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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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山城挽河樓 |
영어의미역 | Manharu Pavilion Gong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6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성격 | 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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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754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65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개설]
일반적인 누정들이 주변 풍광을 고려하거나, 강학 위주로 건립되었다면 공산성 만하루는 공산성 동쪽 누대에 있는 군사적 기능이 중심이 된 누정이다.
[위치]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옛 공주시내버스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의 입구가 나온다. 만하루는 공산성 동편에 있는 깊이 9m의 연지와 금강 사이에 있다.
[변천]
공산성 만하루는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성지조」와 「누정조」 부분에 1754년(영조 30) 충청감사 김시찬(金時粲)에 의해 공산성 동쪽 연못가에 6칸으로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공주판관 박사석(朴師錫)의 아들인 박윤원(朴胤源)이 쓴 「만하루기」에도 관찰사 김시찬이 규획하여 건립하였고, 그 이름을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가 지은 「세병마(洗兵馬)」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만하루가 언제 훼철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성록(日省錄)』과 1859년(철종 10)에 편찬된 『공산지』,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호서읍지』 등에 만하루에 대한 언급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형태]
현재의 공산성 만하루는 1984년 복원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목 조 건물로 되어 있다.
[현황]
1980년 공산성 내 유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공산성 만하루에 대한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1984년 현재의 건물로 복원되었고, 2006년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공산성 만하루 옆의 연지도 복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공산성 만하루를 통해 누정이 단순히 풍류를 즐기고 노는 공간이 아닌 군사적인 기능을 가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산성이 조선시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