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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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士康 |
영어음역 | Choe Sagang |
이칭/별칭 | 경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최재(崔宰)이다. 아버지는 참찬의정부사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이며, 어머니는 시중 이숭(李崇)의 따님이다. 위로 최사위(崔士威)·최사의(崔士儀)·최사규(崔士規) 등 세 명의 형과, 최사용(崔士庸)·최사흥(崔士興) 등 두 명의 동생이 있다.
[활동사항]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으며, 1416년(태종 16) 2월 중군경력(中軍經歷)으로 재직 중 장녀가 태종의 아들인 함녕군(諴寧君)에게 출가하면서 현귀하게 되어, 곧 지사간원사에 초천(超遷)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9월에는 다시 당상관에 오르면서 승정원동부대언에 발탁, 우부대언을 거쳐 다음해 12월에 예조참의에 임명되었으며, 1420년 3월에 경기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421년(세종 3) 경상도도관찰사에 전임되고, 이듬해에는 중군동지총제가 되었다.
1423년에 병조참판에 오른 이후 1431년(세종 13)까지 좌군동지총제·호조참판·대사헌·병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병조판서에 승진하고, 세종의 총애가 계속되는 가운데 1434년 1월에 장남인 봉례랑(奉禮郎) 최승녕(崔承寧)의 딸이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에게 출가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의정부참찬에 개수되었다. 1437년 2월에는 둘째딸이 세종의 여섯째 금성대군(錦城大君)과 혼인하였다. 1441년(세종 23)에 의정부우찬성에 올랐으며, 이듬해 판이조사를 겸직하였고, 곧이어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경절(敬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