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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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忠秀妻錦城羅氏 |
영어음역 | Gim Chungsu Cheo Nassi |
영어의미역 | Lady Na, Gim Chungsu'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조선 중기 열녀.
[가계]
본관은 금성(錦城). 아버지는 참봉 나열(羅悅)이고, 남편은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한 김충수(金忠秀)이다. 본래 나주김씨는 전라남도 무안에 세거하고 있었다. 공주로의 입향은 김충수의 장남 김천성(金天成)에 의해 이루어졌다.
『나주김씨대동보』와 나주김씨세거향비(羅州金氏世居鄕碑)에 의하면 무안에서 김충수와 김충수 처 금성나씨가 순절한 이후 자식들은 왜적의 포로가 되어 끌려 다니다가 왜적이 직산에서 명군에게 패전한 틈을 타 탈출하였다고 한다. 나이도 어리고 고향인 무안까지는 길이 멀어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공주 견산촌(見山村)[현 견동리]에 이르러 전주최씨를 부인으로 맞으면서 공주시 탄천면에 정착하게 되었다.
[활동사항]
김충수(金忠秀)[1538~1597]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며 절의를 굽히지 않다가 1597년 순절하였다. 김충수 처 금성나씨는 이때 남편이 왜병에게 둘러싸여 죽음 직전에 처함을 보고 남편 앞을 가로막고 왜적을 꾸짖다가 남편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러한 김충수 처 나씨의 열행은 무안군수를 지낸 이홍원이 1859년(철종 10)에 지은 『구암김공정부인금성나씨정열록(龜巖金公貞夫人錦城羅氏貞烈錄)』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자에게 내린 공신 칭호) 1등과 호조참판에 책봉되었다. 1799년(정조 23) 나라에서는 김충수를 의정부좌참찬·의금부지사·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贈職)하였고, 김충수 처 금성나씨는 열녀로 정려(旌閭)를 받았다.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에 정려가 있다. 김충수 처 금성나씨 정려는 본래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에 있던 것을 1913년 후손들이 거주하는 지금의 자리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현재의 정려는 1983년 중수한 것으로 내부에는 열녀 정려비와, 1914년 이칙(李侙)이 지은 정려기가 걸려 있다. 정려 주변에는 나주김씨의 세거지임을 알리는 비석과 나주김씨 가문의 인물 3명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