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사열이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462
한자 沙熱伊縣
영어음역 Sayeori-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정의]

삼국 시대 제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개설]

사열이현(沙熱伊縣)은 오늘날 제천시 청풍면, 금성면, 한수면, 수산면 등에 해당한다. 고을의 중심 부분은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청풍호에 수몰되었다. ‘사열이’라는 지명은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에서 온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서늘하다’, 또는 ‘차다’는 뜻에서 나온 이두식 표현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내제군’ 항목에는 청풍현에 대하여 “본디 고구려 사열이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까지 이어진다[本高句麗沙熱伊縣 景德王改名 今因之]”라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청풍현 항목에는 “본래 고구려 사열이현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내제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충숙왕 4년에 고을의 승려인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자 지군사(知郡事)로 올렸다. 월악산과 풍혈이 있다[淸風縣本高勾麗沙熱伊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柰隄郡領縣. ……忠肅王四年因縣僧淸恭爲王師陞知郡事. 有月嶽 有風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제천시의 청풍면, 한수면, 수산면 지역을 고구려가 점유하던 당시 이름으로, 757년(경덕왕 16) 청풍현으로 개명하기 이전까지 사용하였다. ‘사열’은 ‘청(淸)’과 같은 뜻이다. 이 경우 청풍강변의 북쪽에 있었고 찬물과 바람이 솟구치던 ‘수혈(水穴)’, ‘풍혈(風穴)’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변천]

757년(경덕왕 16) 한화 정책(漢化政策)에 따라 삭주(朔州) 관내의 청풍현으로 이름을 바꾸어 내제군에 속하도록 하였다. 1010년(현종 9) 감무(監務)를 두었고, 1317년(충숙왕 4) 고을 출신의 승려 청공이 왕사가 되면서 군으로 승격하여 수령으로 지군사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년) 왕비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켰다가, 1894년(고종 31) 행정 구역 개편 때 군으로 낮춘 뒤 1914년 제천군에 합쳐졌다.

[의의와 평가]

청풍 지역의 지역적 정체성을 잘 드러낸 최초의 지명으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제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좋은 의견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4.09
류** 『제천군지』에 “사열이(沙熱伊)․성잉이(省仍伊)․성열이(省熱伊)로 전(轉)하고 다시 ‘량(凉)’에 의(義)에 의(依)하여 ‘청풍(淸風)’으로 의역(意譯)된다.” 라고 사열이현과 성열현은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으로 악성 우륵 탄생한 성열현으로 고증하였다. 2012.04.07
류** 정호완의 『사열이(沙熱伊/省熱)의 형태와 의미』에 “사열이의 또 다른 성열은 사열이와 마찬가지로 살-을 표기한다. 성(省)은 살필 성인데 살피-살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사열이나 성열의 열(熱)은 앞의 글자를 열의 리을(ㄹ)로 끝나게 읽는 말음첨기로 보면 부리가 없다. 살피는 이정표 혹은 두마을의 경계표지를 이루는 말로 사이 공간과 경계표지를 이룬다.” 2012.04.07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