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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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仁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만용 |
[정의]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활동 사항]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대가 양주를 포함하여 경기도와 강원도, 황해도 등지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조인환은 이들과 연대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4일 조인환 의병 부대는 경기도 양근[현재의 양평]의 군청과 세무서, 우편물 취급소 등을 습격하여 일본인 가옥을 파괴하고 소각하였다. 이에 놀란 우편물 취급소의 일본인 소장은 가족과 함께 도주하였다. 그리고 뒤 이어 출동한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1월 허위(許蔿)의 13도 연합 의진의 서울 진공 작전이 실패한 뒤, 의병 부대가 임진강 유역으로 이동하자 조인환 부대를 비롯한 임진강 유역 의병들이 서로 연락을 취해 연합 항전 체계를 수립하고 양주와 파주, 적성 등지에서 항일 의병 전쟁을 전개하였다. 이때부터 이 의병 부대는 군표(軍票)를 발행하면서 군정을 베푸는 한편, 항일전을 계속 추진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허위가 영평(永平)에서 체포되자 임진강 연합 의병은 와해되었고, 이후에는 각 부대 단위로 독자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