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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리 팽개 바위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813
한자 仙古里-
영어음역 Seongoriui Paenggaebawi Yurae
영어의미역 Origin of Paenggye Stone in Seongo-ri
이칭/별칭 「팽개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 지도보기
채록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
성격 전설|암석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신립|소서행장|장사
모티프 유형 장사가 던진 바위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팽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선고리 팽개바위 유래」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신립(申砬)[1546~1592]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바위 멀리 던지기로 내기를 하여 우리 편이 던진 바위가 지금의 선고리 고목고개까지 날아와서 조선이 이겼는데, 그때 던진 바위가 ‘팽개바위[投石]’라는 암석유래담이다. 현재 덕산면 선고리에 있는 고목고개 남쪽 산 밑에 높이 솟아 있는 바위가 바로 팽개바위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모두 「팽개바위」라고 되어 있다.

[내용]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물밀 듯이 북상해 올라왔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진은 경상도 험준한 문경 새재 관문을 넘어 충주까지 들어왔다. 이때 신립장군은 전세를 가다듬고 탄금대 한강을 배수진으로 삼아 강력한 왜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던 가운데서도 우리 군사와 왜군 사이에 내기가 벌어졌다. 힘이 제일 센 사람을 내세워 큰 바위를 집어던져 멀리 던진 편이 이기는 것으로 하고, 진 편에서는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기로 한 것이다. 왜군에서 힘센 군사 한 명이 나와 바위를 던졌으나 왜군 진영 바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 편에서 나온 힘센 장사가 큰 바위를 냅다 던졌더니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 바위가 날고 날아서 지금의 선고리 고목고개까지 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팽개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나 내기에서 진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약속을 어기고 물러가지 않았고, 신립장군은 그곳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선고리 팽개바위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장사가 던진 바위’이다. 바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으며, 임진왜란과 연결시키고 있다. 한편, 내기에 지고도 물러서지 않은 적장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비판을 한다. 반면에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지기는 하였지만 신립장군과 조선군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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