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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930
한자 堤川八景
영어음역 Jecheonpalgyeong
영어의미역 Eight Famous Spots of Jeche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순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출생 시기/일시 1862년연표보기
저자 사망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성격 한시
작가 정운호

[정의]

개항기 정운호(鄭雲灝)가 제천 지역의 팔경에 대해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제천의 유림들이 「소상팔경」을 본 따서 팔경을 선정했는데, 이는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林湖釣叟]’, ‘백련사 돌아가는 중[蓮寺歸僧]’, ‘대암에 노니는 물고기[帒巖遊魚]’,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 ‘한벽루의 가을 달[碧樓秋月]’, ‘능강의 봄 돛단배[綾江春帆]’, ‘옥순봉 기암[玉筍奇巖]’, ‘월악산의 늦단풍[月岳晩楓]’ 등이다. 이 팔경을 유인석의 호좌 의진에서 활약한 정운호가 칠언 율시로 형상화한 것이 「제천팔경(堤川八景)」이다.

단발령과 명성왕후 시해에 분노한 유생들을 중심으로 제천에서 을미의병이 기병한 것이 1895년(고종 32)이다. 이 무렵 정운호[1862~1930]는 34세의 나이로 유인석의 제천 의병에 가담했는데, 「제천팔경」은 적어도 그 이전인 20~30대에 고향 제천의 풍광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구성]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에서는 의림지의 한적한 경치 속에 낚시하는 한가로움을 표현했고, 「백련사 돌아가는 중」에서는 백련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들어가는 중의 모습을 그렸다. 「대암에 노니는 물고기」에서는 대암의 물가에서 노니는 자유로운 물고기의 모습을 그렸으며, 「관란정의 우는 여울」에서는 단종이 유배될 때 표주박을 띄워 보내며 충성을 보냈던 생육신들의 마음을 그렸다. 또한 「한벽루의 가을 달」에서는 한벽루에 청량한 달빛이 비치는 경치를 그렸고, 「능강의 봄 돛단배」에서는 남한강의 한 부분인 능강에서 오고 가는 고깃배와 장삿배의 여유로운 모습을 그렸다. 「옥순봉 기암」에서는 옥순봉의 절경을 그렸으며, 「월악산 늦 단풍」에서는 형용할 수 없게 아름다운 월악산의 단풍을 그렸다. 제천 지역을 대표하는 여덟 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내용]

「의림지 낚시하는 늙은이[林湖釣叟]」

임호명승천제주(林湖名勝擅堤州)[의림지 뛰어난 경치 제천을 떨치게 했는데]

조수청한물외유(釣叟淸閒物外遊)[낚시하는 늙은이 맑고 한가로워 세상 밖에서 노니네]

풍우미귀지화취(風雨未歸志和趣)[비바람에도 돌아가지 않는 뜻 화락한 풍취]

하산불환자릉류(河山不換子陵流)[산하와도 바꿀 수 없는 자릉(子陵)의 부류로세]

춘래신반암두연(春來身伴岩頭燕)[봄이 오매 이 내 몸 바위 위의 제비와 짝하고]

노거심맹수상주(老去心盟水上舟)[늙어 가매 이내 맘 물가의 배와 함께하네]

우륵대공용폭재(牛勒臺空龍瀑在)[우륵대는 비었어도 용폭은 남았으니]

일도연경일간수(一道烟景一竿收)[한 길의 연기 핀 경치 한 낚싯대로 거두네]

「백련사 돌아가는 중[蓮寺歸僧]」

연사치도보보등(蓮寺緇徒步步登)[백련사 장삼 입은 중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데]

노송향계열강릉(老松香桂列岡陵)[늙은 솔 향기로운 계수나무 산등성이에 늘어섰다]

석첨알알귀산리(石尖戛戛歸山履)[돌 끝은 삐쭉빼쭉 산사로 돌아가며 밟는데]

수담의의예불등(樹罈依依禮佛燈)[나뭇가지 휘늘어져 예불 등 같네]

금수징청명월재(金水澄淸明月在)[맑고 깨끗한 샘물엔 밝은 달이 머물고]

감암률올모운응(紺巖硉屼暮雲凝)[돌 비탈진 감악산엔 저녁 구름 엉기네]

욕진무저선사적(欲進無著禪師迹)[집착 없는 선사(禪師)의 자취로 나아가고 싶지만]

일송유경공미능(日誦遺經恐未能)[날마다 남은 경전 외워도 잘못할 것만 같네]

「대암(帒巖)의 노니는 물고기[帒巖遊魚]」

대암벽재협탄중(帒巖僻在峽灘中)[골짝 여울 속 궁벽한 곳 대암 있으니]

상서유어암축풍(嘗暑遊魚暗逐風)[노니는 고기 더위 겪고 몰래 바람을 좇네]

처혈하순혐조수(處穴何順嫌釣叟)[낚시하는 늙은이 꺼려서 구멍에 숨어 얌전히도 있다가]

소류당아파촌옹(溯流倘我怕村翁)[촌 늙은이 두려워 물길 거슬러 내 곁에서 머뭇거리네]

파통궁곡월잉재(波通弓谷月仍在)[물결이 궁곡(弓谷)을 지나도 달은 여전히 있고]

지접옥전연불공(地接玉田烟不空)[땅이 옥전(玉田)에 접했으니 연기가 없어지질 않네]

의시상단현자사(疑是常丹賢刺史)[아마도 상단(常丹)에 어진 원님 계신가]

방생화수낙무궁(放生花水樂無窮)[놓여 자란 꽃과 물 즐거움 한이 없네]

「관란정의 우는 여울[瀾亭鳴灘]」

관란정하벽류지(觀瀾亭下碧流遲)[관란정 아래 푸른 물결 더디 흐르고]

오열탄성감구시(嗚咽灘聲感舊時)[오열하는 여울 소리 옛날을 느끼게 하네]

수조유기의구재(垂釣遺磯依舊在)[낚싯대 드리우던 물가 예전처럼 남아 있고]

송표고저상금지(送瓢古渚尙今知)[표주박 띄어 보내던 옛 모래톱 이제야 알겠거니]

격풍향사비궁검(激風響似悲弓劍)[사나운 바람 궁검(弓劍)을 슬퍼하듯 울리고]

번석형여난혁기(翻石形如亂奕棋)[구르는 돌은 바둑알처럼 어지러운데]

요망창오운무암(遙望蒼梧雲霧暗)[멀리 보니 푸른 오동 구름 안개 속에 흐릿하고]

파오부진약위사(波嗚不盡若爲思)[물결은 한없이 울어 대니 생각하는 것이 있는 듯]

「한벽루 가을 달[碧樓秋月]」

근수벽루환취미(近水碧樓環翠微)[물 가까이 한벽루는 비취빛을 둘러 희미하게 보이고]

청천호월반추귀(晴天晧月伴秋歸)[맑은 하늘 밝은 달은 가을을 따라 돌아가네]

금풍취영침명주(金風吹影沉明酒)[가을바람 불어 명주(明酒)에 그림자를 만들고]

옥로첨광결객의(玉露添光潔客衣)[옥로(玉露)는 빛을 더해 객의 옷을 씻누나]

청초호명어가수(靑草湖明魚可數)[청초호(靑草湖) 밝아 물고기 헤아릴 만하고]

금병산요조공비(錦屛山耀鳥空飛)[금병산(錦屛山) 환해 새는 공중에 나는구나]

일년난재금소경(一年難再今宵景)[1년 중에 오늘 같은 밤 경치 다시 오기 어려우니]

발소빙란후견식(發嘯憑欄候見拭)[휘파람 불며 난간에 기대 눈을 씻고 살펴보네]

「능강의 봄 돛단배[綾江春帆]」

능강춘일수편창(綾江春日水偏彰)[능강의 봄이 되어 물은 반쯤 맑아]

어남상범공취장(魚楠商帆共聚場)[고깃배와 장삿배가 함께 어울리는 마당]

행화세우봉창습(杏花細雨逢窓濕)[살구꽃 가는 비에 뱃창이 젖고]

양류미풍포석장(楊柳微風布席長)[버드나무 여린 바람에 깔아 놓은 자리 펴진다]

출입영단산첩첩(出入永丹山疊疊)[영춘 단양으로 드나들 때 산은 첩첩이요]

왕래한락수창창(往來漢洛樹蒼蒼)[한양으로 오갈 때 나무는 창창하다]

범범선여천상좌(泛泛船如天上坐)[가득 떠 있는 배들 하늘에 올라앉은 듯한데]

세인하필경선방(世人何必竟仙方)[세상 사람들 하필이면 모두 신선을 찾을까]

「옥순봉 기암[玉筍奇巖]」

옥순위산산석경(玉筍爲山山石輕)[옥 죽순이 산이 되니 산의 돌 가볍고]

암여기옥만산명(巖如奇玉滿山明)[기이한 옥 같은 바위산을 채워 밝구나]

강우특립증준경(江于特立嶒峻驚)[강가에 우뚝 서 높고 험함 놀라운데]

호좌유전절승명(湖左由傳絶勝名)[호수 왼쪽 이로 인해 절경이라 이름 전하네]

별계불두운쇄암(別界佛頭雲鎖暗)[별계의 불두산 구름에 갇혀 어둑하고]

반천선장로응청(半天仙掌露凝淸[하늘로 반쯤 솟은 선장(仙掌) 이슬이 맺혀 맑도다]

봉봉석석무비보(峯峯石石無非寶)[봉우리마다 돌마다 보배 아님이 없으니]

필시민민족일생(必是民民足一生)[백성마다 평생을 만족할 게 분명해]

「월악산 늦단풍[月岳晩楓]」

간풍월악객거정(看楓月岳客車停)[월악산 단풍 구경에 나그네 수레 멈추었는데]

어화어시미이형(於畵於詩未易形)[그림으로도 시로도 쉽게 형용할 수 없네]

하염천추종불변(霞染千秋終不變)[놀에 물든 모습 천추에도 끝내 변치 않으며]

상감만엽역난성(霜酣萬葉亦難醒)[서리에 취한 온갖 잎들도 깨어나기 어려우리]

산천역력개생채(山川歷歷皆生彩)[또렷한 산천은 모두 살아 있는 채색이요]

초목연연약병령(草木娟娟若炳靈)[곱디고운 초목은 마치 밝고 좋구나]

지시덕주신륵근(知是德周神勒近)[덕주사 신륵사 가까움 알고 있는데]

몽몽화우동천명(濛濛花雨洞天冥)[추적추적 꽃비에 골짜기 하늘 어두워지네]

[특징]

모두 칠언 율시로, 어느 장소의 경치와 거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뛰어나게 형상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천 지역 명문가의 종손이었던 정운호는 삼종형인 정운경 의병장을 따라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이는 학문을 익혔던 식자로서 국권이 위태로울 때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다. 「제천팔경」은 그 이전 젊은 날에 고향 제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제천이 그에게 소중한 곳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고향을 지키기 위해 일제의 침탈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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