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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02
한자 堤川神勒寺三層石塔
영어음역 Jecheon Silleuksa Samcheungseoktap
영어의미역 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Silleuksa Temple in Jecheon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803-5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장준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6월 23일연표보기 -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 보물 제129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 보물 재지정
복원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803-5 지도보기
성격 석탑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약 4m
소유자 신륵사
관리자 신륵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

[개설]

신륵사는 582년(진평왕 4)에 창건되었으며, 문무왕원효대사가 중수하고 조선 시대 때 무학대사사명선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지만 이를 증명할 정확한 기록은 없다. 현재 경내에는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제천 신륵사 극락전[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132호]과 괘불대, 산신각, 국사당,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이 완전한 전형적인 석탑이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여러 장의 판석을 쌓아 지대석을 조성하였고, 그 위에 상층·하층의 기단부를 두었다. 상륜부는 끝 부분인 수연과 용차가 파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완전하게 남아 있다. 1981년에 해체, 복원되었으며 1999년 6월 23일 보물 제129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말기의 석탑 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판단되고, 신륵사의 창건 시기와 역사를 대변해 주는 유적으로 평가되나, 석탑 자체의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위치]

제천에서 청풍 방면 지방도 82호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 입구를 지나 청풍 방면으로 1시간 정도를 남쪽으로 진행하면, 수산면을 지나 충주 방면 국도 36호선에 진입한다. 계속 나아가다가 수산2리 시내버스 정류장 앞에서 좌회전하면 월악리로 진입하는 월악길로 들어서게 된다. 신륵사월악리 마을에서 우회전하여 월악산 등산로 길을 따라 올라가는 마지막 자동차 정류장 근처에 있으며,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제천 신륵사 극락전 전정 2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층은 4매의 면석으로 이루어졌다. 각 모서리와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였으나 서쪽 면석에는 탱주를 모각하지 않았다. 갑석은 3매로 이루어졌고, 윗면에는 2단의 괴임대를 만들어 놓았다. 상층 기단의 갑석은 3매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탑신부의 경우,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 1석으로 조성하였는데, 각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옥개받침은 4단이며 윗면에는 1단씩의 탑신 괴임을 조성하였다.

탑신부는 1층에서 2층으로 가면서 비례가 급격히 줄어들고 옥개석의 낙수 면은 전각에서 약간 반전되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보륜, 보개, 찰주 등이 남아 있다. 상륜부까지 남은 석탑의 예는 매우 드문 편이고 단아한 기풍을 띤다. 석탑의 높이는 약 4m로, 본래 탑 전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는데 1981년에 탑을 해체, 복원하였다.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은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사지의 삼층 석탑과 크기, 모양, 양식 등이 비슷하여 나말 여초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황]

1981년 해체 복원 때 기단 내부에서 흙으로 빚은 소형 탑 108개와 금동편 1점, 동편 1점의 사리함편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중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린 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갑석에 부연이 없는 점 때문에 그동안 고려 전기의 탑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볼 때 통일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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