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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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洞 - |
영어공식명칭 | Seong-dong Neutinamu|Seong-dong Zelkova |
이칭/별칭 | 이황 나무,정경세 나무 |
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성동 17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용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00년 - 성동 느티나무 식재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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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지정 일시 | 2003년 1월 16일![]() |
소재지 | 고산서당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성동 172]![]() |
학명 | Zelkova serrata MAKINO |
생물학적 분류 | 식물계〉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쐐기풀목〉느릅나뭇과 |
수령 | 320년[이황 나무]|320년[정경세 나무] |
보호수 지정 번호 | 6-9 |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수령 320년의 보호수.
중국 동부, 타이완, 일본 등에 분포하는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자라는 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이다. 성동 느티나무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172에 있는 고산서당(孤山書堂)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를 일컫는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고산서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강학하였던 곳인데, 두 사람과 고산서당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은 나무 두 그루가 바로 성동 느티나무이다. 그렇기에 나무 이름도 각각 ‘이황 나무’, ‘정경세 나무’로 불리고 있다. 2003년 1월 16일 대구광역시 보호수 지정 번호 6-9로 지정되었다.
성동 느티나무 중 ‘이황 나무’는 높이 11m, 가슴 높이의 나무 둘레는 6.8m에 이르고 지상 2.5m 높이에서 두 개의 큰 가지가 뻗어 있다. 둥치에 빈 구멍이 생기고 말라서 죽은 가지도 있으나 아직 나무의 상태는 좋은 편이고 가지가 동으로 4m, 서로 6.8m, 북으로 7.5m까지 뻗어 있다. ‘정경세 나무’는 높이가 ‘이황 나무’와 비슷하고, 둘레는 훨씬 가늘다.
고산서당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전기인 1500년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종 때에는 지역 유림들과 윤희렴(尹希廉)이 재실을 짓고 이황에게 재호(齋號)를 청하여 재(齋)는 ‘고산(孤山)’으로, 문(門)은 ‘구도(求道)’라고 한 친필을 받았다. 당시 ‘구도’라고 쓴 편액은 지금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중건하였다. 1690년(숙종 23)에 서당 뒤편에 사당을 지어 고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이때 이황과 정경세를 배향하였다. 1734년(영조 10)에 강당 및 동재와 서재를 완공하였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879년(고종 16)에 이르러 지역의 선비들을 중심으로 강학계(講學契)를 조직하여 강당을 중건하고 ‘고산서당’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산서당은 최근 새로 보수되었다. 서당 동쪽에 있는 성동 느티나무 두 그루는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려 형제 나무처럼 나란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