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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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學生親睦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창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한 학생들의 친목 단체.
[설립 목적]
양주학생친목회는 매년 하계 방학을 이용하여 양주군 각지를 순회하는 강연회 개최를 통해 지역 청년들을 계몽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1922년 경기도 양주군 출신으로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안학수와 최범주의 발기로 창립되었으며 회장으로 장연채(張然采)가 선출되었다. 당시 회원은 80여 명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양주학생친목회는 결성 이후 순회강연단을 조직하고 하계 방학 때마다 양주군 각지를 순회하면서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는 양주공립보통학교, 동두천공립보통학교 등 당시 양주군 내 각 지역에 소재하는 보통학교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첫 강연회는 1922년 8월 6일 양주공립보통학교에서 열렸으며 회장 장연채가 양주학생친목회의 소개와 함께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어 박창서가 ‘청년남녀를 무차별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안학수가 ‘살냐면’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으며 최범주는 회의 운영 방침에 관하여 설명하고 김태한과 신석휴는 주악(奏樂)을 연주하였다. 강연회 축사를 위해 양주군수 강원달(康元達)과 지역 유지들이 참석했으며 군민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 양주학생친목회의 순회강연 활동은 1920년대 중반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여흥을 위해 축구 시합도 열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서울에 유학하고 있는 청년 학생들이 상호간의 친목 도모와 함께 3·1 운동 이후 펼쳐지고 있던 사회 운동에 부응하여 결성한 양주학생친목회는 지역 청년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계몽 활동을 통해 지역 발전에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