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송한리 절골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832
한자 松寒里-由來
영어음역 Songhan-ri Jeolgol Yurae
영어의미역 Origin of Jeolgol in Sonhan-ri
이칭/별칭 「절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암석 유래담|사찰 폐사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부인|머슴|여인|승려
모티프 유형 인륜을 어긴 머슴|계율을 어긴 승려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에서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송한리 절골 유래」는 전반부는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 온 부인을 머슴이 겁탈하자 부인이 자결하여 설통바위가 되었다는 암석유래담이고, 후반부는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을 승려가 겁탈하자 부처가 노하여 절이 폐사되었다는 사찰폐사담이다.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에는 절골[寺谷]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모두 「절골」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우리나라에 대거 침입하여 조정에서 강화도로 천도할 무렵, 서울에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낮이고 밤이고 부처님 앞에 나가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중 절 근처에 살던 젊은 머슴이 이 아름다운 부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날마다 불공드리는 부인을 멀리서 엿보며 가슴의 연정을 달래었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밤, 부인이 불공을 마치고 절 뒤편으로 잠시 나온 것을 보고 뒤를 따라가 부인에게 달려들어 부인을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얼마 후 절로 돌아온 부인은 자기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진(自盡)을 하였다.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절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부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던 자리에서 바위가 하나 솟아 나왔다. 사람들은 부인의 한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바위를 ‘설통바위’라고 불렀는데, 부인의 화신(化身)이라고 믿었다.

또한 조선 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절골에 있는 절 이름을 ‘월명사(月明寺)’라고 하였다. 삼십 여 명의 승려들이 불도를 닦고 있었다. 언젠가 월명사에 아리따운 여인이 백일치성을 드리러 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불공드리는 여인은 정혼한 사람이 과거에 장원 급제하기를 빌었다. 그런데 젊은 승려 한 사람이 미모의 여인에게 마음을 뺏겼다. 어느 날 밤 절 뒤편에서 산책하는 여인을 범하고 말았다. 여인은 법당에 돌아와 자결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절에 난데없는 빈대가 꾀기 시작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었다. 결국 승려들은 모두 떠나고 상좌승만 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더니 산사태를 일으켜 절을 몽땅 쓸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계율을 어긴 승려 때문에 부처님이 노하여 절을 없애 버렸다고 믿었다.

[모티프 분석]

「송한리 절골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인륜을 어긴 머슴’, ‘계율을 어긴 승려’ 등이다. 「송한리 절골 유래」는 두 개의 각 편으로 구성하여 절골에 사찰이 없어진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인륜과 승려로서의 계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특히 후반부의 이야기에서는 계율을 어긴 승려로 인해 사찰이 없어지지만, 흔히 사찰폐사담으로 대표되는 「빈대 절 터」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