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월굴리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626
한자 月窟里洞祭
영어음역 Wolgul-ri Dongje
영어의미역 Wolgul-ri Village Ritual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성격 마을 신앙|산신제|서낭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초
신당/신체 서낭당|서낭목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월굴리에서는 마을 단위로 각각 동제를 지냈다. 법개마을과 송천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에 각각의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냈고, 높은다리, 배나무들, 절매마을 등에서도 각각 동제를 지냈다. 또한 석동골에서는 땅고개 서낭제와 대덕산 산신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월굴리 법개마을과 송천마을, 높은다리, 배나무들, 절매마을 등에서 지냈던 동제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마을에서 매해 빠짐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이들 마을이 수몰되고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동제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수몰되지 않은 석동골에서 지냈던 제사인 땅고개 서낭제는 옛날 괴석골에 살던 화전민이 지내던 제사이다. 괴석골에 살았던 김봉례 집안이 개인제를 올리던 제장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냈다. 대덕산 산신제는 마을의 주산인 대덕산 산신을 모시는 제의로, 1965년 지소공장의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 마을에 들어온 신춘자[1995년 사망]가 주재해서 지내게 되었다. 음력 정월 15일이나 16일에 좋은 날을 잡아서 지냈다. 택일이나 재물은 신춘자가 준비했으며, 10여 년 전까지 계속되었다가 마을 입구에 천상사라는 절이 생겨 산신각을 짓고 신령님을 모셔 가면서 제사는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법개마을의 신당은 서낭목 형태이고, 신체는 느티나무였다. 송천마을의 신당은 당집 형태로, 신체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라고 쓴 위패였다. 석동골 땅고개에서는 서낭목 형태의 신당이었다.

[절차]

월굴리 마을 회의에서 섣달그믐에 법개마을에서 지내는 마을 대고사 제관 및 유사를 뽑고, 제의 전반에 관한 논의를 한다. 제관들은 제일인 음력 정월 열 나흗날이 될 때까지 금기를 지키며, 정초에 왼새끼를 꼬아 법개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둘레에 금줄을 친다. 제관과 유사 등은 주로 법개마을 사람들이 맡아서 하며, 제의 비용은 주변의 마을이 같이 부담해 준다. 제물은 술과 돼지 1마리, 떡 등이며, 술은 유사 집에서 빚어서 주변에 묻어 두었다가 사용한다. 정월 열 나흗날이 되면 주위의 석동골, 높은다리, 배나무들, 절매마을 등의 사람들이 구경을 오며 함께 음복을 하였다. 송천마을과 손돌배기에서는 제비를 공동으로 부담하여 정월 열 나흗날 송천마을에 있는 서낭당에서 동제를 지냈다.

석동골 땅고개에서는 서낭제를 따로 지냈다. 제일은 동계(洞契)에서 미리 정하는데, 주로 정초가 된다. 이때 유사와 제관을 뽑아 제의 3일 전부터 금기를 지킨다. 제물은 돼지머리, 북어, 술, 떡 등을 놓았다. 제물 준비는 유사가 하며, 술은 직접 빚어 사용하였다. 대덕산에서는 산신제를 지냈다. 제물은 돼지머리, 술, 떡, 밥 등이며, 제물을 담당한 마을 사람들이 각기 준비해서 제를 올렸다. 축문은 외우는 말로 대신하며, 마을 전체의 소지를 올려 주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