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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51
한자 臥龍山城
영어음역 Waryongsanseong
영어의미역 Waryong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산50-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산50-1 지도보기
성격 성곽
양식 산성
크기(높이, 길이, 둘레) 2750m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

[개설]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로가 내려다보이는 동쪽 성벽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석축하였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의 기둥 홈이 확인된다. 내외의 사면이 급경사로 된 북쪽과 서쪽의 성벽은 대부분 삭토하여 능선 자체를 성벽으로 삼은 특수한 벽면 구성을 보이고 있다. 성안에는 남문지, 동남문지, 북문지, 동남암문지 등을 비롯한 문지와 망대지 4개소, 그리고 건물지 등이 확인되며 고산사(高山寺)가 위치한다.

[건립 경위]

와룡산성은 본격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건립 연대나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옛 덕산향(德山鄕) 지역 주민들이 입보하기 위한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한강의 요충지인 충주에서 동남쪽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교통로가 되는 죽령로(竹嶺路)와 충주에서 죽령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으로 통하는 모녀현로(母女峴路)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지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성벽의 축조 방법 등을 고려하면 통일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와룡산성제천시 덕산면 신현리한수면 덕곡리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527.5m의 능선과 동남쪽의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다. 청풍호에서 국도 36호선을 따라 제천시 덕산면 방향으로 진행하면 신현리에 이르고 하선대를 지나 신현주유소에서 동쪽으로 난 도로를 오르면 산성 내에 위치한 고산사에 이르게 된다.

[형태]

와룡산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부정형의 모습이며, 사방이 높은 산봉우리로 막혀 있고, 성안이 크고 작은 4~5개의 계곡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고로봉형(栲栳峰形)의 모양을 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남북 간 직선 길이는 약 850m, 동서 간 너비는 약 400m이다. 성안에는 남북으로 긴 계곡이 있어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입보와 농성에 유리한 지형이다.

[현황]

와룡산성은 동쪽의 계곡 통로 이외에는 모두가 험로(險路)를 이루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북쪽과 남쪽의 각 능선 가장 낮은 부분을 통과하는 문지가 있고, 동남쪽의 경우 문지와 암문(暗門)이 있어 능선을 따라오를 수 있다. 이중 남문지와 북문지는 안부에 문을 시설하여 좌우 높은 곳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고, 동남쪽의 문지는 능선 사면의 안부에 시설하는 동시에 높은 위치에 암문을 내어 공격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성안에는 현재 고산사가 자리한 곳에 넓은 평탄지가 있으며, 각각의 문지 주변으로도 건물지가 확인된다. 한편 동북 각부와 서북 각부에 설상(舌狀)의 대지 상 평탄지가 확인되어 방어 시설과 관련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와룡산성은 관련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살펴볼 때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석축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남은 수직 기둥 홈이다. 이러한 수직 기둥 홈은 고구려의 것으로 알려진 평양의 대성산성에서 처음 알려진 구조로, 연원이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소백산맥 연변과 그 북쪽의 내륙 지역에 분포하는 단양 독락산성(獨樂山城), 문경 노고산성(老姑山城), 충주 대림산성(大林山城), 보은 호점산성(虎岾山城), 춘천 삼악산성(三岳山城) 등에서 관찰되는데, 노고산성을 제외하고 대략 통일 신라 후기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사용된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성벽의 안쪽에 만들어진 석등(石磴) 시설이다.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의 경우, 성벽과 별도로 계단을 만든 예가 제천 덕주산성에서 확인되지만 와룡산성의 경우 성벽 자체의 너비 내에서 계단부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지형 상에 돌출된 부분에 기와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인공을 가하여 망대, 또는 망루를 설치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축조 방법에서 보이는 여러 특징들을 종합하면 와룡산성은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점, 험한 지형에 구축된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이라는 점에서 통일 신라 후기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교통로를 감제하는 동시에 장기간 입보 농성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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