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30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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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均宣武功臣敎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상갈동 8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성호 |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가 원균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개설]
1592년(임진년)과 1597년(정유년)에 발발한 두 차례의 전란이 수습된 뒤 선조(宣祖)[1552~1608]는 국란의 위기 속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직접적으로 무공을 세웠거나 명에 병량 주청사(兵糧奏請使)로 다녀온 이들 가운데 공을 따져서 녹훈한 공신이다. 이들 공신에게는 왕명 문서인 공신 교서가 내려졌다. 원균 선무공신교서는 1604년(선조 37) 10월 선조가 원균(元均)[1540~1597]에게 내린 공신 교서이다. 1992년 4월 20일 보물 제11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공신 교서는 왕명 문서 가운데 문체나 재료 등에 있어 최고의 격식을 갖춘 문서로서 사전에 공신 개개인에 맞는 문장을 별도로 짓게 하고, 교서 제작에 쓰일 비단 등도 별도로 마련한 뒤 서사를 맡은 관원이 정서하였다. 최종적으로 왕의 인장인 보인(寶印)을 찍어 발급하였다.
[형태]
조선 시대 공신 교서는 모두 두루마리 형태의 권축(卷軸)으로 제작되었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 교서는 정형적인 서식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문서의 첫 부분에 ‘교(敎) 수취자 성명 서(書)’를 적은 다음 ‘왕약왈(王若曰)’ 이하에 공을 치하하고 공신으로서 받게 될 상전과 특권을 적었다. 원균 선무공신교서의 첫 부분에는 “교(敎)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증 효충장의적의협력 선무공신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원릉군 원균 서(書)”라고 적혀 있다. 원균은 이순신(李舜臣), 권율(權慄)과 더불어 선무 1등 공신에 녹훈되었으므로 본인을 비롯하여 가족에게 승급 혜택이 주어졌고, 상전으로 노비 13구, 전 150결, 은자 10냥, 표리 1단, 내구마 1필을 하사받았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선무공신교서의 원본은 7점으로 확인된다. 임진왜란, 선무공신 연구 및 공신 교서 자체에 대한 연구를 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