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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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晦源妻扶寧金氏 |
영어음역 | Ryu Hoewon Cheo Gimssi |
영어의미역 | Lady Gim, Ryu Hoewon'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성격 | 열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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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
성별 | 여 |
몰년 | 1798년(정조 22) |
본관 | 부령(扶寧)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가계]
본관은 부령. 김홍필(金弘弼)의 딸이다.
[활동사항]
유회원(柳晦源) 처 부령김씨(扶寧金氏)는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13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애석해 했다고 한다. 장성하여 이웃에 사는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의 7대손인 유회원의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자식을 낳지 못하자 근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양에서 관직을 갖고 있던 남편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간호하기 위하여 급히 상경하던 중에 남편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이에 자결하려 하였으나 후사를 정하지 못하였기에 참고 기다려 조카인 유상목을 양자로 삼고 나서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남편을 따라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주검을 거둘 때 품속에서 나온 유서에는 “지금까지 구차하게 연명한 것은 후사를 정하지 못한 것과 남편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을 마쳤으니 부군을 따라 생을 마치겠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유회원 처 김씨가 음독자살했다고 나와 있으나 후손들이 전하는 얘기로는 바늘 쌈지를 삼켜 자결하였다고도 한다.
[묘소]
유회원 처 부령김씨는 다른 세 부인인 영월신씨, 전주이씨, 남양홍씨와는 다르게 충청남도 공주시 신하면 화장리(현재 신풍면 동원리의 화정골)에 남편과 합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절행이 알려지면서 선비들이 뜻을 모아 유회원 처 부령김씨의 행적을 수령과 관찰사에게 알려 정려(旌閭)가 내려지게 되었다. 명정 현판의 추기에 의하면, 정려가 건립된 이후 1829년 8월에 아들인 유상목이 호서병마절도사에 제수되자 정부인에 추증되었고 이 시기에 정려도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열행은 『순조실록』, 『충효열등제등록』, 『호서읍지』, 『공산지』, 『조선환여승람』에 각각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유회원 처 부령김씨 정려는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유형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