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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463
한자 統一新羅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정의]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 신라가 존속했던 시기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통일 신라 시대의 역사]

제천 지역은 6세기 중엽 진흥왕의 척경 정책으로 충주와 함께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제천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신라·고구려의 접경지로 삼국간 세력 쟁탈전이 벌어졌던 전략상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통일 신라 시대 신라가 경덕왕 16년(757)에 9주와 5소경을 설치하면서 제천 지역은 지금의 춘천인 삭주(朔州)에 속하게 되었다. 또한 고구려에서 사용하였던 내토군이라는 명칭을 내제군(奈堤郡)으로 개칭하고, 영현으로 청풍현(淸風縣)적산현(赤山縣)을 두었다. 청풍현사열이현(沙熱伊縣)을 개칭한 것이다.

이후 후삼국 시대에 제천 지역은 궁예 휘하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당시 궁예마진국은 철원을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제천과 인접한 북원[원주] 일대는 궁예가 승려로 활동한 세달사(世達寺)가 위치한 곳일 뿐만 아니라 그가 의탁한 양길(梁吉)의 근거지였다. 이곳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궁예는 강원도와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고 899년에는 양길 세력을 완전히 흡수하였다. 당시 양길은 국원[충주]을 비롯한 궁예 세력의 남쪽 지역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 충주를 비롯한 제천 지역도 궁예의 세력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통일 신라 시대의 문화재]

제천 지역의 통일 신라 시대 유적은 유물 산포지를 제외하면 많지 않다. 2004년 충북대학교에서 조사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따르면 17개의 유적이 확인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제천 장락사지·제천 장락사칠층 모전석탑·송계리 월광사지 등 불교 유적과 성산성·작성산성·와룡산성·저산성 등 관방 유적, 방학리 경순왕 이궁지·연곡리 고분 등이 있다.

이 중 특이한 것은 신라의 멸망과 관련된 유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 연기 설화를 지닌 덕주사와 마애불,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뒤 거처했다는 이궁지(離宮址)가 그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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