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암은 이천서씨의 동족마을이다. 이천서씨 중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인물은 고청(孤靑) 서기(徐起)[1523-1591]이다. 그는 충청우도 남포현(藍浦縣) 제석동(帝錫洞)에서 태어나 노년에 공암에 정착한 인물로 한미한 출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당시 신분사회의 질곡 속에서도 개인적 역량으로 한 시대에 기록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이다. 서기가 공주...
서기의 선계(先系)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중봉(重峰) 조헌(趙憲)은 1586년 공주제독을 지낼 때에 임금에게 올린 소장에서 그를 ‘양인(良人)’으로 표현했고, 서기가 만년에 공암에서 강학할 때 공주목사였던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는 서기의 출신이 ‘비미(卑微)하다’고 했으며, 서기의 벗이었던 수암(守菴) 박지...
고청 서기는 생전에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학식과 재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와 얽힌 이야기 속에는 한결같이 그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신이한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 그와 관련한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고청봉 정기받은 마을 공암리』(2005) 책자의 250쪽 일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고청 서기는 이지함과 이중호를 사사했다. 이지함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인으로, 서경덕 주기론의 영향을 받아 『주역』을 기본으로 하여 수리·의학·복서·천문·지리·음양·술서 등에 달통한 인물이다. 또한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다니며 명당과 길지를 점지했는데, 서기도 그와 함께 다닌 적이 있다. 이중호는 소학을 강조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고청 서기는 생전에 관직에 나아가거나 이름이 크게 떨쳐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이한 재주와 명철한 예견력, 교유인물, 문인, 후손들의 노력으로 사후 추증 및 증시의 은전을 받았다. 우선 그의 증직(贈職)은 시호를 받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로서 융희 4년(1910)에 정2품인 ‘자헌대부규장각제학(資憲大夫奎章閣提學)’으로 증직되었다. 이 후 같은 달 ‘문목(文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