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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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元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명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인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원세(尹元世)[1890~193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 거주하면서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 내에 야학당을 설치하여 생도들에게 일본 배척 사상을 고취시켰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자, 윤원세는 3월 15일 고향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에서 이윤의(李允儀)와 함께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의정부로 진출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저지되었다.
1923년 11월 27일 금오청년회(金梧靑年會)와 부인회를 조직하여 부락 갱생·부업 장려 등 농촌 계몽 운동과 성미(誠米) 운동에 앞장섰다. 1936년 8월 14일에는 멸왜(滅倭) 기도와 특별 모금 운동을 벌였다. 1938년 4월 황해도 신천에서 열린 천도교 전국 교구장 대표 특별 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고 4월 25일 신천경찰서원 두 명에게 이끌려서 귀가하였으며 1939년 5월 2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