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2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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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壬辰義兵將 高宗慶 倡義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26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용건 |
건립 시기/일시 | 2019년 -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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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262 고씨동굴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고종원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520㎝[높이]|60㎝[너비]|60㎝[두께] |
[정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종원을 기리기 위한 비.
[개설]
고종원의 9세조 인비(仁庇)는 고려 시대 훈신으로 화전군에 봉하여졌다. 아버지 안릉참봉 고광후(高廣後)는 횡성의 명문세족으로 제천, 원주를 거쳐 김삿갓면 진별리로 이주하였다. 영월의 입성조인 고광후는 다섯 형제가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셋째인 고종원(高宗遠)과 고종경(高宗慶), 고종길(高宗吉) 형제는 영월에서 창의격문을 지어 통문을 돌렸다. 영월로 모여든 의병들은 문무와 재예가 출중한 고종경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강원도관찰사 유영길(柳永吉)이 소식을 듣고 고종경을 불러 “원주 흥원진(興原津)의 군세가 미약하여 군대를 파견하려 하는데, 장수가 되어 통솔하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한 군졸들이 어둠을 틈타 도주하자 추포하기 위하여 약속된 기일을 어겼다. 고종경은 군율 위반죄로 영월 관아로 압송되어 주민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권두문 군수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건립 경위]
영월문화원은 구국의 일념으로 평생을 살다 간 고종경 의병장의 충절과 항일 의병의 역사를 기리기 위하여 2019년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하였다.
[위치]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262번지 고씨굴 공원 일원에 있다.
[형태]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는 탑신의 높이 520㎝, 너비 60㎝, 두께 60㎝이다.
[금석문]
임진의병장 고종경 창의비는 탑신부 앞면에 한자로 ‘임진의병장고종경창의비’라고 새겨져 있고, 기단부 앞면에는 고종경의 일생과 영월 임진의병의 의미를 기려 비석을 세운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