 양현(兩賢)을 봉안하고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등명동(燈明洞)과 도청동(道淸洞)에서 ‘명(明)’자와 ‘도(道)’자를 따 ‘명도(明道)’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경에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를 지낸 경주인(慶州人) 최한우(崔漢佑)가 관직(官職)을 그만두고 이곳에 와서 산수(山水)가 수려함을 보고 정착하게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명절은 계절이나 자연적 정서, 또는 민속적 요소가 내포되어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내 온 축일이다. 명절에는 차례와 제례·벌초·성묘 등의 조상 섬기기와 지신밟기 등의 마을행사를 통하여 가족이나 마을 사람간의 공동체 의식을 높였다. 또한 갖가지 음식을 가족 친척과 함께 나눠 먹었는데 이때 즐겨먹던...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 줄기의 진현고개[진티]에 얽힌 이야기. 울진군 온정면사무소에서 2006년에 간행한 『온정면 사람들의 삶과 민속』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모르시골은 백암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만들어놓은 후미진 심곡(深谷)이다. 1361년(공민왕 10) 북쪽 변방을 괴롭히던 홍건적의 무리가 고려에 침입하자 조정 대신들은 공민...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 울진 지역에서는 다수의 「모심기 소리」가 전해 오는데, 특이하게 ‘아침에 부르는 노래’, ‘점심때 부르는 노래’, ‘저녁때 부르는 노래’의 사설이 다르게 구성된다. 이 중 아침에 부르는 「모심기 소리」에서는 모 심기의 준비 과정이나 수확에 대한 기대를 서술하며, 점심때 부르는 「모심기 소리」는 공통적으...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정자. 모원정은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시조(始祖)인 황락(黃洛)의 업적을 현창(顯彰)하고자 그 후손들이 종중(宗中)의 뜻을 모아 지은 재각(齋閣)이다. 이곳에서 선조의 제사를 지내고, 일가 노소가 모여 돈목(敦睦)을 강론(講論)하며, 술을 마시고 풍월을 노래했다고 한다. 모원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온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터. 각(閣)은 석축이나 단상 위에 높게 세운 집을 통칭한다. 1790년(정조 14) 이병정(李秉鼎)[1742~1804]이 울진현령으로 부임하여 누각에 ‘몽선각(夢仙閣)’이라 쓴 편액을 걸었다는 얘기만 전해진다. 몽선각은 1895년(고종 32) 왜인(倭人)의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몽선각지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알 수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祠宇). 몽양사는 효자 전이석(田爾錫), 한재 주필대(朱必大)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이다. 1716년(숙종 42)에 창건하였고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유림에서 유허비를 건립하였고, 현존하고 있는 강당이 강학소로 이용되고 있다. 몽양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2리 몽천마을의 샘물에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몽천 샘물은 울진군 매화면 금매2리 몽천마을 영귀정(詠歸亭)이 있었던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 아래에 있다.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쉴 새 없이 맑은 샘물이 솟고 있다. 몽천 샘물은 나라에 큰일이나...
-
경상북도 울진군의 무당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전승되는 습속. 울진 지역에서 무속은 크게 마을 공동체 단위로 행하는 공동제의와 가족이나 개별적으로 행하는 개인제의로 구분할 수 있다. 공동제의는 어촌을 중심으로 세습무집단이 주제하는 별신굿과 서낭굿이 있다. 개인제의는 집에 우환이 있거나 액이 있을 때 이를 막기 위하여 비래쟁이나 막음쟁이가 하는 비손이 있다. 또한...
-
40대 여성이 자신을 삶을 돌아보면서 조실부모하고 울진군 남씨 가문에 출가하여 겪은 일을 읊은 가사. 작자 미상의 40대 여성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조실부모하고 남매가 어렵게 살아온 일과 울진군의 남씨 가문에 출가하여 겪은 일 등을 후원에 핀 두견화, 구자화, 무자화 등의 꽃들에 비유하여 읊은 가사이다. 전체 111행의 장편가사로 형식은 3·4조 혹은 4·4조를 기본으로 하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 있는 산. 산봉의 정상이 붓 끝과 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으므로 문옥봉이라 하였으며, 산 남쪽의 골 이름도 문옥골이라 부른다. 문옥봉은 낮은 구릉으로 동쪽으로는 양정해수욕장과 동해가 바라보이며, 서쪽으로는 온곤동과 도덕봉이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연지리 그리고 북쪽으로는 봉평리와 접하고 있다. 문옥봉은 온곤동의 동쪽...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울진군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자원으로 가지고 있어 울진군민의 문학적인 성향 또한 남다르다. 울진 문학은 근대적인 학교 교육의 도입으로 근대 문학의 영향을 예외 없이 받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1950년대 전반까지는 근대적인 문학 활동의 가시적인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학 관련 단체. 문학은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 언어 또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표현하는 예술로 시가·소설·희곡·평론·수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문학단체는 이러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 구성원이 되어 조직·설립한 단체를 말한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주요 문학단체로는 울진시우회, 망향문학회, 아동문예연구회, 울림문학회,...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문화예술은 한 집단이 살아온 자연환경, 역사, 종교 및 철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자연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종교는 예술의 주제나 형태미뿐만 아니라 그 지역 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울진군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울진의 문화예술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단체. 문화 시설 등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울진 지역에서 문화예술단체는 그 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다. 현재 울진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단체로는 한국연예협회 울진지부, 한국미술협회 울진지부, 죽변종합고등학교 합주단이 있다. 1. 한국연예협회 울진지부 한국연예협회 울진지부는 2001년 10월에 발기하여, 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장동유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부모에게 극진한 효행을 실천하는 이야기들은 많이 있다. 장동유의 경우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에 호랑이가 감동하여 우물을 파주었다는 이야기이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북쪽 미래골 거북바위 아래에...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세계상과 인간상을 미적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전통시대 울진과 관련된 미술 중 울진 출신 작가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지만, 울진의 풍경을 그려낸 타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은 다수 전해지고 있다. 특히 관동팔경 중 하나인 월송정을 그린 작품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겸재 정선이 1738년에 그린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의 11폭 중 1폭인 「월송정」...
-
경상북도 울진군의 민간에서 행해진 치료 행위. 경상북도 울진군의 민간에서 오랫동안 행해 온 주술과 민간요법으로 약물이나 경험으로 터득한 방식에 따라 질병을 고치는 행위이다. 민간의료는 민간에서 터득해 온 지식에 의해 약물을 사용하는 방식과 주술적 방식으로 대분된다. 이를 세분하면 민간약·지압·안마·온천욕과 같은 물리적 요법, 주술에 의한 주술적 요법 그리고 신...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신앙, 풍속, 관습 등 민간 공통의 습속. 산과 바다 그리고 평야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울진 지역은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민속의 생활 형태를 띤다. 민속을 인간이 자신이 처한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따라 과거 또는 현재까지 전승된 것으로 정의한다면, 울진의 민속은 지역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전...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울진 지역에서 전하여 오는 여러 가지 놀이는 전승이 중단되었거나 기억만으로 전해져 오는 경우가 많다. 과거 여느 지역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울진에서도 남녀 아이들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과 깡통을 가지고 놀이 도구를 만들고 빈 공터가 있으면 그곳을 터전으로 삼아 놀이를 행하였다. 과거...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원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밀양박씨의 시조인 박언침은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밀성대군이다. 밀양박씨는 밀성대군의 후손인 박언부를 중시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사사공파·조복야공파·밀직부사공파·판도공파·좌윤공파 등으로 분파되고, 이들 지파 내에서 다시 세분화된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밀양박씨들도 여러...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두산(斗山). 사문진사공(四門進士公) 박원(朴元)의 15세손으로 아버지는 박대곤(朴戴昆)이다. 1607년(선조 40) 경주판관(慶州判官), 1618년(광해군 10) 호군(護軍), 1624년(인조 2) 선천부사(宣川府使)를 거쳐 가선대부무령군(嘉善大夫務寧君)에 봉해져 이등공신이 되었다. 1625년 충청병사(忠...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무산(茂山). 청송재(聽松齋) 박수춘(朴守春)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졸재(拙齋) 박옥진(朴玉鎭), 아버지는 박준명(朴準明)이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 해 4월 13일 흥부 장날을 기하여 밤에 김일수(金一壽), 황종석(黃宗錫) 등 9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이명은 박처사(朴處士).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의 13대손으로 아버지는 박영상(朴英相)이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고, 건릉참봉(建陵參奉)을 지냈다. 백암산에 입산하여 체력을 연마하고 수도하다가 1906년과 이듬해에 일제의 강압이 잇따르자 가족을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죽파(竹波)로 옮기게 한 뒤 사방에 격문을 돌려 3...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성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노번(勞番)이다. 효성이 하늘 끝에 닿듯이 지극하고 학문도 독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면 항상 대변 맛을 보고 병세를 판단하여 약을 쓰며 병세가 위독하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연명케 하였다. 그 후 친상(親喪) 때에는 닭이 백색으로 변하고 묘 주위의 소나무가 황색의 마른 나무가 되니 사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반정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단양전씨(丹陽田氏) 문중의 재실(齋室). 반정재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반정마을 경문사 앞에 위치해 있다. 반정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내부를 4칸의 온돌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온돌방의 전면에는 개방된 퇴간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퇴간마루 전면으...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방구 타령」은 타령의 전형적인 성격을 보이는 민요로, 방구에 대한 나열식 서술이 특징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며느리, 아들, 딸 등과 방구가 희화적으로 연결되어 웃음보를 터뜨리게 한다. 1991년 기성면 기성리에 사는 김순남[여, 70]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록하여 1991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 또는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물질. 1980년대 울진에 원자력발전소[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가 건립된 이후 방사성폐기물과 관련된 시설 및 문제점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사항 중 하나이다. 1988년 울진에서 발발한 반핵운동의 중요 현안 중 하나 역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에서 시작되었...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내용 등의 여러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수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적 신호나 군사용 전송과는 구별 된다. 방송은 라디오처럼 듣는 것만이 가능한...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임경업 장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을 끝내고 소실의 고향에 머물면서 단순히 휴양한 것이 아니라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15...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주위에 밤나무가 많고 밤의 질(質)이 좋아 밤율이 되었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방비리(芳菲里)와 감율리(甘栗里)에서 ‘방(芳)’자와 ‘율(栗)’자를 따 ‘방율(芳栗)’이 되었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원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원북면 감율리·호전리(虎田里)·방비리가 통합되어 방율리로 개편되었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속해 있는 행정리 부구3리의 자연마을. 울진군 북면 부구3리의 자연마을로 방어리(方魚里), 방화리(芳和里)라 불린다. 옛날 울진군 북면 부구3리 방화골[芳和谷]에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집 뒤의 산에 묘지가 명당이라 세인들의 물망의 대상지가 되었다. 인근 부락 사람이 이를 알게 되자 부잣집 개가 그 묘지를 배회하면서 지켰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삼산리를 원래 잠산리(蠶山里)라 하였는데, 주변의 산세가 누에의 머리 형상을 닮은 데서 유래되었다. 정명천의 북쪽 지류를 따라 동잠산, 서잠산, 외잠산이라는 세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동잠산은 배밭이라고도 하며 잠산의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서잠산은 잠산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 혹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절 터. 배잠사지(盃岑寺址)에 관한 기록은 현존하는 고문헌(古文獻)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뿐이며, 근래에 이 배잠사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몇 편 있을 뿐이다. 특히, 197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은 배잠사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책으로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당간지주. 배잠사지 당간지주는 구산리 외성산마을 중등산 아래쪽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있다. 이 일대는 배잠사지로 알려져 있다. 배잠사지 당간지주는 석탑의 위치에서 약 200m 떨어진 남쪽 밭에서 두 개의 지주가 71㎝ 간격으로 남북으로 마주 서 있다. 높이는 서로 다르고 표면에는...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삼층석탑. 배잠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굴당하고 없다. 원래 배잠사지 삼층석탑이 있었던 자리는 현재 기단 갑석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약 15m 떨어져 있었던 곳이라 한다. 현 기단 갑석[두께 6㎝, 112×82.5㎝]은 주초석으로 추정되는 자연석 화강...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남매 형제가 어려운 세상살이에 대하여 노래한 가사. 「백남답기서」는 10세 때에 부모를 일찍 여읜 남매 형제가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살아온 세상살이와 이런 역경을 감당하고 벗어날 수 있는 방안 및 예절에 대하여 주고받은 것을 읊은 것이다. 이와 맥락이 비슷한 교훈적 가사로는 「경계가」를 들 수 있다. 전체 141행의 장편가사로 형식은 3...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서 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쌀바위설화, 미혈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야기이다.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는 승려가 욕심을 너무 부려서 끝내 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 상류에 소재한 백암사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절 터. 백암사지는 백암관광호텔에서 북서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700m 가량 올라간 지점에 있다. 등산로가 백암사지의 중앙을 통과한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 근남면 방면으로 직진하여 매화면과 기성면을 지난다. 평해읍 평해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국도 88호선을 타고 백암온천을 향해 직진하...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산. 영봉에 흰바위로 이루고 있어 밝맡이란 영암(靈岩)의 뜻으로 백암산이라 하며, 천혜의 보고로 많은 전설이 전해지는 명산이다.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 백암온천의 서쪽에 자리잡은 백암산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에 속한 산으로 산체가 크고 넉넉하며 계곡 또한 깊어 낙동강으로 흐르는 반변천과 동해에 유입되는 평해 남대천의 수원지이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중소형 성곽. 백암산성(白巖山城)은 백암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1㎞ 가량 떨어진 ㅅ자형 가지능선에 축성되어 있으며, 험한 지형을 이용한 연곽식(連郭式)의 내외성(內外城)을 갖춘 산성으로, 울진과 봉화, 영양의 내륙을 비롯해 동해로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신라시대 구대림(丘大林), 황락(黃...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정보화마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는 온정1리와 온정2리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는데, 온정1리는 양남아(陽南阿) 혹은 양지마, 온정2리는 음남아(陰南阿) 혹은 음지마라 한다. 온정리의 두 마을이 2002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어 백암온천정보화마을이 되었다. 온정리에 있는 유명한 백암온천의 이름을 붙여 백암온천정보화마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규항(奎恒), 호는 애월헌(愛月軒). 담암(淡菴) 백문보(白文寶)의 후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세가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 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나면 항상 대변 맛을 보고 약을 썼다고 한다. 그 후 모상(母喪)을 당하여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켰으며 성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어업노동요. 1991년에 후포면 후포2리의 안호인[남, 74]과 평해읍 직산리의 장완식[남, 62], 평해읍 거일2리의 방상금[여, 61] 울진읍 연지2리의 김옥련[여, 61]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록하여 1991년에 출간한 『울진의 문화재』에 수록하였다. 한 사람이 선소리를 하면 여러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 선후창 형...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범벅 타령」은 범벅이 하나의 소재이기는 하나 구낭군 이도령과 신낭군 김도령, 그리고 이도령 부인 사이의 갈등 관계를 기본 줄거리로 하는 서사 민요이기도 하다. 울진 지역에서 전해 오는 「범벅 타령」은 줄거리가 축약되어 있기는 하지만 열두 달에 따른 사설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 서사의 완결성도 높은 편이...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2리에 있는 자연마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2리에 있는 범상(凡祥)·잿범상(잿凡祥)·동막(東幕)·감대(甘大) 등 네 개의 자연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평창이씨(平昌李氏)가 입주하여 살면서 상서로운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 한 도승이 말에 따라 이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을 이름을 범상(凡祥)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가사노동요. 「베틀 노래」는 지역을 막론하고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의 하나이다. 길쌈이란 일의 특성상 오랜 시간 해야 하는 일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부르게 된 노래여서, 사설을 보면 베틀을 설치하고, 베를 짜는 행위 및 베틀 기구 등의 내용을 포함하여 장편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울진 지...
-
경상북도 울진군의 어촌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굿. 별신굿은 연신·벨손·벨신·풍어제라고도 하는데, 풍어와 어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세습무 집단이 정기적으로 지내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대표적인 무속이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어촌에서는 옛날부터 매년 혹은 3년·5년·7년·9년·10년을 단위로 세습무를 불러 여러 날 동안 별신굿을 행하였다. 별신굿은...
-
1895년과 1896년에 울진과 영해의 유진소에 침입한 왜군을 사살한 사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그 결과 청·일 양국 간에는 마관조약(馬關條約)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부인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이 동양 평화에 해롭다는 구실을 붙여 반환을 요구하는 삼국간섭(三國...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지방자치단체 또는 보건의료 기관이 의술로써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며 지역민의 건강을 유지하는 제반 활동. 1950년대에는 인간의 사망과 신체 불구의 주된 원인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였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자연 발생적인 병원체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담배·술·자동차·무기·환경 오염 등이 원인이다. 더구나 다양화된 산업 사회에서는 환경 보건의 인식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1931년 승려 보화(普化)가 창건하였다. 2020년 현재 신도 수는 400여 명이고 주지는 승려 정혜이다. 현재 대웅전·범종각·산신각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한 뿌리에 6개의 가지가 벌어진 육대송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을 근거리에 둔 보광사는 사방에 수림이 울창하고 공기 또...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삿갓봉에서 발원하여 남류하여 하원리에서 광천에 합류하는 하천. 보부리마을을 지나는 하천이어서 보부천이라 하였다. 보부리마을은 솔평지에서 동방 약 2㎞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열국시대 안일왕이 울진군 파조국을 병합하여 안일왕산성을 쌓고 거진하였다는 곳이다. 왕의 보위가 있었다는 전래와 금은보화가 난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산성...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증산교 계통의 신종교. 보천교(普天敎)는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차경석(車京錫)이 강일순(姜一淳)이 주창한 증산교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주창한 것으로 처음에는 선도교(仙道敎)로 명명하였으나 1922년경에 보천교로 개칭하였다. 후천개벽을 기본 교리로 하여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염원하는 것을 주된 이념 체계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봉수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굿. 봉개 별신굿은 죽변곶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 죽변리의 자연부락 봉수동에서 현재 3년에 한 번씩 마을 주민들의 안과태평과 바다에서의 안전,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올리는 굿이다. 연신굿·연신·별신굿·별신·풍어제 등으로도 불린다. 봉수동은 1750년 경 달성서씨가 처음으로 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봉루정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구 관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봉루정은 평해읍 소재지와 넓은 평야, 사방의 산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산. 봉림산은 봉(鳳)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 산에 경주최씨 입향조(入鄕祖)인 한우(韓佑)의 묘가 있다. 동쪽은 올시골이 있고, 서쪽은 상토일이 있으며, 남쪽은 금산지맥인 바리재가 있으며, 북쪽은 고성2리인 기골과 접해 있다. 봉림산은 올시골마을과 상토일마을 사이에 있는 낮은 산 고개인데, 과거...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봉수리(烽燧里)와 표산리(表山里)에서 ‘봉(烽)’자와 ‘산(山)’자를 따 ‘봉산(烽山)’이 되었다. 1620년 경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근북면(近北面)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근북면 표산리·봉수리·항곡리(項谷里)가 통합되어 봉수리로 개편...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봉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 전기에는 더욱 정비되어 서울의 남산인 목멱산(木覓山)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국경과 해안에서 올라오는 봉수 노선은 크게 직선 봉수[直烽]과 간선 봉수[間烽]로 구분된다. 직선 봉수는 기간 선로이며, 간선 봉수는 직봉과 직봉 사이의 중간 지역을 연결하는 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통 혼례를 할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낼 예물을 넣은 함. 전통 혼례에서는 혼인을 치르는 대례 전에 의혼·납채·납폐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납채는 신랑 측의 청혼과 신부 측의 허혼의 과정이며, 납폐는 신부 측의 허혼에 대하여 신랑 측에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예물과 납폐서를 보내는 과정인데, 봉채 혹은 봉치라고도 한다. 납폐의 절차는 패물과 옷감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새[풀]가 많으므로 샛들 또는 초평·봉평이라 하였다. 1590년 경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하였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골장동(骨長洞)·박곡동(朴谷洞)·송정동(松亭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봉평리가 되어 울진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울진읍에서 죽변면이 분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초평동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봉평리 초평동 성황당은 원래 현재 제당이 위치한 자리 근처에 있었으나, 이후 현재 자리인 울진봉평신라비 바로 옆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주변은 마을 숲으로 단장되어 있다. 봉평리 초평동 성황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크기에,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기와를 올렸다. 건물 사면은 판벽...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서 봉지(鳳池)라는 못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명종 때 한양에 김계근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김계근은 음양술수에 관심이 많아 연구를 하다가 천지의 신비한 이치까지 잘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김계근의 꿈에 백발 노승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
-
금용식을 시조로 하고 금영숙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봉화금씨의 시조는 고려 초에 삼한벽상공신에 오른 태사 금용식이다. 봉화금씨는 고려 명종(明宗)에서 고종(高宗) 때의 명신 영렬공(英烈公) 금의(琴儀)[태사의 7세손]를 중시조로 하고 있으나, 원조(遠祖)는 기자와 함께 동래(東來)하였다는 금응(琴應)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응으로부터 금용...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사찰. 1945년 5월 단오에 대한불교천태종이 단양 구인사(救仁寺)를 창건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에 대한불교천태종 울진군지부가 1967년 5월 16일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서 첫 법회를 열면서 발족되었다. 1974년 8월 16일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서 성저동 장복근(張福根)의 집으로 상월(上月) 원각대조사(圓覺...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산. 과거 변란이나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경보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된 봉화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하며, 지금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봉화산은 높이 114.8m이며, 나곡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동쪽은 동해안을 바라볼 수 있으며, 서쪽은 태봉이 있으며, 남쪽은 나곡 해안이 있으며, 북쪽은 고포와 접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679년경 마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신령이 내린 바위라 하여 마을 이름을 영구리(靈龜里)라 하였다. 1914년 토지를 측량할 때 일본인 측량 기사가 ‘영구’의 한자 표기가 어렵다 하여 부구천(富邱川) 건너 염전리(鹽田里)의 염(鹽)자와 구(龜)를 쓰기 쉬운 구(邱)자로 바꾸어 염구리(鹽邱里)가 되었다. 그 후 행정구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지표 아래 ‘열린 사람, 긍지 있는 사람, 슬기로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훈은 정직, 협동, 봉사이다. 1967년 9월 4일 부구중학교 설립 기성회가 인가되었고, 같은 해 10월 28일 죽변중학교 부구분교장으로 6개 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응봉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면서 덕구리, 주인리, 부구리를 지나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 부구리를 흐르는 하천이라서 부구천이라 부른다. 부구천은 응봉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석수동 부근에서 다소 북동 방향으로 편향되면서 염촌 부근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전체적 유향은 동류이며, 대개 100~300m 사이의 구릉지 곡간을 흐...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도덕인·창조인·애국인·자주인·경제인을 육성하기 위해서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나라를 빛내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어린이, 몸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예절 바른 어린이’ 등을 교육 목표로 정하여 교육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하고 실력 있고 용기 있...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 있는 부구초등학교의 삼당분교장.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나라를 빛내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어린이, 몸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예절 바른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4년 6월 1일 부구공립보통학교 부설 삼당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 1942년 1월 29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바위. 불영사에서 바라보면 부처 형상의 절 서쪽 산등성이에 부처님의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주변의 불영계곡은 절벽처럼 깊이 내려앉은 계곡으로서, 돌로 이루어진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바위틈에 뿌리내린 채 서 있는 금강소나무들의 균형 잡힌 모습이 아릅답다. 불영사의 서편 산 능선에 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2리 북수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지금의 울진군 매화면 덕신2리 지역은 옛날에 오랫동안 부자(富者)가 살았다고 해서 부수동(富壽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마을의 북쪽에는 물이 흐르는데, 이런 골짜기를 흔히 ‘북수골[北水谷]’이라고 한다. ‘북싯...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불영사와 광도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교 관련 고문헌. 울진 지역에는 현재까지 42개소의 절과 절터가 확인되었다. 이중 지금까지 그 사적이 전해져 오는 사찰은 불영사(佛影寺)를 비롯하여 광흥사, 수진사 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폐사되어 그 흔적만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울진 지역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중...
-
윤씨부인이 불영사 계곡 일원을 거닐면서 그 정취를 기록한 사설. 경상북도 북부의 동쪽인 울진 지역과 서쪽의 봉화 지역을 가름하는 태백준령 사이에 놓여 있는 구절양장의 계곡이 불영사 계곡이다. 불영사 계곡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왕피천을 비롯해 불영사와 자연휴양림이 계곡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볼거리와 쉴 곳을 함께 제공하는 이름난 계곡이다. 우리나라에서 뭍사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천축산에 65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불영사는 울진군 관내에서 가장 크고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가 많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가 백암산 아래 단하동(丹霞洞)과 해봉(海峰)에 올라가서 북쪽을 보니 서역의 천축(天竺)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 황화실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교 경전. 『불영사 경덕전등록』은 중국 남송(南宋)의 도원(道源)이 1004년에 지은 내용을 1917년에 간행한 것이다. 종이로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세로 27.6㎝, 가로 20.2㎝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19×16.2㎝이다. 총 30권 가운데 불영사 황화실에는 10책이 소장되어 있다. 1책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불교 경전.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은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또는 『금강경(金剛經)』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금강경’은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어떠한 번뇌와 집착도 깨뜨려버릴 수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며, ‘반야(般若)’는 ‘절대적인 지혜’, ‘바라밀[바라밀다]’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말기로 추정되는 『화엄경』의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일반적으로 『화엄경(華嚴經)』으로 불리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주본(華嚴經周本)』을 저본으로 당나라 징관(澄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해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 황화실에 있는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김주서가 쓴 현판. 현판은 세로 42.5㎝, 가로 109.5㎝ 크기의 나무로 제작되었다. ‘만고화(萬古和)’라는 글자는 흰색 바탕에 검은 색으로 가로로 크게 썼으며, 예서체에 가깝다. 현판의 왼쪽 말미에 ‘평해사동김주서사재서(平海砂洞金周瑞四才書)’라는 협서(脇書)가 쓰여 있어 평해군 기성면 사동...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에 있는 조선 후기 예불이나 의식에 사용된 불구. 북은 아침, 저녁의 예불 때나 수행의 정진을 위해 사용한 불구(佛具)의 하나이다. 『법화경서품(法華經序品)』에 따르면, 번뇌와 망상 또는 집착과 오욕의 마군을 없애는 설법을 할 때 북을 친다고 한다. 북은 범어로 ‘bheri’라 하며, 고(鼓)·법고(法鼓)·제고(齊鼓)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의 북...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 황화실에 있는 조선 전기 현판. 황화실(黃華室)은 불영사의 대웅보전 왼쪽인 동쪽에 있는 건물이다. 울진현감 백극재(白克齋)가 이 건물에서 환생했다고 하여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렸다. 이문명(李文命)이 쓴 불영사의 「환생전기(還生殿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396년 백극재가 울진현감으로 제수된 지 3개월만에...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폭포. 인근에 있는 사찰인 불영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불영사 서쪽에는 불영암이 높이 있고 동남쪽에는 구룡대의 반석이 수려하고 향로봉이 높이 솟아 있다. 명승지 불영계곡은 50여 리 꼬불꼬불 신비의 계곡, 괴암, 절벽 등 그야말로 산자수명한 곳이다. 불영폭포는 불영계곡에 있고, 주변에는 천축산 불영사가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우(祠宇). 불천사는 1644년(인조 22)에 입사하여 효자 주경안(朱景顔)을 봉안하다가 울진후(蔚珍候) 박한(朴垾)의 주선으로 배공인(配恭人) 울진장씨(蔚珍張氏)를 합사(合祠)하였다. 1947년에 중건하였으며 향사일은 음력 2월 27일이다. 불천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1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비들앞은 울진군 근남면 수곡1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는 새와 같고,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있다는 뜻에서 한자 ‘비(飛)’와 ‘야(野)’가 합쳐져 지어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들 바다 쪽에 우뚝 솟은 비래봉에 관한 이야기.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비슷한 유형을 지니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옮기게 된 사연은 생략되어 있고 옮긴 이후에 생긴 일을 재미있게 꾸며놓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들 바다 쪽에 고독하면서도 우뚝하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1리에 있는 바위의 명칭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1리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동네 입구 국도변 아래 광천(光川) 냇물가에 있는 약 4m 높이이다. 생김새가 몸통 하나에 머리 부분이 2개로, 흡사 남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당(堂). 기성면 사동리 해월헌 들어가는 입구 왼쪽 민가 가운데 위치한다. 주변에 민가 몇 채와 함께 왼쪽에는 밭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해월헌으로 향하는 마을 도로가 인접하여 있다. 사계(沙溪) 이영발(李英發)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를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계 이영발의 시가 적힌 편액이 전해졌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막(幕)을 치고 사기(沙器)를 구웠다 하여 사기막(沙器幕), 또는 사계(沙溪)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1916년 4월 1일 소야동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사계리로 개편되었다. 사계리는 사계1리, 사계2리 2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사계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사계1리에 있는 묘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사계1리를 일명 ‘사기막(沙器幕)’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의 자연부락인 평지마을 뒷산 줄기인 용(龍)에 큰 묵묘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양자리(陽子里) 이씨 묘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매년 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황의석(黃義錫)의 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황의석의 집은 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집의 택호(宅號)가 ‘골댁’이므로 ‘사동골댁집’ 혹은 ‘사동골택집’이라고 한다. 황의석의 집터는 풍수지리가들에 의하면 강릉 이남...
-
조선 중기 이산해가 황여일을 격려하며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의 풍광과 산천을 찬양한 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조카이며 이지번(李之蕃)의 아들로 대북파의 영수로 활약한 수상이다. 1592년(선조 25)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아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받고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5년간 정배되었다. 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곳에 모래가 많고, 광물질(鑛物質)이 매장되어 있다고 구전되면서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본래 평해군 원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사동·하사동과 기성리의 일부 지역의 통합으로 사동리로 개편되어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사동리의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서쪽은 마악산(馬岳山)을 경계로 삼산리가 있으며,...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제1종 어항. 사동항은 1996년 보수 사업을 실시하여, 북방파제, 남방파제, 방사제, 파제제, 진입 도로, 물량장, 호안, 선양장, 석산 복구 등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완료하였다. 사동항은 기성면을 중심으로 한 어업 전진기지이자 자연재해에 대비한 대피항만이다. 사동항에서는 울진대게, 울진오징어, 고등어 등 주요...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사랑 타령」은 수심이 많으면 가까이 할 곳이 없다는 내용을 전제하고, 한 여성의 노래에 수심이 많다고 말하여 여성의 실연과 연모의 정황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의 정황도 후렴의 사설을 유희적으로 처리하여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발생시킨다. 1991년 후포면 금음리에 사는 김말순[여, 64]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사랑가」는 사랑하는 임을 떠나 보낸 화자가 임이 없는 처지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임과 이별 없이 함께 살고픈 심정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처지와 심정을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1991년 기성면 기성리에 사는 한억란[여, 61]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록하여, 1...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에 있는 바위. 옛날 부모님이 호환을 당하여 고아가 된 오누이가 약초 캐는 일로 연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꿈속에 신령님이 나타나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 병이 나 이곳 불영사 계곡에서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를 구하고자 하나 산양들이 뜯어먹어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아주 높은 절벽 위에만 있으니 구해 온다면 큰 상을 내리겠노라!”하고 홀연히 사...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불상을 모셔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불상을 안치하고 승려가 거주하면서 예배·수행·의식 등을 거행하는 장소 또는 건축물로 절·사원(寺院)·정사(精舍)·승원(僧院)·가람(伽藍) 등으로도 불린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사찰은 크게 평지가람형(平地伽藍型)·산지가람형(山地伽藍型)·석굴가람형(石窟伽藍型)의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평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사친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의 울진향교 뒷산 망향대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친정은 남아 있지 않으며, 사친정이 있던 자...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그 경계에 소재한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울진군을 지배하는 산계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주축으로 하는 태백산맥의 준령들과 여기에서 분기된 소규모 산령들로서 서부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동해안변의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리고 험준하고 아름다운 계곡을 산들이 중첩되면서 에워싸고 있다. 울진군...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고려 전기 토축 읍성지. 산내성에 관한 사료로는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산내성조에 있다.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長山城)이 신라 말 왜구에 의해 폐허가 되자, 고려 초에 장산성에서 내륙으로 서쪽 5리 떨어진 산내성에 축성하여 이읍(移邑)하고 군민을 위무하여 이산(離散)되었던 민심을 결집하여 대읍을 이룩하였다. 성종 때 삭방...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 박금(撲琴)마을 명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에 있는 박금마을은 1510년경 영양남씨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동네 입구 쪽에 낮게 가로놓인 산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일설에는 마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통고산 자락에 있는 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1810년 순조가 나라를 다스리던 울진현령 구진(具縉) 때 통고산 자락에 67가구의 농가가 세상을 등지고 화전(火田)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뜻있는 사람들이 학동(學童)을 모아 서당을 지어 20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왕피천 하구(河口)에 모래가 쌓이기 전에는 1000m 이상이 포구(浦口)로 되어 있어 배가 왕래(往來)하였다 하여 산포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둔산동(屯山洞)과 세포동(細浦洞)에서 ‘산(山)’자와 ‘포(浦)’자를 따 ‘산포(山浦)’가 되었다. 1650년 경에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마을을 개...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3리 하암동에 있는 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온정면 소태3리 하암동은 마을 앞 냇가에 깨끗한 화강암의 바위가 있어 마을 이름을 하암리라고 불렀다. 동네 앞의 크고 흰 바위는 마치 선박의 돛대와 같은 형태라고 하여 돛대바위라고...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통고산·천축산(天竺山)·세덕산(細德山)[740.8m]의 세 뿌리가 모인 곳이라 하여 삼근(三根)이라 했다가 삼근(三斤)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산간오지(山間奧地)에서 농사를 지으면 잘 썩는다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써근이라 불렀으나 써근이와 비슷한 삼근(三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명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고 도전하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34년 7월 2일 설립 인가를 받고, 10월 1일 개교하였다. 1985년 병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 있던 삼근초등학교의 광회분교장.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명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고 도전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9년 11월 6일 삼근공립국민학교 광회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45년 광회공립국민학...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에 있는 삼근초등학교의 옥방분교장.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명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고 도전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52년 5월 1일 설립 인가 된 후, 3학급 4학년으로 편성되어 같은 해 12월 1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있던 삼근초등학교의 왕피분교장.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명랑하고 예절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고 도전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7년 10월 15일 삼근국민학교 왕피분교장으로 개교하였다. 1953년 3월 9일 왕피...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상달·중달·하달의 세 마을을 합쳐 불러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평해군 상리면(上里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하달리·상달리·중달리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삼달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는 삼달리가 삼달1리와 삼달2리로 분리되었고, 1980년 12월 1일...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에 있는 세 봉우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에 가면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의 이름은 밥봉·죽봉·떡봉이라고 불린다. 옛날 조선시대 이곳 원곡마을은 영천이씨 이수선 선비가 유배를 당한 귀양지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평해군 원북면(遠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동잠산·서잠산·마산리가 통합되어 삼산리로 개편, 삼산1리와 삼산2리로 분리되어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삼산리의 북쪽에는 현종산(懸鍾山)과 마악산(馬岳山)을 경계로 하고 있고, 그리고, 정명천(正明川)의 북쪽 상류를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2...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에 있는 느티나무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에 있는 느티나무의 수명은 370여 년이며, 높이는 30m, 둘레는 5.7m이다. 사계(沙溪) 이영발(李英發)의 묘 우측 백호(白虎)에 해당하는 등성이가 짧아 묘가 덜 쌓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구리·신리·후리·상율리·하율리·중율리를 병합하고, 상율리·중율리·하율리 세 마을의 이름을 따서 삼율리라 하였다. 1275년(충렬왕 1년) 평해군 남면 율현리(栗峴里)가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군(郡) 통폐합으로 울진군 평해면 삼율리가 되었다. 1944년 삼율리를 삼율1리·삼율2리·삼율3리...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2리 하밤티마을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 삼율2리 하밤티마을에서는 원래 3년마다 별신굿을 행하였으나, 비용 문제로 5년마다 행하다가 최근에는 10년마다 행하고 있다. 또한 3일 동안 바닷가에 굿청을 설치하여 행하던 별신굿을 최근에는 당일에 한하여 마을회관에서 행하는 방식으로 간소화되었다. 삼율2리의 성...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각.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동 지담(池潭) 위에 있다. 1774년(정조 19)에 몽천서원(蒙泉書院) 옆에 창건(創建)된 비각이다. 삼조어비(三朝御批)란 효종이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에게 내린 비지(批旨)와 숙종이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에게 내린 비지, 그리고 정조가 황림(篁林) 윤사진(...
-
김위옹을 시조로 하고 김복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삼척김씨의 시조인 김위옹은 신라 경순왕의 막내아들인 김추의 아들로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으로 좌승상에 이르렀고 실직군왕에 봉해졌다. 실직은 삼척의 옛 지명이다. 삼척김씨는 고려조에 문하시중을 비롯한 고관을 다수 배출하였고, 고려가 멸망하자 문하시중이었던 김인궤는 공양왕의 복위를 위한 활동...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거리[하당리]의 위쪽이 되므로 웃원당 또는 상원당이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폐합 때 상당리가 되었다. 1600년경에 선비 고씨(高氏)와 추씨(秋氏)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구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상당리라 하고 울진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동...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수반되는 의례. 상례는 사람이 죽었을 때 초종에서부터 성복발인, 치장, 흉제까지의 의례를 의미한다. 초종은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정침·임종·고복·사자상·수시·부고·목욕·습·반함·소렴·대렴·입관의 순으로 진행된다. 울진 지역에서는 위독하거나 운명하게 될 무렵에 당사자를 안채로 모시고 주위를 조용히...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의식요. 울진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상여 소리」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죽음을 인생무상,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슬픈 이별로 표현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상두가」, 「상부 소리」, 「영결 소리」, 「향도가」, 「향두가」, 「해로가」로도 불린다. 1991년 기성면 기성리에 사는 한억란[여, 61]과 평해읍 직산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3리에 있는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상천전마을은 울진군 근남면 행곡3리에 있다. 옛날에 이 마을까지 바닷물이 20리나 밀려 올라와서 호수를 이뤘는데, 이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구웠다고 해서 일명 해염리(海鹽里)라 불렀다고 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사우(祠宇). 1955년에 죽변면 화성리 화방동에 있던 양현사(兩賢祠)를 중건(重建)하여 상현사(尙賢祠)라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의 유신(儒臣) 남영번(南永蕃), 유현(儒賢) 해운(海雲) 남계명(南季明),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삼현(三賢)을 봉안하고 있다. 상현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익공양식 건물로,...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고개. 일설에 바닷물이 밀고 올라와 새가 앉을 만큼만 남았다고 하여 샛재라 하였다고 전한다. 태백산맥의 높은 산 밑에 있어 광천의 발원지며 골짜기마다 마을을 이루고 있다. 바릿재와 삿갓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소광천과 대광천 사이에 있다. 선질꾼이 다닌 시절에 샛재 바로 아래에 4~5가구 정도 살았다고 하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조령(鳥嶺)에 있는 성황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말래[斗川]를 지나 십이령(十二嶺)의 하나인 조령에 있는 성황당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조령은 ‘샛재’라고 하는데, 이 고개에는 110여 년 전에 당시 상인들의 모금으로 건축된 목조...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수령이 150~520년 정도로 추정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 수만그루가 자라고 있는 군락지.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목질이 단단하여 조선시대 궁궐용 목재나 왕실의 목관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황장목이 금강송이다. 황장이란 소나무의 붉고 누런 속 부분인 심재부를 가리킨다. 금강소나무의 심재부는 일반 소나무에 비해 월등히 넓은데다 단단...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1리 골짜기에 있는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 숙종 때인 1703년에 진사 벼슬을 한 전구원(田九畹) 선생이 강학하던 서당이 있어 이 골짜기를 서당골[書堂谷]이라 부른다. 이 서당골 앞에서는 큰 바위가 놓여 있는데 크기는 가로 2....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3리 나실(羅室)마을에 있는 약초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나곡3리 나실마을의 동해안에는 서모제가 있다. 서모제는 인적이 없는 암벽에 이끼와 같은 종(種)으로 번식한다는 것으로, 쥐털과 같다고 하여 ‘서모제’라 부른다. 옛날 왕...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서 삼근리 사이에 있는 다리. 길이는 24m이며, 총 폭은 8.5m인데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7m이다. 차선은 왕복 2차선[편도 1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4m이다. 1968년에 준공된 서하교는 상부는 RCT공법에 하부는 SG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었으나, 개축공사를 통해 현재는...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김해김씨(金海金氏)인 한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사방의 산수(山水)가 아름다워 신선(神仙)이 놀던 자리라 하여 신선 선(仙)자와 이곳의 물맛이 특히 좋아 맛 미(味)자를 따고, 또한 마을이 골 깊숙히 있다 하여 내(內)자를 따서 마을 이름이 내선미(內仙味)라고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객사. 관(館)은 보통 객관(客館) 또는 객사(客舍)라고 불리며, 다른 지역에서 온 관원들을 대접하던 장소이다. 조선시대에는 객관에 궐패(闕牌: ‘궐(闕)’자를 새겨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셔 두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객사인 선사관은 동대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선사관의...
-
김추를 시조로 하고 김대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아들인 김추를 시조로 하는 선산김씨는 삼척·온양·희천·진주·원주 등으로 분관되었다. 1600년(선조 33)에 김대진은 선산김씨 중에서 처음으로 경상북도 울진군에 입향하였다. 김대진의 선조는 고려 말에 평해군수로 재직하다가 고려가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북도 울진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온정면 조금2리 상조금마을에서 서쪽의 절골로 들어가면 계곡은 신기골과 선암사골로 나뉘어 백암산 방향과 영양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북쪽인 선암사골로 약 1㎞ 가량을 올라가면 계곡 중앙에 자리한 느티나무 성황목이 있고, 성황목 남동쪽 계곡에 접해서 선암사지가 있다. 선암사지는 달공굴과는 약 1㎞ 떨어져 있...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선연정은 신선이 머물다가 갔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경치가 좋은 온정면 외선미리의 연못가에 상사 이문표가 휴양을 위해 세운 정...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한 해의 첫 명절. 설날은 새해의 첫날, 곧 정월 초하룻날이고, 설은 새해의 첫머리이다. 이런 뜻에서 설날은 한자어로 원일(元日)이라 하고, 설은 세수(歲首)·세초(歲初)·정초(正初)라고 한다. 울진 지역에서 행해지는 설날 풍속은 다른 지역과 구분되지 않는다. 세배와 함께 설빔입기, 세배 돈 주기, 복조리 달기 등 지역에...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구부3리에서 설매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당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발복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무척 명당을 얻으려고 한다.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당사자 보다는 후손이나 이승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명당을 찾아 집을 짓거나 묘를 쓴다. 이와는 달리 「설매묘」는 주인공인 부자가 더 잘 살기 위해 좋은 명당자리를 구하여 묘를 썼으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옛날부터 입으로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울진군의 지리적 위치는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갈령산, 서남쪽으로는 일월산맥과 고초령 백암산, 남쪽으로는 등운산, 그리고 동쪽으로는 동해를 접하고 있다. 그래서 단군신화나 고구려 건국 신화와 같은 민족이나 국가의 창건과 관계되는 신화는 찾아볼 수 없다. 경상북도 울진 지...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외침에 대비하여 흙과 돌로 구축한 방어 시설. 우리나라는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산지로 되어 있어 일정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옛부터 자연적·인공적 외침에 대비하며, 스스로의 거주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적인 구조물을 축조해왔다.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천주교인들이 모여 예배 드리며 종교의식을 행하는 장소. 울진 지역의 대표적 성당인 천주교울진성당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574번지[읍내10길 7]에 있는 안동교구 소속이다. 천주교울진성당은 1957년 5월 춘천교구 소속 삼척천주교회 울진공소로 출발하여 그 이듬해인 1958년 5월 24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주임신부에 골롬...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매년 10월경 성류굴을 비롯한 관광 울진을 홍보하는 향토 축제. 성류문화제는 1977년 10월 13일에 열린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울진군은 이 행사는 전통 문화를 보존·계승하고 군민들의 단합을 도모하며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울진군을 홍보하고 있다. 성류문화제는 천연기념물인 성류굴을 비롯한 지역의 관광자원을 널리 홍보하고 전통...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조성 중인 온천. 1993년 3월 10일 왕피천 상류인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산144번지에서 온천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당시 온천수의 온도는 심도 700m에 32℃이며, 일일 용출량은 500㎡/일이었다. 1995년 10월 9일 (주)울진성류온천개발은 울진군수에게 울진성류온천 지구지정을 신청하였다. 지구지정 신청 면적은 990,799㎡였다...
-
성류굴은 울진의 대표적 석회암 동굴로, 자연 조형이 금강산을 방불케 할 정도라 하여 지하금강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지금의 성류굴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생겨난 것으로 굴 앞의 사찰에 있던 불상을 이곳에 피난시킨 이후로 ‘성불이 머물던 굴’이란 뜻에서 성류굴(聖留窟)이라 불리게 되었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위치하고 있고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성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외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지. 성산성에 관한 문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성산성조에 “현(縣)의 남쪽 성산동에 석축유지(石築遺址)가 있으나 지금은 사실을 알 수 없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의 정확한 존폐 여부와 운영 기간 등을 알 수 없다. 성이 위치한 구산리는 과거에 잠미동[잘미동]으로 불...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대한불교삼론종 소속의 사찰. 삼론종은 자각각타(自覺覺他)와 각행원만(却行圓滿)의 기본 교리를 바탕으로 고구려 승랑 대종사의 대승종풍(大乘宗風) 선양과 전법도생(傳法度生)을 목적으로 하는 종파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면전동 뒷산인 각구산 밑에 있던 암자로, 조선시대 숙종대에 한 노승이 초가집을 지어 목불(木佛)을 안...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1리에 있는 성조사 소속 암자.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면전동(綿田洞) 뒷산인 각구산 밑에 있던 암자이다. 조선시대 숙종 때에 한 노승이 초가집을 지어 목불(木佛)을 안치하고 수도하던 곳이었는데, 사찰에 입적되지 않아 「자연보호법」에 의거하여 1979년에 철거되었다가 북면 주인3리인 대수동 각구산 기슭에 다시 신축하였다. 그러나...
-
경상북도 울진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울진의 토성(土姓)은 임(林)·장(張)·정(鄭)·방(房)·유(劉)가 있었고, 속성(屬性)으로는 영천(榮川)에서 이주한 민(閔)씨가 있었다. 평해의 토성으로는 황(黃)·방(房)·수(水)씨가 있고, 백성성(百姓姓)으로 엽(...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일년을 주기로 하여 계절의 변화 시점, 생업 활동의 변화 시점, 기념일 등에 행해지는 풍속. 세시는 일 년 사계절의 순환을 따라 일정한 날, 즉 명절에 수행되는 일련의 반복된 행위를 말한다. 농경의 전통사회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독특한 생활행위가 있었는데, 이것이 생업활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연중 중요한 행사로 자리를 잡...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소야동(蘇野洞)과 신곡동(薪谷洞)에서 ‘소(蘇)’자와 ‘곡(谷)’자를 따 ‘소곡(蘇谷)’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1916년 3월 1일 신곡·소야·석수(石水)가 통합되어 소곡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소곡리가 소곡1리와 소곡2리로 분리되...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소조동(召造洞)과 광천동(光川洞)에서 ‘소(召)’자와 ‘광(光)’자를 따 ‘소광(召光)’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후곡동(後谷洞)·소조동·광천동이 통합되어 소광리로 개편되었다. 소광리의 남쪽은 세덕산(細德山)[740.8m], 남서쪽은 진조산(眞鳥山)...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1리 솔평지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1리의 후곡동을 지나 금강소나무 숲이 있는 북쪽으로 1.5㎞가량 올라가면 솔평지 못 미쳐 도로변에 고사한 당목 한 그루가 있다. 솔평지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을 개척할 때 소나무가 무성한 평지대(平地帶)라 하여 솔평지라 부르고...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의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대광천과 만나는 지점 사이에 있는 하천. 일명 자근빛내라고도 한다. 소광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백병계곡과 십이령이 만나는 지점까지의 소광리 마을을 흐르는 하천은 군 내에서 가장 높은 계곡을 흐르는 하천이다. 큰빛내[大光川]와 산맥 등선을 사이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산. 옛날에 있었던 대흥사의 뒷산인데 먼 곳에서도 잘 보이며, 봉황이 알을 낳는 보금자리와 같다하여 ‘소봉산’이라고 한다. 또한, 봉긋이 솟아 있다고 하여 ‘솟봉산’이라고도 한다. 동쪽은 금산, 남쪽은 불영천이 흐르는 불영계곡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아구산이 위치해 있다. 불영사와 불영계곡을 통과하는 국도 36호선의 건잠교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터. 정(亭)은 보통 정자(亭子)라고 부르며,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건립된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층수에 따라 누정, 누각, 층루 등으로 구분된다. 소정지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송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소정은 생원 남세원이 건립한 정자로, 남세원은 이곳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태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소태정 또는 소태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하암리(河岩里)·상소태리·하소태리가 통합되어 소태리로 개편, 울진군 온정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는 소태리가 소태1리·소태2리·소태3리로 각각 분리 되었다. 소태리의 서쪽에는 백암산(白岩山)[...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서화산 등에서 발원하여 평해 남대천 상류로 합류되는 하천. 소태리의 마을 이름은 소태나무 정자가 있었던 데서 유래가 되었고, 따라서 소태리에서 평해 남대천 상류로 합류되는 하천의 명칭도 소태마을의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고 농경지가 거의 없는 온정면은 소태천 하곡을 따라 좁은 농경지가 있고, 그 하곡...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평해군(平海君) 손익담(孫翼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고, 어머니는 정선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로 감찰 신자의(申子儀)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
신라시대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평해손씨 입향조. 895년(진성여왕 9) 평해를 식읍으로 받아 경주에서 평해로 이주한 평해손씨 울진 입향조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사도(司徒) 손직(孫稷)의 후손이다. 신라 육부(六部) 촌장 중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가 다른 촌장과 함께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추대하여 사로국을 건국함으로써 개국공신이 되었고, 32년에 그...
-
경상북도 울진군 노동서원에 있는 일제강점기 제작된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 노동서원은 1816년(순조 16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어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13...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草...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난 김언륜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왜적과 싸운 이야기. 일반적인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허구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김언륜 장군의 영웅적인 활약상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김언륜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군으로 활약하였다. 15...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으로 내가 흐르므로 수곡이라 하였다. 1850년 경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막금동(幕錦洞)·두전동(斗田洞)·비월전동(飛月前洞)이 통합되어 수곡리로 개편되었다. 수곡리의 서쪽에는 천축산[653m]이 있고, 동쪽에는 매봉산[...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와 수산리 사이를 흐르는 왕피천 위에 있는 다리. 수산리(守山里)는 옛날에 왕피천이 범람할 때 강변의 산이 급류를 막아 마을이 침수되는 것을 면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산교 명칭도 다리가 소재한 수산리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길이 282m, 총 폭 12.8m, 높이 8m이다. 차도의 폭은 11m, 총 차선 수는 2차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에 대하여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수산역이 있었으므로 수산·수산역 또는 역마·역굴이라 하였고, 둘째는 왕피천을 수산천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하천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산리라 하였다. 셋째는 옛날에 왕피천 물이 범람할 때에 강변석산(江邊石山)[독뫼산]이 급류를 막아 마을의 침수를 면하였다 하여 수산(守山)이라 하였다고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수산물의 위탁 판매가 이루어지는 곳. 수산물은 그 특성상 생산 조절이나 계획 생산이 쉽지 않으므로 가격 급·등락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따라서 산지 수산물위판장의 판매 시설 및 처리·가공 시설은 상품성 유지에 도움을 주며 수산물 출하량도 원만하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수산물위판장으로는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의 활어...
-
경상북도 울진군의 산업 중 수산물의 채취·어획·양식·가공과 관련되는 업종. 수산업은 수산물을 생산하는 업태에 따라 어업·양식업·수산 가공업 등으로 구분된다. 어업과 양식업은 유용 동식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으로서 어업은 천연의 수산물을 채취·어획하는 것이고, 양식업은 수산 자원의 번식과 성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증식시키는 수중 농업이다. 그리고 수산가공업은 수산물을 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1리 현내(縣內)마을에 있는 수전대와 포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읍 연지1리 현내마을에 있는 수전대는 옛날 가뭄이 극심했을 때 고을의 원을 중심으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인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포진은 현내마을에 현성(縣城...
-
신라 신문왕 때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수진사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신문왕 때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969년 3월에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문인 황여일(黃如一)·권계(權啓)·선세휘(宣世徽)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수진사는 천축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해오는 울릉도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 수토기담의 내용은 울릉도와 관련된 것으로 이루어졌으나, 구전되는 장소는 울진군이다. 향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울릉도에 대해 신비함을 주기 위한 의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에는 1896년 갑오경장 이전까지...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비즈니스, 관광 또는 휴양 등의 목적을 가진 여행객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시설. 숙박시설은 호텔, 여관, 콘도미니엄, 유스호스텔, 휴양소, 연수원 등을 말한다. 숙박업은 관광객의 여행기간 중 가장 중요한 숙박과 휴식의 장소로서 다른 관광사업보다도 그 비중을 크게 차지한다. 최근 국제회의 및 접대장소로서 그 범위가 매우 확대되고 다양화됐지만, 본래의...
-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오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순흥안씨의 시조는 고려 신종 때 별장을 역임한 안자미로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이 순흥안씨를 대표하는 세 파를 구성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는 삼파의 파조인 안축의 후손을 비롯하여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순흥안씨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안오상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리에 있는 불영계곡 상류의 골짜기. 옛날 도승이 이곳 자연곡간에서 기거하며 수도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승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쪽에는 통고산과 남쪽에는 천축산이 있다. 그리고, 북쪽의 세덕산 가운데를 흐르는 광천계곡과 합류되는 작은 골짜기이다. 새터휴게소 뒤편에 위치하는 골짜기로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승지골에서 광천...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의 한 여성이 남편을 서울로 유학 보내고 겪는 슬픔을 노래한 가사 작품. 한 여성이 혼인 후 8년간 경성으로 유학 간 남편 뒷바라지하다가 결국은 이혼을 당하게 되는 슬픔을 사계절에 맞춰 읊고 있다. 봄에는 결혼 후 8년간 남편 없이 홀로 보내는 독수공방하는 슬픔을, 여름에는 청천의 뇌성벽력 같은 이혼 통보에 대한 슬픔을, 가을에는 떠난 남편을 잊지 못하는 자신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지역에 있던 신간회의 울진지회. 1920년대 부르주아민족주의 계열의 문화 운동 침체와 타협적 사회주의자들의 자치론이 대두되면서 국내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의 일환으로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모여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울진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 143곳에 지회(支會)가 설립되었다. 신간회의 강령인 민족단결과 민족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용저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터.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계산(溪山) 김수근(金洙根) 양 선생을 배향(配享)한 신계서원이 있었던 건물지이다. 신계서원(新溪書院)은 울진읍 호월리 용저동(龍渚洞)에 있었다. 1749년(영조 25)에 울진읍 신림리에 창건되어 김창흡(金昌翕)의 영정을 봉안하다가, 1826년(순조 26...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했던 평민 의병장.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신석주(申錫柱)의 아들이다. 신돌석(申乭石)의 본명은 신태호(申泰浩)이고, 신태홍(申泰洪)·신태을(申泰乙)·신대호(申大浩) 등으로도 불렸다. 경상도 영해(寧海)[현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신돌석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림·새름 또는 신림동이라 하였다. 1475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제동(龍堤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신림리로 개편되었다. 신림리의 서쪽에는 악구산(岳丘山)[652.9m]이 높이 솟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신림의 성황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신림리 신림 동제는 울진읍 신림리의 자연부락인 신림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8일과 7월 칠석날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서낭신에게 올리는 주민 공동의 마을 제의이다. 신림리 본동 성황당은 신림리 큰골마을에 이르기 전 송정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시사에 관한 뉴스를 비롯한 정보·지식·오락·광고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울진에 보급된 최초의 신문은 1920년경에 보급되기 시작한 『매일신보』이다. 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들어오면서 총 3종의 신문이 보급되었으나, 구독층이 일반서민들이 아닌 기관을 비롯한 특수층에 국한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서울신문』, 『한국일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있는 계곡. 신선계곡은 천연 기암절벽이 많은 계곡으로 계곡 전체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고, 계곡 곳곳에 여러 개의 담이 있다.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며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과 한데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이진사(李進士)라는 사람이 와서 보니 사방에 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 하여 신선골이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안주씨(新安朱氏) 사직공파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한적과 고문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주요 한적은 주환벽(朱奐壁)의 『고파집(古坡集)』, 주필혁(朱必赫)이 쓴 『기휴재문인록(棄休齋門人錄)』, 황여일(黃汝一)이 지은 『효자전(孝子傳)』 등이다. 이것 외에도 주련(朱鍊)이 받은 교지와 시권 등의 고문서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한적은 모...
-
경상북도 울진군에 거주하는 신안을 본관으로 하는 주씨 종친들의 모임. 신안주씨 종친회는 중앙종친회의 종훈(宗訓)인 숭조경종(崇祖敬宗), 충효예절(忠孝禮節), 참여돈목(參與敦睦)의 실천과 목족(睦族), 화합으로 종인들의 친목을 더욱 공고히 하고 본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신안주씨 종친회는 울진에 거주하던 종친 주범중·주석열·주기돈·주석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리동(新里洞)과 화동(花洞)에서 ‘신(新)’자와 ‘화(花)’자를 따 ‘신화(新花)’가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1916년 4월 1일 신리동·화동·석수동(石水洞)·고등동(古等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신화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신화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북면 신화1리 새말마을 한가운데로 국도 7호선이 나 있는데, 이 국도의 서쪽으로 계곡과 산이 형성되어 있다. 계곡 옆 산 구릉 위에 5기의 고인돌이 각각 떨어져서 분포하고 있다. 1~3호 고인돌은 거의 일직선상으로 하나의 군을 이루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세천이 흐르고 동쪽은 산으로 둘러져 있다. 1호 고...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수동·대잠동·이을동을 병합하고 새로 번창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였다. 1520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인 언문(彦文)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그 뒤 여러 성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북수동(北水洞)·대잠동(大岑洞)·이울동(...
-
신라시대 울진 지역이 속했던 지방통치구역. 신라시대 실직주가 설치되었던 지역은 원래 울진·평해와 강원도 삼척까지를 포함한 소국(小國)의 하나로 실직국(悉直國), 또는 실직곡국(悉直谷國)이라 불렸다. 실직국은 음즙벌국(音汁伐國)과의 영토 분쟁을 계기로 102년(파사이사금 23) 신라에 복속되었다. 주(州)는 특정 지역명이 덧붙여져 있고, 신라의 대외팽창과정에 따라 설치·이동되는 것으...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이며, 참의공(參議公) 심학홍(沈學弘)의 후손이다. 심천범(沈天範)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더니 3년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집이 가난하여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일로 아버지 공양을 지성으로 하였다. 아버지가 두 어깨에 신경통을 앓아 수저를 들지 못하고 누워 있으므로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등 정성...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강릉(江陵). 아버지는 최석육(崔錫育)이고, 남편은 청송심씨로 심천범(沈天範)이다. 평소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고 남편을 존경하였다. 시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스스로 머리를 빗지 못하므로 매일 세수를 시키고 머리를 빗어 주었다. 또 시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최씨는 집에서 기르는 개[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너를 기...
-
조선 후기 임유후가 불영사에 머물면서 인근의 뛰어난 경치에 감흥하여 지었던 14수로 된 5언 절구. 임유후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효백(孝伯), 호는 만휴당(萬休堂)이다. 저서로는 『만휴당집(萬休堂集)』과 『휴와야담(休窩野談)』이 있다. 「십사경시」는 시문에 뛰어났던 임유후가 불영사에 머물면서 그 주위에 있는 빼어난 경관을 보고 표현한 작품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금강송면 소광리를 지나 봉화군 동부 사이에 있는 고개.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태백산[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된 것과 맞물려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군으로 지나는 교통로인 십이령이 이 지역의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도로이다. 이 고개는 십이령재 또는 십이령티라고도 일컬어진다. 즉, 울진 흥부-쇠치재-세고개재-...
-
경상북도 울진군과 내륙 지방의 장시를 오가던 보부상들이 십이령을 넘나들며 부르던 노래와 놀이. 십이령바지게꾼이라 하면 바지게라는 지게에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 고기, 미역 등 해산물을 싣고 흥부장(興富場)[현재 북면 부구리]에서 출발하여 십이령[쇳칫재, 세고개재, 바릿재, 셋재, 너삼밭재, 젖은텃재, 작은넓재, 큰넓재, 꼬채비재, 멧재, 배나들재, 노룻재 등] 12고...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농업노동요. 「쌈싸기」는 논의 김을 다 매어 갈 때 남은 부분을 둘러싸고 들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그 모습이 마치 쌈을 싸는 것과 같다 하여 ‘쌈싸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짧은 형식의 노래로서 지역에 따라 「싸대 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1년 매화면 매화2리에 사는 윤병모[남, 75]가 부른 것을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다리. 길이는 60m이며, 총 폭은 10m인데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8.5m이다. 차선은 왕복 2차선[편도 1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7.3m이다. 1984년에 준공되었으며, 쌍전1교와 쌍전2교 모두 상부는 PCI공법에 하부는 T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다. 국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봉전동(鳳田洞)과 달전동(達田洞)에서 두 마을의 ‘전(田)’자를 따 ‘쌍전(雙田)’이 되었다. 1580년 경 가선대부 권태중(權泰重)이 칡넝쿨을 걷어내고 개척한 곳이라 하여 갈전(葛田)이라는 자연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봉전동·달전동·광치동(廣峙洞...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 대봉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국도 36호선이 지나고 답운재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있다. 쌍전리 내에는 대봉전·덕거리·깨밭골 등 10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중 대봉전은 덕거리에서 북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있는 마을이다. 10여 가구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쌍전리 동제는 금강송면 쌍전리의 덕거리[쌍전1리] 대봉전(大鳳田)마을 앞 독미산에 있는 천제당(天祭堂)에서 3년에 한 번 음력 정월 14일 자시(子時)에 마을의 태평무사와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천신(天神)에게 지내는 마을 제의이다. 마을회의에서 제관을 선출하는데, 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 산146번지에 있는 참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참배나무는 현재 마을 주민 곽금호의 집 뒤뜰에 있다. 대대로 관리해오고 있지만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무의 수령은 약 500년이라고 한...
-
1960년대 후반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초등 국어교육 연구 단체. 회원들의 대부분이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글짓기와 국어교육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면서 회지 발간과 세미나 개최 등을 진행했다. 아동문예연구회는 1963년 8월 망양문학회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로 1970년까지 활동했다. 망양문학회가 성인문학 중심으로 탄생했...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명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祠廟).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과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배향(配享)하는 사묘(祠廟)이다. 1888년(고종 25)에 유림에서 창건하였고, 최치원의 유상(遺像)을 봉안하였으며 1925년에 최익현의 진영(眞影)을 추배하여 향중에서 음력 10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한 채의 건물에 독립된 여러 세대가 살 수 있게 구조한 공동주택. 우리나라에 아파트 주거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서울 서대문에 풍전아파트가 건립되면서부터이다. 주택난 해결을 위해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설립되면서 아파트 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파트는 주거 내 가구별 한계가 명확하지 않고, 한 단위 주거 내에 시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산.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고기 입같이 생겼다고 하여 어구산(魚口山)에서 아구산 또는 악구산으로 불려졌다 한다. 삼림이 울창하고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특히, 남쪽의 불영계곡은 광천[불영천]이 감입 곡류하면서 아주 좁고 깊게 파 놓은 골짜기로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이 지역의 자연 경관은 보존할 가치가 매우 높다. 태...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심·권지우·권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안동권씨의 시조는 안동부를 식읍으로 받은 권행이다. 안동권씨는 시조의 10세손을 전후로 크게 15개 파로 분파되었다. 울진 지역에 세거하는 안동권씨들도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다. 안동권씨들은 난을 피해 입향한 경우가 많다. 권심·권지우·권조 등은 조선 초 단종과 세조...
-
김숙승과 김선편을 시조로 하고 김몽생과 김우상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자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구 안동김씨와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 전투에서 견훤을 물리친 태사 김선편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의 두 계통이 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세거하는 안동김씨들도 이 두 계통에 속해 있으나, 신 안동김씨계가 다수를...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북쪽은 평해리, 동쪽은 월송리와 바다가 보이며, 서쪽은 학곡리와 멀리 광품리가 접하고 있다. 청학산 사이에는 평해평야가 있으며, 남대천이 동쪽의 동해로 흐르고 있다. 청학산과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으로 평해읍의 시가지 건설로 대부분의 산이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
이중선을 시조로 하고 이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안성이씨의 시조는 송나라에서 고려로 온 이중선으로 세자와 세손의 사부를 거쳐 이자의 난 때 평정에 공을 세워 안성의 옛 지명인 백하군에 봉해졌다. 그의 후손들은 광릉부원군파를 비롯하여 크게 4개로 분파되었다. 안성이씨의 입향조는 전리판서를 지낸 이선이다. 1299년(충렬왕 25...
-
조선 중기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순흥안씨 입향조. 안오상은 사초 문제에 연좌되어 평해군수(平海郡守)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에 정착하여 순흥안씨 평해파를 형성하였다. 1831년 대홍수로 인하여 30세손 안하원(安夏源)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자산마을로 이주하여 순흥안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본관은 순흥(順興)....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날아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안오상의 신도비. 오곡리 날아실마을 동편 김질골과 제사골 사이의 구릉지 남쪽 끝자락에 있다. 안오상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축(安軸)의 후손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었으나 치적을 인정받아 화(禍)를 면하였고, 1548년(명종 3) 평해군[현 평해읍]에 들어와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가 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휘는 용관(鎔觀), 자는 국사(菊史), 호는 만오(晩晤).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의 24대손이다. 아버지는 안항선(安恒善), 어머니는 장감호(張甘湖)이다. 『농민삼천리(農民三千里)』 등의 잡지를 펴내어 농촌 계몽에 힘썼다. 또한 일본제국주의를 응징하고자 동지를 모아 국권 회복을 주창하며 은밀히 동분서...
-
1986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건립된 안용관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비. 안용관의 독립운동이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아 1983년 8월 30일 애국지사로 추서되어 포상이 있었고, 1984년 10월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묘역이 정비되었다. 이러한 안용관의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지역 인사들이 안용관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모아 19...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안구(安耈)이다. 안응준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7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자 자기의 무명지를 끊어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시 손가락을 끊어 피를 입에 넣고 곁에 앉아 기다렸더니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가 살아났다. 그 후 성인이 되어 분가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울진현 고적 안일왕산성조에는 ‘석축주칠백오십삼척금폐(石築周七百五十三尺今廢)’로 기록되어 있다. 안일왕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작 당시인 1530년에는 이미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안일왕성의 축성 기원과 연대에 대해서 『울진군지』에는 ‘실직왕(悉直王)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召光里)에 있는 장군터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는 안일왕성(安逸王城)의 장군터가 있다. 이 장군터는 부족사회국가 시대에 실직[현재의 삼척] 안일왕이 피신하여 산성을 토석(土石)으로 축조할 때 당시 장군이 살았다고...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소재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증조할아버지는 호장 안득재(安得財)이고, 할아버지는 호장 안희서(安希諝)이다. 아버지는 봉익대부밀직제학에 추증된 안석(安碩)이고, 어머니는 검교군기감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부인은 검교군기감 문구(文龜)의 딸이다. 1299년(충렬왕 25) 성균관시에 급제...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안축의 행적을 기리는 비. 안축 유적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안축이 경상북도 울진군을 배경으로 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것을 기념하여 1991년 10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한 유적비이다. 안축은 순흥(順興)을 본관으로 하며,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충혜왕(忠惠王) 때 강원도존무사(江...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글방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관아 및 사원 등의 큰 집을 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남유주(南有周)가 세운 애월당은 학문을 닦고 글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기성면 현종산 아래 장재골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울진군 곳곳에 있는 많은 누정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북면 부구리에서 전해 오는 「애정가」의 첫머리에 나오는 “니가 먼저 살자고/옆구리 콕콕 찔렀나”는, 사랑 노래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사설이다. 남녀 사이의 애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91년 북면 부구리에 사는 김춘연[여, 69]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록하여 1991년에 출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승려. 속성은 남씨로 본관은 영양(英陽). 아명은 몽선(夢仙)이고, 자는 중열(仲悅), 법명은 혜능(惠能)이다. 어머니는 행주전씨이다. 1442년(세종 24)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1리에서 출생하였다. 1453년(단종 1) 12세에 승려 응철(應哲)을 좇아 출가하여 불영사에서 수계(受戒)를 받았다. 8년간 정진하여 모든 불경에 통달한 뒤 천조...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누에를 기르는 일.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삼한시대부터 양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삼국시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도 양잠은 지속적으로 장려되어 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양잠을 진흥시키기도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농가 소득 증대, 외화 획득, 제사 공장의 고용 증대 등을 목적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중앙으로 돌출된 산정에 굵은 노송이 있어 정자와 같고, 거기서 대해를 바라보는 시원한 경관이라 하여 양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1696년에 해주인(海州人) 오훤(吳暄)이라는 사람이 매화면 덕신리에서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곡해동(曲海洞)·...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글방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관아 및 사원 등의 큰 집을 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처사 양진당(養眞堂) 안희택(安希宅)이 학문을 강의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기성면 척산리에 그 터가 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확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어로 활동에 사용하는 전통적인 연장. 울진 지역의 전통 어구로는 고깃배·그물·작살·낚시·어항·머구리 등이 있다. 고깃배는 원근해용과 연안어장용으로 구분되는데, 원근해용은 자망질과 몰이질이 용이하도록 선수가 좁고 길며 돛은 하나이고 키는 짧은 편이다. 연안어장용은 작으면서 암초 사이를 잘 빠져나갈 수 있게 제작하였다. 최근에는 재질이 목재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수산물을 채취·포획 또는 양식하는 일.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서식하는 수산 동식물을 채취하거나 포획하는 일을 어로(漁撈)라 하며, 사업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어로 활동을 어업이라 한다. 어업은 채취 또는 포획하는 대상물에 따라 해수어업(海獸漁業), 채패업(採貝業), 채조업(採藻業)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어장(漁場)에 따라서 크...
-
1962년 경상북도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에 소속되면서 울진군과 삼척시가 고포 미역의 채취권을 둘러싸고 벌인 분쟁.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고포 지역은 미역의 생산지로서 유명한 곳이다. 이런 지역이 1962년 울진군(郡)으로 이속되면서 군(郡)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도(道) 경계선으로 되어버리면서 어업권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원래 북쪽에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바다환경정화를 위한 어촌 종합개발사업. 사회 전반이 산업화되면서 환경이 오염됨과 더불어 오염 물질이 바다로 유입되면서 바다환경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바다 오염은 각종 어패류와 해조류를 폐사시킬 뿐 아니라, 중금속이나 각종 독극물에 오염된 수산물이 식탁에 오르게 됨으로써 건강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경상북도 울진군에서도 1993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사용하는 고기가 들도록 물 속에 싸리·참대·장목 등을 둘러 꽂아 둔 올. 어전(漁箭)은 ‘어량(漁梁)’이라고도 한다. 613년 수나라 양제의 제2차 고구려 원정에 관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어량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료에도 비교적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성종 대 이후부터의 왕조실록에는 어량이라는 명칭이 거의 사...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는 어촌의 자연마을 단위로 조직된 자주적 협동 조직. 어촌계는「수산업협동조합법」을 근거로 법인 또는 비 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는 어촌의 민주적인 소 조직으로서 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 가운데 하나이다. 구성원은 지구별 수산업협동조합의 조합원이어야 하며 원칙적으로 어촌 자연 마을을 단위로 조직하도록 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의 어촌계는...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방송,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울진군 일원은 서울과는 약 400㎞나 떨어져 있고, 중간에 태백산맥이 있는 지리적 문제로 인해 서울 방송의 난시청 지역이었다. 따라서 중계소가 없으면 라디오를 듣거나 TV방송을 시청하기가 어려워 중계소 시설을 타 지역보다 빨리 운용하게 되었다. 신문은 1920...
-
경상북도 울진군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칭하는 말. 경상북도 울진군은 면적이 989.1㎢이고, 인구는 약 5만 2942명으로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있는 군이다. 북쪽은 갈령산을 경계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과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 낙동강 조항천을 경계로 소천면과 접하며, 남서쪽은 일월산맥과 고초령 백암산을 경계로 영양군 수비면·일월면과 접한다. 남쪽은 등운...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3리 여심마을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 국도 7호선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여심마을의 할배당은 국도 서쪽의 비학산 아래 마을회관 뒤편 숲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는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 산155번지[만산길 57]이다. 할배당의 주변은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할매당은 국도 동쪽 바닷가의 큰 바위인 움바우이...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과 원. 서울에 있는 중앙관서에서 지방 시찰 또는 지방에서 중앙과의 행정 연락을 위한 교통 통신과 그 밖에 기찰사무(譏察事務)를 관장하는 지방분장소에는 역(驛)이 있었다. 이러한 역원제도는 487년(신라 소지왕 9)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려 초 1079년(성종 2) 6월 역의 대소에 따라 역전(驛田)을 지급하고,...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공연·상영된 연극과 영화. 일제강점기 울진에서의 연극 활동은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 울진청년회가 주체가 되어 「에이브러햄 링컨」을 역사극으로 공연하였고, 울진순회극단을 조직하여 울진제동학교 강당에서 공연하는 등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연극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연극 활동은 침체되어 각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이곳에 있는 연못인 연지에서 이름을 따서 연지리라 부르게 되었다. 1007년(목종 10) 죽변면 화성리에 있던 산내성(山內城)을 현내동으로 이읍(移邑)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현내동(縣內洞)·죽진동(竹津洞)·내봉동(內烽洞)·외봉동(外烽洞)과 선제동...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현내마을에서 5년에 한 번씩 행해지는 마을 굿. 연지리 현내 별신굿은 울진읍 현내[연지1리]에서 마을 주민들의 안과태평과 바다에서의 안전,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굿이다. 마을에서는 연신, 또는 별신이라고도 부른다. 연지리의 자연 마을인 현내에서는 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3년 도리로 음력 10월 중에 좋은 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현내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연지리 현내 성황제는 울진읍 연지1리 현내마을에 있는 서낭당에서 매년 1월 15일과 10월 중에 날을 받아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서낭 제사이다. 울진읍 연지리 현내에는 큰 서낭과 작은 서낭이라 불리는 제당이 두 곳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연지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연호정은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자연 호수인 연호의 북쪽 기슭 송림에 세워져 있다. 1815년(순조 15) 연호 북쪽 기슭에 정자를 세우고 향원정(香遠亭)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향원정은 오랜 비바람으로 무너져 1922년 7월 당시 울진군수 이기원(李起遠)이 고을의 선비들과 함께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우고...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소곡1리에 있는 자연마을의 명칭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소곡1리에는 12개의 소야(蘇野)가 형성되어 있어 인근 마을에서는 ‘열두소야’라고 부른다. 이 12개소는 평지마을·굿마을·웅동골·샛터·골말·북산말·평밭·도리마·웃마을·옛터·종...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세무서. 영덕세무서 울진지서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5월 1일에 울진세무서로 개설되어 동해안 일대의 세무 행정을 담당하였다. 울진세무서는 1950년 4월 23일에 삼척세무서 울진지서로 소속과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62년 1월 29일에는 다시 영주세무서 울진지서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68년 9월 10일 포항세무서 울...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음력 2월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신에게 올리는 마을 제사. 영등제는 울진 지역에서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음력 2월에 행해지는데, 이를 영두모신다 또는 영등모신다, 영두한다라고도 부른다. 특히 해안가 마을에서 영등은 부녀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다. 많은 가정에서는 영등제를 모시는 행사에 부정이 타는 것을 걱정하여 외부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울진군 북면 주인리 석수동마을 앞을 흐르는 부구천을 건너 남쪽 산자락으로 나 있는 길에서 조금 들어간 독골에 있다. 영모정은 일명 화수정(花樹亭)이라고도 불리며, 숙종 때 찰방공(察訪公) 장천말(張天末)의 후손들이 화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 위치에서 왼쪽으로 약 150m 지점에...
-
김충을 시조로 하고 김계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양김씨는 고려 때 전서를 지낸 김유철을 시조로 하는 계열과 신라 때 귀화한 김충을 원조로 하는 계열이 있다. 울진 지역에 세거하는 영양김씨들은 김충을 원조로 하는 일파이다. 영양김씨는 임진왜란 때 죽변에 정착해 현감을 지낸 김계근이 입향조이다. 역시 현감을 지낸 김응호와 사촌...
-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영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양남씨의 시조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남민인데 본명은 김충이다. 영양남씨는 영양 이외에 의령·고성·남원 등의 본을 사용하고 있으나 모두 남민의 후손이다. 남민의 후손인 남진용의 세 아들 중 장남은 영양남씨, 차남은 의령남씨 그리고 막내는 고성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영양남씨는 다시...
-
엄임의를 시조로 하고 엄순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월엄씨의 시조는 당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하여 영월군에 봉해진 엄임의이다. 후손들은 여러 지파를 구성하고 있으나 모두 단일본이다. 엄순은 단종의 시신을 거두고 잠적한 엄홍도의 후손으로 1455년(단종 3)에 화를 피하여 울진에 입향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는 엄승이 갑자...
-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도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일정씨는 고려 인종 때의 문신인 정습명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고려 때 감무를 지낸 정극유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의 두 계열이 있다. 울진 지역의 영일정씨는 정습명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계가 대부분이다. 영일정씨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족친들이 유배되는 것을 보고 145...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학곡리에 있는 동굴. 청학산에 있는 동굴로서 울진 성류굴과 상통되어 있다는 전설이 있다. 영치굴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바깥멋질과 인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멀리 평해리가 있고 그 사이에 남대천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청학산에 위치한 자연 동굴로 아직까지 탐사된 바가 없다. 인근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동...
-
박제상을 시조로 하고 박치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해박씨의 시조는 신라 눌지왕 때 충신인 박제상이다. 영해박씨 입향조는 1460년(세조 5)에 평해군수 재임시 울진에 정착한 박치민이다. 형조참의를 지낸 박공달은 1504년(연산군 10)에 입향하였고, 박서현은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울진에 들어왔다. 그밖에 박태인은 평해로...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혼례 전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서간. 울진 지역에서는 혼담이 오가고 난 뒤 양가에서 혼사를 결정하면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청혼의 의사를 적은 예장지를 보내는데, 이를 초단이라 한다. 청혼의 의사를 담은 초단을 받으면 신부집에서는 청혼을 승낙하는 내용의 허혼서를 보냈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동나무가 많았으므로 옷실이 변하여 옷질 또는 오곡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북하리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비량리와 울진군 근북면 황대리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오곡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오곡리가 오곡1리와 오곡2리로 분리되었고, 1980년 12월 1일 평해면이 읍으...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1리·노음2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오노(五老)마을은 울진군 근남면 노음1리·노음2리의 옛 지명으로, 1450년경 영양남씨 가문의 상유(尙有)·순하(舜夏) 등 다섯 명의 노인이 촌장의 자격으로 마을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고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오산리에 있는 다리. 길이는 24m이며, 총 폭은 11.7m인데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10.2m이다. 차선은 왕복 2차선[편도 1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4.5m이다. 1960년도에 준공되었으며, 상부는 RCT공법에 하부는 G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3.5까지 견딜 수 있다. 그 후 다리가 너무 준공된 지...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천동(烏川洞)과 초산동(草山洞)에서 ‘오(烏)’자와 ‘산(山)’자를 따 ‘오산(烏山)’이 되었다. 1520년경에 김해김씨(金海金氏)인 김상희(金商喜)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는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 1916년 4월 1일 오천동과 초산동이 통합되어 오산리로 개편되었다. 오산리...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루널을 깐 2층 또는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누옥·층루[2층 또는 여러 층으로 지은 집]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은 대지 위에 높게 지은 집은 고루, 고당, 고각이라고 한다. 평해읍 객관 북쪽 언덕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6...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옥계서원을 기념하는 비. 옥계서원은 1740년(영조 16)에 읍내리 옥계동에 창건되어 「우암선생진상(尤庵先生眞像)」을 봉안하였다. 그 후 1777년(정조 1)에 초평(草坪)으로 이건하여 경본(京本)을 개모(改模)하여 영당(影堂)이라 하다가 1829년(순조 29)에 선생신판(先生神板)을 봉안하였고, 옥계서원(玉溪書院...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사이에 있는 다리. 길이는 30m이며, 총 폭은 8.5m에 실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유효 폭은 7m이다. 차선은 왕복 2차선[편도 1차선]이며, 지상으로부터 다리의 높이는 5m이다. 1965년도에 준공되었으며, 상부는 RCT 공법에 하부 T로 만들어졌다. 설계하중은 DB18까지 견딜 수 있다. 국도...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 북면 고목리 지장동 가치산 아래 불믿골[佛信谷]에 있는 절로 승려 대각(大覺) 서순석(徐順石)이 신도 남재칠(南載七) 외 여러 명과 더불어 1954년 5월 16일에 칠성각을 창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55년에 신도들이 법당과 객사 2동을 세웠다. 승려 대각이 입적하자 그의 아들 승윤(乘潤) 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1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온양1리 성황제는 온양1리의 자연부락인 온곤동(蘊崑洞)과 양정동(洋亭洞)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의이다. 울진읍 온양1리에는 온곤동과 양정동에 성황당이 각각 한 곳씩 있다. 그중 온...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외온동(外溫洞)과 상양정동(上洋亭洞)에서 ‘온(溫)’자와 ‘양(洋)’자를 따 ‘온양(溫洋)’이 되었다. 1500년 경에 안씨(安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곡해동(曲海洞)·외온동·상양정동이 통합되어 온양리로 개편되었다. 온양리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2리 군발마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성황당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온양리 군발 성황당은 온양2리 염전만마을의 마을회관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온양리 군발 성황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출입문은 제당 정면에 쌍여닫이문을 달았고, 문에는 흰색 바탕에 태극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서 조선시대 여귀(厲鬼)에게 제사를 지냈던 민속 유적. 여단(厲壇)은 전염병, 또는 각종 사고 때문에 비명 횡사한 떠돌이 귀신들인 여귀(厲鬼)에게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다. 여단의 좌우에 떠돌이 귀신들의 위패를 배열하고 제사를 지냈다. 봄에는 청명일(淸明日), 가을에는 7월 15일, 겨울에는 10월 초하루 세 번 행했으며, 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근처에 더운 샘이 있으므로 온천 또는 온정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남하리(南何里)가 통합되어 온정리로 개편, 울진군 온정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는 온정리가 온정1리와 온정2리로 분리되었다. 온정리의 북서쪽에 있는 백암산(白岩山)과 칠보산에서 발원하는...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온정면 온정리에서는 옛날부터 말복 이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가 마르기 때문에 백암산 흰 바위나 용소에서 마을 제사의 형태로 기우제를 지낸다. 마을 주변의 산수가 뛰어나기 때문에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생각했다. 근래에는 면에서 기우제를 주관하고 있는데, 면장이...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평해군 지역으로, 근서면(近西面)이라 하여 도계(陶溪)·금천(金川)·입암(笠岩)·노은(老隱)·대곡(大谷)·덕산(德山)·양곡(良谷)·구현(九峴) 등 1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6년 3월 1일 원서면의 신촌(新村)·본둔(本頓)·외선미(外仙味)·내선미(內仙味)·탑구(塔邱)·하암(荷岩)·상소태(上蘇台)·하소태(下蘇台)·온정(溫井)·남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르고 부지런하며 튼튼한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 아래 ‘민주인’, ‘지성인’, ‘창조인’, ‘능력인’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71년 4월 8일 9학급으로 개교하였으며, 1977년 3월 11일 12학급으로 증설되었다. 1994년 4월 4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1994년 8월 30일 체육관을 준공하...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예절과 규칙을 잘 지키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아 도전하는 어린이’, ‘이웃을 알고 협동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29년 2월 16일 온정공립심상소학교로 개교하였다. 1938년 온정공립소학교, 1...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고포마을에서 충견(忠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고포는 조그만 도랑을 경계로 남쪽 마을은 경상북도 울진군 고포이고,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고포로 두 마을을 함께 고포리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말엽 울진 고포마을에 살고 있던 최씨가 강원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草亭)...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935년 경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손씨(孫氏) 모후(母后)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왔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고, 둘째로 1361년 원(元)나라 말엽에 한산동(韓山童) 두목 이이조는 홍건적이 결빙기를 이용하여 남침하므로 고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토석 혼축 산성지.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하자 태자는 부왕에게 그 불가함을 역설했으나 불가항력으로 천년사직이 고려로 넘어갔다. 태자는 마의(麻衣)를 입고 모후(母后) 송씨(宋氏)와 함께 왕피리로 와 있다가 모후는 이곳에서 작고했으며,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후 고려 31대 공민왕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의 마을 이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935년경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왕자...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발리 일대에서 발원하여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서 동해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 왕피천은 영양군 일월산 동쪽 기슭의 수비리에서 발원하여 백암산과 금장산 사면의 1차수 하천들을 합류하여 심천리에 이르러 심천수와 합류한다. 그리고, 금강송면 왕피리에서 통고천을 합류하여 한천이 되고 다시 근남면 구산리에서 매화천에 합류된다. 노음리 장평평야의 저...
-
경상북도 울진군의 왕피천에서 서식하는 바다빙어과에 속하는 일년생 어류. 은어는 보통 봄과 여름에 걸쳐 체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가을이 되면 산란을 하기 위하여 강 하구로 내려가 머무는데, 호수나 대형 소·댐에서 일생을 보내는 육봉형 은어도 있다. 은어의 산란기는 음력으로 9월 말경이며, 여울이 지고 모래와 자갈이 깔린 곳을 번식 장소로 택한다. 총길이 68.5㎞의 왕피천...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래 전에 김해김씨(金海金氏)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사방의 산수(山水)가 아름다워 신선(神仙)이 놀던 자리라는 뜻의 선(仙)자와 물맛이 좋다는 미(味)자를 따서 마을 이름이 선미(仙味)가 되었다. 그리고 선미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선미·밭선미 또는 외선미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직산1리 저장리마을에 있는 바위와 연못의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용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지니는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마을에 있는 바위나 연못에 투영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장례식 때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 용예는 시체를 묻은 뒤에 혼백과 신주(神主)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를 말한다. 보통 영여(靈輿)라고도 하는데, 울진 지역에서는 ‘요’, 또는 ‘용’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상여가 묘지로 향할 때 맨 앞에 명정(銘旌)이 서고 다음에 공포(功布), 그리고 용예와 상여순으로 행렬이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폭포. 용추폭포의 동쪽 즉 불영계곡의 하류에는 중섬이 있고, 상류인 서쪽에는 불영사와 삼근이에 새터가 있다. 남쪽에는 천축산이 있고 북쪽, 즉 폭포 맞은편은 금강송면 하원리와 인접하고 있다. 향로봉과 구룡대의 반석 가운데로 흘러 떨어지는 약 5m 높이의 백운 같은 폭포이다. 산세 또한 태극과 같이 굽이쳐 흐르는...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바위. 한해(旱害)가 있을 때 용제(龍祭)를 올린 곳으로 굴 속에 황룡(黃龍)이 있었다고 전한다. 서쪽에는 태봉산, 북쪽에는 봉화산이 있다. 동해에 접한 해발 200m의 암석이 서쪽으로 갈라져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하부에 폭이 3m나 되는 구멍이 있고 또 하나의 구멍은 바다에 접하고 있다. 바닷가 바위 절벽 아래 구멍으로 용제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3리 나실(羅室)마을에 있는 용혈(龍穴)과 관련되어 전해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나곡3리 나실마을에 있는 용혈은 동해에 접한 암석이 해발 20m 서쪽으로 갈라져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암석의 하부에는 폭이 3m나 되는 구멍이 있는데, 그 깊이를...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울진장씨 장백손 유허비와 장양수 제단비. 용호정 유허비는 죽변면 후정리 매정마을에 있는 울진장씨 장백손 유허비와 장양수 제단비를 통칭하여 말한다. 장백손 유허비는 후손인 장헌규, 장인환, 장영철 등이 실기(實記)를 바탕으로 남영진이 지은 비문을 새겨 1967년 10월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화마을에 세웠다. 장양...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윤시형의 문집 목판. 윤시형(尹時衡)[1602~1663]은 본관이 파평이고, 자는 평중(平仲), 호는 우암(憂菴)이다. 효종 때 고금의 정치 득실을 열거하면서 위정자의 덕행, 공정한 인재 등용, 검소한 풍속 등을 진언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서 효종을 감탄시켰다. 우암선생문집...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암서원(雲巖書院)은 1826년(순조 26)에 기성면 노은동(魯隱洞)에 건립되어 김제(金濟), 손순효(孫舜孝)를 봉안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1964년에는 서원 유생들의 주창으로 구인리(邱仁里)에 이건하였다. 1995년 10월에 서원의 보수와 평삼문 개축이 이루어지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
1980년대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한 문학동호인 단체. 울림문학회는 1980년 말 독서토론회에서 출발하여 문학회 활동으로 확대해 나갔다. 독서토론회는 자연히 문학작품에 대한 격렬한 토론과 설전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분위기는 개인들의 지적 욕구의 축적은 물론, 문학에 대한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임의 이름도 없이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울림’이라는 문학회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울진경찰서는 울진군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역의 치안 유치 및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에 개서한 울진경찰서는 1950년 10월 10일 북한 패잔병의 기습 방화로 전소되었다. 이에 따라 1954년 12월 현 울진군청 앞 주차장 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응봉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울진읍을 남동류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 평해읍에도 남대천이 있어 울진 남대천이라 부른다. 남대천은 응봉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여 북면 하당리를 지난 후 울진읍으로 들어와 비래봉산 부근에서 동해로 유입한다. 남대천은 왕피천과 광천 다음으로 큰 하천이다. 남대천의 길이는 25㎞이며, 하곡은 감입곡류...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구산포(丘山浦)에서 울릉도로 가던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였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기성면 구산리 마을의 중심...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대풍헌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울릉도 수토(搜討)를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대풍헌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로서, 당시 실무 담당 관리들의 업무 관련 기록과 마을 수호를 다짐하는 동민들의 결의를 담은 기록들이 주요 내용이다. 신미 7월에 작성된 완문(完文)과 계미 10월에 작성된 공궤변통(供饋變通)의 수토절목(搜討節目) 각 1점 외에...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울진 매화리 윤광수 가옥은 뜰집 구조를 갖고 있다. 뜰집은 집 가운데에 안뜰을 두어서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중부 지방의 ㅁ자집에 비하여 평면상 몇 가지 구별되는 점이 있다. 즉, 몸채의 기본 형태는 ㅁ자 모양인데 전면 사랑채가 좌우로 약간 길어 앞쪽으로 면하고 있다. 큰부엌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불영사 느티나무의 높이는 32m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3m이다. 울진 불영사 느티나무는 노거수로서 1982년 10월 26일 경상북도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였다. 천축산 불영사 경내 철풍당 문 앞에 있다. 불영사 주위에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집단 분포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찰 건축물.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불영사의 대웅보전이다. 처음에는 구룡사라 하였으나, 부처의 그림자가 절 안 연못에 비쳤다 하여 불영사라 개명하였다. 1578년(선조 11)과 1629년(인조 7), 1665년(현종 6),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다고 전...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 사찰 건물. 불영사 응진전은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불영사는 원래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부처의 그림자가 절 안 연못에 비쳤다 하여 불영사라 바꾸었다고 한다. 1578년(선조 11)과 1629년(인조 7), 1665년(현종 6), 1716년(숙종 4...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석회 동굴. 일명 지하금강이라고 불리는 석회암 동굴로서 태고로부터 이어온 신비의 경관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1963년 5월 7일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성류굴을 부르는 이름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그 경치가 우아하고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는 뜻에서 선유굴(仙遊窟)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라의 화랑인 영랑·...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표지석. 봉산(封山)은 국가에서 일반인에게 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왕실의 관곽(棺槨) 제작에 사용하기 위한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이다. 황장봉산(黃腸封山) 제도는 1680년(숙종 6)에 시작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19세기 초에 황장...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수령 330년의 굴참나무.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8m, 서쪽으로 8m이다. 지상 3m에서 동쪽으로 첫 번째 가지가 나오고, 지상 6m에서 크게 두 가지로 넓게 갈라진다. 잎 빛깔은 짙은 녹색이고 나무갓의 잎양은 보통 이하다. 잎은 길이 13.9~18㎝, 너비 5.2~5.9㎝이다. 전설에 의하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사(精舍). 울진군 북면 신화리 새말마을에서 200m 가량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서쪽으로 난 좁은 길에서 조금 올라간 산비탈에 있다. 울진 신화리 구장정사는 우와(愚窩) 전구원(田九畹)과 만은(晩隱) 전선(田銑)을 모시는 서원이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이 철폐되자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향사...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수령 250년의 산돌배나무. 높이 25m, 가슴높이 둘레 4.35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6m, 서쪽으로 8m, 남쪽으로 9m, 북쪽으로 11m이다. 수령은 약 250년이다. 지상 1.8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진 후 동쪽 큰 가지는 다시 5개로 갈라지고, 서쪽 가지는 지상 4m에서 5개로 갈라진다. 잎 빛깔은 녹색으로 정상...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팽나무. 척산리 팽나무의 높이는 20m이며, 둘레는 5m이다. 300년 전 기성면 척산3리 음곡동마을에 입향한 황씨, 남씨 두 씨족이 터전을 잡으면서 마을에 성황당을 짓고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을 빌면서 제사를 지낸 나무이다. 울진 척산리 팽나무는 노거수로서 1982년 10월 26일 경상북도에서 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주거건축. 해월헌은 조선 광해군 때 길주목사를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1556~1622]의 종택과 별구(別構)인 대청이다. 1588년(선조 21)에 건립된 건물로 1847년(헌종 13)에 후손들이 현 종택 안으로 이축하였다. 해월헌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수령 300년의 소나무.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2m이다. 지상 8m에서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땅에 닿을 정도로 밑으로 처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우산 모양이다. 잎은 짙은 녹색이며, 나무갓의 잎양은 보통이다. 이 마을이 만들어지면서 심은 것으로 전하며, 마을의 상징 나무로 보호받고 있다. 1960년 이후 주변의 소나무는 모...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향나무.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4.2m, 뿌리 근처의 둘레 9m, 가지 밑의 높이 2.3m이다. 가지 길이는 동쪽으로 6.3m, 서쪽으로 3.6m, 남쪽으로 6.8m, 북쪽으로 9.2m이다. 노거수로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2호로 지정되었다. 전신 외과 수술을 받았지만 생육 상태는 양호하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수령 200년의 팽나무. 팽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달주나무, 매태나무, 평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20m, 지름 1m까지 자란다. 줄기가 곧게 서서 자라며, 가지가 넓게 퍼진다. 꽃은 5월에 수꽃이 취산꽃차례로 달리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단맛이 나는데 10월에 등황색으로 익는다. 인가 근처의 평...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향나무. 높이 11m, 가슴높이 둘레 1.25m이다. 줄기가 지상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1번 목은 땅의 표면 위로 올라와 눈에 보이는 지제부(地際部)에서 2개의 가지로 갈라진 뒤 지상 7m 높이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2번 목은 지상 5m 및 7m 높이에서 7개의 가지로 갈라진다. 잎은 짙은 녹색이고,...
-
1968년 11월 2일 북한 유격대가 울진군과 삼척시로 침투한 사건. 1968년 전후 미국은 베트민에 대한 폭격을 중지하는 동시에 파리평화협정을 진전시킴으로써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동서 대결의 분위기가 완화되어 가던 추세 속에서 북한은 중공과 소련의 군사 원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자 했다. 1968년 일어난 1·2...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성실하고 꿈을 지닌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 아래, ‘올바른 도덕성 교육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 ‘찾아서 스스로 행하는 사람’, ‘목표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51년 8월 30일 울진농업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남녀공학이었으며, 농...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6리의 자연마을인 고포마을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돌미역. 일년생 해초인 미역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가을에서 겨울 동안에 자라고 봄에서 초여름 동안에 유주자(游走子)[성포자]를 내어서 번식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있으나 양식은 동해 남부 연안과 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양식 기술의 향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조직된 공산주의 단체. 일제강점기인 1931년 7월 15일 울진 지역의 농민 조합 운동의 일환으로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조직이다. ‘사유 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촉진시킨다.’는 강령을 채택하고 ‘각 리에 야학을 실시하여 동지의 교양 훈련을 도모할 것, 비밀을 엄수할 것, 매월 1회 총회를 개최할 것’ 등을 행동 방침으로 하여 조직...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의 남대천 위에 있는 다리. 울진(蔚珍)은 신라의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이 산림이 울창하고 금은보화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울진교는 울진군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205m, 총 폭 11.7m, 높이 3.5m이다. 차도의 폭은 10.2m이고, 차선 수는 총 2차선이다. 경간(徑間)...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항 한마음광장에서 매년 3월에서 4월경에 울진대게를 홍보하는 향토 축제. 2000년 처음 개최되었던 울진대게축제는 청정의 깨끗한 울진의 이미지와 지역 최고의 특산품인 울진대게의 홍보를 위해 매년 개최되어 왔으며, 다채로운 관광객 체험과 다양한 먹거리로 지역민들 뿐 아니라 외래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화·지방화 시대를 대비하고 울진을 널...
-
경상북도 북동쪽 끝에 있는 군. 울진군의 북단(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지나는 북면 나곡리 갈령치 부근 37° 8′ 38″ N이며, 남단(南端)은 국도 7호선 도로가 영덕군 병곡면과 울진군 후포면을 지나는 후포면 금음리 지경(地境) 부근 36° 38′ 24″ N로서 남북간의 위도 차는 30′ 14″이다. 동단(東端)은 전술한 남단...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 지역 산림조합. 산림조합은 조선시대 향약의 일종인 송계가 근본 뿌리이며, 울진군 산림조합은 민주적 협동 조직을 통한 지속 가능한 산림 경영의 촉진과 산림 생산력 증진 및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과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단체이다. 울진군 산림조합은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울진군 선거관리위원회는 깨끗한 선거 문화 정착과 민주 정치 발전을 위한 각종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12월 26일 개정·공포된 제3공화국 헌법 제107조는 선거의 공정한 관리가 민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여 선거관리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수산조정위원회. 해양수산부에는 중앙조정위원회를 두고 시·도와 시·군·자치구에는 각각 시·도수산조정위원회 및 시·군·구 수산조정위원회를 두는 「수산업법」에 의거해 울진 지역에는 울진군 수산조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중앙수산조정위원회는 차관, 수협부회장, 시·도지사추천 관계전문가, 어업인 대표 등 2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여성 단체들의 협의체. 지역사회의 각 여성 단체의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간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여 국가 발전 사업과 지역사회 발전 사업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2년 6월 13일 설립된 이래 역대 회장에는 초대 김영순, 제2대에서 제4대까지 조남주, 제5대 임방지, 제6대 지영자, 제7대 조남주이고, 제8대 회장에는 김금조가...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 있는 경상북도 체육회 산하 울진 지부.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공포된 이후 울진군에서 군민의 체육진흥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울진군 각 지역의 체육 활동 관리, 체육 시설 건립 지원, 민간 체육 활성화를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울진군 체육회는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경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하여왔다. 1...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체육행사. 울진군민체육대회는 1960년대 후반부터 울진군 체육회에서 군민 화합과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주최하는 체육행사이다. 군내에 특별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매년 10월경 울진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데, 근래에는 2002년과 2003년 태풍 루사와 매미로 인해 2년간 중단되기도 하였다. 2004년에 다시 열리면서 관광객 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기초 자치단체 의회. 2016년 현재 운영되고 있는 울진군의회는 1990년 12월 31일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근거하여 구성된 지방의회이다. 군의원은 군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울진군의회는 매년 두 차례의 정례회와 임시회를 개최한다. 울진군의회는 주민 대표로서, 자치 입법·의결 기관·행정 감시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군 관할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진군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 1. 행정구역 1896년 「칙령 제36호」에 의거하여 강원도 울진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평해군을 울진군에 통합하여 8개면이 되었다. 1953년에 평해면 후포리와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탑. 경상북도 울진군의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1일에 시작되었다.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이래 울분에 차 국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울진군민 중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4월에 매화면 만흥학교(晩興學校) 학생과 청년들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개성에 맞게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새로움을 찾고 탐구하는 어린이’, ‘정직한 마음으로 서로 돕는 어린이’, ‘미래를 향해 꿈을 키워 가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69년 3월 3일 6학급으로 개교하였다. 이듬해인 1970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 있는 농공단지. 1983년에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도시와 농어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울진농공단지는 1991년 9월 13일에 농공단지로 지정 되어 같은 해 12월 30일에 착공하여 19...
-
경상북도 울진군의 연근해에서 서식하는 특산 대게.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 맛볼 수 있는 울진대게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바다 게와는 달리 속살이 쫄깃쫄깃하고 담백해서 일찍부터 왕실에 진상한 특산물이기도 하다. 울진 지역 사람들은 울진항에서 23㎞ 정도 떨어진 왕돌초에 서식하는 대게를 으뜸으로 친다. 울진대게를 구입할 때는 무엇보다 배 부분을 손가락으로 지그...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돌미역. 미역은 식이섬유와 칼륨, 칼슘, 요오드 등이 풍부하여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산후조리와 변비·비만 예방, 철분·칼슘 보충에 탁월하여 일찍부터 애용되어 왔다. 고려시대부터 이미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보일 만큼 오래전부터 먹어 온 해초이다. 민간에서는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하여 산모가 출산한 후에 바로 미역국을 먹이는데 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지역사회 봉사단체. 세계 인류 상호 간에 이해심을 높이며 건전한 국가 정신과 시민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또한 지역사회의 시민, 문화, 사회 및 도덕 분야의 복지 향상, 그리고 정당과 종파를 초월하여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의 숨은 봉사자를 격려하는 데 목적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지역 봉사 단체. 봉사의 이상이 모든 가치 있는 사업 활동의 기초가 되도록 고취하고 육성하며, 특히 다음 사항을 힘써 행하는데 설립의 목적이 있다. 첫째, 봉사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하여 교우의 범위를 넓힌다. 둘째, 사업과 전문 직업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모든 유익한 직업의 진가를 인식하며 회원 각자는 자기 직업을 통하여 사회에 봉...
-
울진문학회에서 1993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문학 동인지. 울진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공식적으로 한 단체는 1960년대 후반의 망양문학회와 1980년대의 울림문학회가 있다. 망양문학회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아동들의 글짓기 지도와 아동 문학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으나 1960년대 말 해체되었다. 울림문학회는 초기에 독서 모임에서 시작되어 문학 동호인의 성격으로 나아갔...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는 문학단체. 울진문학회는 문단에 공식 진출한 몇몇 문인들인 황무굉[시조]·황능곤[시조]·김진문[아동문학·시]·남효선[시]·남태식[시]과 문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발기하여 창립한 문학단체이다. 1992년 8월 20일경 황무굉·이규상·김진문·남효선·전우찬·최동윤·남태식·이영환이 발기하여 울진문학회를 창립하였다. 그 해 8월 30일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울진 지역의 고유문화 보존과 전승 및 새로운 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57년 임대득(林大得) 등이 현 울진문화원의 전신인 문화원을 설립하면서 사무실을 군청 공보실에 두고 미국과 우리나라 정부 시책의 영상 홍보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경영난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1976년 8월 30일 전영경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는 반핵 청년단체. 핵과 반생명적인 모든 구조 일체를 추방하여 건강한 삶의 틀을 만드는 것을 단체의 설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1988년 9월 10일 울진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지 50일 만에 고장을 일으켜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울진군 일대에 핵 문제에 관한 우려가 커져갔다. 이 때 김혜정, 남상민 등 울진 지역 청년들의 주도 하에...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와 소태리 백암온천관광특구에서 해마다 열리는 축제. 1979년 12월 31일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소태리 일원 3,433,000㎡가 백암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백암온천은 주왕산권의 중앙부, 울진군의 남단 924번 지도상에 입지하며, 울진에서 47㎞, 영양에서 30㎞, 평해읍에서 12㎞ 지점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천 관광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군 관할 소방 행정 기관. 화재를 예방·경계·진압함은 물론 화재를 포함한 재난과 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구조와 구급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재산, 신체를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 및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95년 5월 23일 포항소방서 관할 울진소방서 및 울진소방파...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시조 창작과 시조 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학단체. 1962년 9월 15일에 울진에서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서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민족문학인 시조를 중심으로 한 울진시우회를 조직하였다. 울진시우회는 시율부·시조부·궁술부·경노부·위기부·고전예술부 등 6부를 두어 시조의 기량 발전과 연마, 경로사상 앙양 등을 목적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조선 선조 때부터 개설된 재래시장으로, 당시에는 초장, 중장, 종장 순으로 3일간 열렸다고 전한다. 초장은 울진읍 성내에서 열리고 중장은 성 밑 마을에서, 종장은 지금의 호월리 무월동과 도청동 사이에 있는 ‘종장이들’에서 열렸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2, 7일을 기점으로 3일간, 매일 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격주로 발행되고 있는 지역 종합 신문. 1991년 2월 11일 공보처에 발행인 및 편집인 전병식이 정기간행물 등록을 신청하여 4월 8일 공보처로부터 정기간행물 등록증을 교부받았다. 전병식과 김일진이 공동 투자하여 자본금을 구성하고 5월 1일 울진읍 읍내리 48번지에 사무실을 개소하였다. 6월 22일 도경호를 창간준비위원장으로 하는 62인 발기인대회를...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생산되는 두족류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연체동물. 울진오징어는 맑은 동해에서 잡는 즉시 배 위에서 건조하여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타우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울진의 특산물로, 『동의보감』에는 오징어의 살이 기(氣)를 보호한다고 적고 있다. 울진오징어의 살에는 우리의 주식인 쌀 등 곡류에 부족한 라이신과 트레오닌, 트립토판 같...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있는 울진군 관할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 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
-
1995년 11월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대한 원자력 관련 시설 설치 및 투자를 반대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 1995년 11월 울진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민간단체, 울진군청, 울진군의회가 공동으로 결의하여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이에 한국원자력건설 측에서 울진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을 위한 환경 영향 평가서에 대한 공청회...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울진현(蔚珍縣)[울진군]의 소재지로서, 군의 아래쪽은 하군면(下郡面)[일명 하현내면]이라 하여 옥계(玉溪)·홍시(紅矢)·월변(月邊)·상토(上吐)·하토(下吐)·지로(旨老)·공세(貢稅)·현내(縣內) 등 12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상군면(上郡面)[일명 상현내면]의 구만(九萬)·청고(靑皐)·성저(城底)·가원(可原)·온곤(溫崑)·...
-
경상북도 울진군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노래. 「울진의 노래」는 울진군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리는 노래로, 1957년에 윤병한이 노랫말을 만들고 김송렬이 곡을 붙인 노래이다. 현재 울진군청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울진의 노래」는 이재인이 편곡한 것이다. 원래 6/8박자, 바장조로, ‘민요풍’으로 부르는 노래였으나 몇 년 전 이재인이 편곡하면서 4/4박자로 바...
-
임우를 시조로 하고 울진을 본관으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울진임씨는 도시조격인 임팔급의 후손들에서 분적하여 여러 관향을 사용하는 임씨 가운데 하나이다. 당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였던 임팔급은 동래한 여덟 학사 가운데 한 명이다. 임팔급의 후손들은 평택·옥구·개령·예천·임하·안동·길안·전주·보성·양양·순창·부안·선산·밀양·장흥·은진·진주·경주·울진...
-
장말익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울진장씨는 40여 본의 장씨 가운데 하나로서 중국에서 귀화한 덕수장씨를 제외하면 안동장씨를 대종으로 하여 분파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울진장씨는 도시조인 태사 장정필의 5세손으로 고려 정종 때 호부상서를 지냈고, 문하시중평장사 상주국으로 울진부원군에 봉해진 장말익이다. 장말익의 호는 매계이며, 시호는 문성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울진을 관향으로 하는 장씨 종친들의 모임. 울진장씨 시조의 위선 사업과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문경시, 경상북도 예천군, 강원도 삼척시 등지에 거주하는 후손들의 친목 도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울진장씨 대종회는 시조의 제사, 선영 관리, 종답 관리, 대동회지 편찬, 대동보 편찬 등의 사업을 수행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장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조선 중기 장백손(張伯孫)이 호방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무관의 관직을 거쳐 오는 동안 받은 교지 31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백손이 1490년(성종 21) 선략장군행충무위우도부사직에 임명되었을 때 받은 고신(告身)으로부터 1523년(중종 18) 마지막 관직인 어모장군행오위도총부경력에 임명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었던 사립 초등교육기관. 불멸의 배달론을 되살려 민족의 자주 독립 의식 고취를 목표로 하였다. 1922년 4월 울진청년회 간부들과 감리교 예수교회가 협력하여 울진제동학교의 전신인 울진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925년 울진강습소는 울진제동학교로 승격되었다. 1943년 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으며, 폐교 당시의 재학생 700여 명은 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 아래, ‘올바른 도덕성 교육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 ‘찾아서 스스로 행하는 사람’, ‘목표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46년 9월 5일 울진공립초급중학교로 3년제 설립 인가를 받아 1946년 10월 23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단체. 1919년 8월 일제의 문화정치의 허상을 알리고, 지역의 청년들이 봉건적 전통을 극복하고 근대성을 수용하게 하고, 억압받는 계층의 신분 해방을 위해 결성되었다. 1919년 8월에 창립되었다. 1926년 1월 2일 혁신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제에서 집행위원 체제로 전환하였고, 임원진 개편과 새 강령 제정을 의결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지역 봉사 단체. 지도 역량 배양, 지역사회 개발, 세계 회원과의 우정이라는 삼대 원칙 아래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여 JC 본연의 이념을 같이 하는 청년들의 웅지와 정열을 한데 모아 자주, 자립, 자발, 실천력으로 복지사회 건설과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데 총력을 다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울진청년회의소는 1975년 5월 3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정보사회에 적응하는 어린이, 예절과 규칙을 잘 지키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12년 5월 25일 사립학교인 명동학교가 승격되어 2학급 편성으로 개교했다. 1938년 울진공립심상소학교로, 1941년 울진공립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2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왕피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수군 주둔지. 울진포진은 본래 울진읍 현내동 고현포에 토성을 쌓아 설치하였는데, 1512년(중종 7)에 울진현에서 남쪽으로 11리 되는 근남면 수산리 수산역 동편 비래봉에 석축을 쌓아 이축하였다. 울진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을 주둔시켰는데, 수군만호는 종4품을 배치하였다가 1574년(선조 7)에 정...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옥계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울진향교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옥계동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울진향교는 1484년(성종 15)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월변동에 건립된 후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하였다. 한국전쟁 때 대성전 및 서재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울진향교의 대성전. 울진향교는 조선 1484년(성종 15) 읍내리 월변동에 건립된 후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하였다. 6·25전쟁 때 대성전 및 서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전소된 후 1979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198...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분사. 1926년 11월 백정들의 신분 해방이라는 계급 투쟁과 민족해방이라는 항일 투쟁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형평사가 설립된 이후 여러 지사와 분사가가 만들어졌는데, 울진 지역에서도 청년회와 형평사 동맹원의 지원으로 1926년 11월에 울진청년회관에서 울진형평사가 결성되었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지금의 울진군 북면 두천리는 옛날에 한양으로 가는 길인 십이령 길목이어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마을을 지나야 했다. 이 고을 원...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피해 대책과 보상 요구를 위해 조직된 단체.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많은 위험과 불안요소가 발생하여 직·간접적으로 주민들의 생계에 위협을 주고 있어 인접해 있는 주민들의 권리를 보장받고, 각종 사고로부터 주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989년 1월 원자력발전소의 인근 지역인 북면에서 결성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
1995년부터 1996년까지 경상북도 울진 지역민들이 전개한 울진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반대 운동. 1995년 11월 울진 5·6호기 건설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때는 특히 지방자치의 전면적 실시로 민선군수가 선임되었던 시기로, 이 운동은 군, 군의회, 울진원자력발전소건설및핵폐기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 등 민관의 연합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울진원전관련범군민대책위원회가 결...
-
1907년에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벌어진 원주진위대와 일본군 간의 전투. 1907년 일본이 조선 군대의 해산령을 내리자, 그 해 8월 이에 불복한 원주진위대는 민긍호(閔肯鎬) 특무의 인솔하에 일본군경과 항전하였다. 선봉대는 제천에서의 일본 병사와 교전, 단양에서의 일병과의 격전, 다시 영동의 의병과 합세하기 위해 9월 울진으로 오는 도중 봉화 각화사(覺華寺)에서 일본군과 충돌...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원효를 종조(宗祖)로 하는 불교 종파. 원효종(元曉宗)은 1963년 7월 경담(慶潭)이 경주에서 원효를 종조(宗祖)로 삼고 창시한 불교 종단이다. 석가모니의 근본 교리와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을 체득함으로써 생활 불교를 체현하여 정토(淨土)를 건설하는 것을 실천 목표로 하고 있다.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기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월계서원은 울진장씨의 관시조인 매계(梅溪) 장말익(張末翼)과 그의 8세손인 판서 장양수(張良守) 양현(兩賢)을 배향하고 있다. 1856년(철종 7)에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 향내 사림들의 장계(狀啓)에 의하여 월계사(月溪祠)가 창건되었고, 1862년(철종 13)에 예조의 관문승원예에 의하여 월계서원이라 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1953년에 창건되었는데 온정면 고모산성(姑母山城) 석굴 속에 약 500년 간 방치되어온 석불이 현몽하였기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월궁사를 건립하여 석불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월궁사는 월송초등학교 북서편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신도 수는 약 200여...
-
박언의를 시조로 하고 박치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월성박씨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아들인 월성대군 박언의이며, 중시조는 고려 때 대능직을 지낸 박인육이다. 후손 중에 박홍미는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창원부사를 지내고, 경주부윤·삼척부사·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과 양양부사를 지냈다. 박제인은 조선 선조 때 왕사자부를 지냈으며, 박응...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이 있으므로 월송리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북하리면(北下里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3월 1일 화구리(花邱里)·달효리(達孝里)·정산리(井山里)·오곡리(梧谷里)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월송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월송1리·월송2리·월송3리로 분리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비석군. 비석은 모두 6기로 선정비(善政碑)가 3기이고, 불망비(不忘碑)가 3기이다. 조선 후기에 평해군수를 역임하면서 이 지역의 주민을 위해 업적을 남긴 관리들을 기리고자 평해군 주민과 유림, 향리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비석은 월송리에 있었으나 2010년 이전하여 현재는 봉평리 봉평 신라비 전시관 비석거리에 배열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평해황씨 제단. 평해황씨의 시조인 황락은 중국 후한 때의 학사로 교지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현재의 평해읍 월송리에 도착한 뒤에 신라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묘를 찾지 못한 후손들이 황락이 처음 도착한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제사를 올렸다. 평해읍 월송리 평해중학교 북쪽 월송정 입구 옆...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병영진지. 월송포진은 문헌 사료에 "평해군의 동(북) 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는데, 전선(戰船)은 없고 바다쪽의 왜구를 막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호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관직(...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월송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착한 마음으로 바른생활을 실천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꿈을 키우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자연을 사랑하고 친환경을 실천하는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4년 3월 25일 월송국민학교로 개교하였고, 1949년 6월 25일 제1회 졸업식을 가졌다. 2015년 2월 13일 제66회 졸업...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황보천 하구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조선 초기에는 각 도별로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의해 기선군(騎船軍: 수군)을 통할하였다. 영진체제(營鎭體制)가 갖춰지면서 각 도의 요새수어처(要塞守禦處)별로 군사 조직이 편성됨에 따라 고려 이래로 두어온 만호(萬戶)에게 외침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458년(세조 4)에 영진체제가 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글방 터. 당(堂)은 주거를 위한 집 또는 방과 대청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관아 및 사원 등의 큰 집을 말하기도 한다. 월호당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며, 월호 장지연(張止淵)이 학문을 가르치고 수양하던 곳이었다. 월호당이 있었다는 장소만 전해질 뿐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울진군 곳곳에...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울진은 지리적으로 본래 강원도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현재는 평해와 합병되어 있으나, 본래는 조선시대까지 별개의 군이었다.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평해와 울진이 합쳐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지역을 현재의 울진으로 함께 묶어...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학령전 어린이를 보육하여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기관. 「교육법」에 의해 설치, 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기관으로 재정 형태에 따라 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으로 구분된다. 공립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 유치원은 개인, 법인, 종교 단체 등 설립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유치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여러 가지 유희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하여 유희요로도 불리는 유희가는 노동요나 의식요와 함께 기능요에 속한다. 놀이를 질서 있게 진행시키며 놀이 자체를 흥겹게 하거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부르는 유희가는 놀이의 양상에 따라서 종류를 나누기도 한다. 유희요의 가사는 놀이의 성격에 따라 놀이와 직결되는 것과 여기에 부연한...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육자배기」는 산 속의 나무와 식물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연을 만나듯 화자 또한 정든 님과 만나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노래이다. 사설로 보아 전라도 지방에서 불리는 「육자배기」와는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 1991년 후포면 금음리에 사는 김말순[여, 64]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영팔(永八).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병훈(尹炳勳)이다. 1940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칠(君七). 윤응수(尹應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상혁(尹商赫)이다. 한문을 수학하다가 일제의 침략이 거세어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1933년 8월 귀국하여 울진에서 전영경(田永璟), 진기열(陣基烈), 최학소(崔學韶)를 비롯한 여러 동지를 모아 군자금을 마련하고 조선독립공작당 조직을 주도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황림. 증조할아버지는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이고, 할아버지는 삼족당(三足堂) 윤여용(尹如龍)이다. 정조 때 전국에 묻혀 있는 선비를 천거하라는 어명에 따라 울진현령 이병정(李秉鼎)이 윤사진의 행장과 저서 등을 강원감사 윤사국(尹師國)에게 올렸고, 윤사국은 이 행장과 저서 등을 정리하여 승정원에 올렸다...
-
1988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 건립된 황림 윤사진의 신도비. 윤사진(尹思進)의 호는 황림(篁林)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의 증손이며,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의 손자이다. 정조 때 『정관치설(井觀痴設)』·『통서연의(通書衍義)』·『잡저(雜著)』 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와 윤사진의 행적을 울진현령과 강원감사가 정조에게 올렸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평중(平仲), 호는 우암(憂菴). 증조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윤여호(尹汝好)이고, 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윤희성(尹希聖)이다. 아버지는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몽열(尹夢說)이고, 어머니는 삼척김씨(三陟金氏)로 김흥시(金興時)의 딸이다.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 조임(趙任)의 딸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서원 터에 있는 우암 윤시형의 유허비. 우암 윤시형의 유허비 터인 몽천서원은 윤시형과 윤사진(尹思進)을 배향하기 위하여 1693년(숙종 19)에 창건되었고, 1797년(정조 21)에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되면서 서원 터에는 삼조어비각만 남아 있었는데, 후손과 유림이 몽천당을 재건하여 유덕을 기리게 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살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규(金學奎), 남편은 파평윤씨로 윤용기(尹龍璣)이다. 17세에 시집 와서 시부모를 지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비둘기 고기를 먹고 싶다 하였다. 김씨가 비둘기 고기를 구하러 나갔다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돌아오는데 숲에서 하늘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시조는 벽상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태사(壁上三韓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 윤신달(尹莘達)이고, 분파조는 금자광록대부야성군(金紫光綠大夫野城君) 윤혁(尹赫)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궁촌[현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용평리]을 떠나 울진군 기성면 삼산리 산곡(山谷)마을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은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시조는 벽상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태사(壁上三韓翊贊功臣三重大匡太師) 윤신달(尹莘達)이고, 평안도관찰사와 이조판서를 역임한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의 8세손이다. 1528년(중종 2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동해안을 순시하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가 발생하여 윤씨 문...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석현(尹錫賢)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음악과 관련된 제반 활동. 근대 울진의 음악은 1910년대 보통학교에서 시행된 창가 교육과 교회의 찬송가 보급에서 출발한다. 악단에 의한 연주회는 1931년 첼로와 바이올린으로 구성된 총 4명의 소규모 악단이 울진제동학교에서 공연한 것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영재(李永在) 외 8인으로 구성된 악단이 1931년 11월 울진공회당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울진 읍내 남쪽이 되므로 읍남리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토동(上吐洞)·하토동(下吐洞)·지로동(旨老洞)·공세동(貢稅洞)과 상군면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읍남리로 개편되었다. 읍남리는 읍남1리, 읍남2리, 읍남3리, 읍남4리 네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공석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별신굿. 읍남리 공석 별신제는 울진읍 읍남리 공석[읍남3리] 주민들의 안과태평과 바다에서의 안전,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3년에 한 번씩 어촌계와 마을에서 주관하는 마을굿이다. 마을에서는 연신, 또는 별신이라고도 부른다. 자연 마을인 공석은 1750년(영조 26)경에 홍천용씨...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남산에 있는 조선시대 진화시설 터. 읍남리 남산 봉우리에는 옛부터 이중의 토병(土甁)을 묻어 두고서 넓적한 뚜껑돌로 덮어 놓은 곳이 있다. 이 봉우리를 흔히 진화봉(鎭火峯)이라 한다. 진화봉은 울진 근교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전한다. 읍남리 진화봉이 설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울진군청이 있으므로 읍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구만동(九萬洞)·청고동(靑皐洞)·성저동(城底洞)·가원동(可原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성리로 개편되었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옥계동, 홍시동, 월변동과 선제동 일부 지역이 통합...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신당.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속한 주요 자연마을은 옥숙동·옥계동·홍시동이다. 옥계동은 읍내리 중앙으로 흐르는 남대천 물이 구슬처럼 맑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란 설과, 옥계서원(玉溪書院)이 있었기에 부르는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읍내리 홍시동은 옛날 이 마을에 정려(旌閭)의 홍살문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2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읍내리 홍시동 동제는 읍내리의 홍시동(紅矢洞)[읍내2리]에 있는 성황사에서 매년 정월 15일 자시(子時)에 주민들이 지내는 성황 제사이다. 홍시동은 옛날 이 마을에 정려(旌閭)의 홍살문이 세워졌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울진교(蔚珍橋) 일대 지역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상당리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사이에 있는 산. 울진 쪽에서 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응봉산으로 불리고 있다. 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조씨(趙氏)가 매 사냥을 하다가 매를 잃어 버렸는데 그 매를 찾아 응봉(鷹峰)이라고 하였고, 그곳에 좋은 묘 자리가 있어서 부모의 묘를 써 집안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산맥이 남서쪽...
-
남군보를 시조로 하고 남명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의령남씨는 당나라에서 귀화한 김충을 시조로 하는 남씨의 한 계열이다. 김충은 귀화하여 남씨를 사성받아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의 후손 중에서 남홍보·남군보·남광보 삼형제가 각각 영양·의령·고성에 관적하여 각 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따라서 의령남씨의 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공을 세워...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의례 때 입었던 전통 예복. 울진군에서 출생의례·혼례·상례·제례 등의 의례와 관련하여 남녀노소가 입었던 전통 예복으로 출생의례복·혼례복·수의·상례복·제례복 등이 있다. 출생의례와 관련된 복식에는 신생아가 초칠일·이칠일·삼칠일·백일·돌날에 입는 옷이 있다. 출생 직후에는 주로 무명천으로 포대기를 장만하는데, 이때 조상 중에서 장수하였거나 이름...
-
1876년에서 1910년 사이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운동.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화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사회경제적 이해 관계, 운동의 방법에 따라 의병항쟁(義兵抗爭)과 계몽운동(啓蒙運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병항쟁은 반일(反日)적인 입장에 있던 모든 세력이 모여 계급 연합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복식 생활. 기성복과 맞춤복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일상복이나 의례복은 길쌈을 통해 장만한 옷감으로 가정에서 직접 짓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여성들은 길쌈과 바느질을 필수적으로 습득하였으며, 옷감을 장만하고 옷을 관리하였다. 전통적으로 울진 지역에서 옷을 짓기 위해 사용했던 옷감은 삼베·명주·무명·광목·옥양목·모시 등이었다. 삼베와 무명은 밭...
-
조선 후기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이가동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 이가동의 자는 후립(厚立)이며, 경주인으로 이제현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대인(李大仁)으로 통덕랑에 증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빙어와 설순을 어렵게 구하여 약으로 사용하였고, 한겨울에 산딸기를 구하여 부모에게 올려 효험을 보았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
-
고려 후기 울진 지역을 주제로 시와 기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초명은 운백(芸伯).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비서랑(秘書郞) 이효진(李孝進)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창세(李昌世)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이자성(李自成)이고, 어머니는 흥례이씨로 이춘년(李椿年)의 딸이다. 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성순(聖順). 전서공(典書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용(李錫龍)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성지(性之), 호는 송곡(松谷). 아버지는 선산부사(善山府使) 이윤수(李允粹)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군수 권조(權組)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봉화금씨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살았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급제하고, 1506년(중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동몽...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죽기로 작정하고 식음을 전폐하였으나 훗날에 큰일을 도모할 생각을 하고 3일 만에 다시 밥상을 대하였다. 1920년 물가의 하락을 목적으로 “외국품은 물론 일제의 생산품도 구매하지 말자”는 내용의 일본 물품 배척 포고문을 온정리(溫井里) 일대에 게시하였다. 이 사건으로 온정주재소에 구금되었다가 울진...
-
1977년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건립된 독립운동가 이목익·이화익 형제를 기리는 비. 온정면 소태리 하암동(河岩洞) 태생인 이목익(李穆翊)은 품성이 강직하여 비리에 굴하지 않으며 편안하고 검소한 성품을 가졌다. 특히 외래품을 적극 배제하였으며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통탄하여 음식을 전폐하고 충(忠)으로 죽기를 작정하였으나, 아들과 조카들이 음식을 권하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이보혁의 유애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14-23에 있으며, 나곡리에서 갈령재로 올라가는 도로변의 밭 중앙에 이보혁 휼민유애비가 자리하고 있다. 국도 7호선을 타고 가다가 나곡교차로에서 나곡4리로 우회전하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 1.2㎞를 가면 고포마을에 못 미쳐 이보혁 휼민유애비가...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尙衣院) 관리였던 이일휴(李日休)이고, 할아버지는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이진승(李晋昇)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이천주(李天柱)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사재감(司宰監)에서 일한 김규원(金珪原)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문림랑(文林郞) 황비(黃庇)의 딸이다. 아들은 충정공(...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에 있는 연못[沼]. 1780년경 탑평마을에 사는 지동지(池冬至)라는 사람이 아침 식사 전에 소(沼) 맞은편에서 건너다 보니 인기척이 있었다. 소리치며 가보았더니 암반 위에 적색 옷을 입은 청년 한 사람이 있기에 “웬 사람이냐?”라고 물은즉 청년이 대답하기를 고향이 전라도이고, ‘이심’을 잡으러 온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심을 보았느...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2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이울’은 한글 또는 발음이 같은 동네로, 울진군 매화면 신흥2리의 자연마을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이대인(李大仁)이라는 현령이 이곳으로 피란하여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자신의 성과 울진의 ‘울’자를 따서...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자 자기의 다리를 베어 피를 내고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 수개월을 연명케 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빌면서 자기의 몸을 대신할 것을 원하였으며, 자기의 열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넣어 수개월을 더 살게 하였다. 부모가 별세한 후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며 참신 한 켤레로 상(喪)을...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우계(羽溪). 이명(異名)은 경학(敬學), 자는 동하(東廈). 백인당(百忍堂) 이장달(李章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태진(李泰鎭)이다. 1906년(대한제국 고종 10)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이 영덕과 울진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군령장(軍令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1) 2...
-
조선 전기 입향한 전주이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전주. 시조는 신라시대 사공을 지낸 증성공(甑城公) 이한(李翰)이고, 분파조는 양소공(襄昭公) 이화(李和)이다. 조선 태조(太祖)의 둘째 형이며, 부인은 정경부인 강릉최씨이다. 세조는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후 단종을 따르는 충신들을 죽이거나 유배시켰다. 이에 왕실의 종친인 이제문(李制文)은 자신의 일문 16명이 도끼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돌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배나뭇들 또는 이평·이목평이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경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와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심수리(深水里)·비지리(飛只里)가 통합되어 이평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이평리 북쪽에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장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홍(景鴻). 의안대군파(義安大君派) 이제문(李制文)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주성(李周聖)이다. 섬세한 수공(手工)으로 우수한 붓을 만들어 울진은 물론 영동 지방과 영남 지방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많은 학도와 선비들이 명성을 듣고 이호익이 만든 붓을 찾으며, 귀중품으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호익이 만든 붓은 삼...
-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귀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인동장씨의 시조인 장금용은 고려 초 인동현의 옥산에 복거한 상장군이다. 인동장씨는 고려 중기 이후에 분파되기 시작하여 25개 파로 나뉘었는데, 이 중에서 종파·남산파·진가파·진평파·황상파의 향내 5파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인동장씨 울진파는 향내 5파를 제외한 나머...
-
경상북도 울진군 지표상에서 전개되는 인간활동으로 나타나는 인문 사상(事象)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안, 서쪽은 봉화군, 남쪽은 영덕군·영양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상지는 평해읍 월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울진군은 총 면적 988.9㎢의 85%가 산지로, 평지가 적고 태백산맥...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서 인바위와 옥녀무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바위와 옥녀무덤」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평해 원님이 한양으로 상경하면서 직인을 숨긴 바위를 인(印)바위라 하고, 죽은 딸의 무덤을 옥녀무덤이라고 명명했다는 유래담이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평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객관 대청 터. 각(閣)은 석축이나 단상에 높게 세운 집, 또는 명사 밑에 붙어서 격식이 높은 집을 뜻하는 말이다. 인빈각은 옛 평해군 아객관(衙客館) 동대청(東大廳)이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덕재(德齋) 신장(辛藏), 이달충(李達衷),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시에 이름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소재한 불영사에서 양성법사와 숙종이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현왕후와 양성법사 이야기」는 조선시대 숙종의 비 인현왕후와 울진 불영사(佛影寺)가 관련된 설화이다. 인현왕후가 폐출된 뒤 감교당에서 자결하려고 할 때, 꿈에 나타난 양성법사(養性法師)의 현몽 예언에 감사하여 숙종이 불영사 주변 10리 안의 땅을 시주하였다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1901년 장주신이 세운 정자.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 왜고개[瓦峴] 못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우정 아래로 남대천 맑은 물이 흐르고, 서쪽은 단풍산, 북쪽은 고두박대, 동쪽은 들판 위쪽으로 산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1901년(고종 38) 의관(議官) 장주신(張柱臣)이 세웠으며, 풍광이 좋아 예로부터...
-
1910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1910년 8월 22일 이른바 「한국병합(韓國倂合)에 관한 조약(條約)」을 강제 조인한 일제는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공포함으로써 식민 통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9월 30일자로 조선총독부 관제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관제 등 통치 기구에 관한 일련의 관제와 동시에 칙령 제357호로 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를 공포하면서 지방...
-
1911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일제가 강요한 상복[蒙服] 입기를 거부하여 일어난 저항운동. 일제는 1910년 국권 강탈 후 무단 통치를 펼쳐 한국인을 탄압하고 일본의 의식과 풍습을 강요하였다. 1911년 7월 일본의 메이지[明治] 왕이 죽자 울진의 헌병 분대장 구야감(久也勘)이 몽복을 강요하므로 남대연(南大秊), 남진영(南軫永) 등 유생들이 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저항운동을 벌...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와 월송리에서 일출봉과 묘에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출봉과 황장군의 묘」는 평해읍 오곡리와 월송리 경계에 서 있는 일출봉과 묘(墓)에 관한 설화이다. 전반부는 산에 묘를 쓰면 명현장수가 배출된다는 풍수지리담이고, 후반부는 황장군(黃將軍)의 묘를 파헤치려 하면 일진광풍이 불어 이를 막는다는 신이담이다. 1998년에 울진문...
-
조선 중기 예천임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예천. 시조는 충절공(忠節公) 임팔급(林八及)이고, 중조는 고려의 문헌공(文憲公) 임계미(林季美)이다. 또한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서하공(西河公) 임춘(林椿)과 형조판서를 지낸 예천군(醴泉君) 임계중(林季仲)의 후손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인 직장공(直長公) 정재(鄭載)가 자손이 없었는데, 효성이 지극한 임긍(林兢)은 부모의 명에 따라 외할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산림을 유지·조성하고 임목을 보육하며 이것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업. 임업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다. 초기에는 천연림(天然林)을 벌채하여 생산된 목재를 이용하는 것에 국한된 원시적인 약탈 행위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중기에는 산림을 인공적으로 조성 및 보육하여 임산물의 영속적인 수확을 꾀하는 육성적인 토지 생산 활동을 의미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한양(閑良), 자는 양선(養善), 보명(譜名)은 순호(淳浩).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후손이며, 임수현(林秀鉉)의 아들이다. 1838년 (헌종 4) 8월 15일 길곡(吉谷)에서 출생하여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문사가 높았다. 1886년(고종 23) 3월에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통정대부를 증직받았다...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명승지. 동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하여 임해대(臨海臺)라 하였다고 한다. 임해대 터로 추정되는 비래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경치가 아름답다. 동쪽으로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북쪽으로는 울진읍 시가지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넓은 들과 왕피천이 접하고 있다.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비래봉 아래에 있었다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에서 입석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입석동(立石洞)은 신림리 입구에 위치한 마을인데, 돌이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는 뜻으로 불리는 이름이다. 도로 옆에 있던 바위는 태풍 ‘사라호’때 매몰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도로가 산으로 돌아 개설되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지표의 자연 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구명하는 지리학의 한 분야. 강원도에서 뻗어 내린 태백산맥의 여맥(餘脈)이 해안선과 평행하게 달리면서, 태백산맥 서쪽 지역과 독립된 한 지형구를 이루고 있는 울진군은 태백산맥과 태백산맥 동록(東麓)의 해안저지로 대별될 수 있다. 태백산맥은 지형적 특성에 의해 다시 중앙산맥, 해안산맥으로 구분된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1리에서 선조의 묘 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고진사댁」은 선조의 묘 자리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장고 형국으로 형과 막내는 과거에 합격했지만 둘째는 낙방했다는 풍수지리담이다. 선조의 묘를 명당에 모셨으면 자손이 모두 잘 되어야 하는데, 명당의 형상에 따라 같은 형제라도 운명적으로 잘 되거나 또는 손해를 본다고 한다. 2...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장구 타령」은 화자가 한스런 자신의 신세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서사적 성격을 띠고 있는 유희요이다. 1991년 매화면 매화2리에 사는 윤병모[남, 75]가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연구단이 채록하여 1991년에 출간한 『울진의 문화재』에 수록하였다. 독창 형식의 노래로, 4음보격이 우세한 노래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방율리 감율마을에 있는 장군바위에 얽혀 전해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방률리 감율마을의 골짜기에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자태가 웅장하고 바위 위에는 말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옛날에 매년 여름철이 되면 이 마을에 사는 소·돼지 등의 가축들이 이...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송암(松菴) 장연(張演)이고, 어머니는 원주이씨이다. 맏아들은 순천부사(順天府使) 장의신(張儀臣)이고, 둘째 아들은 장응복(張應福)이다. 동복현감(同福縣監)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나라에서 여러 번 군읍(郡邑)을 맡겼으나 사양하고, 10여 년 동안 벽촌에 은거하면서 교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계몽하고...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시조인 장말익(張末翼)의 19대손이다. 부인은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인조 때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으로 삼척포첨사(三陟浦僉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황제를 암살하고자 심양(瀋陽)에 잠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같이 갔던 동지인 역사(力士) 승려 개남(介南...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태어난 장대룡(張大龍)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장대룡 장군은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서 출생하였다. 장대룡 장군은 조선시대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판관 및 삼척척사와 경흥방어사를 지냈다. 1636...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사건(士建), 호는 고산(古山). 할아버지는 청파(靑坡) 장만시(張萬始)이고, 아버지는 장응채(張應彩)이다. 장동유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과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일찍이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는 효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묘를 지켰다. 현몽(現夢)으로 샘을 파...
-
고려 전기 울진부원군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호는 매계(梅溪). 시조인 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태사(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太師) 장정필(張貞弼)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계(松溪) 장지현(張之賢)이다. 정종(靖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호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렀으며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졌다. 울진의...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월계서원에 있는 장말익의 비. 장말익(張末翼) 신도비는 장양수의 신도비와 함께 월계서원에 세워져 있다. 장말익(張末翼)의 호는 매계(梅溪)이며, 시호는 문성(文成), 본관은 울진이다. 1036년(정종 2)에 울진읍 고성리에 입향한 것으로 전한다. 장말익은 고려 정종(靖宗) 때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호부상서문하시중평장사...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찰방 장천말(張天末)의 손이다. 장백손은 1471년(성종 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487년(성종 18)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금위에 제수되었다. 1490년(성종 21)에 갑산진병마만호가 되었는데, 그 때 북쪽 오랑캐가 침입해 들어오자 조정에서 영안감사로 파견할 것을 의논하였다. 1491년(성종 22) 여진족...
-
1967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건립된 장백손을 기념하는 유허비. 장백손(張伯孫)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마을에서 태어나 1471년(성종 2)에 사마시에 합격 하였고, 1487년(성종 1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장백손은 갑산진 병마사 밑에서 만호 벼슬을 하면서 여진족 우적합이 조산보를 점령하였다가 도원수 허종에게 쫓겨 달아나자 허종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부.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장병주(張秉柱)이고,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로 곽종목(郭鍾穆)이다. 18세에 곽종목에게 출가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길쌈을 하며 가사를 돌보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주권을 잃자 독립운동을 하고자 하는 남편 곽종목의 뜻을 따라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구산자(溝山子)로 이주하...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우진읍성의 옛터로 전해오는 신라시대 토축 산성. 신라 말 국력이 쇠잔해졌을 때 왜적이 죽변항의 방비가 소홀함을 보고 죽변항을 거쳐 장산성으로 내침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고려 때 읍의 치소를 울진읍 고현성(古縣城)으로 옮기고 이곳 장산성을 수축하지 못하였다. 죽변면 후정1리 서편으로 장평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일...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성보(聖甫). 아버지는 흡곡훈도(歙谷訓導) 장응철(張應哲)이다. 장서린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릴 때에 부친상을 당해 손색없이 상례를 다하여 3년 동안 죽을 먹었으며 홀어머니를 지극히 보살폈다. 외출하면 밤중이라도 꼭 집에 돌아왔고, 때로는 호랑이가 데려다 주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석중(錫仲). 전리판서(典理判書) 장양수(張良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장영달(張永達)이다. 1938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준향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1리에서 장수바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흔적 전설이란 암석면에 사람 또는 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장수바위 이야기」는 매화면 매화1리의 장수바위에서 샘물을 마시기 위해 어떤 장수가 무릎을 꿇었다는 유래를 담고 있는 암석과 관련된 흔적 전설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본신리와 오기리 산지에서 발원하여 금강송면 왕피리에서 왕피천에 합류하는 하천. 영양군 수비면과 경계하면서 울진군으로 흐르는 장수포천은 왕피천 상류와 장수포천이 형성시킨 수하계곡 일대에는 자연환경이 좋아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수하계곡은 태백산맥 남쪽의 일월산·울련산·금장산 등에 둘러싸인 깊은 계곡으로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를 이루며 약...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울진부원군 장말익(張末翼)의 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영동정판문하성사(令同正判門下省事) 장영의(張令宜)이고,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냈다. 아버지는 동정(同正) 장한련(張漢連)이며, 어머니는 울진임씨로 임유무(林惟茂)의 딸이다. 1205년(희종 1)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전리판서(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월계서원에 있는 장양수의 신도비.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장양수의 묘소를 전쟁 가운데 잃어버리자 후손들이 울진군 북쪽 매정동(梅亭洞)에 단(壇)을 모아 제사를 지내오다, 장양수의 행적을 보존하고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84년 3월 월계서원 내에 신도비를 세웠다. 화강암으로 제작하였으며 귀부와 이수, 비신을 갖추고 있다. 둘레에는 철제...
-
1205년 진사시 병과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내린 급제 패지. 고려 후기 울진장씨 울진 입향조인 장말익(張末翼)의 후손인 장양수가 진사과 병과에 급제하면서 하사받은 홍패이다. 희종 원년에 실시한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한 장양수에게 공원(貢院)의 판정에 의하여 교지(敎旨)로 병과 급제를 사급(賜給)하기로 하고, 첩(牒)이 이르자 당시 수상(首相) 등 5명의 재상이 그 교지를 받들어 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장언성은 참봉 장언겸(張彦謙)의 아우이다. 1594년(선조 28)에 제용감참봉을 지냈고 1597년(선조 31)에 승사랑군자감봉사를 지냈다. 풍치가 호협(豪夾)하고 학문이 정숙하였다. 임만휴(任萬休)는 만사(挽詞)에서 양주학(楊州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관계없이 청사에 이름이 전해질 수 있음을 머리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 있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유생. 본관은 울진(蔚珍). 호는 남곡(南谷). 강계부사 장백손(張伯孫)의 후손이다. 장영전은 동생인 사류(四柳) 장영수(張永銖)와 우애가 돈독하였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 엄하였다. 주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고 형제가 함께 문학을 논하고 시를 지으니, 향중에서는 다시 깨어날 집이라 하였다. 장만초(張晩樵)·남봉산(南鳳山)·윤벽(尹碧)·전당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인경(仁卿). 전리판서공(典理判書公) 장양수(張良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장석한(張錫漢)이다. 1940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명거(溟擧). 울진장씨 시조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의 19세손이며, 아버지는 물재(勿齋) 장현(張絢)이다. 장위한은 1657년(효종 8) 7월 20일 구만동(九萬洞)에서 태어났으며, 학문과 덕행이 출중하여 명망이 높았다. 벼슬은 절충장군행용양위에 이르렀고, 1728년(영조 4) 통정대부를 증직받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에 있는 명승지. 장유대는 임진왜란 때 북면 고목리 출신의 김언륜(金彦倫) 장군이 왜적을 무찔렀던 곳이다. 이에 연유해서 장수가 놀던 곳이라는 뜻의 ‘장유대(將遊臺)’로 불리게 되었다. 동쪽으로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여러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장유대는 울진원자력발전소 후문 부근에 있고 근처에 김언륜 장군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예빈승(禮賓承) 장거석(張擧碩)이다. 장인행은 1316년(충숙왕 3)에 직장동정을 지냈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고려 왕실 회복을 위해 힘쓰다가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생활로 평생을 마쳤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지은 시가 있는데 “대륙에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종교인 및 교육자. 본관은 울진. 자는 택현(宅顯). 장한명(張漢鳴)의 후손으로 극담(極膽) 장표(張杓)의 아들이다. 장인환(張仁煥)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해 학문이 높았다. 강릉교회 전도사로 동해안 일대에 20여 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고, 사유지를 제공해 정명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야학을 설립해 문맹 퇴치에 진력하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장재산(長在山)[515.6m]의 북편 골짜기에 있어 장재사(長在寺)라는 사명(寺名)이 전해지는 절터이다. 현재 장재사지에는 석탑과 석불이 남아있으며, 주인리 사지라고도 불린다. 장재사지가 있는 주인3리는 동쪽은 응봉산 지맥 아래 대수호가 있고 주인2리·중리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절골·절터·갈매...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현감(縣監) 장귀석(張貴碩)의 후손이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항상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모친상을 당하여 아침저녁으로 성묘를 하였고, 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담해(痰咳)로 고생을 할 때에는 눈 속을 헤쳐 다람쥐 구멍에서 밤을 구하여 이것을 약으로 써서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후...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군칠(君七). 장말익(張末翼)의 24세손으로 아버지는 장사묵이다. 1882년 일본 어선 5척이 죽변 앞바다에 들어와 불법으로 해삼을 잡자 울진유진소에서 명령을 받은 중군장 최재린이 포병 50명을 이끌고 죽변곶 죽림에서 잠복하였다. 어선 3척이 죽변항에 상륙하려 하자 포병들이 사격을 가하여 일본인 31명을 사살하였는...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인필(仁必).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사식(張師軾)이다. 1905년 12월 7일 신돌석(申乭石) 막하 중군장(中軍將) 김용욱(金容旭)을 비롯한 의병 8명, 청송 출신의 이하현(李夏玄)과 함께 의거하였다. 1906년 6월 이강연(李康秊) 의병장의 지령을 받은 김형규(金炯奎)가 울진으로...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달성(達成). 아버지는 서덕태(徐德泰)이며, 남편은 장진혁(張振赫)이다. 남편이 5년간 병석에 누워있을 때, 오목주 화사판을 얻어 술에 담가서 계속 복용토록 하여 병이 나았다. 또 남편이 뇌종병이 들어 사경에 이르자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는데, 이에 감응하여 종기가 완치되었다고 한다. 1643년(인조 21)에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도동에 있는 장천말의 유허비. 고려의 멸망 과정에서 1392년(태조 1) 조선이 건국되면서 공양왕은 원주로 유폐당했다가 다시 삼척궁촌에 감금되었다. 이에 장천영, 장천길, 장천말 등은 울진 토반[임씨, 최씨, 전씨]들과 합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무력으로 이성계를 꺾고, 공양왕의 둘째 왕자 완석을 옹립하여 왕씨 복위와 고려 재건을 도모...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족보명은 장헌태(張憲兌)이다. 아버지는 일선공(一仙公) 장식(張植)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교외생으로 학업에 힘쓰다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행곡실행농민조합을 조직하여 농촌 운동을 벌이는 한편 야학과 독서회의 책임자로 계몽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1934년 11월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으로 울진경찰서에 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2리에서 잿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잿골과 우암 송선생 이야기」에서 잿골은 북면 부구2리 마을의 옛 이름이다. 잿골은 흥부역(興富驛)이 있던 교통의 중심지로서 사람과 문물의 왕래가 잦은 요지였으며, 부구2리의 흥부장은 ‘어물, 소금시장’으로 유명했다. 흥부장은 해산물과 소금의 유통을 담당한 특수상인 집단인 이른바 ‘바지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 있는 저승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과 봉화군이 경계하는 협곡 중간쯤에 매우 험한 골짜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의 이름이 저승골이다. 기원을 알 수 없으나, 저승골을 마주하는 강 건너 언덕배기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3리에서 시목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저울대 형국 마을 이야기」는 북면 고목3리에 위치한 시목동(柿木洞)에 사는 두 씨족 세거민들의 형국에 따른 지명과 관련된 풍수 전설이자 지명유래담이다. 마을의 모습이 저울대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양쪽 마을의 인구, 가구, 재력 등이 천평칭으로 재어본 듯이 똑같다는 것이다. 천평칭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고개. 고대국가 형성기에 삼척에 있던 실직국의 안일왕(安逸王)이 보부천에 주둔하였는데, 당시 신라 호위국의 후진 소부대가 주둔한 곳이라 하여 ‘저근터’라 하였다. 신라는 실직국의 침공을 받아 분전하였으나 패주한 혈전의 전적지라 전해오고 있는 곳이다. 또 땅에 물기가 많다 하여 ‘저진터재’라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맥의 지맥...
-
1933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일어난 농민 운동. 1930년대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등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하면서 한국의 농민조합운동을 방해하였다. 이에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1920년대와는 달리 농민조합운동을 혁명적·비합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여 기존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일제 지주에 대한 농민 폭동 등을 전개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울진에서도 청소년 교육을 통...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적송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적송 이야기」는 임유후(任有後)[1601~1673]와 금강송면 소광리의 육종림에서 자생하는 적송과 관련된 식물유래담이다. 부모의 상에는 품질 좋은 적송 관목(棺木)을 소광(召光)에서 구입해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 적송은 황장목(黃腸木),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불린다. 적송은 일반 소...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전천동(前川洞)과 원곡동(元谷洞)에서 ‘전(前)’자와 ‘곡(谷)’자를 따 ‘전곡(前谷)’이 되었다. 1656년(효종 7)에 좌승지(左承旨) 남양인(南陽人) 방덕영(房德永)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전천동·원곡동·승부동(承富洞)이 통합되...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전내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신당.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내에 있는 자연마을은 원곡·전내·갈마지이다. 전곡리는 금강송면 소재지인 삼근리에서 24㎞ 떨어져 있으며, 소광리 외광비마을에서 북쪽으로 3㎞가량 올라가면 갈마고개가 있다. 이 고개에서 광산을 지나 재를 넘으면 전곡리에 이른다. 재를 넘어 3㎞가량 가면 전내가 나오는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장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정칙(正則), 호는 우와(愚窩). 아버지는 취죽헌(翠竹軒) 전유추(田有秋)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장여길(張汝吉)의 딸이다. 부인은 신안주씨로 주개신(朱介臣)의 딸이다. 형의 아들 전덕철(田德哲)을 후사로 삼았으나 일찍 죽었다. 아홉 살 때 중양절 모임에서 지은 「중양(重陽)」이라는 시에서 “나그네는 청천월에 취...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산업 중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판매하는 산업. 전력산업은 발전(發電)을 통하여 전기를 생산·송전·판매하는 사업으로 현재 많은 국가의 산업 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기간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전기는 저장이 어려워 수요·공급의 조절이 쉽지 않은 상품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력산업은 관리·경영면에서 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족보명은 전도수이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병학(田炳學)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만수도 동지들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성삼(聖三), 호는 고당(高堂).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상유(田尙濡)이다. 1905년 12월 7일 울진에서 김용욱(金容旭), 장진수(張鎭洙) 등 8명과 청송 출신의 이하현(李夏玄)과 함께 의거하였다. 1906년 6월 이강년 의병장의 지령을 받은 김형규(金炯奎)가 울진으로 와서 진용을 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운석(云石).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학산(鶴山) 전윤(田潤)이고, 아버지는 전인상(田絪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자 6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울진군에서도 만세 운동에 동참하여 매화리와 부구리 장날에 만세...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받들었으며, 그의 형제 또한 뜻과 몸을 같이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면 항상 변의 맛을 보고 병세를 판단하여 약을 썼고, 병이 위급하면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수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여막을 치고 묘를 지켰으며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찬옥(瓚玉).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무풍(田武豊)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병찬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우군(雨君).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오상(田五相)이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전병항은 4월 13일 흥부 장날을 기하여 남병표(南炳豹)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많은 군중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서 7개월 간...
-
조선 중기 울진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묵암(黙菴) 전필위(田弼違)이다. 전선은 연산군 때 이이첨(李爾瞻)을 능지처참시킬 것을 주장하는 소를 대표로 올렸다. 과거에도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벽지에서 물욕 없이 학문을 즐기며 한가로이 지냈다. 우암 송시열의 인정을 받았는데, 송시열이 유배 가는 길에 특별히 “늦은 봄 귀양 가는 나그네 역소에 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된 조선 말기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 전씨형제 효자비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화구마을의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이다. 전술모의 자(字)는 문칙(文則)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서(沙西) 전식(全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전종복(全宗復)이다. 전술모는 경전과 역사책에 능하고 글을 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범서(範瑞). 전범수(田範秀)라고도 한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치주(田穉周)이다. 1933년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구류되었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전이석·주필대의 효행을 기리는 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후망마을 마을회관 옆 몽양사(蒙養祠) 뒤편에 있는 전이석(田爾錫)과 주필대(朱必大)의 효성을 기리는 유허비(遺墟碑)이다. 전이석은 담양인(潭陽人)으로 호는 송암(松菴)이며 자(字)는 주경(周卿)이다.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의 후예로 통정대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이명(異名)은 전기학(田奇鶴)이다. 울진군의 경찰주재소 및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면서 1920년 10월 중순부터 1921년 2월 초순까지 경상북도 영덕(盈德)을 중심으로 동지를 물색하였다. 그 후 박성운(朴聖雲), 김덕문(金德文), 이백이(李伯伊) 등과 함께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마련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회정(晦亭). 할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전희경(田希慶)이고, 할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서성윤(徐成允)의 딸이며,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문원공(文元公) 전경은(田耕隱)이다. 전자수는 고려 말에 첨의평리겸진현관대제학(僉議評理兼進賢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
2003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건립된 담양전씨 울진 입향조 전자수의 제단비. 전자수는 담양전씨 울진 입향조이다. 그러나 전자수와 관련한 묘와 행적 등을 많이 잃어버렸다. 이에 후손 전달심이 울진군 평해읍 남쪽 율현 지역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단비가 부식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워지자 김녕한(金寗漢)은 2003년 6월 새로운...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제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을 지낸 이한이며, 모두 122개 지파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이씨의 지파들은 크게 태조 이성계의 고조인 이안사 이전 계열과 이안사에서 이태조까지의 계열 그리고 이태조 이후의 계열로 구분될 수 있다. 울진 지역에는 전주이씨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입향하여 세거하...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치극(致極), 호는 신묵재(愼黙齋).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晋)의 후손이다. 전택오는 7세에 아버지 상(喪)한 이래로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처 김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려 효험을 보았다고 하며, 어머니 등창에 종기를 돋아났을 때에는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하였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묵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 전효선(田孝先)이다. 평소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울진 동쪽을 순시하다가 그의 집에 들러 효행에 감복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관동 지역에 부임하여 효행과 청렴을 듣고 지금 이곳에 오니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네. 여막에 살고 인분...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결혼식을 끝낸 신부가 신행 때 가져가는 반짇고리. 혼례 때 신부가 예물로 가지고 가는 혼수용품의 하나였던 접토방구리는 지역에 따라 바느질고리라고도 불렀다. 예부터 여성들의 생활용품으로 쓰였기 때문에 장식도 뛰어나 문갑 위에 올려 두는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주로 종이나 고리버들, 대고리 등을 이용하여 다각형 또는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안에는 칸막...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윤사진의 저술 『정관치설』목판. 『정관치설(井觀癡說)』의 저자 윤사진(尹思進)[1713~1792]은 자는 퇴보(退甫), 호는 황림(篁林)이며,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의 증손자이다. 어릴 때 종형 윤사적(尹思迪)과 함께 학문에 힘썼으나 과거를 권유하는 부친의 명을 거절하고 『주역(周易)』 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언결(彦潔). 아버지는 정창국(鄭昌國)이다. 정담은 1575년(선조 8)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니탕개(尼湯介)의 변(變)에 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 김제군수(金堤郡守) 재직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권율(權慄)의 지휘 하에 나주판관(羅州判官) 이복남(李福男), 해남현감(海南...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정림사가 있었으므로 정림동 또는 정촌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장사동(長沙洞)·박금동(拍琴洞)과 원북면의 당가동(唐街洞)·두정동(斗井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정림리로 개편되었다. 정림리는 정림1리, 정림2리, 정림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3리 산두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정림리 산두 성황목은 마을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동 성황목은 마을 인근 솔숲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산두에서는 소나무 두 그루를 성황목으로 모신다. 성황목 주변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두르고 성황목 앞에는 제단을 마련하였다. 제단 위에...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명사(正明寺)가 있었으므로 정명이라 하였다. 혹은 1379년에 태사당(太師堂) 황서(黃瑞)가 마을을 개척할 때 산세(山勢)가 바르고, 앞 내[川]가 맑게 흐르므로 정명(正明)이라 하였다고 한다. 1379년 경에 태사당 황서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기성면·근남면의 경계 500m 고지에서 발원하여 이평리에서 동류하며, 정명리의 현종산에서 발원한 지류를 합류하여 동해로 흐르는 하천. 고려 원종 때 황서(黃瑞)가 이곳의 산세가 바르고 앞내가 맑게 흐른다고 하여 정명천이라 이름 붙였다. 정명천의 두 개 지류는 정명리 앞에서 합류하여 기성면 척산리와 기성리를 거쳐 동해로 흘러든다...
-
조선 중기 이산해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유배되어 있을 때 정명리에 사는 황응청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조카이며 이지번(李之蕃)의 아들로 대북파의 영수로 활약한 수상이다. 1592년(선조 25)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아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받고 기성면 황보리에 5년간 정배(定...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정선아리랑」은 경상북도 울진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5백여 유형이나 보고될 만큼 지역별로 각양이며 주제 또한 다양한 민요이다. 울진군 매화면 매화2리에서 채록된 「정선아리랑」은 다소 미완의 형식으로 ‘연정’을 형상화한 노래이다. 1991년 매화면 매화2리에 사는 윤병모[남, 75]가 부른 것을...
-
전섭을 시조로 하고 전귀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정선전씨는 정선을 대종으로 모두 17개의 본이 있으나 동원분파이고, 정선파·천안파·용궁파로 크게 분파되었다. 도시조는 고구려 주몽의 셋째아들 온조가 남하하여 백제를 창건할 당시 따랐던 신하 중의 하나인 전섭이다. 정선전씨의 중시조는 전섭의 8세손으로 신라 덕흥왕 때 전법판서로 정선군에 봉...
-
조선 말기 울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인물. 정수는 1896년 평해군(平海郡)[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온정면·기성면·후포면 일대에 있던 옛고을 이름]에서 안엽(安曄), 황경희(黃景禧), 장필한(張弼漢)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후에 무고로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네 사람 모두 총살을 당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정어리 가공 공장. 정어리는 청어목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로 큰 무리를 지어 다닌다. 지방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어리 기름은 각종 공업용 원료로 이용되었고, 나머지는 사료와 비료로 이용되었다. 학명은 ‘Sardinops melanostictus’이다. 정어리 떼는 두만강에서 흘러 내려오는 붉은 흙탕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이 물길을 따라...
-
조선 전기 야성정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야성(野城). 시조는 야성군(野城君) 충간공(忠簡公) 정가후(鄭可侯)이며, 분파조는 사성공(司成公)이다. 아버지는 봉열대부행현감 정득화(鄭得和)이고 어머니는 영인(令人)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현재 자손들은 온정면, 영덕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정자함은 1439년(세종 21)에 등제(登第)하여 홍문관교수, 강릉판관, 성균관사성을...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유지·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평생의례의 하나로서 지내는 제사 의례. 『주자가례』에는 제사의 종류를 사시제·초조제·선조제·이제·기제·묘제로 언급하고 있다. 또 제사와 비슷한 의례로 사당례와 절사인 차례가 있다. 울진 지역에서는 기제·시제·차례·사당례 등을 행하고 있다. 시제는 시사라고도 하며 음력 시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역에서 지내는 묘제를 가리킨다. 묘...
-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태윤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제주고씨는 탐라국 개국설화에 삼성혈 혹은 모흥혈에서 용출한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있다. 시조의 46세손인 고말로가 고려에 입조함으로써 본토에 진출하게 된 제주고씨들은 청주·개성·연안·안동·장흥을 비롯한 15개 본관으로 분적되었으며, 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1738년(영조 14)에...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옥녀(玉女)가 금은고금(金銀鼓琴)을 잡고 노래 부르는 형태라 하여 마을 이름을 조금(操琴)이라 하였다. 약 400년 전에 창녕조씨(昌寧曺氏)라는 선비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조금리와 하조금리가 통합되어 조금리로 개편, 울진군 온정면에 편입되...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녀.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아버지는 조명룡(曺命龍)이고 어머니는 영해박씨(寧海朴氏)이다. 조명룡의 딸 조낭자는 결혼 전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위중해지자 몰래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어머니에게 먹이고 쾌유를 기도하여 10시간 후에 어머니가 회복되었다. 1750년(영조 26) 조정에서 정려(旌閭...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평해군과 울진군은 함께 강원도에 속했으나,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존재하다가 1914년 군과 면을 통폐합할 때 합쳐져 울진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현재의 울진군이라는 하나의 행정단위체제가 되었다. 평해군은 통합되기 전 울진군의 남쪽에 위치한 하나의 군이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울진(현)보다...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따르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울진 지역의 종교적 특징은 구한말 개항과 함께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가 유입되면서 기존의 불교와 유교 등과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적 양상을 띤다. 이는 한국의 일반적인 종교 확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울진 역시 대외적인 환경에 따라 불교와 유교가 변화하고 개신교가 확장되며, 이 과정에서...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우(汝愚)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주세홍(朱世弘)이고, 어머니는 곽씨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나라에 충성스러워 문정왕후(文定王后), 인순왕후(仁順王后), 명종(明宗), 의인왕후(懿仁王后), 선조(宣祖)가 죽었을 때 각각 3년 동안 상을 치르며 죽만 먹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단을 쌓고 7년 동안 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정보(正甫), 호는 치암(致庵). 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역임한 주경안(朱景顔)이다. 주명기는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항상 옆에서 보살폈다. 노병(老病)에는 붕어죽이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붕어죽을 해 주었는데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놓아 붕어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자운(紫雲). 교수(敎授) 주세창(朱世昌)의 후손이다. 1910년 한일 병합이 되자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가담하여 국경에서 일본 헌병을 사살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뒤에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권총을 감추고 서울로 돌아와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에서 8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남재학(南載鶴)의 딸로 19세에 신안주씨(新安朱氏) 주병즙(朱秉楫)과 혼인하였다. 25세 때 남씨의 남편이 고혈압으로 반신불구가 되자, 궁핍한 살림에 1남 1녀의 가족을 돌보며 5년 동안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였다.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열부의 도를 다한 남씨를 칭송하였다. 이에 1939년 3월 남씨는 울진군으...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살림집의 형태와 기능 및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울진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지역적으로는 강원도의 영동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울진 지역의 신석기 유적으로는 1983년 3월 후포면 후포리 등대산에서 발견·조사된 후포리(厚浦里) 선사유적이 있다. 이는 산꼭대기의 자연적인 구덩이를 이용한...
-
조선 중기 신안주씨 울진 입향조. 주선림은 본래 경상북도 경주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주내근(朱乃謹)의 묘를 오류촌(五柳村) 진덕왕릉(眞德王陵)의 밑에 몰래 두는 바람에 후환을 우려하여 오지인 경상북도 울진군 구만촌(九萬村)으로 피해 오는 것이 계기가 되어 입향조가 되었다. 본관은 신안(新安). 분파조(分派祖)는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이며, 할아버지는 정...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소곡1리 소야마을에서 태어난 장사 주성세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 일반적인 아기장수 이야기는 실패담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이야기도 주성세라는 인물이 태어날 때부터 힘이 장사여서 집안에서는 화를 당할까 걱정하여 아이가 힘을 쓸 수 없도록 방법을 취하였다. 그러나 주성세의 경우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힘만 쓸 수 없도록 한 점은 다른 아기...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안(新案). 자는 중용(重用).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주득신(朱得臣)이고, 할아버지는 주소(朱熽)이며, 아버지는 국서(國瑞) 주환익(朱奐翼)이다. 주연은 1691년(숙종 127년)에 구만동에서 출생하였다. 1774년(영조 50)에 등용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냈...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달천(達天). 주의신(朱毅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병룡(朱秉龍)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주영석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주희(朱喜)의 32대손이며, 충효당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주병온(朱秉溫)이고, 아버지는 주진해(朱鎭楷)이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였다. 1933년 비밀결사인 울진공작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34년 2월 10일 일본 경찰에 주유만을 비롯한 106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주동자 14명 중 한 사람으로...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신안(新案). 호는 죽재(竹齋), 삼의정(三宜亭). 분파조(分派祖)는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이며, 증조부는 정일현감(廷日縣監)을 역임한 주내근(朱乃謹)이며, 아버지는 전적감찰(典籍監察)을 역임한 주선림(朱善林)이다. 주의는 1491년(성종 22)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06년(중종 원년)에 문과(...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줄릿골이라 불렀다가 면전동, 중리와, 석수동, 흥부동, 소야동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주인리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면전동, 중리와, 석수동, 흥부동, 소야동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주인리라 하고 울진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주인리는 주인1리, 주인2리[중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울진군 북면 주인리에 있는 장재사지 중앙에 위치한다. 주인리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에 몸돌[옥신석]과 지붕돌[옥개석]이 1점씩 남은 것을 다시 쌓은 것으로, 탑의 재료는 화강암이고 높이는 1.48m이다. 기단부(基壇部)는 지대석(地臺石) 위에 단층으로 있으나 4매로 짜인 지대석은 교란된 상태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리 장재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상. 주인리 석불좌상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이다. 얼굴 부분은 마멸이 아주 심하여 원상을 알 수 없으나, 왼쪽 눈은 은행처럼 큰 윤곽을 나타내며, 코도 굵게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 귀와 입은 형태를 알 수가 없다. 왼쪽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내려져 있다...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지평(持平)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이다. 주종검은 외출을 하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에게 이상이 있으면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한번은 삼척에 유숙할 당시 밤에 문득 깨어 보니 눈물로 이불이 다 젖어 있어 이상하게 여겨 집으로 와 보니 어머니가 설리병(泄痢病)을 앓고 있어 약을 써서 병을 낳게 하였다. 또 한번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전재남(田在南)의 딸로 신안주씨(新安朱氏) 주진구(朱鎭九)와 혼인하였다. 전씨는 어릴 때부터 어버이를 정성으로 공경하였으며, 시가에서는 시부모와 남편을 공손히 섬겼다. 그러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애통해 하며 상례를 정성껏 치르고 음식을 전폐하였으며, 매일 새벽 남편의 묘소에서 곡(哭)을 하였다. 전씨의 시어머니가 음식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천로(天老), 호는 백운(白雲). 교수공파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주병휘(朱秉輝)이다. 주창렬(朱昌烈), 주창근(朱昌根) 두 아들을 두었으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청소년 시절 한학과 지리·역사·수학 등 신학문을 독학하고, 『독립신문』·『황성신문』·『매일신문』 등을 읽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1896년경 독립협회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초등학교 앞에 있는 애국지사 주진수를 기리는 기념비. 주진수(朱鎭洙)는 진수(鎭壽)라고도 하는데, 호는 백운(白雲)으로 신안(新安) 사람이다. 부친은 주병휘(朱秉徽)로, 1878년 7월 11일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동에서 태어났다. 주진수는 1907년 10월 매화만흥학교를 설립하여 신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이우당(二友堂) 주개신(朱介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병례(朱秉禮)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주진욱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명승지. 주천대는 원래 왕피천 너머의 구릉과 이어져 있던 돌산이 강물에 잘렸다고 하여 ‘수천대(水穿臺)’라 불렸다고 한다. 1628년(인조 6)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가 이곳에 우거하면서 풍류적인 의미의 주천대(酒泉臺)라 고쳐 부른 이후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근남면 행곡리 구미동 북쪽에는 구릉이...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샘과 산의 유래담. 울진군청이 2006년에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으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杏谷里) 주천대(酒泉台)와 소고산(小孤山)은 옛날에는 한 줄기 산맥으로 이어져 있었고 마을 앞 냇물은 셈시마을 쪽으로 돌아...
-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담양(潭陽). 아버지는 전병겸(田炳謙)이고, 남편은 신안주씨로 주형중(朱衡中)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매사에 지각이 있고, 성품이 곧으며 지조가 있었다. 출가하여서는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잘 받드니 이웃과 마을에서 부덕(婦德)이 있다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에 남편이 출타하여 돌아오지 않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교수공(敎授公) 주세창(朱世昌)이다. 부인은 울진장씨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가족을 이끌고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안일왕성으로 피신했으나 일가친척이 왜병들에게 무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분연히 일어났다. 또한 “고을 백성들이 하루 이틀도 아닌 수많...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열녀.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장전(張悛)이고, 남편은 사재감첨정 주호(朱皥)이다. 임진왜란 때에 부부가 같이 고읍성을 지키다가 1593년 8월 남편 주호가 먼저 왜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왜적이 장씨의 가슴을 만지니 두 가슴을 손수 칼로 잘라내어 땅에 던지고 왜적을 꾸짖고 자결하였다. 왜적이 경탄하여 그 징후와 상태를 기록하여 여러 죽...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성실한 마음, 향상의 의지, 줄기찬 노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69년 3월 25일 죽변중학교 병설 죽변상업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69년 3월 31일 상업과 3학급을 편성하여 개교하였다. 1975년 10월 29일 죽변종합고등학교로 개칭하였고, 보통과...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하다가, 뒤에 죽변동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봉수동이 통합되어 죽변리라 하여 울진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울진읍에서 죽변면이 분리, 승격되었다. 죽변리는 죽변1리에서 죽변5리까지 다섯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죽변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마을에는 제당이 2곳 있는데, 하나는 숫성황신을 모시는 향나무 성황당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 배 대는 곳 앞에 있는 암성황신을 모시는 성황당이며 당집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죽변리 봉수동 성황목인 향나무는 봉수동 마을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성황목 주변에 시멘트 블록으로 장방형 담장...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신라시대 토축 성지. 죽변리 죽변성지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 때 신라 국경인 소공령(召公嶺)과 해상에서 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토축으로 성을 조성하고 수군 2,000명을 주둔시켰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죽변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내륙에서 바다로 힘...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행정구역.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하다가, 뒤에 죽변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近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53년 2월 13일 울진군 울진면 죽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17년 11월 1일 삼화면(三和面)이라 하던 것을 울진면으로 고치고, 1979년 5월 1일 울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4월 1일 죽변출장소가 죽...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죽변시장은 1965년 2월 5일 정기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매월 3일·8일 열리는 5일 장이다. 수산물 생산 기지인 죽변항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에 새벽을 여는 어판장’, ‘지역 농산물 집산장’으로 유명하다. 시장의 부지 면적은 4,746㎡, 건물 면적은 120㎡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죽변종합고등학교에서 창단되어 활동하였던 관악 단체. 죽변종합고등학교 합주단은 울진원자력발전소 주변 학교 육영 사업의 일환으로 1992년 창단되었다. 당시 죽변종합고등학교[현 죽변고등학교] 교사 장기태의 지도 아래 45명의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죽변종합고등학교 합주단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2004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의 육성이라는 지표 아래 도덕인, 개성인, 창조인, 건강인의 양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3월 18일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55년 5월 29일 개교하였다. 1968년 3월 7일 부구분교를 개교하였으며, 1989년 3월 1일 죽변종합고등학교와 분리되었다. 1999년 12...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를 빛내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어린이, 몸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예절바른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37년 3월 1일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37년 9월 25일 개교하였다. 1995년 3월 1일 소곡국민학교를 통폐합하였다. 1996년 3월 1일 죽변초등학교로 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어항. 죽변면의 옛 지명은 용추곶(龍湫串)으로, 항공사진을 보면 용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 옛 선인들은 용추곶을 용이 노닐면서 승천을 꿈꾸다가 그 꿈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전한다. 죽변항은 후포항과 더불어 울진군의 주요 어업 중심 기지이다. 후정해수욕장과 봉평해수욕장이 있으며, 죽변리·후정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대흥리에 있는 바위. 불영계곡에서 중바위가 있는 곳의 바로 위쪽은 울진읍 대흥리이며, 그 아래쪽은 근남면 수곡리이다. 동쪽 즉 계곡 하류 쪽은 건잠교와 은혜폭포가 있으며, 서쪽 즉 계곡 상류 쪽은 선유정과 불영정이 있다. 불영계곡 휴게소에서 약 4㎞ 정도 떨어진 곳으로 불영계곡 절경 중 하나이다. 교통은 국도 36호선이 동~서...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초등학교 과정을 수료한 자가 진학하는 중등학교. 경상북도 울진 지역 중등 교육의 효시는 1946년 10월 23일 개교한 울진공립초급중학교이다. 이후 평해중학교, 매화중학교, 후포중학교, 죽변중학교, 울진여자중학교, 부구중학교, 기성중학교, 울진중학교 삼근분교장, 온정중학교, 제동중학교, 평해여자중학교 순으로 개교하였다. 그러나 1990년...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4리 지경마을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 금음4리 지경마을은 옥동이라고도 한다. 옥동에서는 만 4년마다 세습무들로 하여금 용왕을 위로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별신굿을 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3일에 걸쳐 지냈으나 최근에는 주민의 고령화와 비용 문제로 하루 동안 굿을 하는 것으로 간소화되었다. 별신굿은 부산에 근거를 둔...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에 있는 두 개의 못에 얽힌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청고동에는 조그마한 못이 있는데, 그 못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청고동의 마을의 지세는 용의 모양으로, 뒷산은 용의 몸체에 해당되고, 조그마한 못은 입 또는 눈에 해당된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서 북면 부구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 917호선은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가 기점이고 북면 부구리가 종점인 도로로 길이 43.900㎞로 긴 편이다. 울진을 대표하는 금강송 군락의 절경을 벗삼아 이동할 수 있는 구간으로, 소광리 황장목 표지석, 금강송림, 금강송 체험장 등을 지나 울진군의 대표적 온천지구인 덕구온천지구로 연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에서 죽변면 죽변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 920호선은 온정면 조금리가 기점이고 죽변면 죽변리가 종점인 도로이다. 울진군의 내륙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로서, 온정면과 매화면, 기성면, 죽변면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방도 920호선은 길이 65.900㎞이며, 폭원은 왕복 2차선으로 10m 이내이다. 지방도로서는 매우...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지각을 이루는 여러 가지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울진군의 지질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소백산 육괴에 해당되는 지체 구조 특성상 울진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편마암류 및 편암류이며, 이들 지질은 주로 울진군의 중·북부 지역에 분포해 있다. 두 번째는 이들 암질을 관입하거나 분출한 형태로 분포하는 화산암류이며...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기양1리에서 지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지품마을 유래」에서 지품마을은 예전의 지당이란 못 터에 세워진 자연부락으로 매화면 기양1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품(池品)’은 못에서 물품이 나왔다 하여 지은 지명이다. 2001년에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마을은 1658년 평산신씨(平...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나타나는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1. 하구 충적평야 울진군 내에는 태백산맥의 서사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부 하천[왕피천·남대천] 하구 부근에서 소규모 충적평야가 발견될 뿐이다. 이 충적평야들은 약 6,00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해면이 지금 높이에서 비교적 안정되었을 동안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직고리(直古里)와 남산리(南山里)에서 ‘직(直)’자와 ‘산(山)’자를 따 ‘직산(直山)’이 되었다. 본래 평해군 남하리면(南下里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3월 1일 저장리(猪場里)·직고리·상남산리·하남산리가 통합되어 직산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직산리 직산리사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삼층석탑. 직산리 남산마을 서쪽에 있는 탑산골 골짜기 일대가 직산리사지로, 20여 년 전까지 탑이 남아 있어 남산마을 주민들이 탑돌이를 하기도 하였으나 보문사라는 태고종 사찰이 세워지면서 직산리 삼층석탑도 없어졌다고 한다. 근년에 개인 불당이 세워져 있다. 도난당하기 전의 기록과 사진을 토대로 살펴보...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새로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진복리라 하였고, 또한 마을의 뒷산이 진복봉(進福峯)이므로 진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상동정리(上洞庭里)·하동정리(下洞庭里)·전반리(全反里)가 통합되어 진복리로 개편되었다. 진복리는 백련산(白蓮山)의 지맥이 동남쪽으로 뻗어 마을...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설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의 시조는 고구려 영양왕 때 병마원수를 지낸 강이식이다. 울진 지역의 진주강씨들은 조선 세조의 등극을 도와 공신이 된 강자신의 후손과 강준중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에 한림의 벼슬을 하던 강설백이 사직하고 충주로부터 입향하였다. 종사랑을 지낸 강모로는 1670년(현종...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에 있는 봉우리. 동쪽은 망재고개 너머에 있는 신림리 쪽에서 흘러오는 내를 지나 올시골이 있고, 서쪽은 금산맥인 가진재를 넘으면 대흥리 지역이며, 남쪽은 금산지맥인 바리재 너머에 행곡리가 있으며, 북쪽은 고성2리인 기골과 인접하고 있다. 남산 봉우리에 옛날부터 이중의 토병을 묻어 두고 넓은 돌로 뚜껑을 덮어 놓은 곳이 있는 봉우리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토일동에 위치한 진화봉에 얽힌 이야기. 풍수지리설에 의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산봉우리가 화재를 자주 발생시키는 지형이라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염수가 든 토병을 묻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계혈연집단의 성원들이 특정 마을에서 다수를 이루고,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마을에 동족부락·씨족부락·동성촌락·동족촌 등의 용어를 적용하고 있다. 여러 성씨들로 구성된 마을이나 특정의 우세...
-
1831년(순조 31) 울진현에 있던 무월동의 마을 규약. 1704년(숙종 30) 송재(松齋) 장만년(張萬年)은 진사 장겸(張謙)의 11세손으로 태어났다. 예의와 행실이 바르고 근검 절약하여 선인들의 유업을 굳게 지키면서 자수성가하여 1740년경 울진읍 호월리 227번지[호월1길 45-8]에 현 기지(基地)를 택해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술좌진향(戌座辰向)으로 16간...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 창유계는 일제강점기 후반 울진적색농민조합이 해체된 이후 이 조합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최학소, 전원강(田元江), 남왈기(南曰紀), 남원수(南源壽) 등이 이전의 적색농민조합운동을 계승하고자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1939년 조직했던 계 조직 형태의 비밀결사이다. 계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함과 더불어 일제의 패망과...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행리. 마을 뒤의 산세(山勢)가 척(尺)자와 비슷하다 하여 자산 또는 척산(尺山)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북면(遠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암곡리(庵谷里)가 통합되어 척산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척산리의 동쪽은 기성리와 동해(東海)가 있고, 서쪽은 정명천(正明川)의 상류(上流)가 흐르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는 조선시대에 정명장이라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가 없어지고 1965년 2월 1일에 새로 척산시장이 건립되었다. 척산시장은 매월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척산시장의 영업장 면적은 2,212㎡이며,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
조선 중기 울진 출신 문인 황중윤(黃中允)이 지은 「천군기」의 필사본. 동명(東溟) 황중윤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아버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에게 공부하여 가학을 계승하였다. 황중윤의 저술들은 『동명문집』으로 간행되기도 했으나 많은 필사본이 간행되지 않은 채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왔다. "숭정계유중추(崇禎癸酉仲秋)에 황중윤서(黃中允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했던 최제우를 교조로 하는 민족종교.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제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1860년에 세운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개칭한 종교이다. 동학은 서학(西學)인 천주교에 상대되는 의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의 마...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천량산 암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량암 이야기」는 횡재형에 속하는 허욕 금지담이다. 이런 유형의 설화는 속칭 ‘쌀바위’ 전설로 대표되고 있으며, 가난한 절이나 암자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지역에 퍼져 있는 설화의 내용은 대동소이하여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공통의 주제를 갖고 있다. 1998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보호·보존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여 법률로 지정한 동물, 서식지, 식물의 개체 및 종과 자생지, 지질·광물 따위를 말한다. 울진군에는 5종의 노거수와 1종의 지질·광물이 지정되어 있다. 1.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산381-1번지에 있는 수령 330년의 굴참나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에 있는 명승지. 1683년(숙종 9) 울진현령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천연대(天淵臺)라 이름 짓고 풍월을 즐긴 이래로 그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울진읍 신림리 마을 입구에는 작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 바로 옆의 산기슭에는 자연암반이 있다. 암반 위쪽으로 원형으로 석축을 쌓아 마련한 5평 남짓한 터가 천연대이다. 천연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서 석호동과 나실동 사이에 있는 남대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8년 북면 나곡리 사람들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울진의 설화』에 수록하였다. 북면 나곡리의 석호동(石湖洞)과 나실동(羅室洞) 사이 해안에는 근동 사람들이 남쪽에 있는 큰 문이라고 하여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부르는 문이 있다. 이 남대문은 해안 서편의 양...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덕거리에서 천제당과 관련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각 지방마다 산간에는 주민들의 안녕을 위하여 매년 제의를 올리는 제당이 있다. 제사를 모시지 않았더니 마을에 돌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거나 한다는 그럴만한 신당(神堂)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바로 「천제당 이야기」도 신당 전설과 같은 맥락의 제당 유래담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791년 신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으로 선교의 어려움을 겪다가 1882년 한미수호조약, 1886년 한불수호조약 등으로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였다. 1831년 조선교구가 설치된 이래 1998년 말 당시 북한 소재 2개 교구를 포함하여 17개 교구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 있는 천지라는 못에 얽힌 부자 지씨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뒷산에는 못이 하나 있다. 이 못은 ‘천지’라고 불렸다. 굴구지마을을 처음 개척한 지 씨는 부자로 살았는데,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 서쪽에 있는 천지소에 얽힌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 서쪽의 산꼭대기에 천지소가 위치하고 있다. 천지소는 쇠물탕이라고도 부른다. 천지소의 생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해발 500미터의 높이로 면적은 약 200평 정도이며, 그 속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와 금강송면 왕피리·하원리 사이에 있는 산. 원래 의상대사가 지안삼우(砥雁三羽)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2마리는 인도 천축산으로 날아가고 1마리가 이 사찰지로 날아 들어 왔다고 한다. 그 뒤 대사는 이곳에 와서 내가 살 곳이라 정하고 산명을 천축산이라 하여 절터를 개척 하였다. 다섯마리 용이 치수(治水)하여서 절터가 호수가 되는지라 여러 차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의 창건 설화를 알려주는 기문(記文). 불영사의 창건에 관한 기문은 1370년(공민왕 19)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유백유(柳伯濡)가 썼다고 「천축산 불영사기」에 전한다. 유백유는 기록의 근거를 신라 옛 비석으로 밝히고 있다. 유백유의 기록은 불영사와 관련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불영사의 창건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영사의 창건기를 새긴 현판. 불영사 시창기 현판에 새겨진 「천축산불영사 시창기(天竺山佛影寺 始創記)」는 1370년(공민왕 19) 한림학사 유백유(柳伯濡)가 쓴 것으로, 기문에 따르면 유백유는 신라의 옛 비석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전설적인 경향이 강하다. 창건기에 따르면 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구리와 아연 또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처음으로 금속기를 사용한 시기를 말한다.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무문 토기와 마제 석기를 제작하였으며, 벼농사와 정착 생활을 하였다. 시기는 대체로 BC 10세기경부터 BC 3~4세기경까지로 보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1리에서 청룡거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룡거리」는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아기장수 설화’의 유형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평민의 집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태어났으나 날개가 잘려 꿈을 펴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되어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청룡거리」 역시 부모가 아들을 죽이고, 이야기의 끝은 하늘에서 내려온 청룡이 울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절 터. 청암사는 근남면 구산리 탑평동에 있던 절로 주변의 유물로 보아 남북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폐사되었다. 청암사지는 근남면 구산3리 탑들마을 일대 논으로 개간된 곳과 능선에 걸쳐 있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 근남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성류굴교차로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정자.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구고동 청암폭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청암정은 매화면 매화리에 거주하던 만둔(晩遯) 윤상건(尹相健)의 장루지처(杖屢之處)이다. 윤상건의 동생 윤상일(尹相馹)이 형을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경개(景槪)가 산수간(山水間)을 통한다. 서쪽의 송노봉, 남쪽의 칠성봉, 동쪽의 향노봉이 우아하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사설의 대부분이 청춘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청춘가」는 경기민요의 하나로서, 일제강점기 때 음반으로 취입되면서 전국에 널리 퍼진 유희요이다. 통속민요로서 새로운 가사 붙임에 의해 재생산된 대표적인 유희요로 꼽힌다. 1991년 기성면 기성리에 사는 한억란[여, 61]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
-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명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청풍김씨는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풍부원군에 봉해진 김대유를 시조로 한다. 청풍김씨는 조선시대 동안 정승과 대제학 다수를 배출하였다. 공조참의로 증직된 김명혜가 1710년(숙종 36)에 입향하였다. 김명혜의 후손들이 근남면을 비롯하여 울진지역 일대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한 군수가 평해의 안산인 이 산의 산세를 보고 학처럼 보인다고하여 그 뒤부터 청학산(靑鶴山)이라고 부르고, 체학산(滯鶴山)이란 이름은 항상 학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청학산 앞쪽인 북쪽은 평해성터의 자리가 보이고, 바로 앞은 남대천이 흐르며, 평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직산리와 접하고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민들의 체력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일련의 육체적인 활동. 울진군에서 체육활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먼저 소개되었고, 각급 학교 교육을 통해 보급되었다. 이후 청년회 운동부 등의 민간단체가 결성되었고, 이것이 향후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울진의 체육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 선교사...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체육 관련 단체. 경상북도 울진군에서는 1963년 3월 울진군 체육회 설립을 시작으로 1978년 4월에는 울진군 테니스협회가, 그리고 1983년 2월에는 울진군 축구협회가 설립되는 등 차례로 종목별로 협회의 형태를 띤 체육단체가 결성되면서 울진군 체육 활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울진군민의 다양한 체육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각 종목...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이나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에 사용되는 도구나 시설. 경상북도 울진군의 체육시설은 주로 각 학교의 체육시설에 주로 의존하고 공공시설은 진부한 형편이었으나 1991년 울진읍 연지리에 울진군 체육관이 건립되고, 1995년에는 울진읍 연지리에 울진연호체육관이, 1997년에는 매화면 매화리에 매화종합고등...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기관. 초등학교는 국가에 따라 초등학교, 보통학교, 기초학교, 소학교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현대 학교 교육의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로서 국민생활에 필요한 초보적인 일반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따라서 설립자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 아래 동일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 교육이 국가...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주민들 생활의 기본 단위를 구성하는 취락의 한 유형. 촌락은 도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혈연과 지연에 기반 한 인간생활의 기본 단위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룬 지역집단을 가리킨다. 전통사회에서 주민들은 혈연 및 지연에 기초하고 생업활동과 신앙생활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촌락마다의 관습에 기초한 협동과 제재가 작용하였고,...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최복하는 고려 말 한성부윤(漢城府尹),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2리 무령현(武靈峴)에 은거하였다. 은거 당시 상국(相國) 이구(李玖)의 관동이군(關東二君)에게 보낸 시에서 “봉지(鳳地)의 사간(司諫)이 선사(仙槎)에 높이 누워/ 일찌감치 어부가의 뜻을 알았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팽나무거리촌에서 태어난 최사룡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진사 최사룡은 1564년(명종 17) 3월 15일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팽나무거리촌에 사는 최윤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진사의 자는 사룡이고, 호는 몽와이며, 대사간 복하의 후손이다. 조선시대 선조 때 강원 감사 동...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 호는 정재(貞齋). 할아버지는 고려 대사간(大司諫) 최복하(崔卜河)이고 아들은 최면(崔沔)이다. 조선 세종 때 벼슬이 삼군도진무사(三軍都鎭撫使)에 이르렀다. 단종에 이어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아들 최면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 사실은 『세조실록(世祖實錄)』, 『금폭원기(錦幅原記)』, 『홍재전서(弘齋全書)』,...
-
1490년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강릉최씨 입향조.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농산(弄山). 시조는 최흔봉(崔欣奉)이고, 분파조는 최안소(崔安沼)이다. 부인은 직장동정(直長同正)을 지낸 울진장씨 장을보(張乙寶)의 딸이며, 아들은 무사직(武司直)을 지낸 최덕윤(崔德潤)과 사정(司正)을 지낸 최옥윤(崔屋潤)이다. 최운생은 산수를 좋아하여 울진군 매야(梅野)에 왔다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창해(滄海). 참판(參判) 수헌공(睡軒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초(素樵) 최대순(崔大淳)이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으며, 1909년(순종 3) 13세 때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개최된 시회(詩會)에 참가하여 장원을 하였다. 1911년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명보(明甫).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익한(崔益翰)이다. 울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문을 수학하였다. 1934년 2월 조선독립공작당 사건으로 혼행(婚行)을 다녀오는 길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동생 최학소(崔學韶)와 사촌동생인 최경소(崔景韶)·최명소(崔命韶)도 체포되...
-
조선 후기 강릉최씨 울진 입향조. 시조는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이고, 분파조는 대사헌(大司憲) 최응현(崔應賢)이다. 철종 때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사회 기강이 문란해지고 민심이 혼란에 빠지자, 1855년(철종 6) 벼슬을 버리고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일명 골마] 탁적산(托跡山) 아래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선현 추모와 강학 수도에 전념하고 가학(家...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족보명은 최중권(崔重權)이고, 자는 도연(度然)이다.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거(仙居) 최현식(崔鉉軾)이고, 아버지는 최익순(崔益淳)이다.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세운 만흥학교(晩興學校)에 다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 해 4월 11일 매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지역에 살던 효부.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황영하(黃永河)이고, 남편은 강릉최씨로 최진곤(崔鎭崑)이다. 시아버지는 절름발이이고 남편은 간질병 환자로 가세가 몹시 가난하였으나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임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받아 먹였으며, 남편을 위해 단(壇)을 만들어 하늘에 비니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도 칭송이...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
-
1971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최한주의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비. 1283년(충열왕 9)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州君) 최한주(崔漢柱)가 종군(從軍)하게 되었다. 동해에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있던 배의 닻이 바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최한주가 물속에 들어가 닻을 빼내 배가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한주가 물 위로 올라와 보니 배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현기(鉉琪), 호는 여지(汝智).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황순도 동지들과 함께 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19대손으로 아버지는 최현한(崔鉉漢)이다. 1938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효대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 명절로서 음력 8월 15일이며, 이를 한가위,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이때 울진 지역에서 행하는 의례 및 행위, 먹는 음식 등은 타 지역과 큰 차이는 없다. 여기에서는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덕산1리와 조금리의 사례를 중심으로 추석에 행해지는 풍속과 행위, 음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축산업은 토지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각종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공급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여기서 축산업을 축산물의 생산은 물론 그 생산된 축산물을 가공 또는 처리하여 유통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울...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주경안과 관련한 석단(石壇) 터.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산봉우리에 돌로 단(壇)을 만들고 7년 동안 매일 새벽 닭이 울 때 그 위에서 아군이 승리하기를 하늘에 기원하였던 데서 축천대(祝天臺)라 하였다.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른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산과 관련된 민속. 자녀를 낳기를 원하는 기자속으로는 치성기자와 주술기자가 있다. 울진 지역에서는 산·거목·바위 등 초자연적 존재나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대한 치성기자를 행하였다. 바다에 접한 어촌 지역에서는 용왕에게 공을 드리는 ‘해공드리기’에 의해 자녀 낳기를 기원하였다. 울진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주술기자도 발견된다. 울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
-
경상북도 울진군의 충신·효자와 효부·열녀. 예로부터 사회의 기본 윤리로 존중되던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을 가리킨다. 신라시대부터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에 정문과 정려를 세워 포장하였는데,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적 교화를 강화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이 많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산. 칠보산의 칠보라 함은 인재등과의 보, 충절의 보, 백자천손의 보, 교역의 보, 어족의 보, 육축의 보, 온화의 보를 뜻한다. 태백준령이 뻗어 내려 이루어진 산으로 매가 보배를 안고 하늘을 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해의 일출을 맞는 매방울 동산이다. 칠보산은 해안산맥이 지나는 능선이 펼쳐 있어 동해에서 보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1리에서 칠보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칠보산 이야기」는 매가 보배를 안고 막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국을 이룬다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칠보산에도 전해진다. 화성군의 칠보산 전설에는 옛날부터 8개의 보물[산삼, 맷돌, 잣나무, 황계수닭, 범절, 장사, 금, 금닭]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과 근남면 일원의 석회암 지역에 기반암의 용식에 의해 형성된 지형. 카르스트 지형이란 석회암 지대의 용심 작용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유형의 지형을 의미한다. 울진군에는 평해읍과 근남면 일원의 석회암 지역에 소수의 카르스트 지형을 찾을 수 있으며,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는 석회동굴과 돌리네를 들 수 있다. 두꺼운 석회암의 지반이 지하 수면 위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1리 석수동에서 전해오는 칼산과 관련된 이야기. 풍수지리설에 의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칼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을에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나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백정이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주인1리 석수동 앞산에 칼산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2리에서 탕건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해안지방이나 섬에 위치한 마을에는 일반적으로 마을 뒷산에 산신당이, 마을 앞에 용신당[일명, 해신당]이 있다. 보통 음력 정월 14일에 배의 주인이 제주가 되어 뱃사공들이 용왕제를 올리게 된다. 매년 용왕제를 지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용왕신이 노하여 반드시 풍랑을 만나거나 고기를 하나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루널을 깐 2층 또는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누옥·층루[2층 또는 여러 층으로 지은 집]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은 대지 위에 높게 지은 집은 고루, 고당, 고각이라고 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숙종 연간에 세워졌다. 앞에는 긴 시냇물이 흐르고 사방에 아름답고 넓...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터. 헌(軒)은 처마, 집, 가옥, 수레 등을 의미한다. 가옥이나 집으로는 보통 동헌(東軒)이라 하여 지방의 고을 원이나 감사, 병사 수사 등 수령들이 공사를 처리하던 집을 말한다. 태고헌은 경상북도 울진군의 옛 울진현 관아 앞에 있었다. 1684년(숙종 10) 울진현령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태고헌이라 명명하고 향음주례를...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에 있는 봉우리. 태봉에 조선 선조 때 왕실 아지(阿只)[신생아를 높여 부르는 말]의 태반을 묻은 태실이 있었다 하여 태봉이라고 불렸다. 1979년 경주이씨 문중에서 제단을 세우기 위하여 굴토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된 석극(石亟)이 사방 20㎝ 정도이고 석판에 “대명○○년 ○월 ○일의 태”라고 음각한 석판이 발견되었다. 1608년(선...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1리에서 토일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토일리와 정몽주 이야기」는 울진읍 읍남1리의 토일리와 정몽주의 후손이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정도(鄭渡)는 증조할아버지 정보(鄭保)가 단종사화(端宗士禍)에 몰려 영일로 유배되자, 자기 자신도 “나아가면 위태하니 물러나서 편안히 지냄과 같지 못하다”고 하여 울진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광회리·왕피리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고대국가 형성기 실직국의 안일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을 때 하도 재가 높아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通谷山)으로 부르다가 그 뒤 통고산으로 불려지고 있다. 선캠브리아기의 변성퇴적암이 주된 지질이며, 이밖에 선캠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과 각섬질암 등이 약간 분포한다. 통고산은 광천의 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2리에서 통고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통고산사의 무쇠 말터」는 금강송면 삼근2리의 꽃방마을에 있는 사찰 앞에 서 있었다는 무쇠 말과 관련된 지명유래담이다. 무쇠 말은 통고산사의 어떤 도승이 기약한 수행을 마친 다음 자신이 열성으로 노력을 다하였다는 자부심을 강조하고자 절 앞에 세운 조형물이다. 지금 이 무쇠 말은 사라...
-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원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조 삼한벽상공신 윤신달이며, 고려 중엽 문무를 겸비한 윤관이 중시조이다. 여러 지파 가운데 판도공파와 소정공파가 가장 번창하였으며,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울진 지역에는 고려 충숙왕의 부마로 양성군으로 봉군된 윤혁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윤시형은 조선 인조 때...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윤씨 종친들의 모임. 경상북도 울진군에 거주하는 파평윤씨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참여하는 종친들의 모임으로 파평윤씨 울진종친회 또는 파평윤씨 울진화수회라고도 한다. 파평윤씨 울진종친회는 시조의 제사나 위선 사업, 종친들의 친목 도모, 선조의 정신 계승 등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파평윤씨 울진종친회는 하절기...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 부근에 있던 명승지. 옛날 여덟 명의 노인이 장기를 두면서 술을 즐겼다 하여 팔선대(八仙臺)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평해군수가 재주 있는 8명과 같이 유람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의정을 지냈고 울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지은 『아계유고(鵝溪遺稿)』「팔선대기(八仙臺記)」에서는 태수(太守)의 아들이...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광품리에서 팔선대와 광품폭포에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팔선대와 광품폭포는 온정면 광품리의 남대천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물이 맑고 산세가 매우 빼어난 곳이다. 이곳에 선녀 8명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여 ‘팔선대’라 하고, 이를 시기한 용이 꼬리로 치자 바위가 두 동강 나면서 생긴 자연 폭포를 ‘광품폭포’로 명명했다고 전해지...
-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이며, 20여 개 지파를 구성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 세거하는 평산신씨들은 시조의 13세손 신현을 파조로 하는 판사공파와 시조의 15세손인 신효창을 파조로 하는 제정공파를 비롯하여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1592년(선조 25)...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이나 작업할 때 입는 전통 복식. 젖먹이 시절이 끝나고, 서너 살이 되면 남자 아이에게는 바지저고리를 입히고 여자 아이에게는 치마저고리를 입혔다. 울진 지역 대부분의 서민층을 비롯한 민가에서는 바지를 입히지 못하고, 동저고리라 하여 명주에 빨강·파랑 물감을 들인 저고리만을 입혔다. 겨울철에는 솜을 넣어 누빈 저고리를 입혔다. 여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 활동. 2000년 3월 1일 「평생교육법」이 발효되어 종래의 사회교육이 평생교육이란 이름으로 확대·발전되었다. 울진군에서는 대구대학교 부설 울진여성대학과 울진문화원 부설 문화교실, 울진군종합복지회관, 울진자연생태학교, 울진군 청소년수련관 등에서 그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대구대...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은 이후까지 거치는 단계별 의례. 인간이 일생 동안 단계별로 거치는 의례인 평생의례는 인간의 지위나 상태의 전환기에 이루어지는 의례이다. 평생의례에는 사람의 태어남과 관련된 출산의례, 아동기에서 성인으로의 성장과 관련된 성년의례, 남녀의 결합에 관련된 혼인의례, 노장으로서의 지위 전환을 의미하는 환갑례, 죽음과 관련된 상례, 조상 숭...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지표면이 평평하고 넓은 들. 울진군 내에는 태백산맥 서사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부 하천인 왕피천과 남대천 하구 부근에서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발견될 뿐이다. 울진군은 방사성탄소(C14) 약 6,000B.P[연대측정 결과를 현재로부터 기산(起算)한 연대로 나타낼 때 사용하는 Before Pr...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1,003m] 남쪽에 있는 삼승령[747.3m] 등에서 발원하여 평해읍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 평해 남대천은 울진군의 다른 하천처럼 감입곡류를 하고 있는데, 특히 온정면 도계리에서 평해읍 삼달리 사이가 전형적인 감입곡류의 하천이다. 온정면 광품리에 있는 광품폭포는 곡류하던 유로가 절단되면서 형성된 천이점(遷移点)이다. 하류 구간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남대천 둔치에서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에 열리는 민속축제. 단오는 예부터 설,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에 해당하여 지역마다 다양한 행사를 하였다. 특히 이즈음이 모내기 등을 마친 시점이라 마을 단위의 행사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풍제의 성격이 컸다. 평해 남대천 단오제는 1984년부터 울진군 평해읍청년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서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평해 동헌터 느티나무 이야기」는 평해리의 옛 관아였던 동헌터 앞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에 관한 거목 전설이다. 이 느티나무는 현재 울진군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평해리의 옛 지명은 ‘하성리(下城里)’, ‘하리(下里)’, ‘하성저리(下城底里)’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모...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남대천 위에 있는 다리. 평해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옛 지명으로 757년(경덕왕 16)부터 사용되었다. 평해교는 평해리(平海里)에 건립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230.9m, 총 폭 12.3m, 높이 2.3m이다. 차도의 폭은 10.3m이고 총 차선 수는 2차선이다. 경간(徑間) 수는 9개, 최대 경간 폭은 25.6m이다. 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평해골이 있었으므로 평해 또는 읍내라고 하였다. 본래 평해군 상리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3월 1일 송릉리(松陵里)·상성저리(上城底里)·하달리(下達里)의 각 일부 지역과 하리면의 하성저리가 통합되어 옛 평해군 소재지이므로 평해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평해1리...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향교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평해 지역 지방관의 업적을 기리는 13기의 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향교 안 태화루 앞에는 13기의 비석이 있었다. 향교 직원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1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12개의 비석은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이다. 비석들은 태화루 남쪽 석축 아래 동서로 나란히 배열되...
-
1603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세워진 평해 지역 북천교 건립기념비. 1603년(선조 36) 3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월송리 지역에 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하여 돌다리를 세웠다. 다리 건립 공사가 끝난 후 평해북천교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건립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평해북천교비에 보이는 평해군수 조인징(趙仁徵)은 『울진읍지』에 의하면, 1599년(선조...
-
손익담을 시조로 하고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안동손씨를 제외한 모든 손씨는 경주손씨를 대종으로 하는 동일한 연원의 분파를 이루고 있는데, 평해손씨도 그 한 계열이다. 평해손씨는 모든 손씨의 중시조인 손순의 손자 삼형제 가운데 둘째인 손익담의 후손이다. 손순의 첫째 손자인 손익감은 밀양손씨, 그리고 셋째인 손익원은 청주손씨의 시조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손씨 종친들의 모임. 평해손씨 도시조, 관향시조를 비롯한 선조에 대한 제사, 대동보 편찬, 후손들의 친목도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평해손씨 대종회에서는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산20번지에 영모재와 숭덕사를 건립하여 위선 사업을 하고 있다. 숭덕사에서는 평해손씨 도시조, 입향관조 그리고...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서 열리는 정기 시장. 조선 후기에 개설된 재래시장으로, 지역 내 물류 집산지로 자리 잡아 왔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2일, 7일을 기점으로 하루에 두 번 개설되었다. 그 후 1965년 2월부터는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등 5일마다 하루 종일 열리는 정기 5일장이 되었다. 시장의 부지 면적...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던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성실’이었다. 1972년 12월 26일 6학급으로 편성된 평해여자중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아 1973년 3월 26일 개교하였다. 2008년 2월 15일 졸업식을 통해 총 2,65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평해여자중학교와 평해정보고등학교가 병설...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본래 평해군(平海郡) 지역으로서, 상리면(上里面)이라 하여 송릉(松陵)·상성저(上城底)·하달(下達)·상달(上達)·관곡(館谷)·동파(東坡)의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6년 3월 1일 북하리면(北下里面)의 화구(花邱)·달효(達孝)·정산(井山)·오곡(梧谷)·비량(飛良)의 5개 리와 남면의 청구(靑邱)·신리(新里)·후리(厚里)·하률(下...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축 읍성. 『관동읍지(關東邑誌)』와 『울진군지(蔚珍郡誌)』에서는 선덕왕 갑인(甲寅)에 석성(石城)으로 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선덕왕 때에는 갑인이라는 간지가 없어 정확히 연대를 알 수 않다. 『여도비지(輿圖備志)』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축성 연대를 고려 말로 기록하고 있다. 1357년(공민왕 6)...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올바른 인간성을 지닌 사람,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사람, 사랑과 꿈을 키우는 사람의 육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있다. 1975년 11월 14일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76년 3월 26일 평해여자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1993년 3월 1일 평해상업여자고등학교로, 2000년 평해여자정보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성실·창의·협동’이다. 1947년 8월 27일 평해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47년 9월 23일 개교하였다. 2008년 4월 21일 동창회 및 울진군, 경상북도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교내 연못인 녹화정 부근 산책로와 석축 쌓기 및 식목 등의...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와 고장을 사랑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기본예절을 바르게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지식·정보를 새롭게 창조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1912년 3월 6일 수업 연한 4년의 평해공립보통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12년 4월 15일 평해군 청...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건축.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읍사무소 뒤편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평해향교는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지었다가 1407년(태종 7)에 군수 김한철(金漢哲)이 송릉동(松陵洞)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에는 명색이 향교였을 뿐 완전히 정비되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의 향교 건축물. 평해향교 대성전은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07년(태종 7) 군수 김한철(金漢哲)에 의해 송릉동으로 이건된 평해향교의 대성전이다. 이때까지 향교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1470년(성종 1) 대성전을, 1474년(성종 5)에 명륜당을 건립함으로써...
-
황락을 시조로 하고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평해황씨는 후한시대 학사인 황락을 시조로 하는 황씨의 한 파이다. 황락은 풍랑을 만나 평해에 상륙하여 신라에 귀화하였다. 후손에 이르러 평해·장수·창원으로 분파되었는데, 평해황씨는 고려시대 태자검교를 지낸 황온인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조선 중기 때 학자이자 문신으로 명계서원에 배향된 황응...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황씨 종친들의 모임. 도시조인 황락과 입향관조인 황온인의 제사와 묘역 관리를 비롯한 위선 사업, 족보 편찬과 종답 관리 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도시조와 입향관조에 대한 제사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서 매년 음력 시월 중정일에 지내고 있다. 매년 양력 4월 첫째 일요일에는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명절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벌이는 농악. 풍물굿은 ‘풍물’, ‘매구’, ‘징물’, ‘풍장’이라고도 하며, 풍물굿을 행하는 것을 ‘풍장친다’, ‘풍물친다’, ‘징물친다’, ‘매구친다’라고 한다. 반면 정초에 행하는 의례적 성격의 풍물굿은 ‘지신밟기’ 또는 ‘걸립’이라고 한다. 울진 지역의 풍물굿은 죽변면 죽변리 후리께마을에서 정초, 정월...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삶의 터전을 구하는 이론 혹은 민속신앙. 풍수지리는 토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생명력, 또는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기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생기론은 음양오행설에서 출발한다. 음양오행설은 한마디로 만물은 원기 즉, 생기의 활동으로 생성된다는 이론이다.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음양...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어민들이 풍어와 어로의 안전을 비는 마을 제의. 풍어제는 바다와 인접한 울진 지역의 마을에서 매년 또는 정기적으로 만선을 기원하며 바다의 용왕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풍어제는 한 해의 풍어와 바다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개인이 올리는 경우와, 주민이 함께 참여해 화목과 협동을 다지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올리는 경우로 구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누각 터. 누(樓)는 높게 놓은 마루, 마루널을 깐 2층 또는 지상 2층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며, 보통 누각·누옥·층루[2층 또는 여러 층으로 지은 집]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은 대지 위에 높게 지은 집은 고루, 고당, 고각이라고 한다. 위치만 짐작할 뿐 건물은 소실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거리 아래쪽에 있어 아릿당 또는 하당이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원당동, 당가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하당리라 하였다. 1700년경에 성황당을 많이 세우면서 마을 이름을 당가리(塘街里)라 하였다. 울진군 원북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원당동, 당가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하당리...
-
신라시대 울진 지역이 속했던 지방통치구역. 신라가 진출하기 전 지금의 강릉 일대와 울진이 포함된 지역에는 예국(濊國)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후 신라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예국은 삼척에 있던 토착세력과 함께 동해안 지역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하슬라주(何瑟羅州)는 512년(지증왕 13)에 예국의 세력권에 설치한 지방 통치구역이다. 주(州)는 특정...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여 세운 원집인 하원(下院)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1500년 경에 강릉박씨(江陵朴氏)와 김녕김씨(金寧金氏)가 개척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한 연대와 인명은 알 수 없고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하원리가 되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 있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는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명승지 제6호와 울진군립공원인 불영사 계곡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내에 있는 한티재는 보부상과 선질꾼들이 오갔던 십이령의 하나로,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찬물내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어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불영사로 들어가는...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육지 표면의 자연 수계를 따라 물이 흘러 형성된 물길과 계류. 울진군 하천의 대부분은 감입곡류 내지 감입 하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감입곡류 하천(嵌入曲流 河川)이란 기반암을 하각하면서 곡 사이를 곡류하는 하천을 지칭하며, 지반 융기와 관련하여 발달한 하천이다. 감입곡류 하천은 다시 하곡의 형태적 특성에 따라 굴삭곡류(堀削曲流)와 생육...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학산리(鶴山里)와 관곡리(館谷里)에서 ‘학(鶴)’자와 ‘곡(谷)’자를 따 ‘학곡(鶴谷)’이 되었다. 본래 평해군 상리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4월 1일 울진군 평해면에 편입되고, 1916년 관곡리·동파리(東坡里)·상성저리(上城底里)·상달리(上達里)·하달리(下達里)의 각 일부와 남하리면의 학산리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리에 있는 산. 산 끝이 새의 꼬리와 같이 퍼져서 흡사 학의 꼬리와 같다하여 학미산(鶴尾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학미산의 바로 위쪽은 온곤마을이며, 아래쪽은 연지리와 접하고 있다. 학미산 서쪽에는 울진농공단지가 들어서 있어서 과거와 같은 산의 모습은 크게 훼손되어 있다. 온곤마을의 앞산으로 현재 주변은 목재집하장, 2차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암석 유래담. 「학소대 이야기」는 구산3리에 있는 굴구지마을의 앞으로 흐르는 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큰 바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는 암석 전설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앞 양쪽으로 흐르는 냇물 속에 섬처럼 우뚝 솟은 큰...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정마을에서 학소응소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학소응소 이야기」는 북면 고목리 지정(芝亭)마을에 있는 샘에 깃든, 학(鶴)과 매[鷹]의 이름으로 명명된 샘[泉] 전설이다. 즉 학이 먹었다는 학소샘은 마시지 못하며, 매가 먹었다는 응소샘은 마셔도 된다는 자연물 유래담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성실, 창의, 협동을 바탕으로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의 육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있다. 1968년 3월 5일 평해상업고등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75년 7월 25일 기계과 병설을 인가받았다. 1976년 3월 1일 평해실업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9년 10월 19일 토목과, 1984년 보통과 병설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영덕·울진지사 산하의 울진 지역 지소. 농어촌 정비 사업과 농업 기반 시설의 종합 관리를 통하여 농업인 영농 규모의 적정화를 촉진함으로써 농업 생산성을 증진시키고 나아가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한국농촌공사의 효시는 1908년 2월 전북 옥구서부수리조합이다. 그 후 1938년...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에 있는 한국미술협회 산하 울진 지부. 울진의 열악한 미술 환경을 개척하고 울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며 서로 협력하는 마당을 만들고자 설립되었다. 1997년 10월에 창립된 후 2003년 11월 12일 한국미술협회 울진지부로 승인되었다. 2003년 5월부터 꾸준히 정기전 및 전시회를 열고 있다. 2003년 5...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산하 단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항구적으로 옹호·발전시키고 이와 관련된 민간단체들에 대해 협조하며 세계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다지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3년 12월 「한국반동연맹법률」 공포에 따라, 반공을 기치로 1965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경상북도지부가 설치되었다. 1966년 6월 22일 한국자유총...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울진 지역 지점. 한국전력공사법에 의해 설립하여 울진군 지역의 전원개발을 촉진하고 전기사업의 합리적인 운영을 기함으로써,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2년 1월 1일 강릉전기 울진출장소로 발족하여 1961년 7월 1일 한국전력 강릉지점 삼척영업소 울진출장소로 개편하였다. 1963년 1월 1일 한국전력...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고개. 한나무재는 작은 늪과 재가 있다하여 ‘적은넓재’라고도 하고 ‘전나무진’이라고도 부른다. 남쪽에는 진조산[908.4m]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십이령 중의 하나인 넓재가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밭이 있는 평전마을이 있다. 북쪽에는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병산[1,130m]이 강원도 삼척과 경계를 하고 있다. 1995...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草亭)[...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헌(白軒). 청주한씨 시조인 한난(韓蘭)의 31대손이고, 울진 입향조 한위(韓緯)의 1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재린(韓在麟)이며, 아버지는 한필석(韓弼錫)이다. 덕릉참봉(德陵參奉)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전국에서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1906년 3월 6일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申乭石...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애국지사 한영육의 비. 한영육(韓永育)의 호는 백헌(白軒)이며, 자는 낙삼(樂三)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시조 삼한삼중대광문하태위(三韓三重大匡門下太尉) 한난(韓蘭)의 31세손으로 청주한씨 울진 입향조인 한위(韓緯)의 15세손이다. 조부는 한재린(韓在麟)이며, 부친은 한필석(韓弼錫)이다. 1992년 8월 15일 정부에서 고인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서 성황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태재 성황신 이야기」는 수곡리에 위치한 한태재 성황신과 지나가던 말 그리고 관찰사와 관련된 신이담 유형의 민담이다. 성황당 앞에서 말이 움직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관찰사가 한태재 성황신에게 정중히 예를 올리고 출발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와 근남면 수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 ‘한티’라는 고개 이름은 찬물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설은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부친의 명당 묘지를 찾아 마지막 9번째로 이곳에 이장하였는데, 안개가 걷히고 보니 묘 터를 잘못 잡아 한이 맺힌 곳이라 하여 ‘한티재’라 불렀다 한다. 남쪽에는 천축산이 있...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草亭)...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총 24개 어항을 중심으로 어선이 정박하고 어획물의 양륙, 판매, 수송에 관한 설비나 저장 시설 등을 갖춘 곳. 동해에 인접한 울진군은 산업 중 수산업이 최대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울진 지방의 토산품으로 연어·대구어·문어·황어·은어·방어 등 여러 어종들이 기록되어 있다. 동해는 한난(寒暖)의 조류가 항상 유동하고 있...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일대에 설치된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685년(신문왕 5)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그 중 명주(溟州)는 북쪽으로 통천을, 서쪽으로 안동시 임하와 청송을, 남쪽으로 청하까지의 영역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울진과 평해 지역은 명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해안의 일부 중 저조위·고조위의 해안선뿐만 아니라 폭풍에 의한 해일이 미치는 범위로 모래와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지형. 해빈은 자갈해빈·모래해빈·갯벌해빈으로 나누어진다. 해빈은 파도와 해풍에 의해 모래가 운반되어 해안사구를 이루는 경우가 많으며, 모래해빈은 모래로 만들어져 주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빈을 구성하고 있는 모래의 운반과 퇴적...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신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해신당과 농신당 이야기」는 기성면 기성리에서 해신당(海神堂)과 농신당(農神堂)에 관련된 신당 유래담이다. 해신당과 농신당은 각각 위치에 따라 남소와 북소로 불리는 재실을 갖고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올리는데 해신당은 풍어와 안전을 위해 세워진 당이며, 농신당은 풍농과 안전...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해안에 있는 바위 봉우리. 해안에 바위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 모양에서 지명이 유래된 듯 하다. 공세동 해안에는 바위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데, 그 위에는 비탈진 곳에 흰모래가 있고, 노송과 2~3척 높이의 암석으로 둘러 쌓여 있다. 해안에 바위봉우리로 흰모래와 암석이 있고, 그리고 해당화와 노송 등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평해황씨 해월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해월 황여일의 문집 목판. 해월 황여일(黃汝一)[1556~1622]의 문집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은 1776년(영조 52) 후손 황상하(黃尙夏)와 이형복(李亨福) 등에 의해 명계서원(明溪書院)에서 제작되었다. 권두에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양사언(楊士彦)의 발문이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행곡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행곡 이야기」는 근남면 행곡리에 위치한 천량암과 주천대에 관련된 지명 전설이다. 원래의 지명은 천량암(天糧岩)[일명 쌀바위]의 구멍에서 아침저녁으로 쌀이 나온다고 하여 지은 마을 이름이 ‘쌀골’이었다. 그런데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1601~1673]가 주천대에서 시를 지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량암에서 쌀이 나왔다 하여 쌀고·살고 또는 미고촌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살구라 하였는데 살구를 한자로 옮겨서 행곡리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천연동(泉淵洞)·구미동(九尾洞)·천전동(川前洞)·상천전동이 통합되어 행곡리로 개편되었다. 행곡리의 동쪽에는 마을 앞을...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천연동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는 행곡1리 샘실[일명 천연동], 행곡2리 천전[일명 내압동], 행곡3리 함질, 행곡4리 구미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은 마을 앞을 흐르는 불영사 계곡천이 왕피천과 합류되고, 서쪽은 불영사 계곡과 인접하여 있으며, 남쪽은 중첩된 산맥이 수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은...
-
경상북도 울진군의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정부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나누어보거나 행정부의 활동 자체를 행정으로 보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울진군의 행정은 중앙행정이 아닌 지방행정으로, 여타 지방과는 다른 울진군만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울진군의 행정은 경상북도의 하위 조직으로서의 역할과, 울진군 지역의 인...
-
경상북도 울진군을 형성하고 있는 전체 면적 및 행정 체계.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고대로부터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1914년, 1963년, 1986년의 세 시기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1시기인 1914년은 울진군이 현재의 행정구역과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23부...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자치 규약. 조선시대 군읍 또는 향촌 사회에는 그 구성원이나 단체의 조직 체계와 운영상 갖가지 내부 규약과 각종 명부인 좌목(座目)들이 있었다. 그러한 규약에는 향규(鄕規)를 비롯하여 향약(鄕約)·동약(洞約)·계약(契約) 등이 있으며, 좌목에는 향안(鄕案)과 동안(洞案) 및 각종 계안(契案) 등이 있었다. 향규는 유향소의 조직과...
-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1945년 해방 이후 강원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울진군은 6·25전쟁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1959년 9월 11일 사라(Sarah)호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62년 11월 21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관할도가 이전되었다. 1968년 11월 2일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
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후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현풍곽씨(玄風郭氏)는 중국 관서 홍농 사람인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있다. 곽경은 송나라에서 문연각(文淵閣) 한학사(翰學士)가 되었고, 1133년(인종 11) 일곱 명의 학사들과 함께 고려에 왔다. 1138년(인종 16)에 등과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정자. 울진군 울진읍 용저동 호미봉 서쪽 산자락에 아래의 남대천변에 자리 잡은 산촌마을인 장예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호계정은 남대천을 따라 난 지방 도로변의 산록 경사지에 있다. 울진장씨 직장공파(直長公派) 문중에서 조상을 숭배하고, 종중(宗中)의 친목을 도모하며, 학문을 강의하기 위하여 1932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에 있는 산. 용저리마을 앞산이 범의 꼬리와 흡사하다 하여 호미산이라 한다. 또한, 범의 형상을 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 나올 수 있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明山)이라고도 한다. 호미산의 동쪽은 명도리가 있으며, 서쪽은 정림리가 접해 있고 남쪽에는 호월1리와 남대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은 화성리와 인접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2리에서 호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호미산 이야기」는 호월2리 용저동에 있는 호미산의 인수암(印綬岩)과 관련된 풍수 설화이다.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풍수설화의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고려의 ‘송악산신’이나 조선의 ‘삼각산신’ 등 국가에 관한 풍수 설화를 비롯하여, 명당 터에 절을 세웠다는 경주 황룡사 설화, 어머니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1396년(공민왕 19)경에 울진장씨(蔚珍張氏)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무월동·와현동·고원동과 용당동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호월리로 개편되었다. 호월리는 호월1리, 호월2리, 호월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호월리에는 전동산(全...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신라 말 고려 초에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신라 말 고려 초에는 많은 호족들이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며 지방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이러한 호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헌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려 태조가 930년에 고창[지금의 안동] 전투에서 견훤의 군대를 크게...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행해진 전통 혼인 의례. 관례를 치루고 혼인 적령기에 접어들면 친지를 통해 중매를 부탁하는 것을 의혼이라 한다.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성을 신부 측에 보내고, 이에 신부 측에서 혼례일자를 받아 신랑 측에 연길을 보낸다. 이를 울진 지역에서는 ‘의양 묻는다’고 하며, 이상을 납채라 한다. 혼례일 전날 신랑 측에서 혼서와 혼수를 넣은 함을 보내는 것을 납...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호는 치재(恥齋). 판서(判書) 홍연(洪璉)의 후손이다. 부모상에 예를 다하였다.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킬 때에 수달이 쫓겨 와서 구조를 요청하는 듯하였는데 과연 잠시 뒤에 나무꾼이 뒤를 쫓아왔다. 이때 홍상은 이 짐승은 사람에게 해로운 날짐승이 아니니 돌려보내라 일렀다. 또 꿩이 무릎 밑으로 날아들자 쓰다듬어 놓아 보냈다. 마을 사람이 그를 인...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양(南陽). 홍달효(洪達孝)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인업(洪麟業)이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 해 4월 13일 흥부 장날을 기하여 밤에 김일수(金一壽) 등 8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서 4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92년 3·1절을 기하여 독립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이...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화방동(花坊洞)과 성내동(城內洞)에서 ‘화(花)’자와 ‘성(城)’자를 따 ‘화성(花城)’이 되었다. 1515년(중종 10)경에 영양인(英陽人) 남수정(南守貞)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장동(龍場洞)·감대동(甘大洞)·범상동(凡祥洞)·성내동·...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2리 감대마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인 화성리 감대 성황당은 감대마을 초입에서 남쪽으로 난 도로변 숲 속에 있다. 화성2리 감대 성황당은 시멘트 블록을 쌓아 만든 건물로, 지붕은 골함석을 이은 맞배지붕이다. 성황당 주변은 참나무와 노송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서 옹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화수독」은 근남면 산포리 가는게[細浦]마을에서 영등 날[음력 2월 1일]에 옹기에 물을 담아서 그 물이 줄면 화재가 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점복과 관련된 신이담이다. 영등할머니는 농신(農神)이면서 풍신(風神)으로, 천계에 살고 있다가 2월 1일에 지상에 내려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1970년대 이전까지 행해졌던 임야를 불태운 자리에 일군 밭이나 그 밭에 곡식을 재배하는 농경법. 화전(火田)은 임야를 불태운 자리를 일군 밭이나 그 밭에 거름주기를 하지 않고 곡식을 재배하는 가장 원시적인 농법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불태운 초목의 재가 거름이 되므로, 조·피·메밀·기장·옥수수·콩·보...
-
울진 지역 규수들이 봄에 화전놀이를 하며 흥취를 읊은 가사. 「화전가」는 일명 「화수가(花隨歌)」라고도 한다. 화전(花煎)은 꽃을 지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꽃을 지짐으로 해서 그것을 먹으면서 놀이를 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화수(花隨)는 꽃을 따른다는 의미이니 꽃을 따라 봄을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화전놀이는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백극재의 환생에 관한 이야기. 죽었던 백극재가 환생한 것은 부처님의 은혜로 생각하여, 이것을 보답하기 위해 환생전이라는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현령 백극재는 양주 사람으로 1396년(태조 5)에 울진현령으로 부임한 지 불과 3일 만에 왜구 간길랑 일당이 쳐들어왔다. 왜...
-
신라시대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후대로 갑고(甲古)·을고(乙古)·병고(丙古) 삼형제가 있었는데, 갑고는 기성군(箕城君)[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 을고는 장수관(長水貫), 병고는 창원군(昌原君)으로 봉해져 각각 평해황씨, 장수황씨, 창원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평해황씨는 고려시대 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장수황씨는 시중(侍中) 황경(黃瓊)을, 창원황씨...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제단비. 황락(黃洛)은 후한 때의 학사로서 교지국(交趾國)[현재 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였으며, 서기 28년(신라 유리이사금 5)에 울진 평해 지역에 도착하여 신라에 귀화함으로써 우리나라 평해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조의 묘를 잃어버린 평해황씨 문중에서 169...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해. 호는 국오(菊塢), 자는 응칠(應七). 해월 황여일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황수이다. 청년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조선의 현실과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울진에 주둔하고 있던 성익현(成益鉉) 의병단에 군자금 800냥을 지원하면서 의병 활동을 격려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애국지사 황만영을 기리는 기념비. 황만영(黃萬英)은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늑결 후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향리에 주둔하고 있던 성익현(成益鉉) 의진(義陣)에 군자금 800냥을 지원하면서 의병 활동을 격려하였다. 그 후 1907년 신민회(新民會)가 창건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향리인 사동(沙銅)에 대흥학교(大興學校)...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노씨(魯氏)가 많이 살고 있던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노씨는 떠나가고 황씨(黃氏)가 남게 되자 자기들의 성씨인 황(黃)에서 황자와 그 마을에 있었다는 큰 보(堡)에서 보자를 따 황보(黃堡)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북하리면의 금강리(錦江里)가 통합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로 귀양 온 이산해에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시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평란공신으로 아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문충공의 시호를 하사받았다. 이산해는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의 조카이며 이지번의 아들이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오곡리와 기성면 황보리 유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 중다천교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고지를 발원지로 평해읍 월송리 해안으로 흐르는 지방 2급 하천으로 주류는 9㎞이고, 최대 차수는 4차수이다. 평해 남대천 하류와 황보천 하류가 인접해 있다. 조선시대 때 노씨(魯氏)가 많이 살고 있던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노씨는 떠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할아버지는 금오장군(金吾將軍)·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이고,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황유중(黃裕中)이다. 형제로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황진(黃璡)과 숭록대부삼중대광보국(崇祿大夫三重大匡輔國) 황용(黃庸) 등이 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황서의 신도비. 황서 신도비는 동일한 규모와 양식의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의 신도비와 함께 있다. 평해황씨인 황서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翼戴功勳)으로 벼슬이 금자광록대부금어대첨의평리문하시중(金紫光祿大夫金魚袋僉議評理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시호는...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해(平海). 참봉(參奉) 황성(黃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황명손(黃命遜)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빙어를 구하니 하늘이 감동하였다고 한다. 부모상 6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며 애통해 하였다고 한다. 장수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받았다. 유림에서 정부와 어사에게 효행의 행장을 올려 『삼강록(三綱錄)』에 기...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적장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과거에 뜻을 버리고 민중 속에 살면서 임선생(任先生)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호연정(浩然亭)이란 정자를 지어 활동했으며 자호(自號)를 동은(東隱)이라 하였다. 이한명(李漢明)이 호연정에 와서 “유원(劉院) 신선님 어느 해...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海月)·매월(梅月)·만귀(晩歸). 고려 충렬왕 때 첨의평리문하시중을 역임한 황서(黃瑞)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황세충(黃世忠)이고 할아버지는 성주목사 황우(黃瑀)이다.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 황응징(黃應澄)과 충무위사직(忠武衛司直) 정창국(鄭昌國)의 딸 숙부인(淑夫人) 영덕정씨(盈德鄭...
-
1997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건립된 해월 황여일의 신도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명외교에도 큰 몫을 한 해월 황여일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리고자 후손들이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해월 황여일의 생가가 있는 기성면 사동리 마을 입구 좌측의 조그만 언덕에 위치한다. 국도 7호선에서 해월헌 표지판을 바라보...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황응문(黃應文)의 아들 황연은 9세 때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여 자기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 쾌유하게 하였다고 하며, 그 후 어머니가 다시 병이 들자 노루를 잡아 그 고기를 약으로 써서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1693년(숙종 19)에 정려(旌閭)되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웃실마을에서 남쪽으로 구릉을...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에서 황연 선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황연 선생은 평해황씨 시조 황락의 후손이며 태자검교공 황온인의 17대 손으로 1595년(선조 28) 12월 20일 평해읍 오곡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7세에 효경을 읽고 8세에 소학을 통달하...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학자·효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아버지는 목사(牧使) 황우(黃瑀)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독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도를 닦으며 즐겼고, 학문을 깊고 세밀하게 연구하였다.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로 있을 때 나라에서 학문과 인품을 훌륭히 여겨...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조선 선조(宣祖)조에 출생하여 벼슬이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정인홍(鄭仁弘)이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모함하자 경상도(慶尙道)의 소수(疏首)가 되어 4차에 걸쳐 상소를 올렸다. 1620년(광해군 12)에는 사신으로 발탁되어 중국에 다녀왔다. 만년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월야동(月夜洞)에 수월당(水月堂)을 짓...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남아에서 청년까지 행하던 민속놀이. 횃불싸움에 대한 문헌기록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 상원조(上元條)」에 “충청도 풍속에 횃불싸움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중종실록(中宗實錄)』에는 혼인식 거행에서 서로 다투어 횃불 든 사람을 많이 세워 격에 맞지 않게 사치하는 폐단을 금지하기 위하여, 신분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와 북면 덕천리 사이를 흐르는 하천 위에 있는 다리. 후정리(後亭里)는 마을 뒤쪽에 정자가 있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후정교의 명칭도 다리가 소재한 후정리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길이 30m, 총 폭 11.7m, 높이 3.6m이다. 차도 폭은 10.2m이고 총 차선 수는 2차선이다. 경간(徑間) 수는 3개, 최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후당동(後塘洞)과 매정동(梅亭洞)에서 ‘후(後)’자와 ‘정(亭)’자를 따 ‘후정(後亭)’이 되었다. 1500년 경에 담양인(潭陽人) 전지인 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후당동·송정동(松亭洞)·매정동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후정리...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후망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후정리 후망 동제는 죽변면 후정리(後亭里) 후망마을에 있는 성황당에서 매년 정월 15일 정월 보름날 오전 6시에서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지내는 성황 제사이다. 죽변면 후정1리는 일명 ‘뒷당·후당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1500년경에 담양인 전지인이라는 사람이 처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황제사를 지내는 곳인 후정리 후망 성황당은 마을 남쪽에 있는 광은아파트 맞은편 야산 초입에 있다. 후정리 후망 성황당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당집 형태의 건물로, 지붕은 골함석을 이은 맞배지붕이다. 내부에 선돌 1개를 모셨다. 후정리 후망마을에서는 정...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바른 생활 습관과 정직한 마음을 가진 예의 바른 사람, 자기 주도적 탐구학습 지도를 통하여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 정보과학 기술교육을 강화하여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화 능력을 가진 사람, 교단 우선 지원의 행정을 통하여 조화롭고 쾌적한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교...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후포공설시장은 동해 어획물의 집산장이며, 울릉도 여객선을 운항하는 항구이며,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과 기성면 등지의 농산물 집하장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울진시장과 더불어 활성화 되어 있다. 1965년에 인위적으로 형성되어 지금까지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등 5일 간격으로 개장되...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스스로 실천하는 어린이, 창의적으로 궁리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생각하며 배우고 바르게 행하자’이다. 1960년 4월 1일 4학급 편성으로 후포동부국민학교가 개교하였다. 1966년 2월 7일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1985년 본관 교...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후리 망으로 고기를 잡던 곳이라 하여 후리포(厚里浦) 또는 후릿골이라 하였다.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과 예(穢)에 속하였고, 신라 진흥왕 때에는 비량현(飛良縣)에 속하였다. 고구려 때에는 근을어현(斤乙於縣)에 속하였다가 영내현(榮乃縣)에 속하였고,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어 비량현에 속하게 되었으며 무열왕 때에는 야음현(野...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서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행하는 굿. 농촌인 후포3리를 제외한 후포1리에서 후포7리까지의 어촌계의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후포리 노반계가 주관하여 별신굿을 행하고 있다. 이곳의 별신굿은 후포면 일대는 물론 울진 지역에서도 규모가 큰 행사에 해당된다. 후포리 별신굿은 3년마다 지내던 것을 15년 전부터 5년마다 지내는 방식으로 간소화...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6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동제. 후포면 후포6리는 1992년에 후포1리에서 분구되었다. 분구되기 이전에는 후포1리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이후에는 별도의 성황사를 건축하지 않은 채 마을회관에서 성주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성주제를 지내는 후포6리 마을회관은 후포1리에서 분구되던 1992년에 정부의 지원과 마을...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3리 실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동제. 후포3리 실배마을은 ‘권씨 터전에 황씨 골맥’이라 하여 두 설촌조를 동신으로 모시고 있다. 설촌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실배마을은 평해황씨 양무공파의 집성촌이다. 마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실개천을 따라 집들이 실뱀처럼 길게 들어서 있다 하여 실배마을이라 한다. 후포리...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면. 후리 망으로 고기를 잡던 곳이라 하여 후리포(厚里浦) 또는 후릿골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 기성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평해군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평해군이 울진군에 통합되어 울진군 평해면 관할이 되었으며, 1953년 1월 19일 평해면 후포출장소가 되었다. 1980년 12월 1일 평해면이 읍(邑)으로 승...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생활 습관과 정직한 마음을 가진 예의 바른 사람, 자기 주도적 탐구학습 지도를 통하여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 정보과학 기술교육을 강화하여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화 능력을 가진 사람, 교단 우선 지원의 행정을 통하여 조화롭고 쾌적한 교육환경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생활을 실천하는 어린이, 새로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는 어린이, 특기와 소질을 키워가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나날이 새로워라’이다. 1939년 10월 30일 평해공회당의 시설을 이용해 개교하였다. 1940년 5월...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어항. 후포항 인근에는 선박 모양으로 지은 후포수산업협동조합, 후포수협수산물유통센터, 어판장, 후포어시장, 횟집 등이 있으며, 수산물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영업 중에 있다. 후포항 뒤쪽 등기산[64m]에는 1968년부터 가동된 후포등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후포등기산공원이 있다. 후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는 울릉도까지 운항하는 여...
-
1677년 울진현령 오도일이 만든 향촌 교화를 위한 절목. 평해 소곡서당의 건립과 관련하여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은 기존의 사설 서당이 누추하여 증설을 지원하였고 향촌을 교화하기 위한 조항과 서당에 관한 벌칙 조항 및 여러 제재 조항을 만들었다. 울진과 평해의 문풍 쇠잔과 인재의 고갈을 타개하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들게 되었다. 「훈사절목」은 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흥부시장은 1919년 4월 13일 흥부장날 일어난 4·13 만세사건으로도 유명한 시장이다. 또한 흥부시장은 조선 말기 보부상들이 경상북도 봉화와 안동 등의 내륙 지방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생선, 미역 등 해산물과 물물교환 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말기에 상인 상호간...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과 비석. 흥부장터 기미 만세기념탑은 1995년 8월 15일 흥부장터에서 있었던 기미 독립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흥부장터 기미 만세운동은 기미 3·1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될 때인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흥부장터에서 있었던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으로, 전병한·남병표 등 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KT 울진지점. KT는 시내 전화,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과 해외에 총연장 760만 8551㎞에 이르는 광케이블을 확보하는 등 국가 기간 사업자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KT 울진지점은 울진군민에게 편리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여 편익 증진과 주민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자 설립...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 있는 KT&G 산하 울진 지역 지점. 울산군 지역에서 담배, 인삼 제품, 건강보조 식품, 의약품의 제조·판매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꾀하는 데 있다. KT&G는 1899년 8월 궁내성 내장원에 삼정과를 설치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1948년 11월 재무부에 전매국을 설치하였고, 1952년 전매청으로 개편한 이래,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