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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45
한자 堤川淸風望月山城
영어음역 Cheongpung Mangwolsanseong
영어의미역 Cheongpung Mangwall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사열이산성,성열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6-3|읍리 산8-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4년 6월 24일연표보기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 지도보기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읍리 산8-2
성격 산성
양식 석성
크기(높이, 길이, 둘레) 3.4m[높이]|502m[둘레]
관리자 제천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기념물 제93호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읍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축 산성.

[개설]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부에 있으며 전체 둘레는 495m 가량이다. 1994년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산성의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으나 축조 시기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94년 6월 24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둘레가 250칸으로 석축의 벽이 곳곳에 남아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 후 『문화유적총람』에서는 망월산성을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성이라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671년(문무왕 13)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을 토대로 하여 망월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사열’은 청풍의 고구려 때 지명인 ‘사열이현(沙熱伊縣)’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른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청풍 망월산성이 있는 망월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성황산(城隍山)이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호서읍지(湖西邑誌)』에 보이는 태산(台山)으로 『충청도읍지』의 ‘고성지(古城址)’, 『호서읍지』의 ‘사열고읍(沙熱故邑)’이라는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제천 청풍 망월산성이 ‘사열산성’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단정하기 어렵다.

[건립 경위]

제천 청풍 망월산성의 축조 시기나 사용 기간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때 드러난 축조 방법과 수습 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 시대에 축성된 주변 지역의 산성들과 축조 방법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유물 또한 삼국 시대의 것으로 편년되는 것들이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한강 유역의 청풍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청풍면소재지에서 청풍호로를 이용 청풍문화재단지 입구까지 진행한 후, 매표소를 지나 청풍명월길을 따라 청풍루를 거치면 청풍나루가 나온다. 제천 청풍 망월산성청풍나루 뒤편, 즉 청풍문화재단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형태]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남북 최대 너비 140m, 동서 150m의 말각방형에 가까운 부정원형의 평면을 띠고 있다. 산성의 최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낮아지는 곳이 안부(鞍部)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짧게 평탄지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좌우가 높고 중앙이 약간 낮은 골짜기 모양으로 낮아진다. 때문에 성벽은 서쪽에서 가장 낮은 위치와 남동쪽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통과한다.

[현황]

제천 청풍 망월산성의 둘레는 성벽의 성내를 도는 소로를 기준으로 하면 477m이며, 잔존한 축석부를 기준으로 한 둘레는 502m이다. 성벽의 바깥 면은 대체로 전형적인 수평 쌓기로 축조되었다. 즉 사암과 결절을 이룬 석회암재의 석재를 세장방형 모양으로 하여 수평으로 엇물려쌓기를 하였고, 벽면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또한 외벽 면 안쪽 하단에서 별도의 보축이 확인되지 않았고, 안쪽은 석재를 채우되 수평 엇갈려 쌓기로 채운 다음 삭토한 토사를 채워 내환도상을 이루고 있다. 한편 북문지 주변에서는 계단식으로 축조한 성벽이 확인되어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성벽 안쪽으로는 환도상(環道狀)의 평탄면이 있는데 대부분 무너졌으나 산성의 남북 모서리에서 일부 잔존 성벽이 확인된다. 성벽 위에서는 상당량의 자갈돌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예는 남한강 유역의 온달산성, 공문성, 장미산성, 가은암산성 등에 보이는 특징으로 주목된다. 성벽에는 북문지로 추정되는 1개소가 확인되었고, 성내에는 4개의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남한강이 회류(回流)하였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면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청풍호가 보다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한강 수로를 포함하여 조망이 양호한 요충지에 해당한다. 비록 정확한 축성 시기와 사용 기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대의 축성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성벽을 축조하는 데 사용된 계단식 축조 방식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많이 사용된 방법이지만 성벽 대부분이 수직 벽면을 이루고 있어 신라 성벽의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발굴 조사가 진행된다면 삼국 시대 축성 방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30 항목명 수정 청풍 망월산성->제천 청풍 망월산성으로 수정(2015.4.30)
이용자 의견
관리자 디지털제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좋은 의견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4.09
류금열 선덕왕 13년(644) 9월에, 김유신 상장군은 병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성열성(省熱城), 동대성(同大城) 등 7성을 공취하고 크게 승리하여 가혜의 진(陣·津)을 개척한 성곽의 하나인 성열성이다. 일제시대 평등산(平登山)이 왜곡되면서 망월산성으로 불리고 있으나, 본래 성열성[사열이산성]은 우륵(于勒)이 탄생한 읍성이다. 2012.04.07
류금열 신채호의 학설, 644년에 신라 김유신은 죽령을 넘어 성열성(省熱城)[청풍], 동대성, 가혜성 등의 7성을 습공, 의자왕은 응전할 방략을 꾀하니 성충은 "신라가 성열, 동대성 등의 성을 차지하기 전에는 고구려의 후방을 요란케 하지 못할 것이요, 당이 요동을 차지하기 전에는 수로의 운량에 급급하여 백제를 침입할 선병(船兵)이 없을 것이다. 2012.04.07
류금열 일본인 말송보화(末松保和)는 "성열현(省熱縣)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삭주 내제군의 사열이현(沙熱伊縣)에 가까우나 악지(樂志)의 성열은 아마도 강주 강양군(江陽郡)에 속현의 하나인 신이현으로 생각한다. 즉, 일본서기의 사이기국(斯二岐國)이다." 라는 비정을 전중준명은 백제 7성을 낙동강 유역에 배치, 우륵의 이사곡을 끌어들여 왜의 임나십국을 토착했다. 2012.04.07
류금열 1970년 한글학회 지명지에 "성열성터(省熱城)[사열이산성터]는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옛 석성터로 옛 청풍 고을의 읍성이었음." 으로 명시하였다. 한편 의령군은 일본인 전중준명(田中俊明)의 "가야 연맹의 흥망과 임나"에 의거하여 미타산성을 성열성으로 주장했으나 2001년 경상남도지사가 도문화재지정(제231호)에서 조선시대 산성으로 고증되었다. 2012.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