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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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寶物里山神祭-祭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for the Mountain God and the Large Old Shade Tree of Bomul-ri |
이칭/별칭 | 보물리 산신제와 교목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훈성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에서 음력 정월과 10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 앞에는 정안천이 흐른다. 정안천은 보물리의 생활의 터전이다. 즉, 보물리는 농업을 주로 하는 마을이다. 그럼에도 산신제를 지내는 것은 마을 뒤에 제법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보물리가 광덕산에서 국사봉(國士峰)[402m], 국사봉(國司峰)[346m]으로 이어지는 곳이고, 비교적 험한 산에서 마을 사람들은 땔감을 마련하고 산짐승을 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산짐승에 의한 피해도 많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을의 입지는 산신과 토지신을 모두 모셔야 하는 마을공동체 신앙을 만들었고, 그것이 전하여 지금의 산신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보물리 둥구나무제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약 100여 년 전 보물리에 큰 불이 났을 때 이 둥구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지면서 불길을 막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마을에서는 희생한 나무의 혼을 위로하고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신제를 위한 당집이 있으나 이곳에서는 제를 지내지 않고 제물만 장만한다. 당집에서 약간 위로 올라가면 작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산신제를 치른다. 산신제 기간에는 공터에 황토를 피워 신역(神域)을 표시한다. 가장 중앙에는 큰 황토 무더기를 쌓고, 그 위에 ‘토지대신(土地大神)’이라고 쓴 나무를 꽂는다. 큰 무더기의 좌우에 황토 세 무더기씩을 더 놓는다.
둥구나무제를 지내는 나무는 마을에 있는 수령이 530년 혹은 31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이다. 산신제와 마찬가지로 느티나무 앞에도 큰 황토 무더기를 조성하는데, 특이한 점은 그 위에 ‘괴목귀신’이라고 쓴 나무를 꽂는다는 것이다.
[절차]
보물리의 산신제와 둥구나무제는 정초와 시월에 이루어진다. 제관은 산신제와 둥구나무제가 각각 다른데, 산신제와 둥구나무의 제관을 각각 한 명씩 뽑는다. 또 축관을 각각 한 명, 짐꾼을 각각 두 명씩 뽑아 총 여덟 명이 제사를 지낸다. 제수는 다른 곳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소·돼지를 올렸지만 지금은 돼지머리만을 쓴다. 소나 돼지를 제수로 쓸 때는 소나 돼지가 쓰러질 때 땅에 닿지 않은 것과 땅에 닿은 부분을 분간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이틀 저녁과 아침에 목욕재계한다. 제사 당일 밤 12시가 되면 짐꾼 두 명과 제관 한 명, 축관 한 명이 산에 오른다. 산제당에서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되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산제당 위쪽 공터에서 산제를 시작하는데 분향, 강신, 헌작, 독축, 소지 순으로 유가식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치면 술을 한 잔씩 하고 불을 놓아 산신제가 끝났음을 알린다. 그러면 둥구나무제를 준비하던 사람들도 그 불을 보고 제의를 시작한다. 동구나무제의는 산신제와 같은 방법이다.
[축문]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의 산신제와 둥구나무제의 축문은 한글로 써서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보물리 산신제 축문
“유세차 계유 시월기해 삭일일기해 제주 ○○○가 보물리 주민 일동을 대표하여 삼가 삼신께 고하나이다. 보물리 주민 일동은 수백 년 이래 산신께서 보우하여 주시와 아무런 환란변고 없이 안거락 하나이다. 이에 춘추로 길일을 택하여 제향을 받들어 올리오니 계속 보우하여 주시기를 축원하나이다.”
2. 보물리 둥구나무제 축문
“유세차 계유 시월기해 삭일일기해 제주 ○○○가 보물리 주민 일동을 대표하여 삼가 교목지신께 고하나이다. 보물리 주민 일동은 교목지신께서 보우하여 주시와 아무런 환란질고 없이 안거락 하나이다. 이에 춘추로 길일을 택하여 제향을 받들어 올리오니 계속 보우하여 주시기를 축원하나이다.”
[현황]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보물리에서는 지금도 음력 정월과 시월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산신제와 둥구나무제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제관을 가릴 때나 준비 과정에서 금기가 엄했으나, 지금은 마을 인구의 감소가 뚜렷하여 산신제나 둥구나무제가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