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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 물한 동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335
한자 新間里勿閑洞祭
영어의미역 Singan-ri Mulhan Village Ritua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정월 초이튿날[음력 1월 2일]
의례장소 돌무더기 및 소나무[예전]|연자방아[현재]지도보기
신당/신체 소나무|돌무더기|연자방아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간리 물한 동제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잘 지냈으나 1970년대 이후에 제수가 축소되었다. 현재 원래 마을 터의 제당에는 석축대와 돌담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연원 및 변천]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 물한마을 주민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제관을 선정하여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며, 제의를 행하기 전 샘에서 찬물 목욕을 하는 등 산신제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대부분 가구가 도로변으로 이주하면서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 왔고, 이윽고 산신제 제수의 축소 및 절차의 간소화가 진행되었다.

1997년의 경우 물한마을의 산신제는 간략하게 행해졌는데, 제관은 목욕재계를 하지 않고 집 앞에 황토를 뿌리지 않은 채 솔가지만 놓아두었다. 제관을 선출하던 풍습 역시 사라져 근래에는 이장이 당연직 제관이 되었다. 또한 정월 초이튿날 밤 12시경에 행해지던 산신제는 오후 3시경에 지냈으며, 제를 치르는 동안 축문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산신제가 끝나면 모여 음복과 놀이를 행했으나, 1997년에는 음복에 참여한 사람이 5~6명에 불과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의 공간은 이주하기 전의 마을을 기준으로 하여 마을 입구 부분과 마을 입구의 계곡을 건너서 위치한 산제당으로 구분된다. 마을 입구 부분은 다시 마을 쪽의 산기슭과 길 건너편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을 입구의 산기슭 소나무 숲속에 ‘돌무덤’[250㎝×290㎝]이라 불리는 돌무더기와 그 위에 큰 돌을 세로로 세워둔 제당이 위치한다. 이곳의 소나무는 신성시되었으나 1950년대 중반 무렵 산판 사업이 한창일 때 베어냈다. 길 건너편의 제의 공간에는 마을이 이주하기 전 제의를 지냈던 돌무더기와 이주 후 제의가 이루어진 연자방아가 있다. 산제당은 현재의 마을에서 이주하기 이전의 마을로 들어가는 중간에 위치하며, 두 개의 봉우리 중 한 곳에 ‘산신제당’이 있었고, 나머지 봉우리에는 제의를 행한 후 소머리와 발을 묻은 곳이다.

[절차]

물한마을의 산신제는 정월 초하룻날 이장 집에서 행하는 동회에서 지명 받은 두 사람이 제관이 되어 제의를 행한다. 제관의 선발 대상은 안팎으로 깨끗한 사람이어야 하며, 부정한 사실을 숨기고 제관이 되었다면 그에 따른 ‘손해를 봤다’고 한다. 선정된 제관은 정월 초이튿날 아침에 왼새끼로 금줄을 집 앞에 치고 황토를 뿌리는데, 이때 마을의 모든 집에서는 각자 집 앞에 황토를 뿌린다. 초이튿날 저녁 제관은 샘에서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후, 저녁 12시가 되면 제당으로 가 제사를 지냈다. 제의에서 가장 중요한 제수는 소였는데, 생후 5~6개월 된 송아지를 고령 우시장에서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현황]

현재 마을 입구에는 청룡사라는 절이 있다. 청룡사의 주지는 사찰을 창건한 이후부터 계속 산제를 행하고 있다. 주지 스님은 매년 정월 초이튿날 산신제를 행한 후 갖가지 제수를 한지에 싸서 길 양쪽의 돌무더기와 연자방아 제당에 놓아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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