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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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집필자 | 권만용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바위의 명칭 유래와 특징.
[개설]
경기도 양주시에서 유래가 전해지는 바위로는 빗접바위·갓바위·개구리바위·농바위·마귀바위·배맨바위·벼락바위·선돌바위·선유동천바위·신암바위·애경바위 등이 있다.
[빗접바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산97-1번지 보메기 북서쪽에 있는 바위이다. 큰 바위가 쪼개져서 빗접을 세운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수원 백씨 각처 선농기(水原白氏各處先壟記)가 있는데, 전국 각처에 있는 수원 백씨 선영의 위치를 설명한 것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 백천철(白天鐵) 이래의 수원 백씨 주요 인물에 대한 사적도 정리되어 있다. 사적비는 1870년(고종 9)에 세워졌다.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와 하얀 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빗접바위는 밤톨이 붙었다가 떨어진 것처럼 생겼다 하여 밤바위, 즉 율암(栗巖)이라고도 한다. 또한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밤에 감악산에서 던진 돌이라고도 하고, 밤에 땅에서 솟아난 것이라고도 한다.
[갓바위]
양주시 은현면 입암리 343번지 일대 망당산 북쪽 기슭에 있는 바위 혹은 그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470㎝, 둘에 850㎝로 마치 관을 쓰고 있는 듯한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갓바위라 불리는 지역으로부터 북쪽에는 ‘흔터’로 불리는 빈터가 있는데, 여기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갓바위 북쪽에 어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어느 늙은 승려가 시주를 하러 오자 부자는 거지 등살에 못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 승려는 거지를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귀가 솔깃해진 부자가 방법을 묻자, 승려는 저 산에 있는 갓바위의 갓을 벗겨 버리면 소원대로 될 것이라고 한 뒤 사라졌다.
부자는 승려의 말대로 갓을 벗겨서 고개에 버렸는데, 그 후 부자는 망하고 동네까지 폐허가 되니 거지는 다시 찾아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흔터에는 기왓장만 뒹굴고 있다. 이때부터 고개 이름을 갓바위고개라 하고, 동네 이름 또한 갓바위 즉 입암(笠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일설에는 어느 장사가 갓을 벗겨서 구암리 연자방아로 썼었는데, 지금은 신산리에 있는 남면사무소 입구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주시에서 갓바위라는 땅 이름은 은현면 하패리, 남면 상수리, 장흥면 울대리에서도 확인된다.
[개구리바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데 마치 개구리[혹은 거북이나 자라]처럼 생긴 바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바위가 턱골의 일부인 뒤터골을 내려다보며 집어삼키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이 마을에서는 큰 부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바위는 개구리 모양을 한 암수바위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논 가운데 있다. 그리고 개구리바위를 건드리거나 옮기면 재앙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농바위]
양주시 봉양동 산15번지 치마바위 옆에 있는 바위인데, 장롱의 반닫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산88-3번지에 있는 농바위는 둘레가 19.6m, 너비 동서 방향 4.4m, 남북 방향 6.1m, 높이는 앞면이 5.7m, 뒷면이 3.7m인데, 어느 스님이 이 바위에 옷을 걸어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둘레에 움푹 팬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후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갈아놓은 것이다.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66-5번지에 있는 농바위는 장롱처럼 생긴 바위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귀바위]
양주시 마전동 산93-1번지 내촌 남쪽[안말 남쪽] 천보산에 있는 바위이다. 의정부시 녹양동과 경계를 이루는 능선에 있는데, 마귀할미가 이 바위를 치마에 담았다 놓았다 하여 마귀바위라고 부른다. 혹은 마치 아귀처럼 생겼다 하여 아귀바위라고도 불린다. 원래 불곡산에 있던 아귀바위를 천보산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부터는 부(富)가 모두 아귀바위한테 먹혀 마전리에 부자가 나지 못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배맨바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65-5번지 송추골 남동쪽 대봉[502m], 즉 여성봉에 있는 바위이다. 옛날에 비가 많이 와서 산봉우리까지 물이 찼을 때, 배를 봉우리 부근의 이 바위에 매어 두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 전체의 생김새가 마치 여성의 음부와 같다고 하여 여성바위라고도 한다.
[벼락바위]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밭들 남쪽 도락산 자락에 있던 바위이다. 옛날에 한 여인이 아이를 바위 밑에 놓고 김을 매는데, 큰 구렁이[지네라고도 함]가 나타나서 아이를 해치려 하였다. 이때 벼락이 쳐서 바위를 갈라지게 하고 구렁이를 죽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한편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162-1번지와 광적면 효촌리 산84번지에도 같은 이름의 바위가 있는데, 모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여러 개로 쪼개진 바위라는 뜻이다.
[선돌바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288-8번지 뒷들 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서있는 돌’이라는 뜻에서 선돌, 즉 입석(立石)으로 불렸던 이 바위는 선돌할머니가 돌을 쌓아 만든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선녀가 이 바위에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는 옛 노인의 말에 따라 선녀바위라고도 불리며, 혹은 신선이 서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신선바위라고도 한다. 선암리라는 마을 이름은 이 선돌바위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유동천바위]
양주시 유양동 산43-1번지 유양초등학교 서쪽, 백화암으로 올라가는 산길 옆 계곡에 있는 바위이다. 선녀가 내려와 미역을 감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고, 바위에 ‘선유동천(仙遊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신암바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 정상 부근에 있는 바위로 추정된다. 고려 말 공양왕 때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를 지낸 충신 남을진(南乙珍)이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태조의 부름에 따르지 않고 감악산 남선굴(南仙窟)에 은거하면서 망국의 한을 풀기 위해 개성을 향하여 통곡하던 바위라고 한다.
[애경바위]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밭들 동쪽, 항동[항골] 뒤 도락산 자락에 있는 바위이다.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큰 것은 수바위이고 작은 것은 암바위라고 한다. 바위에는 홈이 파져 있다. 옛날 어떤 장수가 올라가면서 밟은 것이라는 발자국과 앉은 자리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특히 이곳에는 아기를 못 낳는 여인이 이 애경바위에 실을 묶어 놓고 기도를 하면 아기를 잉태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