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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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幼稚園 |
영어의미역 | Yangsan Kindergarte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안경식 |
성격 | 사설 유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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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0년대 |
설립자 | 양산부인회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던 사립 유치원.
[변천]
1923년 2월 8일 양산 유지들의 발기로 청년회관에서 양산유치원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4월 23일 양산청년회에서 양산유치원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전병건의 사회로 시작된 이 강연회에서 권득구는 ‘아동심리’, 김철수는 ‘아동교육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양산유치원의 재정은 양산의 유지들이 양산청년회에 희사한 약 39,669m²의 땅을 바탕으로 마련하였다.
서울 중앙보육학교에서 내려온 2명이 교사로 일했다. 그 중 1명인 여성운동가 박차정은 동래 출신으로 독립운동가인 김약수·김두봉과 친척이었고, 김원봉의 아내였다. 양산유치원이 경비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되자 1927년 4월 양산유치원을 살리기 위한 부흥회를 열었고, 같은 해 5월 양산청년회가 양산유치원 유지회 창립총회를 열어 6월에 인가를 받았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1927년 5월 25일에 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그 이전에 개원 준비를 위해 양산유치원 유지회가 있었다고 한다. 양산유치원 개원 시기는 기사마다 차이가 있어 『조선일보』에는 1926년, 『동아일보』에는 1927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개원할 때 정원은 60명이었는데, 8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1927년 6월 18일과 11월 26일에는 모자회(母姉會)를 가졌는데, 원장인 김철수와 보모 서성실이 유치원 및 유아교육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1928년 3월 15일에는 아동 가극회를 열어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그 뒤 양산유치원이 재원 부족으로 곧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하자 1936년 지방 인사 좌담회를 개최하여 유치원 부흥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며, 1939년에 다시 개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