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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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철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군에 개설되었던 시장.
[개설]
영월의 장시(場市)는 1770년 당시 읍내장, 신천장, 녹번장, 연평장 등 4개가 있었고, 1830년에는 부내장과 토교리장으로 축소되었다. 1915년 다시 영월시, 주천시, 강림시, 옥동시로 개편되어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영월읍의 장시는 광복 이후 중앙시장과 서부시장 같은 상설 시장이 개설되면서 폐쇄되었지만, 녹전시장과 구래시장, 마차시장, 주천시장 등이 등장하면서 1960년 이후까지 명맥을 이어 갔다.
[건립 경위]
영월의 장시는 수로 교통에 의지하여 형성되었는데, 영월이 남한강 상류 뱃길의 종착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영월은 조선 시대 한양과 수도권에서 생산되는 물자의 최종 종착지이자 내륙에서 생산되는 물산이 모이는 곳이었다.
[변천]
영월의 장시는 1770년 당시 읍내장[5·10일], 서면의 신천장[1·6일], 상동의 녹번장[3·8일], 연평장[4·9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830년에는 부내장[5·10일]과 토교리장[1·6일] 2개로 감소하였으나, 1915년에 이르러 다시 4개로 증가하였다. 당시 장시는 영월면의 영월시[5·10일], 주천면의 주천시[1·6일], 수주면의 강림시[4·9일], 하동면의 옥동시[1·6일]였으며, 최소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광복 이후 영월읍의 발전과 함께 중앙시장과 서부시장 등 2개의 상설 시장이 개설되면서 정기 시장은 폐지되었고, 대신 정기 시장으로는 상동읍의 녹전시장과 구래시장, 북면의 마차시장, 주천면의 주천시장 등 4개로 변화하여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1830년에 발간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영월의 장시로 부내장과 토교리장을 언급하였다.
[현황]
1830년 당시 강원도 영월부에는 부내장[5·10일]과 토교리장[1·6일]이 개설되어 있었고, 거래되는 주요 품목은 면포·면화·마포·연초·과물 등이었다. 부내장은 일제 강점기 영월시로 계승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상설 시장이 들어서면서 폐지되었고, 토교리장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