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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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石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양주군 광적면 광석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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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광적면 광석리에서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로 개편 |
법정리 | 광석리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 |
성격 | 법정리 |
가구수 | 817가구 |
인구(남,여) | 2,155명[남자 1,155명, 여자 1,000명] |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광석리(廣石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곳의 밭 1,000여 평에 돌이 한 자[尺] 깊이로 깔려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마을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들·나븐들이라 부르던 것이 ‘너븐’과 ‘너븐돌’과 ‘넓은돌’을 거쳐 ‘광석(廣石)’이라는 한자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나 현지의 지형을 살펴볼 때, 돌은 없고 넓은 들만 있는 것으로 보아 넓은들을 한자로 잘못 옮겨 광석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광석리라는 땅 이름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18세기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이다. 『호구총수』에는 광석면(廣石面)에 소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석’이라는 땅 이름은 18세기의 문헌인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에서 이미 확인된다. 이후 『해동지도(海東地圖)』[1760]·『호구총수』[1789]·『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42]·『대동지지(大東地志)』[1864]·『양주목읍지』[1871]·『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1888]·『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1899]·『양주읍지(楊州邑誌)』[1899]에도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마을을 중심으로 광석면 혹은 광석리라는 이름이 일찍부터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석면 소재의 이패리·삼패리와 백석면 소재의 단촌리·연평리 일부 지역을 합하여 광석리라 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약간의 구릉지가 있지만 거의 모두 평야 지대이다. 남쪽에 신천의 지류가 흐른다.
[현황]
광석리는 양주시 광적면의 남쪽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817가구에 2,155명[남자 1,155명, 여자 1,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광석1리부터 광석2리까지 2개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광릉말[광릉동(廣陵洞)]·나븐들·뒷골말·뒷들[뒤뜰, 후평리(後坪里)]·민재[문재]·살푸쟁이·아랫광릉말·양지말·웃광릉말·음지말·장성리(長性里)·장수들[장수평(長水坪)]·지섬[지도(芝島), 지산동(芝山洞), 지초산] 등이 있다. 지섬에는 농공 단지가 들어서 있다. 현재 광석리에는 광적면의 유일한 중학교인 조양중학교와 양주시 문화 예술의 요람인 양주문화예술회관이 있다. 현재 가석지구 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옛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동쪽은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서쪽은 광적면 우고리, 남쪽은 백석읍 오산리, 북쪽은 광적면 석우리와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