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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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敏道 |
영어공식명칭 | Um Mindo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추모 시기/일시 | 1708년 - 엄민도 조정으로부터 정려되고 효자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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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84년 - 엄민도 효자각 보수 |
추모 시기/일시 | 2004년 6월 - 엄민도 효자각 이전 |
출생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거주|이주지 | 방절리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영월(寧越)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효자.
[가계]
엄민도(嚴敏道)[?~?]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엄민도는 조선 숙종(肅宗) 때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엄문삼절(嚴門三節) 중의 한 사람이다. 엄민도는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네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애통해하면서도 예의범절이 마치 어른과 같았다고 한다.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도 지극히 정성스러워서 잠시라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밤에는 어머니의 잠자리를 살피고 이른 아침에는 문안을 거르지 않았다. 항상 맛난 음식이 떨어지게 하는 법이 없었으며,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간병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이후 엄민도는 어머니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에는 하늘에 정성으로 기도하여 세 번이나 회생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죽만 먹으며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엄민도의 효행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엄민도가 열두 살 때 어머니가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자 제천으로 약을 구하러 갔는데, 저물녘 험준한 검각치(劒閣峙)에 당도하자 산과 같이 큰 호랑이가 나타나 엄민도를 등에 태우고 순식간에 제천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엄민도가 약을 구하여 나오니 호랑이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엄민도를 등에 태우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어 어머니에게 탕약을 지어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물가로 가니 잉어가 스스로 얼음 위로 튀어 올라왔고, 어머니가 꿩고기를 원하자 꿩이 스스로 집 안으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한편, 1685년(숙종 11) 7월 하순에 송시열(宋時烈)이 「육신사기(六臣祠記)」를 지었는데, 여기에서 “이 기문을 나에게 청한 사람이 호장 엄흥도의 종인(宗人) 엄민도”라고 하였다. 1685년 강원도관찰사 홍만종(洪萬鍾)·도사 유세명(柳世鳴)·영월군수 조이한(趙爾翰)이 영월의 선비 엄민도 등 다섯 명을 초청하여 노산군(魯山君)의 묘우(廟宇) 보수와 육신사(六臣祠) 건립을 추진하였는데, 엄민도가 한성으로 올라가서 송시열을 만나 육신사 건립의 연유를 설명하고 기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던 것이다.
[상훈과 추모]
1708년 엄민도의 효행을 기려 정문(旌門)을 내리고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효자각은 1984년에 보수하였고, 2004년 6월 영월읍 방절리 459-5에 이전하여 입각(立閣)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