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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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澄曉國師 |
이칭/별칭 | 절중(折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방기철 |
[정의]
남북국시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있던 흥녕선원에서 활동한 승려.
[개설]
징효국사(澄曉國師)[826~900]는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흥녕선원(興寧禪院)을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師子山門)의 중심 사찰로 성장시켰다.
[활동 사항]
징효의 승명은 절중(折中)으로, 826년 지금의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인 휴암(鵂嵓)에서 아버지 선당(先幢)과 어머니 박씨(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이던 832년에 출가하여 진전법사(珍傳法師)에게서 배웠고, 840년 영주 부석사(浮石寺)에서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열 가지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십현연기설(十玄緣起說)을 공부하였다.
징효는 844년 장곡사(長谷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중국에서 남천(南泉)에게 법을 받고 돌아온 도윤(道允)이 금강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자인(慈仁)의 문하에서 16년 동안 선의 이치를 공부하였다. 882년 곡산사(谷山寺) 주지로 천거되었지만 사양하고 사자산에 머물렀다. 헌강왕은 흥녕선원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주었고, 정강왕도 징효를 적극 지원하였다. 진성여왕은 국사로 예우하면서 보좌를 청하였지만 거절하였고, 900년 3월 19일 제자들에게 불법에 정진할 것을 당부한 뒤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징효국사는 화엄학의 무애법계연기(無碍法界緣起)에 입각하여 선의 세계에 들어갔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선리 화엄학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것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여종(如宗)·홍가(弘可)·이정(理靖)·지공(智空) 등 1,000여 명의 제자가 징효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상훈과 추모]
징효국사의 탑호는 보인(寶印)이다. 944년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산5-3에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징효대사 보인탑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